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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어떤 동행 06.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 그 햇살에 프라이팬의 달걀처럼 익어가던 루이스는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입안은 모래알을 한 움큼 넣은 것처럼 깔깔하고, 갈증과 함께 쨍한 두통이 찾아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점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몹쓸 숙취는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게 며칠, 그마저도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루이스는 천천히 눈을 뜨다 눈앞에 보이는 쇄골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대로 고개를 올리자 잠든 벨져의 얼굴이 보였다.
길고 풍부한 속눈썹 아래 우아하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워낙에도 미인이긴 하지만 이렇게 그림자까지 질 줄이야. 순수하게 감탄하며 벨져의 얼굴을 감사하던 루이스는 창밖에 지저귀는 새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길래 벨져와 한 침대에 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방이 없어서, 사정사정해 별채까지 온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완전히 공백이었다. 아무래도 머리를 기대자마자 곯아떨어진 모양이라고 결론을 내린 루이스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려 했다는 데 그친 건 제 허리와 다리에 감긴 벨져의 팔다리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오랫동안 안 쓴 별채니 난방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유일한 난방수단인 벽난로는 불이 꺼진지 오래인 듯 했다. 추운 지방에, 밤이 되면 기온이 더 떨어지니 이불 한 겹으론 추위를 다 막지 못했을 테고 그러다보면 옆에 있는 체온에 달라붙을 수밖에.
설마하니 벨져가 먼저 제정신으로 끌어안았을 리는 없다. 그게 루이스가 내린 결론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벨져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잠결에 자기도 자연스레 온기를 찾았을 터였다. 내외하는 남녀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결론을 내린 루이스는 벨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빠져나가려 하면 할수록 벨져는 더 꽉 끌어안고 좀처럼 놓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끌어안고 자는 베개쯤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현저하게 느껴지는 체력과 완력 차이에 더 오기가 생겼다. 가까스로 벗어나 숨을 돌린 루이스는 언제 벗었는지 모를 신발을 주워 신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왈칵 녹이 섞인 물이 흘러나와 손을 적셨다. 이럴 땐 그냥 흐르게 둬야 하는데, 벨져가 그런 서민의 생활상식을 알 리 만무했다. 루이스는 일단 급한 대로 물을 틀어두었다. 여기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화장실을 나오는데 벨져가 창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루이스를 깨운 아침햇살이 이번엔 벨져를 괴롭히고 있었다.
루이스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커튼을 쳐 햇빛을 가리고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저기선 씻을 수도 없고, 있어봐야 예민한 도련님의 귀한 수면을 방해할 뿐이다. 하얗게 입김이 서리는 추위에 팔을 쓸며 사람의 발길이 닿은 길을 따라 걸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흐릿해 대충 감으로 걸어가니 마당에서 세탁물을 걷던 여자와 마주쳤다. 어젯밤 방을 내준 종업원을 기억해낸 루이스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좋은, 큼. 아침입니다.”
“어머나, 벌써 일어나셨어요? 밤새 춥지는 않으셨구요?”
“덕분에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드릴까요?”
루이스는 그녀가 걷던 시트며 수건, 베개 커버같은 것들을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스위스인데 아무렇지 않게 말이 통한다. 위화감에 슬쩍 말을 걸었다.
“이런 곳에서 혼자 힘드시겠어요. 영어도 잘 하시는데.”
“에휴. 그러게나 말이에요. 겨우 탈출했다 싶었더니 잠깐만 와서 봐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왔더니 글쎄, 자기는 귀족 나부랭이랑 눈이 맞았다지 뭐예요?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놓고 여태껏 편지 한 번 없어요.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거 공부시켜놨더니, 이런데 틀어박히질 않나. 결국은 눈 맞아 도방가질 않나. 아, 같이 온 그 귀족나리는요? 그쪽도 만만치 않게 재수 없던데.”
과연. 루이스는 유독 벨져에게 야박했던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모양이나 말투로 보아하니 가정교사였던 것 같고, 사정 설명은 본인이 늘어놓은 신세한탄으로 다 들었다. 귀족에게 치를 떠는 이유도 알만 했다. 교사로 있을 때 까이고, 나이가 차도록 결혼도 못하고 공부시킨 동생은 하필이면 또 귀족과 눈이 맞아 도망. 벨져야 누가 보더라도 귀족 도련님이니 어찌 보면 질색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잡니다. 동생분 일은 정말 안타깝네요.”
