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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10 [티엔루이] 위험한 사람
- 2015.11.01 [티엔루이] 선물
- 2015.06.29 [티엔루이] 재회.
- 2015.04.11 [티엔루이] 킹스맨au
글
[티엔루이] 위험한 사람
* 현대물, 비오는 날 검은 머리 짐승을 주운 루이스
위험한 사람이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위험할 줄이야.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갔다가 서점 알바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검은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 둘이 나타나 루이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연히 겁을 먹고 피하려 했지만 남자들이 내뿜는 위압감에 어쩔 수 없이 검은 대형 세단에 올랐다.
어렵게 살긴 하지만 목돈을 빚진 데도 없고, 기껏해야 친구들에게 가끔 얼마씩 꾼 게 전부였다. 그러니 남자들은 사채업자도, 인신매매단도 아니다.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중하게 같이 가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게 부탁일리는 없지만, 폭력이나 협박같은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사실 이렇게 실려가는 이유도 대충은 짐작이 간다. 며칠 전까지 루이스의 원룸에서 한 침대를 쓰다가 말도 없이 사라진 그. 잘 잡힌 근육과 손에서 팔을 휘감은 문신, 그리고 그 눈빛만으로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비 오는 날 야밤에 거리에서 배에 칼을 맞고 쓰러져있다면 더더욱. 루이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그의 이름도 하는 일도 말하지 않았지만 같이 살기엔 나쁘지 않았다. 사람의 온기가 반겨주는 집, 김이 오르는 음식은 루이스가 일평생 막연히 그랬으면 좋겠다고 꿈꿔온 것들이었다. 늠름하고,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는 남자. 그는 단단한 바위같았다. 비바람에도 꿈쩍 않고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바윗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낮게 숨을 내쉬던 그의 벗은 몸과 눈빛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유도 목적지도 모르고 모르는 사람들의 차에 실려가면서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루이스는 다시 제 상황을 상기하며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사람들을 상대로 육탄전을 해서 이길 자신도, 달아날 자신도 없다. 침착하자.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루이스.
창밖을 흘긋거렸지만 어둠이 내린 거리엔 적막만이 가득했고, 점점 더 모르는 풍경만 들어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바다에 루이스의 머릿속에 진부한 드라마의 전개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어둠의 조직원이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런 그를 노리는 세력이 인질로 쓰기 위해 잡아들이는 그런 흔하고 뻔한 클리셰.
주인공도 그렇지만, 인질들의 끝도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인질은 죽거나, 온갖 험한 꼴을 당하고 결국은 목숨만 부지하거나 평생 트라우마가 될 기억만 안고 살아간다. 그래도 사랑한다며 나쁜 남자를 그리워하는 건 소설이나 영화, 만화 속에나 있는 얘기일 뿐이다. 루이스가 탈출 계획을 세우는 사이 해안도로를 달리던 차가 휘황찬란한 건물에 멈췄다.
듣도 보도 못한 건물 앞, 먼저 내린 남자가 뒤로 와 차의 문을 열었다. 건물 앞에는 저를 데려온 남자들과 비슷한 남자들이 서있었고, 루이스는 깔금하게 도주할 계획을 포기했다. 남자들은 루이스가 내리자마자 양 옆에 서서 연행하듯 걸었다. 팔을 잡지도, 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결국 루이스는 반항 다운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발을 옮겼다. 곳곳에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힘을 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이들도 위에서 시킨 일을 하는 것 뿐이니 제 처분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과 얘기를 해야 했다.
건물은 휘황찬란할 정도로 고급스러웠지만 위험하고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야 이 공간을 채운 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당연하지만, 압박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마침내 저를 찾은 사람을 만나는 건지, 남자가 양쪽으로 여는 커다란 문을 두드렸다. 긴장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며 목울대가 울렸다.
루이스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부디, 이 문 너머에 부디 제가 아는 얼굴이 있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계속 거기 그렇게 서있을 건가?”
“당신....”
