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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재회.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야심한 시간이라 배달부일 리도 없다. 루이스는 창밖을 슬쩍 내다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도어스코프조차 없는 작고 허름한 집이라 확인을 하려면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티엔?"
검은색 일색의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놀란 루이스의 얼굴을 감싸며 입을 맞췄다. 급하게 달려드는 입맞춤에 루이스는 뒤로 넘어질 뻔했으나 저를 강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덕에 넘어지는 대신 벽에 등이 부딪혔다. 충격에 입술이 열리고, 그의 혀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안쪽으로 도망치려는 루이스를 낚아챘다. 안쪽 여린 곳을 건드리며 희롱하고, 혀를 감아올리는 사이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열린 입술을 타고 흘렀다. 뇌가 녹진하게 녹는 것 같은 기분에 루이스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다리가 풀려 볼썽사납게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잠시의 딴 생각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입천장을 건드리며 입술을 부비고 한 손으로 허리를 더듬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이라 가벼운 옷차림이었고, 티셔츠 위로 허리를 더듬던 손이 그 안쪽으로 파고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장갑을 낀 손이 예민한 옆구리를 쓸고, 더듬었다. 루이스는 그의 단단한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각도를 바꿔 더 깊이 들어오는 티엔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숨이 모자랐다.
"후우, 하아. 티엔."
"보고 싶었다."
"연락이라도 하, 읍....으응...."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다시 입술을 맞추는 연인때문에 루이스의 불만은 농밀한 키스에 묻히고 말았다. 성급하게 갈증나 죽겠다는 듯 몰아치던 첫 키스와 달리 조금은 배려가 섞여있어 간간히 숨을 쉬었다. 코가 부딪히고, 살짝 눈을 뜨면 떨리는 긴 속눈썹이 보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타오르는 욕망가 이질적인, 진지하기 그지없는 짙은 고동색 눈동자가 아찔했다.
"집중해."
"하아, 티엔."
루이스는 눈썹에 힘을 주고 다시 입을 맞추려는 티엔의 뺨을 감싸고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닿았다 떨어지는 가벼운 뽀뽀에 티엔이 다시 얼굴을 가까이했으나 루이스는 아직 호흡을 고르기도 바빴다. 한밤중 갑자기 찾아온 연인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안 오기로 했잖아요."
"......."
티엔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더 바싹 붙였다. 배를 맞댄 채 그와 벽 사이에 눌린 루이스는 길게 숨을 내쉬고 눈을 감고 입술을 맞췄다. 천천히, 그를 달래듯 입술을 부비며 숨을 주고 받고, 조심스레 혀를 내밀어 희롱하듯 스치고 감으며 타오르듯 붙은 욕망을 애정이 담긴 흥분으로 바꾸어나갔다. 한 달 만에 보는 연인이었다. 루이스라고 반갑지 않은 게 아니었다. 연락도 없이 사라져서, 감감무소식인 그를 떠올리며 오늘처럼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린 밤을 셀 수 없었다.
"하아, 루이스."
"나도, 보고 싶었어요."
루이스는 작게 속삭였다. 들을 사람이라곤 눈앞의 남자밖에 없건만, 비밀의 언어를 속삭이듯 은밀했다. 티엔의 눈에 참기 힘든 듯 욕망의 불길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그 눈동자가 정욕에 휩싸여 저를 갈망하는 그 오싹한 감각에 루이스는 먼저 입을 맞췄다. 고개를 돌려, 서로의 밑바닥까지 들춰내 가지려는 듯한 흥분에 키스는 점점 거칠어졌다. 루이스는 몇 번이나 벽에 떠밀려 머리를 찧었지만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거친 키스에 흥분했다. 이불 속에서 따뜻해진 몸은 그보다 더한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루이스는 제 허리를 더듬는 티엔의 손목을 잡고 그의 장갑을 벗겨냈다.
"티엔, 하아, 읏...."
뺨을 어루만지다 뒷목을 잡고 키스하던 티엔이 입술을 떼더니 루이스를 번쩍 안아들었다. 같은 남자지만, 티엔의 탄탄한 몸에 루이스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잘 다져진 근육은 물론이고, 웬만한 여자 부럽지 않은 가슴까지. 그의 팔 안에 안긴 루이스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저를 번쩍 들어올리는 그의 힘과 체력에 감탄하면서도 남자로서 약간의 비참함을 느꼈다. 체계적으로 운동을 해서 만든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근육이 있는 몸인데, 그것도 티엔의 앞에선 그저 초라해질 뿐이었다.
"읏."
"루이스...."
매트리스 위에 던져진 루이스는 제 위에서 검은 코트를 벗으며 저를 애정과 욕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넥타이를 잡아 당겨 몇 번째인지 모를 키스를 하며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 사이 티엔의 손은 루이스의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말아올리고 벨트 버클을 풀었다. 절그럭거리는 쇳소리가 흥분을 고조시켰다. 이 다음에 이어질 행위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랫도리에 열이 쏠렸다.
"후, 티엔.... 당신 또...."
