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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to you, Belzer.
사이퍼즈/벨져루이 : 프로게이머au
2016. 1. 12. 00:00
- Jan. 12. -
1월 12일. 땡하고 열두시가 되자마자 화장실을 간다던 이글이 케이크를 들고 연습실에 들어왔다. 토마스가 불을 끄고,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떨떠름한 얼굴의 벨져가 촛불을 껐다.
“아, 짝은형! 기껏 준비했는데 반응 좀!”
“닥치고 연습이나 해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냉담한 벨져의 반응에 이글은 투덜거리며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주인도 안 먹었는데 먼저 먹냐는 막내의 타박이 이어졌지만 막내는 어디까지나 막내. 이글은 토마스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생크림 케이크를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렸다.
“선물은 없어.”
“형!”
“바라지도 않는다. 셀이나 해.”
“내래 형동무에게 생일선물로 악몽을 선물해주갔어.”
“이글.”
대회 당일, 겁도 없이 망조합을 만들려는 이글에게 잠자코 있던 루이스가 말을 걸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이글은 딜러 대신 쓰레기라 불리는 서포터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큰형이나 작은형이 이글에게 쿠사리를 먹이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루이스는 이글을 봐줬으면 봐줬지 나무라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아오지 가고 싶냐?”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에 쭈뼛하는 사이 딜러로만 꾸려놓은 랜덤이 선택되고, 잠시 벙쪘던 이글은 너털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장난이지!”
“나도 장난이야.”
의자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빼쭉 내밀어 슬며시 웃지만 방금은 진심이었다. 이글은 투덜거리며 토마스에게 치댔다. 너네 선배는 왜 저렇게 예민 터진다냐. 짝형 생일이지 지 생일인가. 다이무스와 이글 중간에 낀 토마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빨리 대기나 타라며 이글을 자리로 밀었다. 그야 준결승이고 벨져의 생일이니까 예민할 법도 하지만 루이스치고 너무 날이 서있는 게 사실이었다.
“저러다 져봐라, 둘이 얼굴도 못 볼걸?”
“아, 형!”
“나 3립 간다! 큰형 립도 내꺼~.”
이글은 빠른 이동기로 자신의 라인을 다 밀고 다이무스의 아랫줄을 가로챘다. 넷 밖에 없는 센티넬, 그것도 탱커의 초반 코인 절반을 뺏는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른 이글은 냅다 적 팀 타워에 궁극기를 쏟아버렸다. 옆자리에서 다이무스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큰형이나 작은형이 아무리 뭐라 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밖에 더 되나.
오히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저 옆에 영웅님 쪽이 배는 무섭다. 큰형이나 작은형은 적당히 하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지만 루이스는 진짜 한 번 빡치면 사생결단을 낼 것 같은 위기감이 있었다. 하여간 순하게 생긴 놈들이 더 무섭다니깐. 이글은 혀를 내두르며 사이드로 파고들어 적 원딜 둘을 따고 유유히 합류하는 루이스의 아이스에게 타워의 막타를 양보했다. 반사적으로 치는 땡스 보이스가 이어폰을 통해 귓속으로 파고든다. 어쩜 해도 꼭 지같은 캐릭터를 해요. 이글은 다시 한 번 투덜거렸다.
그 사이 다이무스가 맵에 핑을 찍고 벨져와 루이스가 자리를 잡았다. 이글은 토마스를 옆에 붙이고 중앙 타워를 긁었다. 초반이라지만 루이스 하나한테 원딜 둘이 짤린 뒤라 여유로웠다.
탱 하나에 근딜 둘 원딜 하나 서폿 하나라는 괴랄한 조합은 홀든 A만 구사하는 조합이었고, 아직 공식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지만 공방의 랭커들에게 알음알음 홀든A조합이라 불리고 있었다. 사실 하는 사람도 이게 어떻게 먹혀 들어가는지 잘 모르지만 승률은 좋은 이상한 조합이었다.
대체 왜 여기에 지는 거지. 이글은 같은 패턴으로 굴러가는 눈덩이를 굴렸다. 앞에서 벨져와 루이스가 버티고 있기에 프리딜을 할 수 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적의 급습도 토마스가 걷어주니 변칙적인 상황은 이글이 트롤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초반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압박하는 플레이는 벨져가 좋아하는 방식이었고, 재미가 없다는 것만 빼면 완벽했다. 다이무스가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을 계속해서 용인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이글은 전방 타워를 밀어버리고 벨져와 시프트를 교대했다. 벨져가 타워를 치는 사이 다이무스가 일으킨 한타에 딜을 넣는다. 연습을 도와주는 2군에겐 미안하지만 하품이 나올 정도로 쉬웠다.