“앉지.”
양복 대신 중국의 전통 복식을 갖춰입은 그가 기다렸다는 듯 루이스를 맞았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그가 한 번 눈짓하자 루이스를 데려온 사람들이 문을 닫고 나가고, 딱딱한 막대기마냥 그 자리에 서있던 루이스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더 쉽게 신세를 망치게 될 것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괜 채 저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과 호선을 그리는 입술이 루이스의 걸음을 이끌었다.
“저녁은 먹었나?”
“아, 아뇨....”
“그럼 밥부터 먹지. 편하게 있어도 좋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루이스는 말을 꾹 눌러 참았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호화로운 방 안의 카페트로 시선을 내리고 있으니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한, 즐거움을 참아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들자 자리에서 일어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말 하지 않았나. 빚은 갚겠다고.”
“안 주셔도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대가 호의를 베푼 게 그대의 마음이듯, 나 역시 내 마음대로 할 뿐이다.”
“...덕분에 오늘 삶의 위협을 느꼈는데.”
“그들이 무례하게 굴던가?”
잘생긴 얼굴에 미간이 좁혀지며 확 번지는 짜증에 루이스는 고개를 도리저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손 하나 까딱 않고 사람 하나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이다. 제 말 한 마디에 사람 하나의 목이 날아가는 건 루이스로서도 썩 달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양해주었으면 했다.
루이스는 평화와 안온한 일상을 사랑하는 소시민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을 잃고 싶지 않다. 무겁게 짓눌린 공기 속에서, 후드를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요.”
“시간이 늦었다만.”
“늦은 시간인 걸 알면서 이렇게 데려와요? 말 한 마디 없이?”
“....... 루이스.”
“기왕 물어본 김에 하나만 더 물을게요. 난 당신 이름도 몰라요. 그건 압니까?”
이 지경이 되어서도 루이스는 남자의 이름조차 몰랐다. 왜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왜 바라지도 않은 보상을 주려는지는 몰라도 이런 식은 아니다. 말을 하다보니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라 그를 노려봤다. 남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루이스와 눈을 맞추다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무게가 느껴져 짓눌릴 것만 같았다. 괜히 혀를 놀렸나. 그냥 가만히 있을 걸.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이를 악물고 눈을 감은 순간 뺨과 귀에 그의 손이 스쳤다. 후드가 벗겨져 목 뒤로 떨어지고,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티엔. 티엔 정이다.”
말문이 막혀 고개를 들자 그가 루이스의 귀 언저리에서 맴돌던 손을 거두고 뒷짐을 지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저 보답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고..., 그리고....”
남자, 티엔은 말끝을 흐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말을 고르는 그의 그 얼굴에 루이스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불안과 공포로 세차게 뛰던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저 당연한 신체 반응일 뿐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루이스는 꾹 눌러온 숨을 천천히 토했다.
“보고 싶었다구요?”
“....”
예상치 못한 답이라는 듯, 혹은 그 의표를 정확히 찔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새나왔다. 무서운 사람이지만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다. 가령 생각지도 못한 식사를 차려놓는다던가, 빨래를 예쁘게 접고 바느질을 한다던가 하는 것들. 이제야 겨우 제가 아는 사람이 돌아온 것 같아 손을 뻗었다.
그는 루이스가 조심스레 뻗은 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뺨을 감싼 손바닥에 그의 얼굴을 부볐다.
“보고 싶었다.”
“네.”
“넌 아니었나?”
“...별로요?”
바로 눈꼬리가 올라가며 입이 일자로 굳어지는 게 퍽 귀여워, 루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 삐지면 달래기가 여간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냉큼 웃으며 말을 고쳤다.
“농담이에요.”
“썩 유쾌한 농담은 아니군.”
“아무렴 여기까지 끌려온 저만 할까요.”