혀뿌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진한 키스에 루이스는 고개를 뒤로 빼 감았던 눈을 떴다. 풀어 헤친 셔츠 아래 배를 감은 붕대가 바로 루이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티엔은 급하게 넥타이를 풀어 던지며 인상을 찌푸린 루이스의 어깨를 밀어 침대에 눕혔다.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니긴, 아직 다 낫지도 않은 거 아니에요?"
"괜찮다. 루이스,"
루이스는 입을 맞추려는 티엔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관계의 주도권은 루이스에게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러다 터졌잖아요. 됐어요."
"루이스! 널 만나려고 일을 마치자마자 온 거다."
티엔이 루이스의 팔을 잡으며 급하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있는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루이스는 어정쩡하게 제 허리 위에 무릎으로 앉아있는 티엔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걸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티엔이 루이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려 다가왔지만 루이스는 다시 그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그리고 반대로 그를 눕히며 다리를 모아 일어났다. 루이스는 이미 잔뜩 불거진 티엔의 앞섶을 어루만지며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입으로 해줄 테니까, 다 나으면 해요."
아쉽기는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기대한 만큼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아픈 사람에게 무리를 시킬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눈밑에 진 다크서클과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숨도 못돌린 채 저를 만나러 온 게 분명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같은 남자의 걸 입에 넣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티엔의 것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이스는 입을 벙긋거리는 티엔의 얼굴에서 시선을 내려 손바닥 아래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것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브리프를 내렸다. 갑갑하게 조이던 천에서 밖으로 나온 그의 성기는 탱탱하게 고개를 쳐들고 잔뜩 불거진 핏줄이 채 불뚝거렸다. 잘 빠진 모양에, 흠잡을데 없는 굵기와 크기에 루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게 제 뒤를 뚫고 들어와 쑤셔댄 거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구멍이 움찔했다.
"루이스, 나는...흐읏...!"
호기롭게 말한 것과 달리 막상 보니 입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루이스는 손으로 튼실한 기둥을 쓰다듬으며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틀거리는 그의 성기를 바라보다, 티엔이 일어나며 멈추려하는 것에 마음이 급해져 눈을 딱 감고 입 안에 넣었다. 루이스를 말리려 몸을 반쯤 일으켰던 티엔은 성기를 감싸는 따뜻하고 습한 점막의 감촉에 루이스의 어깨를 잡았다. 손에 힘을 주면 아파할까봐 움켜쥐지도 못하고, 성기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쾌감에 딱 죽을 맛이었다.
입 안에 티엔의 성기를 품은 루이스는 천천히 코로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무성한 음모와 복근, 그리고 저를 내려다보는 티엔의 표정에 덩달아 흥분한 루이스는 용기를 내 혀를 움직여 귀두의 끄트머리를 조심스레 핥았다. 눈을 찡그리며 쾌감을 참으려는 티엔의 얼굴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루이스는 옴폭 패인 곳을 혀끝으로 콕콕 누르고 그 위를 핥았다. 말랑말랑하고 미끈한 감촉이 생경했지만 티엔이 낮게 내뱉는 흥분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루이스는 작정하고 티엔을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과감하게 혀를 움직였다. 어설프지만, 야동에서 흔히들 하는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빨다가 귀두 아래를 핥고 머금고 있던 것을 뺐다. 입으로 숨을 쉬다가, 그의 것을 잡고 기둥에 불거진 핏줄을 혀로 핥으며 옆에서 이 대신 입술로 물고 빨았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티엔의 숨소리와 신음이 야했다.
"하아, 티엔.... 기분 좋아요?"
"으음, 하, 후우.... 그래."
"다행이다...."
루이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고, 티엔의 고간에 얼굴을 묻은 채 큰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듯 입을 벌려 그의 성기를 입안에 담았다. 다 들어갈 것 같진 않지만, 조금 더 안쪽에 넣어보면 그의 귀두가 입천장을 지나 목 안쪽에 닿았다.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하지? 루이스는 이를 세우지 않게 조심하며 그의 것을 빨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움직였다. 위아래로 빨아당기며 얇은 피부의 막이 제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외설스러워 루이스의 성기에도 열이 쏠렸다.
"흐읏, 하, 루이스...!"
"웅, 하아...."
루이스는 스스로 하듯 티엔의 기둥을 감싸고 위아래로 당기며 귀두를 핥았다. 손이 빨라지면서 제 어깨를 잡은 티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아팠지만 그보다는 그의 성기를 애무해주는 게 더 우선이었다. 루이스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침대를 짚던 손으로 그의 고환을 주물렀다. 한번 더 빨아주기 위해 입을 벌리는데, 티엔이 어깨를 세게 움켜쥐더니 얼굴에 뜨끈한 액체가 뿌려졌다.
"크흣, 하아...."
한 박자 늦게,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는 이미 티엔의 정액이 끈적하게 루이스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성기가 두 차례 더 끊어 사정하고, 루이스는 속눈썹에 진하게 붙은 정액에 눈을 감았다. 다시 뜨려했으나 뜨끈하고 진한 정액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역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흥분되는 게, 아무래도 저도 많이 쌓여있었던 것 같았다.
"읏, 티엔...."
"하아.... 미안하다...."