“짝형 이벤트전때 뭐해?”
“나도 모른다.”
“어, 이글형 골목이요!”
“이번에 올스타전처럼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우리 막내 섭섭해서 어쩌누?”
“하나도 안 서운하거든요!”
“그래그래그래, 형이 꼭 너 최고라고 해줄게?”
이글은 바로바로 돌아오는 화끈한 반응에 킬킬거렸다. 내일, 아니 열두시가 넘었으니 오늘. 오늘 있는 마지막 4강전을 마무리 지으면 다음 주는 결승 전 이벤트였다. 이번 이벤트전에 초대받은 건 벨져와 이글, 루이스 셋.
본선에 오른 여덟 팀에서 이벤트전까지 초대를 받는 건 딱 열 명 뿐이란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쉬레와 프로즌이야 방송사 입장에서 흥행보증수표고, 이글은 인기BJ니 당연하긴 하지만. 이글은 자기도 나가고 싶다며 애원하던 그랑플람의 원딜 막내를 떠올렸다. 방송을 타면 여친이 생길 거라며 울던 불쌍한 영혼이었다.
* * *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에 일어난 벨져는 알람부터 껐다. 루이스는 아직 자고, 벨져는 멍한 정신으로 몸을 일으켰다. 고양이가 세수하듯 십여 분만에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는 녀석과 달리 벨져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루이스. 야. 일어나.”
“으으응….”
씻고 나온 벨져는 여전히 퍼질러 자는 루이스의 배를 발로 밀었다. 밀면 미는 대로 굴러가 바로 누운 루이스가 서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나른한 붉은 눈동자에 자신이 담기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예쁘게 휜다. 사르르 녹아드는 눈송이 같은 미소에 벨져는 멍하니 제게 양팔을 벌리는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벨져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숙였다. 쪽, 뺨에 입 맞춘 벨져는 루이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를 마주 안았다. 술을 마셔도 이러지만, 루이스는 아침에 유독 애교가 많았다. 벨져는 저를 꼭 끌어안고 가만히 숨을 쉬는 루이스의 등을 안아 토닥였다.
“일어나.”
“싫어….”
“오늘 경기잖아. 씻어. 얼른.”
싫다며 어깨에 기댄 고개를 가로저은 루이스가 벨져의 허리를 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귀엽긴 하지만 더 지체했다간 다이무스가 쳐들어올 것이다. 벨져는 제게 매달린 루이스의 엉덩이를 끌어당겨 허벅지를 안아들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녀석을 수증기가 자욱한 욕실 앞에 내려놓고, 벨져는 루이스의 등을 두드렸다.
“들어가.”
“싫은데….”
벨져는 결국 루이스의 등을 발로 차버렸다. 또 좋다고 웃는 녀석이 꼴 보기 싫어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리자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이 빌어먹을 자식은 자기 생일도 아니고 꼭 내 생일에. 벨져는 옷장에서 어제 미리 골라놓은 옷을 꺼냈다. 전신 거울에 비춰보고, 두 번을 갈아입는데 다시 욕실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은 무슨.”
“벨져.”
“왜.”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자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루이스가 다가왔다. 물기를 머금고 뽀얀 피부에 홍조가 오른 녀석이 은은한 미소까지 띠우고 있으니 꼭 무언가 고백이라도 할 것 같다. 벨져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모른 척하며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생일 축하한다고.”
“그걸 이제 말하냐.”
“어제 다 같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따로 한 번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됐다. 얼른 준비해.”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 걸어놨던 후드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방송엔 유니폼 차림만 나간다지만 집에서 입고 다니는 걸.
“그거 말고.”
“응?”
“그거 입지 말라고.”
벨져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던져주었다. 청셔츠에 연한 그레이 스웨터. 어차피 위에 팀 패딩을 입을 테고, 아래야 늘 입는 청바지를 입을 테니 위라도 따뜻한 게 나았다. 후드 한 장 달랑 입는 것보다야 시각적으로도 낫다. 루이스는 미적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거기에 고통 받는 건 언제나 팬과 자신이었다. 벨져는 옆집 오빠 같은 루이스를 보며 양말까지 골라 던져주었다.
“이제 좀 사람 같군.”
“그럼 내가 사람이 아니면 뭔데?”
“테러리스트.”
“…말을 말자.”
벨져는 착 가라앉은 루이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냥 혼자 옷 입을 생각을 하지 마라. 덧붙이자 루이스가 홱 쏘아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거실로 나갔다. 루이스를 챙기느라 잠시 멈췄던 벨져는 꺼내놓은 스웨터를 도로 옷장에 넣었다. 대신 흰 셔츠와 가디건을 꺼내 입고 그 위에 코트, 포인트로 푸른 머플러.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벨져는 흡족하게 가죽장갑을 챙겨 방을 나섰다.
