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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ts루이] Maker
※ 핵전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일어난 근미래, 센티넬버스, 티엔(29), TS루이스(17)
탱이 원딜을 물었다. 하랑은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해 다가오는 적에게 스킬을 쏟아부었다. 4단계, 이번 한타만 이기면 이긴다. 팽팽한 접전 끝에 마지막 한타라 하랑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막 지원을 온 같은 팀 팀원들이 뒤로 돌아오는 걸 본 하랑의 검지가 바빠졌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위험하다. 하랑은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 올린 손을 바삐 놀렸다. 집에 오자마자 시작한 게임은 지금까지 네 판을 모조리 졌다. 이번 판이라도 이겨야 속이 풀릴 것 같은데, 아군이 제법 하는 대신 적도 만만치 않았다. 그 전까지 트롤러들을 만난 하랑은 1인분을 하기 위해 집중했다.
"하랑."
"아, 왜!! 나 지금 바빠!!"
하랑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짜증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 갑자기 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저를 향해 달려오는 적을 제 때 피했을 터였다. 이제 오분이면 되는데 고작 그걸 못 기다려서 방까지 올라오고. 하랑은 제 보호자가 무슨 소리를 하던 헤드셋도 빼지 않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았다. 좀, 한 판만 이기면 안 되냐고. 하랑은 반피가 된 제 캐릭터가 빨리 일어나길 바라며 남은 스킬을 맞춰 반격할지, 아니면 도망을 가야할지 고민했다. 믿음직한 아군 탱커는 적 원딜들을 쫓느라 바쁘고, 다들 제게 와줄만한 여유가 없어보였다. 어떻게든 지금 이 난관을 빠져나가야 한다.
하랑은 캐릭터가 일어나자마자 제 앞의 근딜러를 눕혔다. 바로 궁극기를 쓰기 위해 키보드를 누르려는데, 갑자기 화면이 멈췄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열심히 누르던 하랑이 무슨 일인지 몰라 잠시 벙쪄있는 사이, 게임 화면에 서버에 접속할 수 없다는 문구가 떴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제 사부가 랜선을 들고 서있었다. 울컥 차오르는 화에 하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씨발 뭐하는데!"
"루이스가 늦으니 가서 데려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리고 다음엔 랜선을 뽑겠다고도 했지."
"아오, 씨발!! 존나 다 이긴 판이었다고!!"
"듣지 않은 건 너다. 이미 전에도 몇 번 경고하지 않았나."
"3분이면 됐다고!"
하랑은 티엔의 변하지 않는 무표정에 분을 삭히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짜증은 나는데, 덤벼봤자 진다는 걸 아니 뭐라고도 못 하겠고, 승질이 난 하랑은 애꿎은 의자를 발로 찼다. 바퀴 달린 의자는 주르륵 밀려가 벽에 부딪히고, 하랑은 행거에 대충 걸어뒀던 바람막이를 집어들었다.
"에이씨, 걔가 어디 그냥 기집애야? 걜 건드리는 사람이 더 위험할걸? 오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한 시간 전에 센터를 나왔는 연락이 왔다."
"뭐?"
한 시간이면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짜증을 내던 하랑은 갑자기 드는 걱정에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핸드폰의 잠금을 열어 봐도 딱히 연락이 온 건 없다. 센터에 다녀와야 한다길래 혼자 보내긴 했지만, 언제든 틈만 나면 나가 놀려는 저와 달리 그녀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라 어디 다른 곳으로 샐 리도 없었다.
"전화는?"
"안 받는다."
"에이씨...."
하랑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계단을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바로 코와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티엔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버리고, 하랑은 오늘 티엔이 모처럼 고기 요리를 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주방을 기웃거리다 한입 주워먹는 것보다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사람이 먼저라 하랑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꽤 날이 쌀쌀하다. 몸을 스치는 한기에 부르르 떤 하랑은 제 양팔을 쓰다듬으며 걸었다. 저보다 옷도 얇게 입고 다니는 녀석이 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고 사람을 걱정시키는지. 하랑은 이긴 거나 다름없던 마지막 판을 떠올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아가면 승리 대신 깎인 알피와 중단 전적이 저를 반길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랜선을 뽑을 수가 있지. 하랑은 저를 방해한 사부의 그 철면피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언젠가 톡톡히 그 값을 치르게 하리라.
