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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Valentine's Day
* 둘 다 은퇴하고 사귀기 시작한 후입니다
** 발렌타인은 지나지 않았습니다 벤쿠버시간으로 아직 2월 14일 오후 9시입니다 저는 늦지 않습니다 저는 날짜를 넘기지 않앗습니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연인들의 날. 루이스는 웬일로 운전대를 잡은 벨져를 잠이 덜 깨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벨져.”
“깼군.”
흘긋 적선하듯 시선을 준 벨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루이스는 눈을 깜박였다. 꿈이 아닌지 눈앞의 풍경은 변하지않았다. 루이스는 잠시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벨져의 옆얼굴을 쳐다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우리 어디 가?”
“더 자라.”
“납치야?”
분명 눈 뜨기 전까지만 해도 푹신한 침대 위였는데 무릎을 덮은 담요며 한껏 뒤로 젖혀놓은 조수석 의자가 웬말인가. 루이스는 벨져를 올려다보며 무거운 눈을 깜박였다. 벨져의 손이 루이스의 머리를 쓸었다. 텅 빈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포르쉐의 조수석 승차감은 끝내주게 좋았고, 벨져의 손은 딱 좋은 정도로 따뜻했다.
그 손이 머리를 쓰다듬다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 끝으로 비비며 내려와 루이스의 눈 위를 덮었다. 따스한 손바닥이 이끄는대로 눈꺼풀을 내린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가 벨져 홀든 아니랄까봐 연인의 날 한 번 거하게 치를 모양이었다. 그래도 루이스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루이스의 오랜 기다림이 끝나고, 마침내 벨져 홀든이 기나긴 무자각의 터널을 빠져나와 현재에 이른 지금 이번 발렌타인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맞는 연인의 날이었다. 그러니까 챙기고 싶었겠지. 로맨틱과 분위기를 목숨처럼 여기는 벨져니 당연했다.
“나 잔다....”
벨져의 손이 얼굴에서 떨어지고, 루이스는 포개놓은 손의 반지를 만지며 도로 눈을 감았다.
* * *
이마를 쓰다듬는 간지러운 손길에 눈을 뜨자 벨져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보는 얼굴이지만, 언제 봐도 예쁜 얼굴이라 루이스는 나른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뺨을 감싸고, 당기는대로 끌려오는 벨져에게 입술을 내밀자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다가온 벨져가 입술을 포갰다. 입술이 벌어지며 새는 나른한 숨. 몇 번만에 젖은 입술로 벨져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떨어진 루이스는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끝까지 밀어놓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래서, 어디야?”
“네 눈으로 봐라. 내려.”
루이스는 먼저 내리는 벨져를 바라보다 한 박자 늦게 차 문을 열었다. 밀려들어오는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며 양팔로 몸을 감싸며 고개를 들자 눈앞에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펼쳐졌다. 잘 꾸며놓은 나무 펜스에 기대어 바다를 보다가 어깨를 덮는 코트에 웃음이 샜다.
“뭐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거냐.”
“글쎄.”
벨져가 뾰루퉁하니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게 또 참을 수 없이 귀여워서, 루이스는 벨져의 입술에 쪽 가볍게 뽀뽀했다. 빙그레 웃자 벨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쁘다.”
“올라가서 보면 더 예쁠 거다.”
“아니, 바다 말고.”
루이스는 벨져의 손끝을 가볍게 잡고 눈꼬리를 휘었다. 전부 말하지 않아도 말뜻을 알아들은 벨져의 표정이 풀어졌다. 좋으면서 아닌 척, 독기도 뭐도 하나 없는 눈으로 흘겨봐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루이스는 웃으며 벨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벨져가 기겁하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게 어딜 만져!”
“닳지도 않는 거 좀 만지면 어때서.”
벨져가 입을 벙긋거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게 꼭 영상화보같아 가만히 바라보던 루이스는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이마를 짚은 벨져의 왼손 약지에 빛나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방송인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왜, 아무도 없잖아.”
“네 눈은 무슨 옹이구멍이냐.”
벨져가 고개를 돌려 턱끝으로 뒤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둔 예쁜 카페. 루이스는 창가를 올려다보고 벨져에게 시선을 돌렸다. 벨져는 코트깃을 매만지며 손을 잡아이끌었다.
“방금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어?”
“난 괜찮다.”
“뭐야, 그게.”
이상한 논리에 웃음을 터트리자 카페 계단을 오르던 벨져가 고개를 돌려 쪽, 입술을 훔쳤다. 그리곤 주변을 돌아보고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그러게 왜 방송을 하겠다고 해서.”
“미안.”
루이스는 벨져의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주며 발뒤꿈치를 들었다. 한 계단 위의 벨져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귀기 전에도 수없이 했던 뽀뽀지만 지금은 의미가 달랐다. 전에는 카메라 앞에서 뽀뽀를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고작 입술을 포갰다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벨져의 뺨을 가볍게 잡아 가볍게 뽀뽀하는 걸 끝으로 떨어진 루이스는 이제야 천천히 눈을 뜨는 연인에게 미소지었다. 주황색 조명 아래 깊게 그림자가 지는 속눈썹이 아찔했다.
“미련하긴.”
한 번 더, 기어이 자기 좋을대로 입을 맞춘 벨져가 오만한 미소와 함께 계단을 마저 올랐다. 루이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벨져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오는 내내 잤다고 하지만 차 안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드했다. 목을 돌리자 나는 뿌드득 소리에 어깨를 돌리며 올라가자 창틀 안에 방금 본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겼다.
