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벨져루이]
호그와트au
* 다이무스 5학년 / 루이스 3학년 / 벨져 2학년 / 이글은 아직 입학을 못해써요….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루이스는 다시 한 번 제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도 얼굴을 붉히며 한껏 수치스러워하는 벨져의 얼굴은 그대로였고, 루이스는 이게 드문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루이스는 검지로 뺨을 긁적이다 옆 의자를 뺐다. 벨져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이글의 못된 장난은 아닐까 싶어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루이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심이야?”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지금 강의실 비었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
루이스는 목소리를 높여 반박하려는 벨져의 입을 막고 검지를 제 입술 위에 가로놓았다. 쉿. 눈을 깜빡이며 손을 내리자 벨져가 고개를 홱 돌렸다. 루이스는 벨져에게 몇 시간째 움직이지도 않고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다이무스를 가리켰다. O.W.L이 코앞이라 도서관은 시험을 앞둔 5학년들로 살벌했고, 아무리 홀든이라 해도 고작 2학년이니 선배들에게 밉보여 좋을 게 없었다. 루이스는 산술점 책을 한 팔에 안고 벨져의 손을 잡아끌었다.
“휴, 너야 어떨지 몰라도 난 선배들 무섭단 말이야.”
“흥. 그까짓 상급생들, 몇 년 후면 내가 더 뛰어날 거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련하시겠어.”
턱을 치켜든 벨져는 언제 부끄러워했냐는듯 당당했다. 루이스는 책을 고쳐 안으며 어깨를 으쓱여 흘러내리는 망토를 올렸다. 멋대로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마법의 약 강의실인 지하감옥에 내려간 루이스는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문 앞에 잠시 서있던 루이스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담당 교수인 웨슬리 슬로언은 기본적으로 친절한 사람이라 학생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후플푸프 학생들과 어디서 도시락을 풀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이스는 벨져에게 들어오라고 눈짓했다. 빈 강의실에 들어와서 뭘 뒤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 뭐 어떠랴 싶었다. 혹시 들켜서 점수가 깎이더라도 이건 벨져의 탓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려운 건데? 2학년 과정이면….”
“전갈 독 해독제다.”
“아, 그랬지.”
루이스는 찬찬히 재료를 떠올렸다. 다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한 홀든이 못 만들 것도 없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루이스는 답을 얻기 위해 벨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벨져가 잠시 눈을 맞추고 있다가 시선을 피했다.
“뭐가 문젠데?”
“…실패한다.”
“그러니까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야. 솔잎을 잘못 으깼다던가.”
“그걸 모르겠으니까, 도와달라는 거 아니냐!”
벨져의 외침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잘 해야하는 입장이니 한 번 실수한 것 정도야 괜찮지만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다이무스한테 부탁하기엔 쪽이 팔렸을 테고, 벨져를 따라다니는 애들은 있어도 같이 다니는 애들도 없으니 만만한 제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좋아. 재료랑 방법은 다 알지?”
벨져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는 일단 뭐가 문제인지 한 번 만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벨져는 루이스의 말에 따라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었다. 못내 탐탁지않아하면서도 재료를 준비하고 소매를 겉어붙인 벨져가 작은 칼을 쥐었다.
“잠깐잠깐 잠깐!”
“뭐냐?”
“그렇게 하면 썰리는게 아니라 토막나.”
“그거랑 그게 뭐가 다르지?”
하여간 도련님이란. 루이스는 양파썰기를 예로 들려다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벨져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개념도 없는데 말로 백 번 해봐야 소용이 없다. 루이스는 벨져의 등 뒤에 서서 벨져의 손등에 제 손을 겹쳤다.
“너, 이게 무슨…!”
“자, 봐봐. 손에 힘 빼고.”
루이스는 힘을 주어 한 토막을 잘랐다.
“이게 네가 하려던 거고.”
토막난 조각 위에 날을 세워 얇게 저며낸 루이스는 부드러운 벨져의 손을 잡고 슬그머니 손에 들어간 힘을 뺐다. 요령이 생겼는지 혼자 잘 써는 게 역시 빨랐다.
“그렇지. 그게 써는 거야. 얇게 썰수록 금방 우러나니까 좋고. 아, 근데 잘 건져야해.”