“에휴. 기사도니 뭐니 하는 것들은 전부 소설 속에나 있는 얘기예요. 그것 때문에 신세 망친 애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모름지기 남자는 성실하고 지고지순한 게 최고라니까요!”
여자는 시트를 팡팡 털며 말했다. 모름지기 신세한탄 인생역경 스토리란 아무리 말해도 말해도 질리지 않는 법이고, 거기에 왠지 친숙한 옆집 청년같이 생긴 남자가 있으면 말이 더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서점에서 일할 때부터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여성들이 꽤 있었기에 익숙했다.
어떤 매커니즘인지는 모르지만 뛰어나게 잘 생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감이 가게 생긴 청년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루이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자의 푸념에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받았다. 어젯밤에는 그런 얼굴로 불쌍한 척을 한 게 먹혀들어간 거고. 루이스는 그녀와 함께 다 걷은 세탁물을 옮겼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손님한테 일을 시켜버렸네요.”
“괜찮습니다. 크흠. 혹시 씻을 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혹시 편지도 좀…….”
“그럼요, 물론이죠! 저쪽이 욕실이니까 편하게 쓰세요. 아, 전화 쓰셔도 돼요. 아침은 서비스로 갖다 드릴게요!”
우다다 할 말을 쏟아내고 사라진 그녀의 등 뒤로 감사하다 소리친 루이스는 꽤 괜찮은 설비의 욕실에서 따뜻한 샤워로 언 몸을 녹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가방을 들고 나올 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온 루이스는 전화기를 들었다. 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겨우 연결된 전화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어디야? 트리비아는?’
“그녀는 떠났어.”
‘……그래. 그렇구나. 그럼 너는. 그리스에서 연락이 끊겨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앤지. 천천히.”
루이스는 흥분한 친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그야 물론 이글과 나이오비가 소식을 전했다면 걱정할 만 했다. 어쨌거나 안타리우스가 강화인간들을 처리한다는 건 성공작을 거의 완성했다는 뜻이고, 제키엘 헌팅턴까지 등장했으니 거기에 휘말렸으면 솔직히 뼈도 못 추렸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불안과 가정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 루이스는 구태여 설명을 더하는 것보다 빠르게 앤지의 불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누구랑 있는지 알아?”
‘뭐? 설마 작업 들어온 건 아니지?’
근래는 좀처럼 듣기 힘들어진 스노우퀸의 격한 목소리에 루이스는 작게 웃었다.
“벨져.”
아무리 그녀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글이 벨져와 있었다는 걸 알렸다면 더더욱.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그 뻔한 반응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루이스는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에게 안심하라는 말을 보탰다. 얼마나 믿을진 모르겠지만 말 한 마디 한다고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괜찮아?’
“자세한 건 편지로 보낼게. 아무래도 돌아가는 건 더 늦어질 것 같아. 미안. 부탁해.”
‘……알겠어. 루이스, 제발 몸조심해. 응?’
“알았어. 또 연락할게.”
루이스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앤지가 걱정을 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이면 보일수록 그녀를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녀마저도 완전히 믿지를 못하고, 또다시 괴로워질 뿐이었다. 나는 네 기대에 못 미칠 지도 몰라. 기대를 저버리면 제게서 등을 돌릴 사람들이 무서웠다.
루이스는 양동이 하나를 빌려 뜨거운 물을 받아 왔던 길을 돌아갔다. 방문을 열자 나가기 전과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 루이스를 맞았다. 자고 있는 벨져의 어깨를 잡아 흔들자 짜증을 내며 손을 내치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리는데, 그 모습이 꼭 마나님들의 성질 더럽고 예쁜 고양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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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어떤 동행 05.