“예쁘다.”
“안다.”
“너 말고.”
벨져가 대번에 눈을 흘겼다. 루이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메뉴판으로 눈을 돌렸다. 어차피 메뉴는 아메리카노로 정해져있지만 벨져가 사납게 눈꼬리를 올리는 게 참 예쁘고 귀여워서 매번 제 무덤 파는 걸 알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물론 너도 예쁘지.”
“됐다.”
“삐졌어?”
“삐지긴.”
루이스는 메뉴판을 벨져에게 돌려주며 테이블에 턱을 괬다. 벨져가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마치고 단 둘이 된 루이스는 벨져의 손 위에 손을 얹어 약지에 낀 벨져의 반지를 매만졌다.
“왜.”
“아니, 그냥. 새삼스러워서.”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벨져의 손이 루이스의 손을 덮었다. 꼼짝없이 잡힌 루이스는 고개를 들었다. 보석보다 예쁜 벨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손등을 덮은 벨져의 손이 손가락끝을 잡더니 벨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잡은 손을 부드럽게 당기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사르르 눈을 감는데 확 열이 번졌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벨져가 작게 웃으며 새어나온 숨이 손등을 간질였다. 손을 빼려 해도 벨져는 놔주질 않았고, 루이스는 항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훗. 귀엽긴.”
“하여간 다 네멋대로지.”
“왜, 좋아하지 않나?”
루이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벨져를 가만히 쳐다봤다. 다 이겼다는 듯 웃고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홱 고개를 돌리니 잡은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깍지를 끼는데, 또 거기에 홀랑 넘어가버리는 자신이 미웠다.
“싫어?”
“그건 반칙이야.”
“사랑에 반칙이 어디 있나.”
“지금 네가 하고 있어.”
벨져는 그마저도 가소롭다는 듯 웃어넘기며 다시 한 번 루이스의 손등에 입맞췄다. 사랑은 먼저 반한 쪽이 지는 거라는데 왜 항상 지는 기분일까. 루이스는 안 잡힌 손으로 턱을 괘고 벨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 얼굴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자상한 벨져의 눈빛에 루이스는 다리를 꼬았다. 타는 목마름에 힘겨워하던 게 얼마나 됐다고, 넘칠 정도의 애정에 이젠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누가 알았으랴, 짝사랑보다 더한 게 연애일줄.
“됐어.”
“삐졌나?”
“그래, 삐졌다.”
때마침 종업원이 다가오면서 루이스는 냉큼 벨져의 손에 잡혀있던 손을 뺐다. 조금 전 제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게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는지, 벨져는 손을 빼도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루이스의 아메리카노와 벨져의 차를 내려놓은 종업원이 벨져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루이스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의 바다로 눈을 돌렸다.
차가운 잔을 만졌던 손이 차갑고, 살짝 열이 오른 뺨이 뜨거웠다. 아직 2월이라 그런지 바다의 파도가 거셌다. 파도를 보며 열기를 가라앉히는데 벨져가 톡톡, 다리를 건드렸다. 말로 부를 것이지, 하여간 이 도련님은 다른 사람이라면 기분 나빠할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놓고 다.
고개를 돌리자 묘하게 조금 전보다 더 기분이 좋아보이는 벨져가 찻잔의 손잡이 부분을 루이스쪽으로 돌려 밀었다. 벨져의 차를 받은 루이스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이건 뭐야? 향 좋다.”
한참을 뜸들이던 벨져가 피식 웃고는 같이 시킨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내밀었다. 아무리 밖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라지만 남자 둘이 카페에서 디저트를 시켜놓고 떠먹여준다니. 남이 볼까 민망해 고개를 도리저으며 몸을 뒤로 뺐지만 벨져는 단호했다.
“어서.”
“...해달라고 하지 마.”
언제나 결국 뜻한 바를 이루는 벨져 홀든이었다. 루이스는 얌전히 입을 벌려 벨져가 내민 케이크 조각을 받아먹었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초콜릿이 입 안에서 녹았다. 단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녀석이 웬일로 초콜릿 케이크를 다 시켰는지 잠시 생각하던 루이스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새삼 깨닫고 아메리카노와 함께 케이크를 넘겼다.
“이게 다야?”
“그러는 넌?”
“글쎄. 넌 뭐 하고 싶은데?”
“공개 연애.”
“그거 말고.”
루이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벨져는 여태껏 잘만 뽀뽀하고 끌어안고 다했으면서 왜 그거 하나 못해주냐고 불만이 많았지만 이것만큼은 루이스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기는 괜찮다고 해도, 홀든의 둘째 도련님이 게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둘 다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안 그래도 스캔들나는데 둘 다 게이라고 하면 기자들이 사냥개처럼 달려들걸.”
“지금도 그 스캔들 막느라 힘들다만.”
힘들다고 하는 것치고 벨져의 얼굴이 나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쁘지 않다기 보다,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얼굴이다. 루이스는 이 남자가 이번엔 또 무슨 이벤트를 준비해놓고 저를 기다리는지 예상답안을 추리다가,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여기 케이크 맛있다.”
“많이 먹어라.”
“자, 아.”
루이스는 벨져의 입을 막기 위해 케이크 조각을 잘라 내밀었다. 초콜릿을 좋아도 안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입을 벌리는 게 얄미워 벨져의 입으로 향하던 포크를 돌려 제 입에 넣었다. 벨져가 눈을 가늘게 흘기며 도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유치하긴.”
“몰랐어?”