“...식사 하겠나?”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지, 여긴 어디고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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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선물
티엔이 안나오는 티엔루이
루이스 전력 60분, '목도리를둘러주는/선물하는'
뜨거운 물에 몸에 찌든 피곤이 노곤하게 녹아내린다. 가뜩이나 바쁜 월말을 보내고 나니 내일 있을 출근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루이스는 우울한 내일을 생각하는 대신 어깨까지 푹 몸을 담궜다. 오늘은 꼭 겨울 옷을 내놓아야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두꺼운 옷을 꺼내야지 하는 것도 오늘내일하다보니 한 달이 다 갔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곤 하지만 반팔에 후드티로 버티긴 힘든 날씨였다. 씻고 나가서 옷부터 꺼내야지. 겨울옷을 어디에 정리해두었는지 생각하던 루이스는 토마스가 빌려준 목도리를 깜박 잊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돌려줘야지 해놓고는 할로윈이다 뭐다 해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새로 사서 돌려줘야하나 아니면 그냥 다른 걸로 주는 게 나으려나. 똑같은 걸 찾으면 다행이지만, 괜히 엉뚱한 걸 사갔다가 토마스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곤란하다. 중요한 물건이었을 지도 모르고. 토마스라면 신경 쓰지 말라며 손사레를 치겠지만 어쨌거나 잃어버린 건 제 잘못이었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는 거지.
루이스는 바쁜 일상에 지친 제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걸려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문질러 털고 거울 앞에 섰다.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고 마주한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잠을 좀 자야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어젯밤도 놓아주지 않고 기어이 침대에서 잠들지 못한 탓이 컸다.
정말이지, 그걸 끝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자신에 대한 자조가 몰려왔다. 아무리 단호하게 말을 해야지,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도 막상 그 앞에만 서면 무심코 예스맨이 되고 만다.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좀 적당히 하면 안 되는 걸까.
루이스는 미간을 문지르며 시큰거리는 눈을 꿈벅였다. 끈질긴 요구와 협박과 투정 속에 이뤄진 동거 생활도 이제 한 달. 루이스는 물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털며 나란히 놓인 칫솔 두 개를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문제라니까. 루이스는 머리를 털다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 짧은 시간에 한숨을 몇 번 짓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게 마냥 싫지는 않은 게 그도 자신도 사랑에 빠져 눈이 먼 게 분명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와 제가 연인이 되고 동거마저 하게 되리라고. 같은 비누를 쓰고, 같은 샴푸를 쓰고, 같은 치약을 쓰고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드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은 루이스는 이미 집을 나간 그를 떠올렸다. 옷정리를 하고, 연합에 들러 토마스에게 사과한 뒤 목도리를 사러 나갈 생각을 하니 손끝이 간질거렸다.
똑같은 목도리 두 개를 내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벤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리타분하지만, 그래도 같은 것을 공유하고 그렇게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에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작은 행복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루이스는 욕실을 나와 방으로 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샌드위치와 유리잔에 따라놓은 오렌지 주스. 귀찮아서 식사를 거르고 나갈 걸 알았는지, 아니면 밤의 사과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몰라도 아침부터 준비하고 나갔을 그를 생각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루이스는 옆에 놓인 쪽지를 집어들었다.
[아침 거르지 말 것.]
아침식사라고 하기엔 민망한 시간이지만. 루이스는 머리를 말리는 대신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와삭 씹히는 양상추와 상큼한 토마토, 거기에 얇게 썬 햄에 계란과 감자도 으깨 넣은 샌드위치는 별 세 개짜리 식당에서 먹은 밥보다 맛있었다. 단숨에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 다음 조각도 입에 넣은 것도 모자라 마지막 조각을 한 손에 든 루이스는 목도리는 어떤 색이 좋을까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집 안이라지만 맨 몸으로 오래 있기엔 날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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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재회.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야심한 시간이라 배달부일 리도 없다. 루이스는 창밖을 슬쩍 내다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도어스코프조차 없는 작고 허름한 집이라 확인을 하려면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티엔?"