루이스는 손등으로 뺨에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정액을 닦았다. 입술에 붙은 것을 슬쩍 혀로 핥자 미끈하고 끈적거리는 비릿함이 느껴져 슬쩍 인상을 쓰며 눈을 부비고 있으니 티엔의 크고 따스한 손이 다가와 눈을 쓸어주었다.
"한 달이나 못 했으니까..., 그래서 그렇다."
묻지도 않았건만 티엔이 조심스럽게 말하며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평소보다 사정이 빠른 걸 말하는지, 아니면 참지 못하고 사정해버린 것을 말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쌓여서 진한 정액을 말하는지 몰라도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게 퍽 귀여웠다. 루이스가 피식 웃자 티엔은 안절부절 못하며 침대 아래 떨어진 정장재킷의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루이스는 잠시 생각하다 그의 손목을 잡았다.
"티엔."
티엔은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는 그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빼 대충 얼굴을 문대 닦아 던지고, 그의 가슴 위에 양손을 올려 밀어 눕혔다. 무슨 남자 가슴 촉감이 이렇게 좋담. 루이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 하고 싶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루이스는 눈을 반짝이며 몸을 일으키려는 티엔의 위에서 체중을 이용해 그의 가슴을 눌렀다. 티엔이 무슨 짓이냐는 듯 루이스를 올려다봤다. 루이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손으로 바지와 팬티를 벗고 티엔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티엔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 굳은 얼굴을 하고 루이스의 손목을 잡았다. 루이스는 슬쩍 엉덩이를 움직여 한 발을 빼고도 우뚝 서있는 그의 것에 골을 비볐다. 단번에 티엔의 표정이 바뀌었다.
"...루이스."
"당신, 다쳤잖아요."
"이게 더 괴롭다. 차라리 내가 움직이는 게 낫겠군."
"누워있으라니까요."
루이스가 짜증을 내자 티엔이 입을 다물었다. 루이스는 제 것을 탄탄한 티엔의 배에 부비다가, 침대 옆 협탁에서 젤을 꺼내 제 손에 죽 짰다. 티엔은 그거라도 제가 해주겠다고 했지만 루이스는 티엔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입술로 그의 말을 막아버렸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게 저를 휘두르던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도, 귀엽게 구는 것도 좋았다. 루이스는 지금 우위를 점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느끼는 중이었다.
손가락을 타고 흐를 정도로 녹은 젤을 뒤로 가져가 한 달 동안 쓰지 않아 꽉 다물린 구멍에 치대듯 바르고,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밀어넣었다. 하나 정도는 괜찮은 것도 같아서, 안쪽에 젤을 꼼꼼히 바른 후 하나를 더 넣었다. 두 개는 빠듯한 것 같아 빼고 싶었지만 티엔이 그런 것처럼 루이스도 마음이 급했다.
"읏...."
"루이스, 억지 부리지 마라."
"흐으, 할 수 있다니까요."
루이스는 은근슬쩍 엉덩이를 잡아 당기는 티엔의 손에 발끈해 두 개도 버거운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더 넣었다.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상처 없이 저 큰 것도 삼키던 곳이었다. 루이스는 슬쩍 세번째 손가락을 빼고 두 개로 구멍에 젤을 바르고 입구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늘 그가 해주던 거라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안을 휘젓고 안과 밖을 드나들던 감각을 기억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루이스, 제발...."
티엔은 이제 애원하다시피 하며 루이스의 가슴과 목덜미에 연신 입을 맞췄다. 예쁘게 도드라진 유두가 눈에 어른거려 입에 물자 루이스는 가슴 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아래에 힘을 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열심히 풀던 구멍이 손가락을 조이며 다시 움츠러든 게 원망스러워 그를 흘겨봤으나 티엔은 눈까지 감고 루이스의 가슴에 집중하고 있었다. 약하고 예민한, 그가 끈질기게 괴롭혀 개발된 유두가 그의 혀에 빙글빙글 돌려지고, 빨리는 바람에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트머리를 살짝 깨무는 바람에 루이스는 깨문 입술 사이로 약한 신음을 냈다. 티엔은 양손으로 루이스의 엉덩이를 잡아 터트릴 것처럼 주물렀다. 그 바람에 손가락을 머금은 구멍이 양쪽으로 벌어지고, 빈 틈 사이로 공기가 들어왔다.
"응, 읏...! 티엔...!"
"후우, 그러게 내가 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루이스는 울상을 짓다가 벌름거리는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전보다 수월하게 손가락을 받아들인 구멍은 이제 젤에 질꺽거리는 야한 물소리를 내고, 그 안쪽은 손가락보다 더 길고 큰 것으로 꽉 채우는 것을 기대라도 하듯 뜨거워졌다. 티엔이 꼬집고 비트는 유두가 찌릿찌릿했다. 잔뜩 괴롭혀지면서 느끼는 쾌감이 오랜만이라 더 힘들었다.
"그리고, 후으. 오늘따라 네가 더 천박하게 구니까, 읏. 더 참기 힘들다...."