“알고는 있었다만.”
“그럼 예상을 했어야지.”
“앞으로는 감안하겠다.”
벨져는 코트를 정리하곤 차를 홀짝였다. 정말 이렇게 입만 다물고 있으면 행동 하나하나가 화보인데, 왜 입만 열면 이 모양이 될까. 루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포크로 케이크를 잘랐다.
“자.”
“안 속아.”
“진짜야. 싫으면 말고.”
관심 없는 척 하더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얌전히 입을 벌리는 게 예뻐서, 루이스는 포크 대신 입술을 내밀었다. 쪽,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자 놀란 벨져가 눈을 크게 뜨고 깜빡였다.
“미안. 이제 진짜.”
웃으며 케이크를 내밀자 벨져가 포크를 쥔 손을 쥐고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 와중에도 저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매서웠다.
“진짜라니까.”
“첫 발렌타인데이다. 망치고 싶지 않아.”
벨져답지 않게 진지한 투정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벨져와 그런 무드는 약에 쓸래도 찾기 힘든 루이스. 둘이 기념일이면 사랑을 속삭이는 대신 한바탕 전쟁을 벌이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래도 전여친이랑 사귈 땐 이렇진 않았는데, 친구로 지낸 날이 많아서인지 왠지 모르게 벨져 앞에선 로맨틱한 말도 분위기도 다 낯설었다.
“그거 알아?”
“뭐.”
“오늘 마틴 생일인거.”
“루이스.”
“그런 얘기 아니야. 그냥, 기념일이 생일인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서.”
마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벨져가 표정을 굳히며 팔짱을 꼈다. 황색 경보 발령. 기분이 언짢으시니 바로 풀어드릴 것. 루이스는 머릿속에 울리는 경보에 냉큼 말을 돌렸다.
“우리 다음엔 어디가?”
“몰라.”
삐졌다.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어도 퉁명스럽게 나오는 걸 봐선 뽀뽀 몇 번으로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루이스는 카페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는 벨져를 보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나 잠깐 화장실.”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벨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서 하루동안 전세를 낸 것까진 좋았는데,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을 납치하듯 조수석에 태우고 달릴 때만 해도 두근거렸는데 왜 또 이 모양 이 꼴인지. 머리를 헤집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며 벨져는 창 밖의 바다를 바라봤다.
발렌타인 데이란 모름지기 연인들의 날이고, 그러니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귄다고 얘기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내 사람이라고 말도 하고 싶은 건데 하나같이 안 된다고만 하는 루이스가 야속했다. 아까 반응을 봐선 오늘이 발렌타인인 것도 모르고 있었고, 그러니 당연히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했을 리 없었다.
늘 그렇듯이, 애태우는 건 저 혼자라는 생각에 속이 탔다. 다정하고 자상하기로 치면 숙소생활을 하던 그 때가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벨져는 루이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탄 속에 냉수가 들어가니 좀 살 것도 같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에 벨져는 밖을 기웃거렸지만 벨져가 앉은 자리에선 목소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음. 이거 되게 오랜만인데. 그래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부족해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언제 또 기타를 들었는지, 맑은 기타 소리에 벨져는 어깨에 힘을 빼며 의자에 몸을 길게 기댔다. 잔잔한 기타 반주에 사랑을 속삭이는 가사. 노래가사처럼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벨져는 루이스를 보러 나가는 대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어차피 카페 안엔 직원들과 자신뿐이었고, 즐길 땐 확실하게 즐기는 게 좋았다.
프로즌이 은퇴하기 전, 그러니까 숙소 생활을 하던 시절엔 그렇게 조르고 협박을 해도 안 하던 노래를 뜸 한 번 안 들이고 하는 건 그 나름의 연인 한정 애정표현이었다. 돌아가면 괜찮은 기타를 한 대 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제게 바치는 세레나데는 마리아쥬의 웨딩임페리얼보다 더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내려놓는 소리에 이어 루이스가 돌아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좀 봐주지.”
“잘 들었다.”
루이스가 싱긋 웃고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칭찬해달라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같은 모습에 벨져는 손목에 찬 시계부터 확인했다. 조금 이르지만 체크인부터 해놓고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어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루이스는 말만 그렇게 하고 벗어놓은 코트를 집어들었다. 평소에도 이정도만 고분고분하게 따라주면 좋을 텐데.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포석을 깐 보람이 있었다. 카페를 나온 벨져는 세워둔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루이스를 전용 기사로 부린 지도 어언 반십년이지만 오늘은 데이트 코스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벨져가 시동을 걸도록 밖에서 미적거리던 루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웬일이래. 운전을 다 하고.”
벨져는 구태여 이유를 말하는 대신 조수석에 앉은 루이스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달칵, 고정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자 입술을 맞춘 루이스가 씩 웃었다. 그리곤 뺨을 잡아 고개를 살짝 기울여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데, 거부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입을 열자 혀가 닿고, 달근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넘어왔다. 밀어내려 해도 혀를 감으며 뺨을 꽉 잡는 바람에 도망갈 곳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루이스의 허리를 잡았던 벨져는 혀와 혀가 얽히고 감기며 녹는 게 달고 쌉쌀한 초콜릿이란 걸 깨닫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해피 발렌타인. 놀랐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루이스의 입가에 초콜릿이 묻어있었다. 답지 않게 귀여운 짓을 한다 싶어 옆구리를 쿡 찌르자 루이스가 몸을 웅크렸다.
“뭘 그렇게 부스럭거리나 했더니.”