그건 물론 사부가 제 방까지 찾아와 마중을 보내게 만든 녀석도 마찬가지다. 하랑은 동갑내기 여자애를 떠올리곤 애꿎은 돌맹이를 걷어 찼다.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렴, 걔가 어디 늦으려고 늦는 앤가. 그 무뚝뚝하고 목석같은 정티엔이 죽고 못 살 정도로 아끼는 애다. 그 녀석은 무슨 일이 생겼으면 생겼지 절대 어디 다른 곳에 새거나 할 위인이 아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하랑의 걸음이 빨라졌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 앞 벤치에 다다르기까지 고작 오 분도 걸리지 않았을 텐데,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던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하랑은 초조하게 정류장을 서성이다 벤치에 앉았다. 핸드폰은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게임을 켜던 하랑은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의 불빛에 고개를 들었다. 퇴근 시간대가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빽빽해 누가 내리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제가 못 찾는 건가 싶어 일어나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내리는 사람 중엔 그녀가 없었다. 하랑은 초조해진 나머지 게임창을 끄고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수신음만 가고 답이 없어 인내심이 조금씩 바닥을 보일 즈음, 이거 어디 다른 길로 먼저 들어가서 엇갈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티엔에게서도 들어오라는 연락이 없어 하랑은 다리를 떨며 간간히 차가 지나가는 도로만 쳐다봤다.
그러기를 얼마, 반짝반짝한 까만 고급 승용차가 앞에 멈췄다. 버스 정류장에 무슨 차를 세운담. 하랑이 눈살을 찌푸리고 애꿎은 차를 노려보는데 차의 뒷문이 달칵 열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내렸다. 푸른 기가 섞인 잿빛의 긴 머리카락.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난 하랑은 운전석을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루이스!"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하랑은 아직도 인사 중인 그녀 옆에 섰다. 루이스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곤 차의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못 본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낯빛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땅거미가 진 거리가 어둡다 해도 그 정도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하랑은 대번에 루이스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볼살이 하랑의 손에 밀리는 바람에 퍽 귀여운 얼굴이 됐지만 그래도 지친 기색을 지울 순 없었다. 제 손을 잡아 떼내는 그 손에도 힘이 없어 하랑은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센터에서 조금 일이 생겨서, 데려다주셨어."
"쯧, 핸드폰은?"
"가방에. 아, 무음으로 바꿔놓은 거 깜박했다. 미팅때문에."
"가이드?"
하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루이스를 향해 혀를 차며 그녀의 가방을 뺏어 들었다. 어깨에 대충 둘러매고 묻자 루이스는 대답 대신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또 꽝이구만. 어쩐지 사부가 예민하더라니. 하랑은 더 묻지 않고 루이스와 발을 맞춰 걸었다. 루이스는 벌써 몇년째 정식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이었다. 그것도 유능한. 물론 다른 센티넬에 비해 능력의 조절과 제어가 탁월하다 해도 정식 가이드가 없다는 건 센티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자 오점이었다. 언제 자신의 능력에 휘말려들지 모른다.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과 같다던 티엔의 말이 떠올라 하랑은 흘긋 루이스의 안색을 살폈다.
평소엔 얄미울 정도로 흔들림 하나 없는 주제에, 제가 알아챌 정도로 잔뜩 쳐져선 우울해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옆에 걷던 루이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는지라 하랑은 슬금슬금 루이스의 눈치를 봤다. 맞는 가이드가 없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닌데 오늘은 어째 더 우울해하는 것 같다. 뭐라고 기운을 복돋아줘야 하는 걸까. 위로 같은 데 소질이 없는 하랑은 괜히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때가 되면 어련히 나타나겠지."
"응."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진 몰라도, 괜히 어줍잖은 위로를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안 그래도 자존감이 밑바닥을 기는 애다. 하랑은 루이스가 어서 평소의 그 잔잔하고 광활한 호수같은 루이스로 돌아왔음 싶었다. 돌맹이 하나 던져봤자 잠시 파문이 일고 마는 호수. 하랑은 그런 그녀가 좋았다. 센티넬이고 뭐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그랬다.
루이스는 누가 티엔 정이 손수 키운 센티넬 아니랄까봐 철두철미하고 똑부러지는 녀석이었다. 언뜻 차가워 보이는 무표정에 먼저 살갑게 다가가는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사소한 것 하나도 기억하고 챙겨주는 거며 사람을 살피고 돌보는 게 일상인 좋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루이스는 딱히 뭔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하랑이 이 제 1구역의 중앙도시에 온 첫 해, 누군가 축하해줄 거라곤 생각도 못한 생일을 챙겨준 루이스였다. 심지어 제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운동화를 곱게 포장한 상자에 담아 선물했다. 사실 그런 것보다는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면서 자기도 잊고 있던 걸 기억하고 챙겨줄 때가 더 감동이지만.