천박하게 군다는 말에 루이스는 허리를 움직여 그의 성기와 제 것을 비볐다. 두 기둥이 부딪혀 비벼지다 퉁 튕겨나갔다. 두 성기는 앞에서 투명한 액을 흘리며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확실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외설스러운 광경이었다. 거기에 흥분하는 자신은, 그의 말대로 야하기 짝이 없었다.
"으응, 하지만 이게 다.... 당신이.... 후우...."
"그래. 응, 후. 루이스, 넣고 싶다.... 넣게 해다오."
"응, 하아. 원해요, 티엔."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안쪽까지 깊게 찌르고 거칠게 박아줬으면 좋겠다. 이미 안쪽과 입구가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끔 하는 것처럼, 엎드린 채로 뒤로 짐승처럼 박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의 연인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또 티엔의 배에 감긴 붕대가 마음에 걸렸다. 오랜만이라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등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싫어했을 체위를 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당신은 움직이지 말아요."
루이스는 티엔의 가슴에 다시 양손을 올렸다. 티엔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루이스는 티엔의 손을 잡아다 제 엉덩이에 놓았다.
"만지는 건, 허락해 줄테니까...."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한 손으로 구멍을 벌리고 한 손으로 티엔의 성기를 잡아 뒤에 맞췄다. 제대로 입구를 찾아 뭉툭한 귀두를 반쯤 넣고, 루이스는 아랫입술을 앙물었다. 천천히 허리를 내리자 안으로 파고드는 부피와 질량감에 얼마 가지 못해 한숨을 토하며 멈춰섰다. 티엔의 손은 루이스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티엔의 것을 삼킨 구멍이 벌렸다 다물렸다.
"크흐.... 루이스...."
"....후우, 잠시만요....잠깐만...."
이도저도 못하고, 루이스는 땀을 흘리며 티엔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처음 부드럽게 들어오던 것과 달리 굵은 것이 입구를 벌리는 게 너무 아팠다. 제대로 풀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자세가 달라서 그런가. 하지만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할 게 뻔했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접합부를 더듬었다. 젤이 잔뜩 발려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콘돔을 씌우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후우, 티엔.... 으읏...!"
"하아, 루이스...!"
루이스는 마음을 크게 먹고 단숨에 허리를 내렸다. 안을 깊게 찌르며 뚫는 성기에 고개가 젖혀졌다. 눈물을 흘리며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루이스를 달래기 위해 티엔은 몸을 일으켜 가슴돌기를 핥고, 그의 가늘고 예쁜 목덜미에 짧은 버드키스를 하며 루이스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등을 쓰다듬었다.
"흐으, 하아...."
"크흐, 루이스.... 숨을 쉬어라."
"윽.... 흐윽.... 티엔......."
잔뜩 젖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루이스의 눈가에 입을 맞춘 티엔은 제 목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고개를 묻는 연인의 목덜미와 어깨, 귀에 입술을 맞췄다. 왜 그러게 시키지도 않은 짓을 사서 했는지. 물론 그게 다 저를 위해서지만, 더는 지켜보고 있기 힘들었다. 티엔은 정말 많이 참았고, 오랜만에 만난 연인의 애교도 이정도면 충분했다.
"루이스, 사랑한다."
티엔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잠시 기다리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진정이 되었는지, 루이스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고, 입술이 맞닿는 건 금방이었다. 키스가 오래 이어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티엔...."
루이스는 연인을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아픈 건 둘째치고서라도 그도 남자였다. 아무리 체격이나 힘이 딸린다고 해도, 물러설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었다. 루이스는 티엔의 어깨를 잡고 무릎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래로 죽 딸려나가는 감각이 낯설었지만 이미 안쪽까지 들어와있었던 거라 생각하면 못할 것 같지도 않아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다.
"크흣, 루이스...."
"하아, 하, 으읏...."
루이스가 허리를 들썩이면서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를 눕히려던 티엔은 예상치못한 적극적인 행위에 이를 악물었다. 제 어깨를 꽉 잡고 고통을 참으며 허덕이는 루이스의 얼굴이 야했다. 티엔은 루이스의 골반을 잡았다. 제 위에 올라탄 루이스는 허리를 돌리며 다시 위아래로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직접 움직이는 것만큼 만족스럽진 않지만 제 성기를 꽉꽉 물며 조이는 내벽은 익숙한 것이었다. 뜨겁고 제 것을 맛있게 오물거리는 구멍에 티엔도 허리를 움직여 안을 두드렸다. 지금도 깊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그가 느끼는 곳은 조금 더 안쪽, 거칠고 깊숙하게 박아야 닿는 곳이었다.
루이스는 스스로 움직이며 좋은곳을 찌르고 문질렀다. 티엔이 움직일 때처럼 머릿속이 날아가는 것같은 쾌감은 없어도, 야릇하고 간질거리는 기분좋은 감각에 루이스는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욱신거리며 간질거리는 곳은 닿지를 않았다. 그 때, 티엔이 루이스의 골반을 꽉 잡고 위로 쳐올렸다.
"하으응...!"
"후우, 하, 듣기 좋구나. 더, 들려다오."