“그리고?”
“계속해. 보고 있으니까.”
루이스는 벨져의 손을 놓고 벨져의 옆에 앉았다. 지하감옥은 추운데도 벨져의 목이며 귀가 빨갰다. 화로를 옆에 놔서 그렇겠지만, 옷도 따뜻하게 입은 주제에 혼자 화롯불을 쬐다니 치사했다. 루이스는 양손을 책상 위에 올리고 주먹을 쥐어 턱을 받쳤다. 볼살이 주먹 위로 밀렸지만 차가운 손을 덥히기엔 딱이었다.
“윽….”
“지금! 빨리!”
집중해서 솔잎을 으깨던 벨져가 루이스를 보고 움찔했다. 때마침 솥에서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거품에 루이스는 솥을 가리켰다. 벨져가 도마를 들고 으깬 솔잎을 쏟아부었다. 잠잠해진 솥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된 것 같은데.”
루이스는 발을 까딱이며 마지막 재료인 상아 조각을 건넸다. 벨져는 여전히 이상한 표정이었지만 시간을 세느라 말할 여유가 없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삼십오초. 상아 조각을 솥에 넣고 휘휘 젓자 연기가 사라졌다. 성공이었다.
“잘 됐네.”
우유와 같은 흰색을 띠는 약을 확인한 루이스가 벨져의 어깨를 두드리며 빙긋 웃었다. 벨져는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너.”
“응?”
솥을 들여다보던 루이스가 고개를 들었다. 벨져가 국자를 놓고 다가와 루이스의 볼을 꽉 잡았다.
“턱받침같은 거 하지 마. 사내자식이 귀여운 척은.”
“…뭐?”
“흥!”
벨져가 볼을 꽉 꼬집더니 솥에서 적당히 끓은 해독제를 유리병에 담았다. 볼은 얼얼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도와줘도 고맙단 말 한 마디를 못하지? 루이스는 내려놓은 책을 다시 품에 안았다.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어디가!”
“귀여운 척 하러 간다!”
“너, 이리, 야!”
루이스는 벨져가 정리를 하는 사이 문을 닫고 계단을 올랐다. 애초에 도와주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와 책을 고쳐안는데 계단을 오르다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으왓!”
꼴사납게 넘어진 루이스는 얼얼한 이마를 손등으로 비볐다. 신발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발로 신발끈을 밟아버렸다. 무릎이 화끈거리며 따끔거리는 게 아무래도 피가 나고 멍이 들 것 같지만 벨져가 못 봐서 다행이었다. 루이스는 계단에 앉아 신발끈을 고쳐맸다. 다치고 넘어지는 것쯤이야 익숙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야! 루이…. 너, 익….”
신발끈의 매듭을 한 번 더 묶는데 잔뜩 성이 난 벨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망칠수도 없게 좁혀진 거리, 루이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지팡이를 꺼내 복수를 하거나, 한 대 치거나 소리를 지를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풀석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슬며시 눈을 뜨자 벨져가 등을 보이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뭐해.”
“으응?”
“빨리 업혀.”
“아니, 나 걸을 수 있는….”
뜬금없는 호의에 당황한 루이스가 말을 얼버무리자 벨져가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다리를 잡았다.
“아야야야.”
“이러고 잘도 걷겠다.”
“그냥 까진 거니까 바지 잘 잡고 걸으면, 아아. 알았어!”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해보려 했지만 벨져가 아픈 무릎에 손을 얹자마자 아파오는 무릎에 루이스는 양 손을 들어 항복했다. 벨져가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등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어린 애한테 업히는 건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대론 계단에 앉아서 실랑이를 계속하게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루이스는 벨져의 목에 팔을 감고 몸을 기댔다. 벨져의 팔이 다리를 감싸고 천천히 일어났다. 떨어진 책을 주워야했지만 안 그래도 무거울텐데 책까지 부탁하기엔 염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이따가 가지러오거나, 누군가 친절한 사람이 주워주길 바라는 수밖에.
일어날 때 힘들어했던 것과 달리 벨져는 루이스를 업고도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아무래도 그 벨져다보니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따갑게 꽂혀서, 루이스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벨져의 등에 매달렸다. 벨져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왠지 쑥스러웠다.
