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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quel. 02.
분량 조절에 실패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감이 안와서 그냥 다 올리기로.....ㅇㅅㅠ
02.
0:33. 딱 33초를 남기고 끝난 게임은 벨져 팀의 스트리머가 본진에서 빠져나가 몰테를 가는 것으로 끝났다. 이글의 아이스를 처리하고 리스폰기어에 올라가있던 벨져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스트리머를 제외한 넷이 전부 올라오는 바람에 HQ가 빠르게 깎이던 중이었는데, 간발의 차로 저쪽 HQ가 먼저 터졌다. 벨져는 게임창이 넘어가기 전에 v를 눌렀다.
그리고 바로 옆에 둔 핸드폰을 들어 이글에게 전화를 걸었다. 되도 않는 사기를 친 거라면 받지도 않겠지. 벨져는 반쯤 포기하고 태연해지려 애썼다. 하지만 벨져의 손은 초조를 감추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기계식 키보드의 자판이 다그락거리며 푸르게 빛났다. 그 소리는 이글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 멈췄다.
“어, 형. 이야~. 아주 그냥 프로즌이라니까 득달같이 달려들대? 어휴 정말.”
“프로즌은.”
“와, 동생보다 프로즌이 더 좋냐? 누가 보면 아주 그냥 반한 줄 알겠어~.”
“그냥 해본 말이면 끊겠다.”
“급하긴.”
괜히 딴청을 부리는 바람에 애가 탔다. 줄 거면 빨리 주고, 아니면 말지 놀아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글 녀석이라면 지금 들어가있는 클랜도 최대규모고, 거기엔 각종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은데다 이글 본인도 마당발이니 충분히 프로즌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런 것 치고 열흘만에 얘기를 꺼내는 게 괘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실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놓치기엔 제 마음이 풀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가 그냥 어줍잖은 아이스 나부랭이라는 걸 입증해 제가 그냥 진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시니컬로 아이스의 평타에 졌으니까.
역시, 그날 전화번호 정도는 따놨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벨져는 초조하게 이글을 기다렸다.
“프로즌. 본명은 루이스. 아, 고아라 성은 없어. 나이는 스물넷. 이정도면 되겠어? 어때 무료봉사가 후하지?”
“이글.”
“와나, 진짜. 이것만 해도 어디야. 여기까지 알아내는 게 쉬운 줄 알어? 참내, 작은형이나 큰형이나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다니깐.”
벨져는 되려 성을 내며 투덜거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노답 망나니 새끼. 그냥 욕을 한 바가지 해줄까 하다가 벨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그렇지. 순순히 알려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글 녀석이 조건도 없이 술술 부는 걸 봐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고 있는 중이었다. 벨져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이마를 짚었다. 왜 이런 녀석이 동생인 걸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받을까, 말까. 벨져는 무심코 손을 뻗다 망설였다. 이걸 받으면 또 겨우 이런 거에 낚이냐며 비웃어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거부를 해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뭔가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속는 셈 치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장난하지 마라.”
“아! 장난 아니야! 형이 조또 찌질하게 구니까 그렇지!”
“뭐?”
벨져는 대번에 인상을 굳히며 되물었다. 이글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럼 필요 없다는 거지? 끊는다~.”
“이글 홀든!”
마음이 급한데 자꾸 간을 보는 이글이 짜증나 벨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막내놈은 사람 속을 긁는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덴 좀처럼 휘둘리지 않는 벨져도 이글에게만큼은 이렇게 휘둘리곤 했다. 동생만 아니었으면 확 그냥. 쓸데없이 이글의 페이스에 휩쓸리고 만 벨져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지금 아쉬운 건 제 쪽이었다. 망할 동생놈도 그걸 알고 이러는 거지만.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이글.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말해. 괜히 재지 말고.”
“흐응…, 형이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주 잘 알겠는걸? 재미없긴. 흥이 식었어. 모처럼 아는 사람이라 도와주려 했더니 우리 작은형은 별로 아쉽지가 않은가봐.”
이 짜증나는 새끼. 아주 그냥 가지고 노는 구만. 벨져는 부득 이를 갈았다. 평생 남의 비위같은걸 맞춰본 적이 없는 벨져였다. 뜨거워진 핸드폰을 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벨져는 참았다. 적어도 자신은 이런 애새끼에게 놀아날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보다 나은 존재다. 벨져. 네가 상대하고 있는 건 나이만 쳐먹은 애새끼다. 벨져는 마음을 다스리며 에어컨을 켰다. 바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건가?”
“안 미안한 목소린데?”
“……. 하아. 미안하구나, 이글. 진심으로.”
씹어뱉는 가식으로, 벨져는 굴욕을 감내했다. 겨우 프로즌 그 새끼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망설여졌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이글이 숨넘어가라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치와 굴욕에 죽고 싶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프로즌 망할 새끼. 벨져는 아득 이를 물었다. 이글 녀석이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에 짜증과 불쾌지수가 더해져 팬이 조공으로 보내준 부채를 들어 얼굴에 부치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있는 게 아닌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야, 아… 대박. 눈물 났어. 천하의 작은 형이 사과라니, 큭. 큭큭. 이거 녹음했어야 하는 건데. 에이.”
“그랬으면 네가 오래 살아있지 못하겠지. 무덤에 새길 유언은 정했니, 동생아?”
“와, 지금 친동생을 죽이겠다는 거야? 너무하네. 어머니가 들으면 펑펑 울다 실려가시겠어.”