검은색 일색의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놀란 루이스의 얼굴을 감싸며 입을 맞췄다. 급하게 달려드는 입맞춤에 루이스는 뒤로 넘어질 뻔했으나 저를 강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덕에 넘어지는 대신 벽에 등이 부딪혔다. 충격에 입술이 열리고, 그의 혀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안쪽으로 도망치려는 루이스를 낚아챘다. 안쪽 여린 곳을 건드리며 희롱하고, 혀를 감아올리는 사이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열린 입술을 타고 흘렀다. 뇌가 녹진하게 녹는 것 같은 기분에 루이스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다리가 풀려 볼썽사납게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잠시의 딴 생각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입천장을 건드리며 입술을 부비고 한 손으로 허리를 더듬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이라 가벼운 옷차림이었고, 티셔츠 위로 허리를 더듬던 손이 그 안쪽으로 파고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장갑을 낀 손이 예민한 옆구리를 쓸고, 더듬었다. 루이스는 그의 단단한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각도를 바꿔 더 깊이 들어오는 티엔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숨이 모자랐다.
"후우, 하아. 티엔."
"보고 싶었다."
"연락이라도 하, 읍....으응...."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다시 입술을 맞추는 연인때문에 루이스의 불만은 농밀한 키스에 묻히고 말았다. 성급하게 갈증나 죽겠다는 듯 몰아치던 첫 키스와 달리 조금은 배려가 섞여있어 간간히 숨을 쉬었다. 코가 부딪히고, 살짝 눈을 뜨면 떨리는 긴 속눈썹이 보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타오르는 욕망가 이질적인, 진지하기 그지없는 짙은 고동색 눈동자가 아찔했다.
"집중해."
"하아, 티엔."
루이스는 눈썹에 힘을 주고 다시 입을 맞추려는 티엔의 뺨을 감싸고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닿았다 떨어지는 가벼운 뽀뽀에 티엔이 다시 얼굴을 가까이했으나 루이스는 아직 호흡을 고르기도 바빴다. 한밤중 갑자기 찾아온 연인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안 오기로 했잖아요."
"......."
티엔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더 바싹 붙였다. 배를 맞댄 채 그와 벽 사이에 눌린 루이스는 길게 숨을 내쉬고 눈을 감고 입술을 맞췄다. 천천히, 그를 달래듯 입술을 부비며 숨을 주고 받고, 조심스레 혀를 내밀어 희롱하듯 스치고 감으며 타오르듯 붙은 욕망을 애정이 담긴 흥분으로 바꾸어나갔다. 한 달 만에 보는 연인이었다. 루이스라고 반갑지 않은 게 아니었다. 연락도 없이 사라져서, 감감무소식인 그를 떠올리며 오늘처럼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린 밤을 셀 수 없었다.
"하아, 루이스."
"나도, 보고 싶었어요."
루이스는 작게 속삭였다. 들을 사람이라곤 눈앞의 남자밖에 없건만, 비밀의 언어를 속삭이듯 은밀했다. 티엔의 눈에 참기 힘든 듯 욕망의 불길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그 눈동자가 정욕에 휩싸여 저를 갈망하는 그 오싹한 감각에 루이스는 먼저 입을 맞췄다. 고개를 돌려, 서로의 밑바닥까지 들춰내 가지려는 듯한 흥분에 키스는 점점 거칠어졌다. 루이스는 몇 번이나 벽에 떠밀려 머리를 찧었지만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거친 키스에 흥분했다. 이불 속에서 따뜻해진 몸은 그보다 더한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루이스는 제 허리를 더듬는 티엔의 손목을 잡고 그의 장갑을 벗겨냈다.
"티엔, 하아, 읏...."
뺨을 어루만지다 뒷목을 잡고 키스하던 티엔이 입술을 떼더니 루이스를 번쩍 안아들었다. 같은 남자지만, 티엔의 탄탄한 몸에 루이스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잘 다져진 근육은 물론이고, 웬만한 여자 부럽지 않은 가슴까지. 그의 팔 안에 안긴 루이스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저를 번쩍 들어올리는 그의 힘과 체력에 감탄하면서도 남자로서 약간의 비참함을 느꼈다. 체계적으로 운동을 해서 만든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근육이 있는 몸인데, 그것도 티엔의 앞에선 그저 초라해질 뿐이었다.
