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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킹스맨au
2015/04/04
* 킹스맨AU
** 메모란으로 옮겼던 거 이어봄.
총알이 빗발치는 비상구, 수트를 입은 검은 머리의 남자가 급하게 층계를 올랐다. 한창 쫓기는 중인 남자의 이름은 티엔 정, 안보국의 요원으로 도박장에 잠입했으나 그를 반기는 건 기관총이었다. 티엔은 탄창을 갈아끼우려 허벅지에 손을 뻗었으나 이미 다 써버렸다는 걸 깨닫고 바로 계단의 모퉁이를 돌아 벽 뒤에 몸을 숨겼다. 총알이 박힌 허벅지의 출혈을 막기 위해 급히 넥타이를 풀어 동여맨 티엔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난관을 어찌 빠져나갈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몸에 딱 맞는 쓰리피스 수트에 까만 뿔테 안경, 거기에 한 손에 든 우산까지. 상당히 젊어보이는 건 둘째치고 차림새로 보아하니 도박을 하러 온 손님인 것 같았다. 국적은 아마도 영국. 그러지 않고서야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들고 다닐 리 없다. 조금 전까지 비상구에서 총성이 들렸을 텐데, 스위트룸에서 나오느라 못 들었는지 남자는 여유롭기 그지 없는 태도로 티엔에게 다가왔다. 헬기를 타려면 어떻게든 옥상까진 가야 한다. 비상구에서 저를 쫓는 무장경비원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 밤입니다, 미스터."
티엔은 바로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제압하고 머리에 총구를 댄 채 비상구 문을 마주했다. 거세게 문이 열리고, 제가 잡은 인질이 양손을 들었다. 경비들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들어올 수 없는 층에, 고급스러운 수트를 갖춰입은 남자를 보자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았다. 티엔이 서서히 다가가자 뒤로 물러나는 게 아무래도 제대로 인질 겸 총알받이를 찾은 모양이었다.
"이런 거친 방법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요."
남자를 끌고 헬기장으로 올라가던 티엔은 문득 코끝에 느껴지는 머스크향에 위화감을 깨달았다. 경비병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남자는 인질 치고 허둥대거나 협상을 하려 하지도 않고 너무 침착했다.
"너, 정체가 뭐지?"
잠자코 티엔이 이끄는 대로 따라주던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티엔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티엔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건 절대 일반인이 아니다. 저를 잡으러 온 다른 세력의 사람인가. 티엔은 급히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남자가 티엔의 다친 다리를 을 붙잡는 게 빨랐다.
"자기 소개가 늦어졌군요. 갤러헤드입니다. 미스터 정."
순간 손목이 잡히고, 따끔하는 통증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제 신분이 노출되었단 뜻이다.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를 끝으로, 티엔의 의식은 검게 물들었다.
지끈지끈한 둔통에 깊이 잠들었던 의식이 돌아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린 티엔은 몸을 일으키려다 허벅다리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작게 신음했다. 하늘색 파자마에 다리엔 붕대가 감겨있고 주변은 마호가니 가구가 있는 걸로 보아 고급 호텔이나 그에 준하는 어딘가 같았다.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린 티엔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머리를 굴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갤러헤드라고 했다. 영국 신사인 척 하면서 잘도 비겁한 짓을 하다니. 물론 이렇게 치료까지 해주고 좋은 방을 내주긴 했지만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티엔은 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옷장 앞에 검은색 정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슴 주머니에 꽂혀있는 종이를 빼자 멋드러진 필체로 To. Mr. Jung 이란 메모가 적혀있어 티엔은 주변을 휘 둘러봤다. 방 안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그래도 어디에 어떻게 도청장치나 카메라가 붙어있는지 몰랐다. 괴상한 놀이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 티엔은 파자마를 벗어던졌다.
빳빳하게 다린 드레스셔츠를 맨 몸 위에 걸치고 소매는 단추 대신 옆에 놓인 커프스로 잠근다. 발목까지 완벽한 핏으로 떨어지는 바지를 입은 뒤 벨트의 버클을 정중앙에 오도록 맞추고, 발목을 덮는 검은 양말을 신고 나면 브로그가 없는 옥스포드의 순서였다. 짙은 붉은색에 광택이 나는 넥타이와 금장 핀. 티엔은 셔츠 단추를 잠그며 저를 위해 준비된 것들을 차례로 훑었다.
이 모두가 철저하다 못해 완벽한 신사의 옷차림을 위한 것이었다. 대체 이런 옷차림을 시켜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티엔은 거울을 보며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고 카라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옷걸이에 걸린 재킷을 집어들어 팔을 넣었다. 너무 부드럽지도 빳빳하지도 않은 재킷은 맞춤옷이라도 되는 듯 딱 맞을 뿐더러 티엔에게 퍽 잘 어울렸다. 왜 이러는지는 몰라도 수트만큼은 십점 만점에 십점을 줘도 될 만큼 탁월했다. 앞단추를 잠그고, 양손으로 재킷의 카라를 안쪽으로 잡아 매무새를 다듬는데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고, 티엔은 거울을 통해 정중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신사를 바라봤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터."