하랑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센티넬이 경쟁력이 되는 세계수 근처의 거점 도시들이야 센티넬 하나 하나에 목숨을 걸지만, 하랑이 자란 곳은 거점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이었다. 하루 하루가 전쟁같은 곳에서 하랑은 아버지와 함께 산 속 깊이 들어가 살았다.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지으면 두 사람이 먹고 살기엔 부족하지 않다. 가끔 물건을 교환하러 마을에 내려가는 게 전부요, 가끔 점을 쳐주고 산에선 못 구하는 생필품을 교환하는 게 가끔 있는 낙이었다. 하랑은 티엔을 만나기 전까진 제가 센티넬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처음 말로만 듣던 거점 도시에 왔을 땐 공기조차 다르고 생활 자체가 달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더랬다. 그런 하랑을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준 게 바로 루이스였다.
하랑은 센티넬이기 때문에 거둬진 루이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다. 센터에서도 센티넬로 분류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에스퍼계 센티넬은 애매한 위치다. 아직 완전히 능력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하랑은 센터에서 등급을 부여받는 의무 테스트 이후로 불려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잡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중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하랑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절로 얼굴을 구기게 되는 티엔의 번호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고향에 계신 아버지만큼이나 반가웠다.
"어! 지금 가는 중."
'그래. 얼마나 걸리나.'
"이제 세 블럭 남았수다."
하랑은 일부러 껄렁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까지는 이제 두 블럭. 무심히 걷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루이스가 작게 웃고, 하랑은 머쓱해진 나머지 걸음을 빨리 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루이스는 살짝 뛰어와 다시 하랑의 옆에 섰다. 더 뛸래야 집 앞이라 하랑은 이게 다 네가 늦어서라고 투덜거렸고, 루이스는 그런 하랑에게 미안하다며 등을 두드렸다.
티엔이 루이스에게만 무르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투덜거리는 하랑이지만 그녀에게 무르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쁜 여자애가 헤사하게 눈꼬리를 휘며 생긋 웃는데, 거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제가 아는 기집애들이라곤 만날 드잡이질에, 사내애들보다 더 목청도 크고 괄괄했는데 루이스는 글에서나 보던 선녀같았다. 청순하고, 예쁘고, 상냥하고, 다가가면 꽃 향기가 날 것 같은 그런 여자애. 하랑은 결국 루이스의 미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늦었군. 씻고 내려와라."
하랑은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고 2층 계단으로 휙 올라가버렸다. 루이스는 신발을 벗어 하랑의 운동화까지 정리했다. 그새를 못 참고 현관까지 나온 티엔이 팔짱을 끼고 내려보자 힘 없이 웃는데, 한소리 하려고 벼르고 있던 게 전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루이스는 티엔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티엔은 쭈뼛쭈뼛 선 루이스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고 돌아서 주방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죽어가던 그녀를 주운 그 날부터 지금까지 제가 키우다시피 한 아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하랑도 마찬가지지만, 하랑은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사람과 접촉을 피한 탓에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 거리의 고아로 눈치밥을 먹으며 자라 나이에 맞지 않게 신중하고 침착한데다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데도 능숙했다. 그녀를 데리고 왔을 땐 한동안 그것 때문에 애를 먹었던 티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데운 음식을 그릇에 담았다. 하랑이 노래를 부르던 갈비찜에 마파두부, 제 철인 사과를 갈아 만든 소스를 올린 샐러드에 고슬고슬한 밥까지 한 상을 차린 티엔은 먼저 자리에 앉았다.
두 녀석을 기다리고 있으니 루이스가 하랑과 장난을 치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단정한 교복 대신 까만 나시티와 후드집업에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입은 루이스의 허벅지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하랑을 보며 키득거리는 중이라 딱히 말을 꺼내기도 뭐해 티엔은 아이들이 앉기를 기다렸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예정보다 식사 시간이 늦어져 배가 많이 고팠던지, 하랑이 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식사 예절에 대해 한 마디 하기도 전에 고기 덩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통에 티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스는 그런 하랑이 재미있는지 피식 웃으며 앞접시에 고기를 한 점 덜어 티엔의 밥공기 앞에 내밀었다. 눈이 마주치자 사르륵 눈웃음을 치는데, 오늘 낮에 점심을 먹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 깐깐하기 그지없는 윌라드 크루그먼과 웨슬리 슬로언, 거기에 티엔의 상관인 브루스까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딸이 최고라고 한 것이다. 그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둘을 보고 있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엔은 빈 앞접시를 가져간 루이스가 샐러드의 푸성귀를 가져다 먹는 걸 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고 기운을 내야 할 텐데. 하랑이 밥 한 보람이 있게 잘 먹는 것에 비해 루이스는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놨는데도 먹는 게 시원치 않았다. 아마 오늘도 가이드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티엔은 안타까운 마음에 큰 살점을 덜어 루이스의 앞접시 위에 놓아주었다.