티엔은 파들파들 떠는 루이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잇자국을 낸 뒤 씩 웃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곳을 노리고 반복해 허리를 움직여 쳐올리자 이내 배에 뜨끈한 정액이 뿌려졌다. 티엔의 추삽질에 사정한 루이스는 목에 팔을 감으며 발가락을 움츠렸다. 오물오물, 제 것을 맛있게 삼키고도 더 달라 조르는 야한 몸이 예뻐 티엔은 루이스를 침대에 눕혔다.
엉덩이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제 것을 보는 것도, 제 위에서 위아래로 흔들리며 요분질을 하는 루이스도 절경이었지만, 역시 이게 더 좋았다. 티엔은 루이스의 무릎 안쪽을 잡아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루이스는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뻗다가 눈을 가렸다. 그래봤자 귀엽기만 할 뿐이라 티엔은 피식 웃으며 루이스의 손을 잡아 떼내고 잔뜩 젖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그의 붉어진 눈가에 입을 맞췄다. 루이스는 입을 삐죽였지만 허리를 움직여 안을 치대자 바로 그 예쁜 입술에서 신음이 터졌다.
"으응, 아, 하읏, 티엔, 조금 천천ㅎ...!"
"후우, 루이스. 보고 싶었다."
"아흥, 아, 크흣, 거기...!"
티엔은 루이스의 다리를 잡은 채 마음껏 허리를 움직였다. 시트를 움켜쥔 루이스의 흰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하지만 티엔은 울먹임에 발음이 뭉게지는 연인의 울음소리에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 커녕, 제 허리에 다리를 감아 조이며 쾌감을 조르는 루이스의 안을 휘젓고 두드리는 속도를 붙였다. 아까 그의 펠라치오로 한 번 사정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티엔은 루이스의 안쪽을 마구 찌르다 루이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정했다. 안에 퍼지는 뜨거운 점액의 감각에 한 번 사정했던 루이스는 몸을 잘게 떨었다.
"흐으, 아...."
"하아, 루이스...."
루이스의 머리를 끌어안고 사정의 여운에 잠시 호흡을 고르던 티엔은 눈물로 범벅이 된 루이스의 눈가를 엄지로 쓸다 입을 맞추고 핥았다. 짠 맛이 났지만 눈물이 방울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 곧 붉은 눈동자가 저를 향하는 게 예뻐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췄다.
"하아, 후우.... 티엔.... 크흠."
신음을 내지르느라 갈라진 목소리가 동했지만 티엔은 지친 연인을 배려해 그의 옆에 누워 다리를 루이스의 다리 위에 얹었다. 아직 숨쉬기 바쁜 루이스를 품에 안자 땀에 범벅이 된 두 사람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티엔은 루이스의 등을 쓰다듬으며 베개를 그의 머리에 받쳐주었다. 루이스가 베개 반쪽을 내밀어 한 베개에 머리를 누인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륵 눈을 휘었다.
"상처는 좀 어때요."
"괜찮다."
"......알겠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호랑이 한 마리를 잡다가 스친 것 뿐이다. 상처는 깊지 않아."
루이스는 호랑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티엔이 바로 주름진 미간에 입을 맞추는 바람에 금세 풀긴 했지만,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루이스가 표정을 풀지 않자 티엔은 눈을 피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혼날까 변명을 찾는 게 귀엽기도 하고 일이 끝나자마자 날아온 노력이 가상하기도 해 루이스는 이번 한 번만 봐주기로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심해서 다녀요."
"알겠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 하는 말에 수긍하는 연인의 눈동자에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꿈벅이자 티엔이 등을 토닥이며 떨어진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기분 좋은 체온에 루이스는 티엔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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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quel. 03.
03.
“어이.”
“네, 고객님. 치한 및 스토커 신고는 국번 없이 112입니다.”
루이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산대 안쪽의 종이봉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방학의 대학 서점은 한가하기 그지없었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저를 찾아올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정말 이럴 거냐?”
“그 말 그대로 돌려주면 되겠어?”
“프로즌.”
“시간 없다니까.”
질리지도 않는지 벌써 일주일째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 쉬레에게 루이스는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명백한 거절이었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게임할 시간이 없는 것 뿐이다. 어김없이 당장 화보를 찍으러 가도 될 것 같은 차림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선글라스는 대체 몇 개나 있는지, 오늘은 짙은 갈색의 선글라스였다.
“고작 30분 내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하아. 힘드니까 이러고 있는 거란 생각은 안 들어?”
먼저 반말을 찍찍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말을 낮춘 게 엊그제였다. 쉬레는 호칭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저만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 거기다 자꾸 보다보면 정이라도 들 거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미운 정을 붙이려는 건지 어느 쪽인지 몰라도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밥이라도 사겠다고,”
“체할 거 뻔한 상대랑 밥 먹는 취미는 없어서.”
“너,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쯤 했으면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 해줘도 되는 거 아닌가?”
일주일째 반복된 논리에 루이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바 아니고, 그쪽이 굽히고 들어오는 거에 황송해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태도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루이스는 그의 팬이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다. 애초에 와서 꼬셔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저 쉬레의 일방적인 요구일 뿐이었다.