“별로였어?”
“뭐, 나쁘진 않았다.”
“다행이네. 주머니 가득 초콜릿이거든.”
불룩한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한 줌 꺼내더니 그대로 쥐고 흔들며 웃는 루이스가 귀여웠다. 벨져는 루이스의 손에서 초콜릿 하나를 뺏어 입에 쏙 넣었다.
“단 거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얼릉.”
어떻게 이걸 입에 넣고 어떻게 말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발음이 뭉개졌다. 소년처럼 맑게 웃으며 다가온 루이스가 목에 팔을 감으며 눈을 감았다. 입 안에서 녹는 초콜릿이 끈적하고, 달았다. 미각이 마비되는 것 같은 단 맛은 취향이 아니지만 달디 단 키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떠넘기려 해도 초콜릿을 혀 위에 두고 꾹 누르는 루이스의 장난에 마른 허리와 옆구리를 문지르는 것으로 응수하자 루이스가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키스하는 중에 그러는 게 어디있어.”
“네가 먼저 시작했다.”
“야, 난 입 안에서 놀았지.”
루이스가 억울하다는 듯 눈꼬리를 내리며 투덜거렸다. 그 사이에 초콜릿이 다 녹아 입안이 텁텁해진 벨져는 루이스의 목에 팔을 감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사랑한다.”
“.......”
장난기가 가득했던 눈동자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눈을 깜빡이다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려 도망갔다. 부끄러워하는 게 귀여워 슬며시 웃으며 흰 목에 입맞추자 루이스가 다급하게 팔을 잡았다. 벨져는 루이스의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따뜻한 허리를 어루만지자 루이스의 몸이 굳었다.
“잠깐. 아니, 그러니까....”
“사랑해.”
“윽, 그래도 차 안에선 안 돼!”
“왜지?”
“왜냐니!”
노을이 번진 것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루이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바라보자 입만 벙긋거리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는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 반응이 신선했다.
“썬팅 다 해서 밖에서 안 보인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럼?”
다시 한 번, 루이스의 말문이 막혔다. 벨져는 루이스가 좋아하는 얼굴을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 먹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나?”
“...그야....”
꼴에 한 살 연상에, 연애 경험도 사회 경험도 많다고 여유를 부리던 루이스가 부끄러워하는 게 꽤 흡족했다. 벨져는 얼굴을 가까이 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시선을 피하는 루이스라니, 이 이상 즐거울 수가 없었다.
“차에서 하면! 환기도 안 되고! 시트 청소하기도 힘들고! 계속 생각날 텐데!”
분위기를 와장창 깨버리는 안 귀여운 소리에 벨져는 조수석 의자에 팔꿈치를 올리고 정색했다. 그야 물론 환기도 어렵고 청소도 힘들겠지만, 그걸 이유로 드는 건 말이 안 됐다. 잠시 루이스의 말을 곱씹던 벨져는 반 박자 늦게 루이스가 극구 반대하는 의미와 붉어진 얼굴의 의미를 깨닫고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하아. 그러니까, 그게....”
“그래. 차에 탈 때마다 섹스하고 싶어질 것 같다는거군.”
“미친...!”
“그래. 잘 알겠다. 감안하지.”
벨져는 자상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가갔다. 한껏 몸을 문쪽으로 붙이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눈을 질끈 감은 게 꼭 순결을 뺏기지 않으려 필사적인 모양새였다. 벨져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누르고 쪽,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그대로 굳어있는 루이스를 내버려두고 조수석 의자를 잡고 뒤를 보며 주차해둔 차를 뺐다. 무언가 더 이어질 거라 예상하고 있던 루이스는 차가 움직이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왜 그만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벨져는 루이스의 시선에 답하지 않았다. 별다를 것 없는 뽀뽀에도 눈을 꼭 감고 있는 게 귀엽기도 했고, 괜히 제 욕심을 앞세워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가 한적한 도로 위를 달렸다. 루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어쩌다 너랑 이렇게 됐을까 싶어서.”
“흐응.”
루이스는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이마를 짚었다. 지쳤음을 토로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루이스가 카섹스를 거부하는 이유를 안 것만으로 오늘의 수확은 충분했다.
“그래서, 진짜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나.”
“지금 하고 있다.”
“데이트는 맨날 하는 거잖아. 그거 말고.”
“또 까먹고 미안하다고 할 거면 하지 마라.”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쏘아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루이스가 미안해하는 걸 알고 있는데 괜히 아픈 구석을 건드린 것 같아 슬쩍 눈치를 살피니 예상대로 상처받은 얼굴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그냥 해본 말이다.”
“아냐.”
“루이스.”
“내가 죄인이지 뭐.”
또, 같은 패턴이다. 벨져는 차를 세우려다 액셀을 밟았다. 이렇게 된 이상 중간에 레스토랑도 바다도 다 패스하고 호텔로 직진이다. 이럴 때 어떻게 수습해본답시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할수록 어그러지고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는 건 이미 수 차례 반복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적막이 깊어지는 차는 텅 빈 도로를 달려 예약해둔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오는 내내 마음을 좀 가라앉혔는지, 루이스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직 다섯시밖에 안 됐지만 루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그 아슬아슬한 침묵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 벨져는 차에서 내려 문을 잠그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차라리 싸우면 섹스하면서 풀기라도 하지, 이렇게 토라진 루이스를 달래고 제 잘못을 사과하는 건 아직도 힘들었다. 그깟 말 한 마디가 뭐 그렇게 힘드냐고 생각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때 뿐이었다. 벨져는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루이스를 흘긋거렸다. 제가 보지 않는 데서 축 쳐진 얼굴을 하고 있는 루이스때문에 양심이 따끔거렸다.