"썩 유쾌한 아침 인사는 아니군."
"거친 방법은 선호하지 않아서요. 실례가 됐다면 사과드리죠."
자신을 갤러해드라 칭했던 남자는 퀸즈잉글리쉬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려보이는 얼굴 탓인지 전통적인 영국 귀족이라기보단 젠트리같은 인상이 강했다.
"이렇게 나를 끌고온 목적이 뭐지?"
"끌고 오다뇨. 피곤해보이시길래,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드렸을 뿐인데 제 작은 친절이 과했던 모양이군요. 준비는 다 되신 모양이니 얘기를 조금 나눌 수 있을런지요."
"흠. 내게 선택권이 있나?"
남자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며 문을 열었다. 숙녀를 대하듯 정중하게 문을 열고 기다리는 게 언짢았지만 어쨌거나 지금 티엔은 볼모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높은 확률로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본부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부상을 입었으며 남자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은 굳이 따로 시험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혼자서 자신을 상대하러 나올 일도 없거니와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다. 그도 그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고 일단은 그 보스와 대화를 할 모양이니, 티엔은 일단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어떻게 탈출할지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무턱대고 탈출이나 저항을 하다간 감시와 감독이 더 심해진다는 건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었다.
진홍색 카페트가 깔린 복도와 벽을 보아선 역사가 느껴지는 게 꽤나 고풍스러운 저택같았다. 다른 곳과 달리 문이 두짝인 곳 앞에 다다른 갤러헤드는 잠시 멈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을 들어 똑똑, 무겁지도 경박하지도 않게 문을 두드렸다. 정중하기 그지없고,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예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했다.
"랜슬롯."
"갤러해드."
티엔이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갤러해드가 안으로 들어섰다. 회색에 가까운 은빛 머리카락의 사내.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서류를 보다 고개를 들어 인사를 받았다. 티엔은 그가 서류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부진 몸이며 뺨에 난 십자상처는 절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원탁의 기사의 이름으로 부르는 집단. 티엔은 머릿속에서 여러 기관들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이쪽은 말씀드린 미스터 정입니다."
"수고했군. 앉게."
랜슬롯이란 코드명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갤러해드는 티엔에게 커피와 차 중 어느쪽이 좋으냐 물었고 티엔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커피라 대답했다. 재킷을 정리하며 앉는데 고급스러운 소파의 쿠션이 지나치게 좋았다. 원래 불편한 자리는 맞지만 차라리 허름한 창고에서 묶이면 묶였지, 이런 분위기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피차 할 말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하지."
"바라던 바다."
"리원판. 그자에 대해 도움을 주었음 한다."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원한다면 상부에 요청하는 게 빠를 거다. 무턱대고 정보를 넘길 만큼 허술하진 않으니."
"중국과는 얘기가 된 내용이다. 원한다면 확인해보도록."
예상대로, 간단한 말 몇마디 뿐이었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고, 랜슬롯은 티엔 앞에 서류봉투를 가볍게 던지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미심쩍긴 하지만 단단히 봉해진 서류봉투를 열어본 티엔은 제 상부의 인장이 찍힌 서류에 더 심각해졌다. 인증코드와 암호화된 시리얼넘버까지, 내부인이 아니면 알아볼 수 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그랑플람의 기술이 들어간 서류는 위조품일 수가 없었다.
마침 다가온 갤러해드가 랜슬롯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티엔의 앞에도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갤러해드와 랜슬롯이 주고받은 눈빛. 티엔은 그 잠시의 시선교환에 묘한 기류를 느꼈다. 저건 동료들간에 지을 만한 눈빛이 결코 아니다. 동료요원이라기보단 비서 같은 행동에 티엔은 이 미남자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단번에 저와 같은 부류라는 걸 꿰뚫어본 랜슬롯과 달리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협력하겠다면 그 다음은 갤러헤드가 함께할 거다."
"그 전에 통화를 한 통."
랜슬롯은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티엔에게 주었다. 티엔은 상부와 연결되는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 제 상사가 전화를 받았다. 잘 모르겠지만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들에게 협력하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난처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꽤 영향력이 큰 조직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명령까지 내려왔으니 티엔은 따라야 했다. 말이 협력이지, 뒤로 뺄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강요나 다름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갤러헤드입니다."
"티엔, 티엔 정이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고, 티엔은 갤러헤드의 손을 맞잡았다. 해사한 웃음이, 드디어 그의 앳된 얼굴에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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