“저기…. 벨져….”
“말, 시키지…마….”
“힘들면 그냥 내려줘도 되는데….”
래번클로 기숙사는 가장 큰 탑에 있고, 거기까지 가는 길은 높고 구불구불한 계단 뿐이다. 아무리 벨져가 슬리데린의 수색꾼이고, 체력이 좋다 해도 숨이 거칠어지는 건 당연했다. 중간에 누구라도 있으면 그냥 같이 갈테니까 괜찮다는 말이라도 해볼텐데, 오늘따라 래번클로 기숙사로 가는 길에 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루이스는 점점 더해지는 미안함에 벨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 진짜 괜찮아. 여기서 넘어지면 그게 더 큰일인 것 같은데.”
“넌…. 후. 항상 그 입이 문제야. 하, 빌어먹을 래번클로.”
루이스는 기어이 래번클로의 청동독수리상이 보일 때까지 자길 업고 계단을 올라온 벨져의 목과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땐 벨져도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쉬느라 바빴다.
“잠깐만. 물이라도 좀 가져다줄게.”
대답이 없는 벨져 대신 루이스는 독수리상 앞에 섰다.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김 없이 낸 문제에 벨져가 헛웃음을 흘렸다. 래번클로의 황동독수리상 얘기는 들어보긴 했지만 이정도로 어이가 없을 줄이야. 루이스는 독수리상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더없이 진지한 그 옆얼굴이, 투명한 붉은 눈동자가 벨져의 시선과 숨을 앗았다. 작고 붉은 루이스의 입술이 열렸다.
“사랑으로.”
“뭐?”
“일리가 있군. 들어가도 좋다.”
벨져는 엉뚱한 대답을 듣고도 문을 열어주는 황동독수리와 루이스를 번갈아봤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문제고 답인가. 벨져는 루이스가 아직 한 번도 독수리상의 문제를 못 맞춘 적이 없다는 게 의아해졌다. 이거 얼굴로 현혹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잠깐 기다려. 물이랑 먹을 것 좀 가져올게. 나이오비! 도와줘요!”
문틈으로 사라져버린 루이스의 망토를 바라보던 벨져는 고개를 들어 독수리상을 올려다봤다.
“사아랑?”
황동독수리상은 벨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지만 벨져는 여전히 질문도 답의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루이스 녀석한테 물어보긴 쪽팔리고, 다이무스에겐 물어보기조차 싫었다. 혹시나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 독수리상을 쏘아보고 있는데 바지를 걷고 붕대를 감은 루이스가 나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나이오비가 그냥 안 보내줘서.”
루이스가 물병을 건넸다. 시원한 물을 쭉 들이켠 벨져는 포장지까지 까서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의 손에서 초콜릿 바를 빼앗아들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래.”
“오늘 일은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 마.”
벨져는 달달한 초콜릿을 입 안에서 녹이며 생긋 웃는 루이스를 바라봤다. 겨우 한 살이긴 하지만 루이스의 키는 벨져와 같은 선에 있어서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을 마주하기 편했다. 루이스의 얼굴에서 살짝 눈을 내린 벨져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는 붕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다리를 끌고 혼자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적잖이 아팠을 게 분명했다.
“멍청이.”
“뭐?”
“간다.”
“야! 벨져!”
초콜릿을 마저 입에 넣은 벨져는 루이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다시 돌아온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갔다. 사랑이라니, 그런 남사스러운 말을 잘도 하는 녀석의 얼굴과 등에 업혀 어쩔 줄 모르던 녀석의 온기와 무게가 떠올라서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빗자루를 타고 비행을 하던 때처럼 심장이 쿵쿵 울렸다. 장난감 가게의 초콜릿을 먹이기라도 한 건지, 뺨이며 손끝이 화끈거렸다.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이퍼즈 > 루른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져루이] 더없이, 덧없이. (0) | 2016.02.23 |
---|---|
[타라루이] (0) | 2016.02.05 |
[루드루이] (0) | 2016.02.02 |
[벨져루이] 조금 특별한 생일. + (0) | 2016.01.27 |
[벨져루이] 조금 특별한 생일. (0) | 201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