루이스는 제 눈치를 살피기 바쁜 벨져에게 등을 돌렸다. 기분이 안 상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못 넘길 것도 아니었다. 제멋대로에, 오만하고 저만 아는 도련님이긴 하지만 벨져는 기본적으로 제 사람에겐 무른 사람이었다. 그게 루이스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천하의 벨져 홀든을 전전긍긍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게 뿌듯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미안하기도 해서, 루이스는 청승은 이쯤하기로 하고 초콜릿을 하나 까 입 안에 넣었다.
어쩌랴, 미우나 고우나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는데. 루이스는 연인의 날을 고대하고 있던 벨져에게 맞춰주기로 결심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벨져에게 다가가자 눈치를 보던 벨져가 슬그머니 손끝을 잡았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루이스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나 하고 싶은 거 있었는데.”
“뭐?”
루이스는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그의 어깨를 잡아 벽에 밀치며 입술을 겹쳤다. 입술로 입술을 물었다 놓고 떨어지길 세 번. 촉촉촉 물기 어린 사랑스러운 소리에 루이스는 감았던 눈을 떠 벨져를 바라봤다.
“호텔방에서.”
쪽. 입술을 포개며 눈웃음 한 번.
“맨몸으로 부비적거리면서,”
어깨를 잡았던 손을 뻗어 목을 감싸안으며 다시 한 번 입을 맞춘 루이스는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오전 내내 늑장부리는거야.”
“...나쁘지 않군.”
푸흐흐, 웃음이 샜다. 덩달아 풀어진 벨져가 웃으며 이마를 맞댔다. 본인은 자각이 없겠지만, 내내 마음을 졸인 게 보여 미안했다.
“왜 우리는 매번 후회할 짓을 해놓고 미안해할까.”
“우리라니. 너겠지.”
“하하, 그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루이스는 벨져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맞는 첫 발렌타인은, 아무래도 침대 위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았다. 루이스는 카드키에 문이 열리자마자 키스하며 허리를 감싸안는 벨져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억지를 부리고 싸우고 서운하게 만들어도 좋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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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루이]
* ts타라x루이
** 교수님과 학부생
누가 그랬던가, 벚꽃의 꽃말은 봄학기 중간고사요, 단풍은 가을학기의 중간고사니 대학생들에겐 꽃놀이도 단풍놀이도 없다고.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다며 휴강을 때린 학과장님 대신 휴강을 고지한 타라는 재킷을 한 손에 들고 교정을 걸으며 예쁘게 물든 단풍을 올려다봤다.
담배, 혹은 커피가 고파지는 완벽한 날씨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긴 교수도 학생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교수실엔 중간고사 시험지가 쌓여있고, 당장 모레까지 줘야하는 원고도 타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라는 지름길로 곧장 가는 대신 교정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길로 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단풍보다 더 붉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하얀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뭐하는 거지?”
“아, 그게 교수님 머리에 단풍잎이 붙어서…. 떼어드리려고….”
“그럼 부탁할까.”
타라는 기꺼이 허리를 숙였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 영리한데다 성실하고, 예뻐서 꽤나 인기가 있는 1학년 대표. 첫학기 문학의 이해에서 냈던 레포트도 꽤 괜찮았고, 그냥 그저 그런 학부생과는 다른 원석이라 눈여겨보고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물론 나름의 호감을 품고 있는 것과 학부생활은 별개긴 하지만.
조심스레 머리로 손을 뻗는 그녀의 희고 가는 손목을 본 타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푸른 핏줄이 보이는 손목 안쪽. 이건 꽤 위험할지도. 그래서 시선을 내리면 전공책을 든 손 아래로 좀처럼 드러내는 일이 없던 흰 다리가 보였다. 팔랑거리는 연분홍 스커트에 차분한 블라우스. 내내 스니커와 운동화를 벗어나는 일이 없던 신발도, 꽤 굽이 높은 메리 제인. 머리를 스치고 떨어지는 손길에 타라는 숙였던 허리를 들었다.
“치마 입었네.”
“아, 네.”
“어디 가?”
“앤지가 소개팅시켜준대서요.”
소개팅. 타라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려다 손을 재킷에 넣었다. 걸음을 늦추자 반 걸음 앞서 걷는 루이스의 머리카락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흰 목이 한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루이스는 청초한 외모와 달리 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타라는 루이스가 과제로 낸 시를 떠올렸다. 그녀의 글도 그랬다. 한없이 차가운 이성에 꽃잎이 부서지는 것 같은 감성이라니, 누구나 탐을 낼 법한 녀석이었다. 물론 아직은 갈고닦아야 하는 원석에 불과하지만.
“으앗.”
“조심.”
반 걸음 앞서 걷던 루이스의 발목이 옆으로 꺾이며 몸이 휘청였다. 그대로 넘어지려는 루이스의 팔을 잡아챈 타라는 루이스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놀라 커진 눈으로 올려다보는 루이스가 눈을 깜박였다.
“죄, 죄송해요.”
“힐을 신을 땐 조심해야지. 발목은.”
“괜찮아요!”
타라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치마 안쪽이 보이지 않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크게 꺾였던 발목을 쥐자 한 손에 잡혔다.
“아야야.”
“이래도 괜찮다고?”