“어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내가 왜 그쪽 사정에 맞춰줘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돈의 문제라면 얼마든지 주지.”
“부탁하는 태도도 글러먹었고.”
쉬레는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있었다. 너무 뻔뻔하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굴어서 넘어갈 뻔도 했지만, 어쨌거나 루이스는 그의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만 생각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쉬레가 괘씸해하거나 말거나 제가 알 바 아니었다.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데.”
“적어도 일하는 곳까지 찾아오진 않았으면 좋겠어.”
“흐응. 난 어디까지나 책을 사러 온 거니 그건 됐고.”
루이스는 영혼 없이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대충 아무거나 추천해보래서 법학과 전공 서적을 넘겨주면 거들떠도 안 보고 카드부터 내미는 놈이 책을 사러 오긴 무슨.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루이스는 이글의 목을 조르고 싶어졌다. 쉬레가 혼자서 찾아왔을 리도 없으니 백퍼센트 그녀석 짓이었다. 생각해보면 거기 간 것도 이글 때문인데, 거기에 신상까지 털어줬으니 만악의 근원인 셈이었다.
“그래도 쉬는 날은 있을 거 아니야. 그때도 그렇고.”
“아쉽게도, 내 쉬는 날은 어제였는데. 앞으로 이주간 없을 예정이고.”
“뭐?”
능글맞게 미소를 머금고 있던 쉬레가 짜증을 내다 혀를 차며 돌아섰다. 이 정도면 적당히 엿을 먹여준 기분이라 좀 후련하긴 했지만, 쉬레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루이스를 마주했다.
“…낮이 안 되면 밤도 괜찮다.”
“난 잠도 자지 말라고?”
“네 녀석 때문에 나는…!”
쉬레는 뭔가를 말하려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아랫입술을 물며 입가를 엄지로 매만지는 게 꽤 선정적이었지만 그도 자신로 남자였다. 차라리 작업을 걸었으면 걸었지, 이건 뭐 어린애가 놀아달라 떼 쓰는 것도 아니고. 루이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쪽이 내 사정 생각을 안 해주는데 내가 그쪽 사정 생각해줄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
“난 그쪽 팬도 아니고 아쉬울 것도 없어. 지금 자기가 일주일째 억지만 쓰고 있다는 걸 좀 알 때도 되지 않아?”
쉬레가 무섭도록 시린 눈으로 루이스를 응시했다. 그렇게 본다고 겁을 먹는 것도 아니건만. 루이스는 계산대를 톡톡 두드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이글보다 더 다루기 힘든 것 같았다.
“저기, 쉬레.”
쉬레는 팔짱을 끼고 턱을 들어 루이스를 내려다봤다.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깔보이는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루이스는 잠시 그를 마주보다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시간 나면 연락할 테니까 그만 와.”
이게 루이스가 할 수 있는 타협의 끝이었다. 사실 이글이 알려준 거면 이미 다 털렸겠지만, 그래도 그와 제가 직접 번호를 주고받는 건 의미가 달랐다. 어쨌거나 쉬레는 지금까지 제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고, 루이스가 아는 거라곤 쉬레가 이글의 형이라는 것 뿐이었다. 쉬레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핸드폰을 받아 번호를 찍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루이스가 연락처를 저장하려는데 쉬레가 이름 부분을 톡톡 건드렸다.
“벨져. 벨져 홀든이다.”
“…루이스.”
그가 불쑥 나타난지 일주일만에 하는 통성명이었다. 루이스는 번호를 저장하고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쉬레가 핸드폰을 꺼내는 걸 보고 끊자 쉬레는 화면을 확인하고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저장을 안 하는 걸 봐선 이미 알고 저장해둔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글 홀든. 루이스는 그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고는 눈앞의 상대를 마주했다.
“이제 됐지?”
“일주일, 딱 일주일 기다려주도록 하지.”
“그거 참 무서운걸.”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이러다 집까지 찾아오는 거 아닌가 몰라. 어째 좀 불안했지만 쉬레는 오늘의 수확에 만족했는지 쿨하게 등을 돌려 나갔다. 루이스는 계산대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괘고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쉬레는 루이스를 한 번 돌아보고, 녹음이 우거진 교정을 걸어 나갔다. 멀어지는 등이 후련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했다.
벌써 미운정이라도 들었나. 루이스는 벨져가 올 때 켰던 에어컨을 끄고 가디건을 집어들었다. 밖에 있다 온 사람에겐 시원할지 몰라도, 하루 종일 있는 사람한테는 제법 쌀쌀한 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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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quel. 02.
분량 조절에 실패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감이 안와서 그냥 다 올리기로.....ㅇㅅㅠ
02.
0:33. 딱 33초를 남기고 끝난 게임은 벨져 팀의 스트리머가 본진에서 빠져나가 몰테를 가는 것으로 끝났다. 이글의 아이스를 처리하고 리스폰기어에 올라가있던 벨져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스트리머를 제외한 넷이 전부 올라오는 바람에 HQ가 빠르게 깎이던 중이었는데, 간발의 차로 저쪽 HQ가 먼저 터졌다. 벨져는 게임창이 넘어가기 전에 v를 눌렀다.