“그리고 아버지와 형은 축배를 들겠지.”
바라 마지않는 전개에 이글은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이 녀석의 유전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같은 부모님 아래 자란 형제지만 벨져는 도무지 이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봐주는 거라면 또 모를까, 녀석이 우위에서 저를 농락하는 이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거 말 되네. 여튼, 형이 넘 안쓰러워서 그래. 그러다 스토킹으로 수사라도 받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알려주는 거니까 내 성의와 친절을 생각해서라도 직접 해결해. 돈이나 사람 쓰지 말고.”
“흥, 애초에 남의 손 따위 빌릴 생각도 없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난,”
“그야 잘난 벨져 홀든이시지. 아이스 평타에 발린.”
벨져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하려는 찰나 띵 하고 우편이 왔다. 이글에게서 온 우편을 열자 열한자리 숫자와 주소가 있어 바로 프린트스크린 키를 눌렀다. 주소가 어째 좀 낯이 익은 것도 같지만, 이게 프로즌의 연락처와 주소고 이글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두어 번 더 캡쳐를 한 벨져는 문득 드는 의문에 입을 열었다.
“이글.”
“왜, 고마워? 고마워 죽겠지? 알아~. 넣어둬!”
“넌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 거냐.”
질문에 답이 돌아오는 대신, 적막이 이어졌다. 곰곰히 생각할 것도 없다. 이글의 행동과 말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첫째로, 이렇게 순순히 프로즌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을 리 없다. 둘째, 이글 홀든이 하다못해 물 한 잔을 가져오라 시켜도 보상을 요구하는 녀석이 아무것도 요구조건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셋째, 이글은 어떻게 프로즌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아는가. 이글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께름칙한 기분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 다 아는 수가 있지이~. 어어 나 전화 온다. 끊을게. 뿅!”
긴 침묵 끝에 그걸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자 바로 수신이 거부됐다. 누가 봐도 서둘러 도망간 모양새였지만 원하는 걸 얻어낸 벨져는 더 아쉬울 게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는 여전히 의뭉스럽지만, 그거야 언제 한 번 녀석이 좋아하는 클럽에 데려가 술을 좀 먹이고 기분 좋을 때 물어보거나 아니면 술값을 내달라며 아쉬운 소리를 할 때 캐물으면 그만이었다.
* * *
오전부터 시작한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근처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어젯밤 알아낸 주소의 건물을 주시하는 벨져에게 전화가 왔다. 액정에 뜨는 발신인은 이글.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이러나 의심부터 들었지만 딱히 못 받을 것도 아니었다. 벨져는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전화를 연결했다. 막 일어난 동생 놈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들었다.
“어, 형. 뭐야, 꼭두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야, 형한테 스토커의 기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닥쳐라, 이글.”
“에헤이. 또 그런다 또. 이제 좀 은인으로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땡볕에서 하염없이 기다릴까봐 좀 도와주려했더니. 안되겠구만?”
다짜고짜 속을 벅벅 긁어대는 통에 벨져는 잠시 이걸 끊을까 말까 고민했다. 어차피 기다리면 만나게 될 텐데. 여기서 뭘 더 하겠다는 것인가. 탐탁지 않았지만 기다림에 지친 것은 사실이었기에 벨져는 전화를 끊는 대신 이글이 원하는 답을 내주었다.
“뭘 원하는데?”
“그 사거리에 보면 바이크 세워둔 호프집 있거든? 거기서 간장 파닭! 지금이 여덟시니까 여덟시 반에 봅시다. 오케이?”
“…하아.”
“그럼 이따 봐~. 아, 먼저 가있어.”
그럼 그렇지. 중요한 건 쏙 빼놓고 알려준 동생이 짜증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일부러 애를 태운 게다. 특별히 알려주긴 무슨. 벨져는 혀를 찼다. 그리로 오라는 건 기다려봐야 소용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벨져는 먹던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치우고 일어났다. 대체 프로즌 하나에 얼마의 시간과 신경을 쏟는 건지. 이쯤 되니 슬슬 이 짓거리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한여름의 대학가 호프집은 붐비는 시간답게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벨져는 탐탁지 않은 걸음을 옮겼다. 주인이 90년대 하드락, 혹은 바이크 덕후라도 되는 듯 안의 인테리어가 요란했다. 주황색 조명이 전부인 어두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낄 필요는 없었지만 벨져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멋도 멋이거니와 유명한 선수인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벨져는 구석진 안쪽 자리로 향했다. 홀에 돌아다니는 종업원 두 명은 벨져를 보지 못했는지 메뉴판을 주러 오지도 않았다. 부르려 해도 서빙벨도 없고, 맥주를 나르랴 주문을 받으랴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니 퍽 자존심이 상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어차피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이글 녀석의 요구사항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행여라도 진한 기름 냄새가 옷에 밸까 한숨을 내쉬는데 주방 쪽에서 그를 향해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은 이따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벨져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그 목소리. 그리고 어둑한 실내에서도 눈에 띄는 머리카락. 벨져는 돌아선 종업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운 음악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잡은 손목을 힘주어 당기자 그가 꼭 그때처럼 휘청이며 이끌려왔다. 저를 향해 돌아선 멀건 얼굴의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다, 그 붉은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데자부같이 익숙한 감각이었다. 벨져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찾았다.”
더이상 그를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벨져의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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