살짝 힘을 주어 잡자 바로 새어나오는 약한 신음에 올려다보며 씩 웃자 루이스가 분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교수실 바로 앞이니까 쉬고 가지.”
“됐어요!”
“그래? 스타킹 올 나갔는데?”
루이스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기껏 차려입고 나온 애를 놀려먹는 자신도 참 짓궂고 유치했지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루이스를 보는 거에 비하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갈래, 말래?”
“…또 부려먹으실 거잖아요.”
“안 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약속.”
타라는 뺨을 불리고 입술을 내밀며 시선을 피하는 루이스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어쩜 얘는 토라진 것도 귀엽다니, 더 놀리고 싶어지게. 타라는 머릿속에 시 한편을 써내리며 한산한 교정을 걸었다. 따라오는 구두소리가 즐거웠다.
“앉아.”
교수실에 도착한 타라는 루이스를 소파에 앉히고 보건실에서 받은 구급상자에서 스프레이 파스와 붕대를 꺼냈다. 한두 번 와본 것도 아닌데 루이스는 처음처럼 불편해했다.
“왜 이래, 처음도 아닌데.”
“그게…., 아!”
“뿌린다.”
타라는 루이스의 구두를 잡아 발목에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부어오르진 않았지만 혹시 몰라 단단하게 붕대를 감는데 까만 구두의 빨간 밑창이 눈에 들어왔다. 타라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쯧. 그게 뭐?”
“그게, 교수님이 이렇게 친절한 게… 처음이라….”
“내가?”
고개를 올려 묻자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움 받을 짓을 했던가, 타라는 붕대를 고정하며 지난 학기를 떠올렸다. 술자리에서 꽐라가 안 되게 도와주고, 들러붙는 녀석들 걷어주고, 힘내라고 에너지 음료도 쥐어줬는데. 물론 그와 별개로 다시 써오라며 다섯 번 쯤 작품을 돌려보내고 기말 레포트도 안 받아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수 타라 시바스 조노비치로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교수님 항상 저만 갈구시잖, 아니,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군다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난 다른 애들한테도 그러는데? 너 한정 아니야. 그거.”
“…….”
루이스가 억울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타라는 책상 앞에 앉아 등을 기댔다.
“근데 어쩌냐, 난 너한테 밉보이는 거 싫은데.”
이번엔 당황. 늘 생각하는 거지만 놀란 눈이 토끼같아 자꾸만 놀리고 싶어진다. 유치하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하지마라.”
“…뭘요?”
“소개팅.”
“왜요?”
“내가 싫으니까.”
이번에도 놀랄 줄 알았는데, 놀라는 대신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타라는 책상 위에 올려둔 루빅스 큐브를 잡아 돌렸다. 낮술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 생각을 다 거치지 않고 나오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입가에 여유롭게 미소를 띠우는 건 잊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 반. 타라는 울리는 루이스의 핸드폰 진동에 그녀를 바라봤다.
“저기, 교수님.”
“받지마. 가지도 말고.”
“저한테 왜 이러세요?”
“…글쎄. 왜 이럴까.”
“교수님 평판 좋은 것도 알고, 교수님 강의도 좋은데요…. 자꾸 이러시는 건….”
“귀여워라. 지금 그걸 다 믿었어?”
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맹해지는 루이스의 표정이 볼만했다. 입가를 가리고 웃던 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뭐해, 전화 안 받고.”
루이스는 화도 못 내고 가방 속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타라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루이스가 황급히 볼륨을 줄였다.
“응, 응. 미안. 곧 갈게. 응. 이따 얘기해.”
타라는 제게서 고개를 돌리고 전화하는 루이스를 보며 웃음을 거뒀다. 싸하게 식은 머리로 한 손으로 큐브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보다, 루이스가 전화를 끊으며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억울하단 표정으로 입을 비죽 내밀었다.
“또 이런 장난하시면 그땐 진짜 신고할 거예요!”
“얼른 가봐. 발목 조심하고.”
루이스가 대답도 없이 교수실을 나갔다. 홱 고개를 돌리며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치마자락이 눈에 선했다. 타라는 펜을 들었다. 글을 쓰려다, 흰 종이 위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20도 쯤 되는 술을 맨 속에 들이켠 기분이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큐브를 내려놓았다. 등 뒤로 의자를 밀어 쳐 놓은 블라인드를 올렸다. 교수회관을 종종 뛰어가는 루이스를 지켜보다, 창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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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호그와트au
* 다이무스 5학년 / 루이스 3학년 / 벨져 2학년 / 이글은 아직 입학을 못해써요….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루이스는 다시 한 번 제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도 얼굴을 붉히며 한껏 수치스러워하는 벨져의 얼굴은 그대로였고, 루이스는 이게 드문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루이스는 검지로 뺨을 긁적이다 옆 의자를 뺐다. 벨져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이글의 못된 장난은 아닐까 싶어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루이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심이야?”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지금 강의실 비었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
루이스는 목소리를 높여 반박하려는 벨져의 입을 막고 검지를 제 입술 위에 가로놓았다. 쉿. 눈을 깜빡이며 손을 내리자 벨져가 고개를 홱 돌렸다. 루이스는 벨져에게 몇 시간째 움직이지도 않고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다이무스를 가리켰다. O.W.L이 코앞이라 도서관은 시험을 앞둔 5학년들로 살벌했고, 아무리 홀든이라 해도 고작 2학년이니 선배들에게 밉보여 좋을 게 없었다. 루이스는 산술점 책을 한 팔에 안고 벨져의 손을 잡아끌었다.