그리고 바로 옆에 둔 핸드폰을 들어 이글에게 전화를 걸었다. 되도 않는 사기를 친 거라면 받지도 않겠지. 벨져는 반쯤 포기하고 태연해지려 애썼다. 하지만 벨져의 손은 초조를 감추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기계식 키보드의 자판이 다그락거리며 푸르게 빛났다. 그 소리는 이글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 멈췄다.
“어, 형. 이야~. 아주 그냥 프로즌이라니까 득달같이 달려들대? 어휴 정말.”
“프로즌은.”
“와, 동생보다 프로즌이 더 좋냐? 누가 보면 아주 그냥 반한 줄 알겠어~.”
“그냥 해본 말이면 끊겠다.”
“급하긴.”
괜히 딴청을 부리는 바람에 애가 탔다. 줄 거면 빨리 주고, 아니면 말지 놀아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글 녀석이라면 지금 들어가있는 클랜도 최대규모고, 거기엔 각종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은데다 이글 본인도 마당발이니 충분히 프로즌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런 것 치고 열흘만에 얘기를 꺼내는 게 괘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실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놓치기엔 제 마음이 풀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가 그냥 어줍잖은 아이스 나부랭이라는 걸 입증해 제가 그냥 진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시니컬로 아이스의 평타에 졌으니까.
역시, 그날 전화번호 정도는 따놨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벨져는 초조하게 이글을 기다렸다.
“프로즌. 본명은 루이스. 아, 고아라 성은 없어. 나이는 스물넷. 이정도면 되겠어? 어때 무료봉사가 후하지?”
“이글.”
“와나, 진짜. 이것만 해도 어디야. 여기까지 알아내는 게 쉬운 줄 알어? 참내, 작은형이나 큰형이나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다니깐.”
벨져는 되려 성을 내며 투덜거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노답 망나니 새끼. 그냥 욕을 한 바가지 해줄까 하다가 벨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그렇지. 순순히 알려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글 녀석이 조건도 없이 술술 부는 걸 봐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고 있는 중이었다. 벨져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이마를 짚었다. 왜 이런 녀석이 동생인 걸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받을까, 말까. 벨져는 무심코 손을 뻗다 망설였다. 이걸 받으면 또 겨우 이런 거에 낚이냐며 비웃어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거부를 해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뭔가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속는 셈 치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장난하지 마라.”
“아! 장난 아니야! 형이 조또 찌질하게 구니까 그렇지!”
“뭐?”
벨져는 대번에 인상을 굳히며 되물었다. 이글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럼 필요 없다는 거지? 끊는다~.”
“이글 홀든!”
마음이 급한데 자꾸 간을 보는 이글이 짜증나 벨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막내놈은 사람 속을 긁는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덴 좀처럼 휘둘리지 않는 벨져도 이글에게만큼은 이렇게 휘둘리곤 했다. 동생만 아니었으면 확 그냥. 쓸데없이 이글의 페이스에 휩쓸리고 만 벨져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지금 아쉬운 건 제 쪽이었다. 망할 동생놈도 그걸 알고 이러는 거지만.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이글.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말해. 괜히 재지 말고.”
“흐응…, 형이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주 잘 알겠는걸? 재미없긴. 흥이 식었어. 모처럼 아는 사람이라 도와주려 했더니 우리 작은형은 별로 아쉽지가 않은가봐.”
이 짜증나는 새끼. 아주 그냥 가지고 노는 구만. 벨져는 부득 이를 갈았다. 평생 남의 비위같은걸 맞춰본 적이 없는 벨져였다. 뜨거워진 핸드폰을 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벨져는 참았다. 적어도 자신은 이런 애새끼에게 놀아날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보다 나은 존재다. 벨져. 네가 상대하고 있는 건 나이만 쳐먹은 애새끼다. 벨져는 마음을 다스리며 에어컨을 켰다. 바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건가?”
“안 미안한 목소린데?”
“……. 하아. 미안하구나, 이글. 진심으로.”
씹어뱉는 가식으로, 벨져는 굴욕을 감내했다. 겨우 프로즌 그 새끼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망설여졌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이글이 숨넘어가라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치와 굴욕에 죽고 싶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프로즌 망할 새끼. 벨져는 아득 이를 물었다. 이글 녀석이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에 짜증과 불쾌지수가 더해져 팬이 조공으로 보내준 부채를 들어 얼굴에 부치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있는 게 아닌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야, 아… 대박. 눈물 났어. 천하의 작은 형이 사과라니, 큭. 큭큭. 이거 녹음했어야 하는 건데. 에이.”
“그랬으면 네가 오래 살아있지 못하겠지. 무덤에 새길 유언은 정했니, 동생아?”
“와, 지금 친동생을 죽이겠다는 거야? 너무하네. 어머니가 들으면 펑펑 울다 실려가시겠어.”
“그리고 아버지와 형은 축배를 들겠지.”
