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꽃이 피는 삼월. 이제 삼학년이라 고전무술부의 부장직은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티엔은 체육관에 들러 운동을 하고 샤워까지 마친 후 수건을 어깨에 걸친 채 젖은 머리를 털며 가방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증축 공사로 책을 빌린 뒤 처음으로 도서관을 개방한 날이라, 책때문에 가방이 무거웠다. 도서관이 닫히는 건 네 시 반. 씻고 나온 게 네시 십오분이었다. 더 늦기 전에 반납하기 위해 미닫이 문을 연 티엔은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밀려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먹구름이 낀 하늘 같은 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가에 서있던 여자애가 고개를 돌리고,
눈이 마주쳤다.
“저기, 아직 대출은 안 되는데요....”
“아, 아아. 반납이다.”
“그럼 이쪽으로.”
파란 리본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입생인 것 같은데, 첫날부터 도서관에 익숙한 듯한 태도에 티엔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며 여학생을 위아래로 훑었다. 당연한 듯 대출대 안쪽에 앉은 여학생은 책의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한데 비해 검은 색 세라복 위에 가디건도 입지 않은 채였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걸까. 티엔으로선 드문 타인에 대한 흥미였지만 여학생은 책 다섯 권의 반납 처리를 마치고 티엔을 올려다봤다.
“이제 가셔도 돼요.”
“1학년?”
“네. 그런데요.”
“...이름은?”
“루이스.”
그 이름의 울림이 그녀와 제법 잘 어울렸다. 티엔은 가방을 다시 어깨에 짊어지고 속으로 그 이름을 곱씹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티엔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티엔은 깜박이는 그 붉은 눈동자가 꽤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혹시 선생님께 용무가 있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다만.”
“곧 문을 닫을 시간인데요.”
“알고 있다.”
의미 없는 문답. 이러고 있는 게 시간낭비라는 건 알지만 티엔은 좀처럼 걸음을 옮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박또박 말하며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엔 아직 중학생 티가 났고, 갸름한 얼굴선이며 가는 목덜미, 소매 사이로 흘긋 보이는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 게 실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티엔은 괜히 교복의 칼라를 매만지며 돌아섰다. 어차피 도서부원이라면 앞으로 종종 마주칠 터, 그런데 왜 지금껏 관심도 두지 않았던 도서부원에게 흥미가 생긴 건지. 티엔은 대출이 안 된다고 하던 루이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저기요.”
그리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티엔은 그대로 손을 멈췄다. 이 도서실에 있는 사람이라곤 그녀와 자신 단 둘 뿐. 천천히 몸을 돌리자 루이스가 일어나 티엔에게 다가왔다.
“책갈피. 빼먹으셨어요.”
“...흠.”
티엔은 책갈피를 쓰지 않는다. 가방 안에 넣어놓은 유인물이나 메모지가 끼워져있던 게 아닐까 하는데 예상 외로 루이스가 내민 것은 얼마 전에 참고서를 사면서 받은 영수증이었다.
“여기보단 그 건너편 골목에 윈더미어가 나아요. 포인트 적립은 안 되지만 얼굴 조금만 익히면 싸게 주시거든요.”
윈더미어라는 소리에 티엔은 후미진 간판을 떠올렸다. 낡은 서점과 눈앞의 여학생. 티엔은 무표정한 루이스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무는 그것뿐이었는지 루이스는 티엔이 반납한 책을 양손에 들고 서가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티엔은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의 복도를 걷는 내내 기분좋은 꽃 향기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