“휴, 너야 어떨지 몰라도 난 선배들 무섭단 말이야.”
“흥. 그까짓 상급생들, 몇 년 후면 내가 더 뛰어날 거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련하시겠어.”
턱을 치켜든 벨져는 언제 부끄러워했냐는듯 당당했다. 루이스는 책을 고쳐 안으며 어깨를 으쓱여 흘러내리는 망토를 올렸다. 멋대로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마법의 약 강의실인 지하감옥에 내려간 루이스는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문 앞에 잠시 서있던 루이스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담당 교수인 웨슬리 슬로언은 기본적으로 친절한 사람이라 학생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후플푸프 학생들과 어디서 도시락을 풀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이스는 벨져에게 들어오라고 눈짓했다. 빈 강의실에 들어와서 뭘 뒤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 뭐 어떠랴 싶었다. 혹시 들켜서 점수가 깎이더라도 이건 벨져의 탓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려운 건데? 2학년 과정이면….”
“전갈 독 해독제다.”
“아, 그랬지.”
루이스는 찬찬히 재료를 떠올렸다. 다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한 홀든이 못 만들 것도 없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루이스는 답을 얻기 위해 벨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벨져가 잠시 눈을 맞추고 있다가 시선을 피했다.
“뭐가 문젠데?”
“…실패한다.”
“그러니까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야. 솔잎을 잘못 으깼다던가.”
“그걸 모르겠으니까, 도와달라는 거 아니냐!”
벨져의 외침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잘 해야하는 입장이니 한 번 실수한 것 정도야 괜찮지만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다이무스한테 부탁하기엔 쪽이 팔렸을 테고, 벨져를 따라다니는 애들은 있어도 같이 다니는 애들도 없으니 만만한 제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좋아. 재료랑 방법은 다 알지?”
벨져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는 일단 뭐가 문제인지 한 번 만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벨져는 루이스의 말에 따라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었다. 못내 탐탁지않아하면서도 재료를 준비하고 소매를 겉어붙인 벨져가 작은 칼을 쥐었다.
“잠깐잠깐 잠깐!”
“뭐냐?”
“그렇게 하면 썰리는게 아니라 토막나.”
“그거랑 그게 뭐가 다르지?”
하여간 도련님이란. 루이스는 양파썰기를 예로 들려다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벨져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개념도 없는데 말로 백 번 해봐야 소용이 없다. 루이스는 벨져의 등 뒤에 서서 벨져의 손등에 제 손을 겹쳤다.
“너, 이게 무슨…!”
“자, 봐봐. 손에 힘 빼고.”
루이스는 힘을 주어 한 토막을 잘랐다.
“이게 네가 하려던 거고.”
토막난 조각 위에 날을 세워 얇게 저며낸 루이스는 부드러운 벨져의 손을 잡고 슬그머니 손에 들어간 힘을 뺐다. 요령이 생겼는지 혼자 잘 써는 게 역시 빨랐다.
“그렇지. 그게 써는 거야. 얇게 썰수록 금방 우러나니까 좋고. 아, 근데 잘 건져야해.”
“그리고?”
“계속해. 보고 있으니까.”
루이스는 벨져의 손을 놓고 벨져의 옆에 앉았다. 지하감옥은 추운데도 벨져의 목이며 귀가 빨갰다. 화로를 옆에 놔서 그렇겠지만, 옷도 따뜻하게 입은 주제에 혼자 화롯불을 쬐다니 치사했다. 루이스는 양손을 책상 위에 올리고 주먹을 쥐어 턱을 받쳤다. 볼살이 주먹 위로 밀렸지만 차가운 손을 덥히기엔 딱이었다.
“윽….”
“지금! 빨리!”
집중해서 솔잎을 으깨던 벨져가 루이스를 보고 움찔했다. 때마침 솥에서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거품에 루이스는 솥을 가리켰다. 벨져가 도마를 들고 으깬 솔잎을 쏟아부었다. 잠잠해진 솥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된 것 같은데.”
루이스는 발을 까딱이며 마지막 재료인 상아 조각을 건넸다. 벨져는 여전히 이상한 표정이었지만 시간을 세느라 말할 여유가 없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삼십오초. 상아 조각을 솥에 넣고 휘휘 젓자 연기가 사라졌다. 성공이었다.
“잘 됐네.”
우유와 같은 흰색을 띠는 약을 확인한 루이스가 벨져의 어깨를 두드리며 빙긋 웃었다. 벨져는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너.”
“응?”
솥을 들여다보던 루이스가 고개를 들었다. 벨져가 국자를 놓고 다가와 루이스의 볼을 꽉 잡았다.
“턱받침같은 거 하지 마. 사내자식이 귀여운 척은.”
“…뭐?”
“흥!”
벨져가 볼을 꽉 꼬집더니 솥에서 적당히 끓은 해독제를 유리병에 담았다. 볼은 얼얼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도와줘도 고맙단 말 한 마디를 못하지? 루이스는 내려놓은 책을 다시 품에 안았다.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어디가!”
“귀여운 척 하러 간다!”
“너, 이리, 야!”
루이스는 벨져가 정리를 하는 사이 문을 닫고 계단을 올랐다. 애초에 도와주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와 책을 고쳐안는데 계단을 오르다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으왓!”
꼴사납게 넘어진 루이스는 얼얼한 이마를 손등으로 비볐다. 신발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발로 신발끈을 밟아버렸다. 무릎이 화끈거리며 따끔거리는 게 아무래도 피가 나고 멍이 들 것 같지만 벨져가 못 봐서 다행이었다. 루이스는 계단에 앉아 신발끈을 고쳐맸다. 다치고 넘어지는 것쯤이야 익숙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야! 루이…. 너, 익….”