바라 마지않는 전개에 이글은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이 녀석의 유전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같은 부모님 아래 자란 형제지만 벨져는 도무지 이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봐주는 거라면 또 모를까, 녀석이 우위에서 저를 농락하는 이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거 말 되네. 여튼, 형이 넘 안쓰러워서 그래. 그러다 스토킹으로 수사라도 받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알려주는 거니까 내 성의와 친절을 생각해서라도 직접 해결해. 돈이나 사람 쓰지 말고.”
“흥, 애초에 남의 손 따위 빌릴 생각도 없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난,”
“그야 잘난 벨져 홀든이시지. 아이스 평타에 발린.”
벨져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하려는 찰나 띵 하고 우편이 왔다. 이글에게서 온 우편을 열자 열한자리 숫자와 주소가 있어 바로 프린트스크린 키를 눌렀다. 주소가 어째 좀 낯이 익은 것도 같지만, 이게 프로즌의 연락처와 주소고 이글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두어 번 더 캡쳐를 한 벨져는 문득 드는 의문에 입을 열었다.
“이글.”
“왜, 고마워? 고마워 죽겠지? 알아~. 넣어둬!”
“넌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 거냐.”
질문에 답이 돌아오는 대신, 적막이 이어졌다. 곰곰히 생각할 것도 없다. 이글의 행동과 말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첫째로, 이렇게 순순히 프로즌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을 리 없다. 둘째, 이글 홀든이 하다못해 물 한 잔을 가져오라 시켜도 보상을 요구하는 녀석이 아무것도 요구조건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셋째, 이글은 어떻게 프로즌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아는가. 이글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께름칙한 기분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 다 아는 수가 있지이~. 어어 나 전화 온다. 끊을게. 뿅!”
긴 침묵 끝에 그걸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자 바로 수신이 거부됐다. 누가 봐도 서둘러 도망간 모양새였지만 원하는 걸 얻어낸 벨져는 더 아쉬울 게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는 여전히 의뭉스럽지만, 그거야 언제 한 번 녀석이 좋아하는 클럽에 데려가 술을 좀 먹이고 기분 좋을 때 물어보거나 아니면 술값을 내달라며 아쉬운 소리를 할 때 캐물으면 그만이었다.
* * *
오전부터 시작한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근처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어젯밤 알아낸 주소의 건물을 주시하는 벨져에게 전화가 왔다. 액정에 뜨는 발신인은 이글.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이러나 의심부터 들었지만 딱히 못 받을 것도 아니었다. 벨져는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전화를 연결했다. 막 일어난 동생 놈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들었다.
“어, 형. 뭐야, 꼭두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야, 형한테 스토커의 기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닥쳐라, 이글.”
“에헤이. 또 그런다 또. 이제 좀 은인으로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땡볕에서 하염없이 기다릴까봐 좀 도와주려했더니. 안되겠구만?”
다짜고짜 속을 벅벅 긁어대는 통에 벨져는 잠시 이걸 끊을까 말까 고민했다. 어차피 기다리면 만나게 될 텐데. 여기서 뭘 더 하겠다는 것인가. 탐탁지 않았지만 기다림에 지친 것은 사실이었기에 벨져는 전화를 끊는 대신 이글이 원하는 답을 내주었다.
“뭘 원하는데?”
“그 사거리에 보면 바이크 세워둔 호프집 있거든? 거기서 간장 파닭! 지금이 여덟시니까 여덟시 반에 봅시다. 오케이?”
“…하아.”
“그럼 이따 봐~. 아, 먼저 가있어.”
그럼 그렇지. 중요한 건 쏙 빼놓고 알려준 동생이 짜증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일부러 애를 태운 게다. 특별히 알려주긴 무슨. 벨져는 혀를 찼다. 그리로 오라는 건 기다려봐야 소용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벨져는 먹던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치우고 일어났다. 대체 프로즌 하나에 얼마의 시간과 신경을 쏟는 건지. 이쯤 되니 슬슬 이 짓거리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한여름의 대학가 호프집은 붐비는 시간답게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벨져는 탐탁지 않은 걸음을 옮겼다. 주인이 90년대 하드락, 혹은 바이크 덕후라도 되는 듯 안의 인테리어가 요란했다. 주황색 조명이 전부인 어두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낄 필요는 없었지만 벨져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멋도 멋이거니와 유명한 선수인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벨져는 구석진 안쪽 자리로 향했다. 홀에 돌아다니는 종업원 두 명은 벨져를 보지 못했는지 메뉴판을 주러 오지도 않았다. 부르려 해도 서빙벨도 없고, 맥주를 나르랴 주문을 받으랴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니 퍽 자존심이 상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어차피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이글 녀석의 요구사항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행여라도 진한 기름 냄새가 옷에 밸까 한숨을 내쉬는데 주방 쪽에서 그를 향해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은 이따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벨져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그 목소리. 그리고 어둑한 실내에서도 눈에 띄는 머리카락. 벨져는 돌아선 종업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운 음악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잡은 손목을 힘주어 당기자 그가 꼭 그때처럼 휘청이며 이끌려왔다. 저를 향해 돌아선 멀건 얼굴의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다, 그 붉은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데자부같이 익숙한 감각이었다. 벨져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찾았다.”
더이상 그를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벨져의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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