없다. 어쩜 관광지에 방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는지 그것부터가 의문이지만, 그나마 묵을만한 호텔은 이미 방이 다 나가고, 작은 여인숙이나 모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다섯번째, 벨져는 돈을 주겠다는데도 예약을 받은 거라 안 된다며 거절하는 숙박업소를 나왔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사이 술이 좀 깼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루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의 결혼이 이렇게까지 외부인을 모을 일인가. 어쩐지 아까 펍에서도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더라니. 방금 전 유명한 배우가 이곳의 지역 유지와 도피해 결혼식을 올리는 바람에 기자와 팬들이 몰려 어쩔 수 없었따. 밖으로 내몰린 벨져는 혀를 차고 성큼 앞서 걸었다.
“저, 벨져.”
“뭐지.”
“저쪽에, 불이 켜져 있소만.”
루이스를 부축하며 따라오던 릭이 모퉁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모텔을 가리켰다. 외관도 별로고, 자리도 별로라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어쩐지 방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휘청거리며 걷던 루이스가 릭이 앓는 소리를 내자 자기는 괜찮다며 떨어졌다. 벨져는 병실로 돌아가야 하면서도 도움을 자청하는 환자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주제에 남 걱정이나 하는 천치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냥 해도 될 걸 저 지경이 되도록 무식하게 퍼마신 건 어디까지나 저 머저리다. 얼마나 한심하고 미련한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벨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딸랑. 벨이 울리며 젊은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방 없어요.”
“방 둘. 다섯 배를 주지.”
“방 없는데요.”
“돈이라면.”
“아, 없다니까요.”
여급이 신경질을 내며 정리하던 수건을 턱하니 내려놓았다. 그녀의 기세에 잠시 움찔했던 벨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돌아서서 세탁물을 개키기 시작했다. 딸그랑. 기어이 릭을 보냈는지 루이스가 혼자 들어왔다. 저걸 끌고 다른 곳을 찾을 순 없다. 벨져는 꾹 누르고 한 수를 물렀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나으리. 없다니까요?”
탁. 그녀는 아예 벽에 걸린 열쇠함을 치며 짜증을 내고 돌아섰다. 벨져 홀든에게 이런 푸대접이라니. 울컥 치솟는 짜증에 입가가 가늘게 떨렸다. 코웃음 친 벨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루이스가 휘청이며 팔을 잡았다.
“저기, 죄송한데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돌아봤다. 아직도 술기운이 여전한지 루이스가 배실배실 웃었다. 나른한 눈웃음에 벨져의 눈도 그만 루이스에게 쏠려버리고, 짜증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얼굴에 약한 홍조가 돌았다.
“혹시 남는 방.... 그냥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데.... 벌써 다섯번이나 허탕쳤어요.”
“아, 저.... 그게... 지금은 방이 다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던 벨져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손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는 여자와 나긋하게 말을 거는 루이스를 보고 기가 차 헛웃음을 흘렸다. 참 잘 하는 짓이다. 벨져는 혀끝에 멤도는 말을 꾹 참아 눌렀다. 오늘 아주 작정하고 그 반반한 얼굴을 팔아먹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 지켜보고 있으니 데스크에 엎드리다 시피 기댄 루이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네?”
아래서 올려다보며 묻더니,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망설이자 눈을 깜박였다. 여자에게 애원하는 법에 도가 튼 모습은 어이가 없다 못해 사실 펍에서 취한 사람은 루이스가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그게, 수리중인 별채가 있긴 한데....”
“주세요.”
얼굴을 붉히며 내숭을 떠는 여자에게 웃으며 대답한 루이스가 몸을 일으켜 벨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손을 놓은 건 좋지만,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도무지 좋게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는 그였다. 루이스는 어젯밤 제 손을 잡은 이후로 단 한 번도 마음에 드는 짓을 한 적이 없었다. 벨져는 지갑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 보란듯이 내려놓았다.