신발끈의 매듭을 한 번 더 묶는데 잔뜩 성이 난 벨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망칠수도 없게 좁혀진 거리, 루이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지팡이를 꺼내 복수를 하거나, 한 대 치거나 소리를 지를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풀석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슬며시 눈을 뜨자 벨져가 등을 보이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뭐해.”
“으응?”
“빨리 업혀.”
“아니, 나 걸을 수 있는….”
뜬금없는 호의에 당황한 루이스가 말을 얼버무리자 벨져가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다리를 잡았다.
“아야야야.”
“이러고 잘도 걷겠다.”
“그냥 까진 거니까 바지 잘 잡고 걸으면, 아아. 알았어!”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해보려 했지만 벨져가 아픈 무릎에 손을 얹자마자 아파오는 무릎에 루이스는 양 손을 들어 항복했다. 벨져가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등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어린 애한테 업히는 건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대론 계단에 앉아서 실랑이를 계속하게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루이스는 벨져의 목에 팔을 감고 몸을 기댔다. 벨져의 팔이 다리를 감싸고 천천히 일어났다. 떨어진 책을 주워야했지만 안 그래도 무거울텐데 책까지 부탁하기엔 염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이따가 가지러오거나, 누군가 친절한 사람이 주워주길 바라는 수밖에.
일어날 때 힘들어했던 것과 달리 벨져는 루이스를 업고도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아무래도 그 벨져다보니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따갑게 꽂혀서, 루이스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벨져의 등에 매달렸다. 벨져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왠지 쑥스러웠다.
“저기…. 벨져….”
“말, 시키지…마….”
“힘들면 그냥 내려줘도 되는데….”
래번클로 기숙사는 가장 큰 탑에 있고, 거기까지 가는 길은 높고 구불구불한 계단 뿐이다. 아무리 벨져가 슬리데린의 수색꾼이고, 체력이 좋다 해도 숨이 거칠어지는 건 당연했다. 중간에 누구라도 있으면 그냥 같이 갈테니까 괜찮다는 말이라도 해볼텐데, 오늘따라 래번클로 기숙사로 가는 길에 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루이스는 점점 더해지는 미안함에 벨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 진짜 괜찮아. 여기서 넘어지면 그게 더 큰일인 것 같은데.”
“넌…. 후. 항상 그 입이 문제야. 하, 빌어먹을 래번클로.”
루이스는 기어이 래번클로의 청동독수리상이 보일 때까지 자길 업고 계단을 올라온 벨져의 목과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땐 벨져도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쉬느라 바빴다.
“잠깐만. 물이라도 좀 가져다줄게.”
대답이 없는 벨져 대신 루이스는 독수리상 앞에 섰다.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김 없이 낸 문제에 벨져가 헛웃음을 흘렸다. 래번클로의 황동독수리상 얘기는 들어보긴 했지만 이정도로 어이가 없을 줄이야. 루이스는 독수리상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더없이 진지한 그 옆얼굴이, 투명한 붉은 눈동자가 벨져의 시선과 숨을 앗았다. 작고 붉은 루이스의 입술이 열렸다.
“사랑으로.”
“뭐?”
“일리가 있군. 들어가도 좋다.”
벨져는 엉뚱한 대답을 듣고도 문을 열어주는 황동독수리와 루이스를 번갈아봤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문제고 답인가. 벨져는 루이스가 아직 한 번도 독수리상의 문제를 못 맞춘 적이 없다는 게 의아해졌다. 이거 얼굴로 현혹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잠깐 기다려. 물이랑 먹을 것 좀 가져올게. 나이오비! 도와줘요!”
문틈으로 사라져버린 루이스의 망토를 바라보던 벨져는 고개를 들어 독수리상을 올려다봤다.
“사아랑?”
황동독수리상은 벨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지만 벨져는 여전히 질문도 답의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루이스 녀석한테 물어보긴 쪽팔리고, 다이무스에겐 물어보기조차 싫었다. 혹시나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 독수리상을 쏘아보고 있는데 바지를 걷고 붕대를 감은 루이스가 나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나이오비가 그냥 안 보내줘서.”
루이스가 물병을 건넸다. 시원한 물을 쭉 들이켠 벨져는 포장지까지 까서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의 손에서 초콜릿 바를 빼앗아들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래.”
“오늘 일은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 마.”
벨져는 달달한 초콜릿을 입 안에서 녹이며 생긋 웃는 루이스를 바라봤다. 겨우 한 살이긴 하지만 루이스의 키는 벨져와 같은 선에 있어서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을 마주하기 편했다. 루이스의 얼굴에서 살짝 눈을 내린 벨져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는 붕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다리를 끌고 혼자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적잖이 아팠을 게 분명했다.
“멍청이.”
“뭐?”
“간다.”
“야! 벨져!”
초콜릿을 마저 입에 넣은 벨져는 루이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다시 돌아온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갔다. 사랑이라니, 그런 남사스러운 말을 잘도 하는 녀석의 얼굴과 등에 업혀 어쩔 줄 모르던 녀석의 온기와 무게가 떠올라서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빗자루를 타고 비행을 하던 때처럼 심장이 쿵쿵 울렸다. 장난감 가게의 초콜릿을 먹이기라도 한 건지, 뺨이며 손끝이 화끈거렸다.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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