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런던, 킹스 크로스 역. 긴 여름방학을 보낸 호그와트의 학생들이 새 학기를 맞이해 머글들 사이를 오갔다. 머글 태생이나 혼혈 학생들이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지만 머글들과는 거리가 먼 순수 혈통의 학생들은 종종 그들의 시선을 받곤 했다. 그리고 여기, 다른 의미로 머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소년이 하나.
“제길.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불어오는 바람에 눈부신 은발을 날리며 승강장을 돌아다니던 벨져는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들이마셨다. 차라리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성인이 되기 전까진 마법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는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홀든.”
“윽.”
“설마 길 잃어버린 거야?”
최악. 벨져는 두꺼비를 잃어버렸다며 난리를 피우던 막냇동생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하필이면 가장 마주치기 싫은 녀석과 마주쳐버렸다 아직 학교도 아닌데 이 면상을 보다니 이번 학기는 벌써부터 재수가 옴 붙었는지도. 벨져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남이사.”
“이글이라면 두꺼비보단 부엉이라 생각했는데.”
루이스의 후드 안에서 여름 내내 벨져를 괴롭힌 이글의 두꺼비가 고개를 내밀었다. 고양이나 개, 토끼처럼 작고 털 달린 작은 동물만큼은 아니지만, 양서류 역시 달갑지 않았다. 따지자면 그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벨져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꺼비의 머리를 쓰다듬는 루이스를 보며 혀를 찼다.
애초에 왜 그런 동물을 귀여워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거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약한 것들은 싫다. 벨져는 남루한 사복 차림의 루이스를 아래위로 훑었다. 원래 지내던 고아원이 파산해서 스타이거 교수네서 지낸다더니 어째 추레한 행색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다.
“이리 내.”
“내가 이글한테 갖다 줄게. 악몽이라도 꾸면 큰일이잖아.”
“윽, 너…!”
“누구나 무서운 거 한둘쯤은 있는 거 아니겠어. 이쪽이야.”
아니, 달라졌다. 분위기가 다르다. 조금 더 차분하고 침착해진데다,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벨져는 트렁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짐가방 하나를 손에 달랑 든 루이스를 따라 걷다가 그를 제치고 앞서 걸었다. 다이무스도 그렇고, 고작 몇 살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어른인 척 앞서나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호해야 할 어린애도 아니고, 벨져 홀든에게 미아 취급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벨져, 어딜 갔던…. 루이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나. 좋아 보이는군.”
짜증이 가득했던 다이무스의 얼굴이 루이스 앞에 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다이무스 홀든으로 돌아오는 게 꼴불견이었다. 벨져는 일부러 제 형의 팔을 치며 지나갔다. 그래도 이번 학기만 보내면 다이무스와 일 년에 아홉 달은 떨어져있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애써 위안 삼으며 두꺼비 따윈 진즉 잊었다는 듯 신이 나 머글들에 대해 떠드는 이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 작은형! 큰형! 작은형이 때렸어!”
“고생이 많으시네요.”
“……잘 부탁한다.”
“별 말씀을요. 이글. 네 두꺼비.”
“오! 고마워!”
루이스는 웃으며 이글의 손에 두꺼비를 내려주었다. 두꺼비는 괴팍한 제 주인에게 돌아가기 싫은 눈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루이스의 목이 허전했다. 벨져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예감에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루이스의 손목을 잡아챘다.
“벨져?”
“따라와.”
“어? 응? 아니, 잠깐, 기차 시간…!”
9월인데도 루이스는 그동안 역에서 한 번도 목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목도리나,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 같은 걸 입었으면 입었지 오늘처럼 날씨에 맞는 가벼운 차림을 한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그냥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왜 하필이면. 9와 3/4 승강장에서 조금 떨어진 벽돌 벽에서야 손을 놓은 벨져는 루이스를 벽에 밀쳤다.
“너, 그 머글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당한 거냐.”
“…별 거 아니야. 다 끝난 일인걸.”
루이스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뜰 뿐 부인하지 않았다. 초연한 반응이 더 짜증나서, 벨져는 이를 악물었다. 루이스는 벨져의 어깨를 잡아 두드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편안해진 표정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는 게 분했다. 좋아 보인다는 다이무스의 말이 떠올라 더 화가 치밀었다. 반장인 주제에 슬리데린의 후배들도 그렇게 챙기지 않으면서 다른 기숙사의 루이스를 그리도 잘 대해주었는지, 왜 똑같이 다퉈도 친동생인 자신이 아닌 그를 두둔하고 돌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다이무스는? 알고 있었어?”
“처음 이 역에 오던 날 도와준 게 다이무스라서. 머글들 사이에선 괴물이나 다를 게 없으니까, 흔한 일이야.”
“너….”
“늦겠다.”
자그마치 사 년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다이무스는 알고 있었다는 것도 전부 분했다. 벨져를 밀어낸 루이스가 어깨를 두드리며 정거장을 향해 걸었다. 이래서 머글들이란.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멍청이처럼 당하고 있었던 저 녀석도 구제불능인 건 마찬가지였다. 벨져는 걸음을 옮기다 멈춰서 저를 돌아보는 루이스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멍청이. 그런 녀석들은 따끔하게 손을 봐주란 말이야.”
“그런 말은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벨져.”
분하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가 싫다. 저 무심한 눈이 곧바로 제게 향하게 만들고 싶다. 한 눈 팔 여지도 없게 저를 바라보고, 그따위 처연한 미소 따위 지을 여유도 없게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
벨져는 단정하게 자른 루이스의 뒷머리를 잡아채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호그와트로 향하는 급행열차는 급행이라 해도 10시간이나 걸린다. 그 정도면 따져 물을 시간은 충분했다. 감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게 선을 긋고 밀어내다니, 방자한 것도 정도가 있다. 벨져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