루이스는 결정 능력이라는 비주류 능력을 가진 센티넬 치고 전투력이 높았다. 물론 거기엔 그녀의 타고난 성격과 재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년간의 스카우터 활동으로 다져진 티엔의 코치도 한 몫 했다. 그래서일까, 세간에서 루이스는 티엔 정의 미완성품이라 불리고 있었다.
미완의 센티넬. 루이스가 보여주는 무긍무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심사에서 3급밖에 받지 못한 데에는 가이드가 없다는 게 가장 컸다. 혼자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다 해도,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을 쓰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센터에 있는 가이드들 중엔 그 누구도 루이스와 동조율이 30%가 넘는 사람이 없었다. 개중에 그나마 제일 높은 게 자신인데, 그마저도 50%가 안 됐다. 덕분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 임시 가이드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일 뿐이었다. 티엔은 그녀에게 맞는 가이드가 나타나길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다.
아홉살, 죽어가던 그녀를 안아들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루이스는 저만 바라보는 아이였다. 제가 없으면 죽어버릴 것처럼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티엔은 웬 양아치 같은 놈팽이가 그녀의 가이드라고 나타나기라도 할까봐 루이스가 가이드 문제로 센터에 갈 때면 노심초사했다. 더러는 그래도 개중에 가장 동조율이 높으니 그녀와 귀속 관계를 맺는 게 어떠냐 제안하기도 했지만 티엔은 그럴 수 없었다. 첫째는 자신이 스카우터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티엔이 그녀를 무척 아끼기 때문이었다.
센티넬은 가이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를 아끼기 때문에 티엔은 루이스가 남은 평생을 제게 매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예쁘고, 강하고, 제게 과분할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다.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듬뿍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아이였다. 티엔과 루이스의 나이차는 열 둘.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티엔은 양심상으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정식 센티넬이 되면 센티넬의 폭주로 이어지는 결핍증세를 막기 위해 신체 접촉이 필수인데, 채 50%도 안 되는 동조율로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단순히 손을 잡거나 안고 있는 걸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티엔이라고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후, 나아갈 길을 고르는 그 시간에 제 옆에 있었던 건, 어쩌면 제 스카우터 생에 가장 큰 역작이 될 지도 모르는 미완의
센티넬이었다. 어떻게 탐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에 루이스는 너무나 달콤한 열매였다. 가이드가 없는 건, 그 중에서도 자신의 동조율이 가장 높은 건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손만 뻗으면 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억누른 건 다름 아닌 그녀에 대한 애정이었다.
한 번 그렇게 옭아매면, 돌이킬 수 없다. 그때 루이스는 고작 열다섯이었다. 저를 은인으로 알고 무엇이든 해서 그 값을 돌려주려는 아이다. 절대 거절할 리 없었다. 대개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는 센티넬의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맺어진다. 귀속을 하지 않은 지금도 이런데, 그녀가 자신의 센티넬이 되면. 티엔은 두려웠다. 그녀를 '루이스'가 아닌 '센티넬'로 대하게 될까봐, 그녀를 도구로 쓰게 될까봐, 그녀가 더 자라서 알을 깨고 나올 즈음 제게 원망과 저주를 퍼부을까봐. 센티넬은 생존을 위해 가이드를 필요로 하고, 한 번 정식으로 귀속을 맺으면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다. 게다가 센티넬 쪽에선 가이드가 주는 심리적 안정과 스킨십을 사랑이라 여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비즈니스적인 관계, 혹은 친구의 선을 넘지 않는 게 센티넬의 수명이 오래 가는 비결이라 할 정도였다.
센티넬은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고 특별한 존재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는 루이스에 티엔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완벽에 가까운 남자라 일컬어지는 그 스스로도 루이스를 아직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티엔은 다른 센티넬과의 계약 대신 센티넬 급으로 강한 체술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터가 된 사람이었다. 대개 스카우터는 센터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센티넬과의 전투도 불사해야 할 때가 있기에 보통의 센티넬보다 능력치가 현저히 높은 이를 뽑는 게 관례라는 걸 생각하면 센티넬이 아닌 스카우터 티엔 정이 어떤 존재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을 먼저 올려보낸 티엔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따라놓은 물 한 컵을 그대로 들이켰다. 하랑은 밥을 두 공기나 더 먹었고 루이스는 밥을 반절이나 남겼다. 모처럼 한 요리를 담은 그릇은 싹 비워졌건만, 속이 쓰렸다.
시험기간이라 공부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보고싶은 것만 씀.
안그래도 바쁜데 루이스 모델링 변경때문에... 심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름ㅠ
이제 루이스한테 동안에 미인이라고도 못할거 아냐...ㅠㅠ
그 전에 개편 전 루이스로 연성을..많이...해야하는데...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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