종업원이 발그레한 볼로 개켜놓은 시트와 수건같은 걸 분주히 준비하는 사이 툭, 루이스의 머리가 벨져의 어깨에 닿았다. 슬슬 한계인지 눈을 꿈벅이며 안간힘을 쓰는데, 그 꼴이 한심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따라오라는 말에 루이스가 멍한 눈으로 수건과 시트를 끌어당겼다. 벨져는 루이스가 든 짐을 빼앗아 들었다. 그냥 뒀다간 기껏 깨끗하게 세탁해 접어놓은 것들이 엉망이 될 터였다. 종업원은 수리중이라 보일러 대신 난로를 때야 한다며 빠른 속도로 이불과 시트를 갈았다. 별채까지 얼마나 된다고, 벨져를 따라 걷는 게 고작이었던 루이스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종업원은 루이스가 잠든 걸 보고 그쪽 도련님은 절대 못할거라며 난로에 불을 피우고 말 한 마디 붙이기 싫다는 듯 나가버렸다. 워낙 쌀쌀맞게 휙 나가버리는 바람에 벨져는 더 따져 묻지도 못했다.
두 사람이 못 잘 건 아니다. 왜 멀쩡히 본채를 두고 떨어진 곳에 별채를 짓는지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취해서 잠든 루이스와 여행 온 커플이 쓸 법한 더블 베드를 함께 쓰는 건 머리론 알아도 마음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이를 어찌한다. 벨져는 머리를 누이지도 못하고 잠든 루이스의 팔을 잡아 이불 위에 눕혔다. 씻지도 않은 채 사내자식과 한 침대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고 바닥에 내던질 수도 없고, 소복이 쌓인 먼지는 둘째치고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소파에 재울 수도 없다. 그랬다간 당장 내일 아침엔 송장을 치우게 될 테니까.
벨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이마를 짚었다. 곱게 잠든 얼굴을 보니 두통이 밀려왔다. 산을 오르고, 펍을 구르고, 제게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면서 엉망이 된 루이스였다.
루이스를 두고 한참 고민하던 벨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욕실의 수도꼭지를 돌렸다. 따뜻한 물은 고사하고 누런 녹이 섞여 나오는 걸 확인한 벨져는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씻지 못할 거라면 더럽긴 오십보백보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같은 침대에서 잠들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인 벨져는 그치질 않는 한숨을 내쉬고 취침등 하나만 켜둔 채 불을 껐다.
그냥 누우면 되는데, 앉자마자 뻗어버리는 바람에 벗지도 못한 신발이 눈에 밟혔다. 잠시 고민하가, 결국 신발을 벗겨주고 나서야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누웠다. 루이스가 이불을 깔고 누운 바람에 벨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이불을 빼앗았다. 혼자 꽁꽁 두르고,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녀석의 숨소리가 벨져를 괴롭혔다.
벨져는 한숨을 내쉬고 루이스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왜 별 도움도 안 되는 녀석을 주워버린 걸까. 탁한 주황색 불빛이 비추는 루이스의 얼굴은 어젯밤을 연상시켰다. 여전히 슬프고, 아프고, 힘든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루이스의 손이 얼굴 바로 앞에 모여있었다.
쥐면 한 손에 다 들어올 것 같이 마른 손목.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손을 거두기엔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술기운이 들어가있었다. 과연. 예상대로 뼈밖에 없는 듯 마른 루이스의 손목은 벨져의 한 손에 잡히고도 남았다. 벨져는 짧게 혀를 찼다. 봐줄 거라곤 그나마 멀쑥한 얼굴 뿐인데 그마저도 말이 아니었다. 제게 맞아 찢어지며 부르튼 입술도, 막상 이렇게 보고 있으니 영 거슬렸다.
벨져는 손에 쥔 루이스의 손목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벨져는 도로 누워 몸을 돌렸다. 그와 제 얼굴 사이에 놓인 손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어느덧 익숙해진 술냄새와, 방안에서 나는 먼지냄새, 시트에서 나는 청결한 비누와 햇살 냄새가 제 향수 냄새와 어지럽게 섞여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손 안의 온기와 눈앞에 잠든 남자의 얼굴에 감각이 이상해지기라도 한 걸까. 보통은 불쾌하다고 여겼을 것들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벨져는 루이스의 손목 안쪽을 엄지로 어루만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손끝에 닿은 온기는 놓으면 눈 녹듯 사라질 것 같아 놓치기 싫었다.
* 언제나 그렇듯이 연재분량은 원고 분량의 크롭이며 쌩원고입니다.
* 어떤 동행은 가제로 1월 중 완결,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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