어젯밤에 키보드와 마우스, 헤드셋은 다 챙겨놨고, 유니폼은 잘 다려진 채 트렁크에 실려 있었다. 아침 겸 점심이야 가서 먹을 테고, 경기 전에는 간단하게 팬미팅이 있다. 벨져의 생일이라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다. 그러니 당연히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이어야 했다.
* * *
05:37. 접전을 거듭한 두 번째 세트가 오 분을 남기고 아이스의 샤드 소리와 함께 끝났다.
“후아. 아슬아슬 했네!”
“흠. 나대지 마라.”
“엑. 한 번만 봐주세요.”
“다 이겨 놓고 무게 잡긴. 잘 했어, 우리 막내!”
“좋아, 잘했어!”
이글이 토마스의 등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파하면서도 배실배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토마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한타를 이긴 건 뭐니 뭐니 해도 토마스가 넷을 얼리며 궁대박을 낸 덕이었다. 루이스도 헤드셋을 벗고 토마스의 등을 두드리며 일어났다. 벨져는 루이스의 손목을 잡고 선수 부스 문을 열었다. 꼭 한 번씩은 져서 보는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홀든A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오늘은 세 번째 세트까지 갈 것도 없었다.
“가자.”
루이스가 상기된 얼굴로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에서 다시 쓸 수 없겠지만 이렇게 이긴 걸로 충분했다. 투명한 선수 부스를 나가는데 루이스가 슬며시 벨져의 손을 잡았다.
돌아보자 예쁘게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밖에서 이렇게 눈웃음치면 누구 좋으라고. 벨져는 자기 내킬 때만 예뻐하고 애교를 부리는 루이스가 항상 불만이었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쌀쌀맞게 사람 걱정이나 시켰던 주제에. 그래도 여전히 손은 여전히 얼음장 같아 벨져는 루이스의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벨져야.”
“왜.”
“…아냐.”
벨져는 루이스를 쏘아봤다. 하여간 이 새끼는 속만 썩이고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단상 앞에 나란히 서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내내 루이스는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배시시 눈웃음을 쳤다.
“자, 그럼 당당히 결승에 진출한 홀든 Attackers에게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마이크를 잡은 다이무스가 연습한 결과일 뿐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며 마지막 토마스의 궁극기가 잘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나름대로 길게 말한 건데, 해설이라면 또 모를까 방송용은 아니라 금세 마이크가 옆에 서있던 루이스에게 건너왔다.
“오늘이 쉬레 선수의 생일이라고 하던데,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어떻게?”
인터뷰어가 묻자 루이스가 바로 들고 있던 마이크를 벨져 앞에 대주었다. 그냥 마이크를 넘기면 될 것을. 벨져는 루이스를 한 번 쳐다보고 관중석을 쳐다봤다. 생일을 축하하는 치어풀을 든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검지를 들어 그들을 가리키고 오만한 미소를 띠웠다.
“사례하지.”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비명이 흡족했다.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 열기를 만끽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인터뷰어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쉬레 선수 인기가 정말 대단하네요! 자, 그럼 옆에 프로즌 선수도 한 마디 해주세요!”
마이크를 대주며 웃고 있던 루이스가 당황해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곤 도움을 요청하듯 자신과 이글을 보다가 카메라를 가리키는 인터뷰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어…. 오늘 경기는 사실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구요. 어, 음…. 사랑하는 벨져야! 생일 축하해!”
주먹까지 불끈 쥐고, 부끄러워하며 카메라에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벨져는 자기가 말해놓고 얼굴을 감싸며 마이크를 넘기는 화상을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아래위로 훑었다.
그런 말은 카메라 앞이 아니라 사람한테 해야지. 아주 잘 하는 짓이다. 마이크 없이 빈정거리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루이스가 머리를 기대왔다. 어휴, 등신. 벨져는 루이스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마이크를 이글에게 건넸다. 배를 잡고 웃던 이글은 한 마디 하라는 말에 방금 루이스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어…. 저도 오늘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구요. 큭, 크흡…. 사랑하는 작은 형! 생일 축하해! 꺅!”
벨져는 이글의 정강이를 찼다. 이미 관중석이고 해설이고 할 거 없이 다 웃느라 바쁘다. 벨져는 정색하고 팀원을 바라보는 다이무스를 흘긋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토마스는 뻘쭘하게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니 얼굴이 시뻘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마이크를 다이무스에게 넘겼다. 오늘도 동생들이 벌여놓은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 다이무스가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를 맡았다.
“큼, 상대가 그랑플람이긴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다이무스의 시선이 벨져를 향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생일 축하한다.”
등골이 쭈뼛 서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벨져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루이스를 꽉 잡았다. 할 수만 있으면 비명을 지르며 여기를 탈출하고 싶었다. 부들부들 떠는 벨져를 감싸 안은 루이스가 등을 두드렸다.
“난 저 인간이 너무 싫다.”
“알아, 알아. 큰형이잖아.”
“……”
벨져는 루이스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등을 토닥이며 둥기둥기해주는 루이스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심호흡했다. 하지만 닭살스러운 멘트는 쉬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벨져를 괴롭혔다.
나 오늘 뒤풀이 안 간다. 너도 가지 마. 벨져는 상황을 마무리 짓고 대진표를 찍는 카메라를 보며 루이스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억지를 부렸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루이스가 등을 토닥이며 그래. 하고 속삭였다.
겨우 마음의 평화를 찾은 벨져는 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어차피 다음 주는 쉬어가는 이벤트전이고, 오늘 경기는 패배 없이 클린 게임으로 끝났다. 일찍 경기를 끝낸 덕에 아직 하루가 다 가려면 시간이 남아있었다.
“형아, 난 루이스랑 먼저 간다.”
“그래. 쉬어라.”
“작은형! 내가 생일선물로 큰형의 모닝콜 알람 만들어줄게!”
“그게 내 귀에 다시 들리는 순간 널 죽이겠다.”
이글이 다시 배를 잡고 웃었다. 대기실은 팬들이 보낸 벨져의 생일선물로 가득했지만 벨져는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다 매니저와 큰형이 알아서 챙길 테고,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벨져는 옷을 갈아입는 대신 코트부터 챙겨들었다.
“간다. 얼른 챙겨.”
“크흐, 우리 형이지만 참 빨라.”
벨져는 루이스가 옷을 챙겨 입고 핸드폰을 들자마자 손목을 낚아챘다. 퇴근길에 만나려고 대기하는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생일이었다. 이 정도는 포상휴가라고 할 수도 없다. 벨져는 루이스의 손목을 잡고 관계자 전용 출입구로 발을 옮겼다. 경기가 진행되는 사이 매니저에게 부탁해놓은 벨져의 차가 주차장에 떡하니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벨져. 잠깐, 잠깐만.”
“타라.”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장미향이 물씬 풍겼다. 운전석에 놓인 장미 꽃다발. 눈이 시리도록 푸른, 장미. 가만히 멈춰선 벨져 대신 루이스가 품에 가득 들어오는 꽃다발을 한 손에 안았다.
“잠깐 멈추래도.”
겸연쩍어하며 파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은 루이스가 주차장의 조악한 조명 아래서 웃었다.
“생일 축하해.”
“…….”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벨져는 멍하니 루이스를 바라봤다. 얼굴을 붉힌 루이스가 시선을 피하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다른 건 다 성에 안 찰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주고 싶은 거.”
“나쁘지 않군.”
“다행이네.”
“애썼다.”
“마음에 들어?”
“그래.”
“그럼 좀 받아줘라. 이거 무거워.”
루이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예쁘다. 잘 어울리네.”
“…큼.”
“울어?”
“울긴. 안 운다.”
고개를 기울인 루이스가 안 그래도 작은 주제에 몸을 숙여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무거운 꽃다발을 안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하자 루이스가 냉큼 열쇠를 빼앗아 운전석에 올라탔다.
“뭐 해. 안 타고.”
“왜 네가 운전하려는 거지?”
“그걸 안고 어떻게 운전해. 얼른 타. 배고프다. 저녁 뭐 먹을래?”
안전벨트까지 매고, 문까지 닫아버리는 바람에 벨져는 못 이긴 척 조수석에 앉았다. 신선한 꽃향기에 차 안이 온통 꽃밭 같았다. 루이스는 능숙하게 고개를 돌려 차를 뺐다. 매끈한 턱선과 목이 꽃에 꽂혀있던 벨져의 시선을 빼앗았다.
“다행이다. 좋아해서.”
“흥. 네녀석이 꽃도 볼 줄 알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네가 좋아하니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주고 싶었어.”
“평소에 잘 해라. 평소에.”
“여기서 더 어떻게 잘하냐.”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뭘 먹겠냐고 물어본 주제에 거침이 없었다. 꽃다발을 준비한 걸 보면 저녁도 준비한 게 틀림없다. 새벽부터 낮까지, 내내 얼어있던 벨져의 기분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기분이 좋아진 벨져는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도 스윗했다.
* 벨져와 루이스의 생일 기념으로 나오는 프로게이머au 신간 Happy Birthday to you 의 원고 부분선공개 겸 벨져 생일축하 연성입니다!
** 신간은 1월 31일 디. 페스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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