"읏."
"루이스...."
매트리스 위에 던져진 루이스는 제 위에서 검은 코트를 벗으며 저를 애정과 욕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넥타이를 잡아 당겨 몇 번째인지 모를 키스를 하며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 사이 티엔의 손은 루이스의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말아올리고 벨트 버클을 풀었다. 절그럭거리는 쇳소리가 흥분을 고조시켰다. 이 다음에 이어질 행위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랫도리에 열이 쏠렸다.
"후, 티엔.... 당신 또...."
혀뿌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진한 키스에 루이스는 고개를 뒤로 빼 감았던 눈을 떴다. 풀어 헤친 셔츠 아래 배를 감은 붕대가 바로 루이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티엔은 급하게 넥타이를 풀어 던지며 인상을 찌푸린 루이스의 어깨를 밀어 침대에 눕혔다.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니긴, 아직 다 낫지도 않은 거 아니에요?"
"괜찮다. 루이스,"
루이스는 입을 맞추려는 티엔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관계의 주도권은 루이스에게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러다 터졌잖아요. 됐어요."
"루이스! 널 만나려고 일을 마치자마자 온 거다."
티엔이 루이스의 팔을 잡으며 급하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있는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루이스는 어정쩡하게 제 허리 위에 무릎으로 앉아있는 티엔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걸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티엔이 루이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려 다가왔지만 루이스는 다시 그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그리고 반대로 그를 눕히며 다리를 모아 일어났다. 루이스는 이미 잔뜩 불거진 티엔의 앞섶을 어루만지며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입으로 해줄 테니까, 다 나으면 해요."
아쉽기는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기대한 만큼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아픈 사람에게 무리를 시킬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눈밑에 진 다크서클과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숨도 못돌린 채 저를 만나러 온 게 분명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같은 남자의 걸 입에 넣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티엔의 것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이스는 입을 벙긋거리는 티엔의 얼굴에서 시선을 내려 손바닥 아래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것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브리프를 내렸다. 갑갑하게 조이던 천에서 밖으로 나온 그의 성기는 탱탱하게 고개를 쳐들고 잔뜩 불거진 핏줄이 채 불뚝거렸다. 잘 빠진 모양에, 흠잡을데 없는 굵기와 크기에 루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게 제 뒤를 뚫고 들어와 쑤셔댄 거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구멍이 움찔했다.
"루이스, 나는...흐읏...!"
호기롭게 말한 것과 달리 막상 보니 입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루이스는 손으로 튼실한 기둥을 쓰다듬으며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틀거리는 그의 성기를 바라보다, 티엔이 일어나며 멈추려하는 것에 마음이 급해져 눈을 딱 감고 입 안에 넣었다. 루이스를 말리려 몸을 반쯤 일으켰던 티엔은 성기를 감싸는 따뜻하고 습한 점막의 감촉에 루이스의 어깨를 잡았다. 손에 힘을 주면 아파할까봐 움켜쥐지도 못하고, 성기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쾌감에 딱 죽을 맛이었다.
입 안에 티엔의 성기를 품은 루이스는 천천히 코로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무성한 음모와 복근, 그리고 저를 내려다보는 티엔의 표정에 덩달아 흥분한 루이스는 용기를 내 혀를 움직여 귀두의 끄트머리를 조심스레 핥았다. 눈을 찡그리며 쾌감을 참으려는 티엔의 얼굴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루이스는 옴폭 패인 곳을 혀끝으로 콕콕 누르고 그 위를 핥았다. 말랑말랑하고 미끈한 감촉이 생경했지만 티엔이 낮게 내뱉는 흥분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루이스는 작정하고 티엔을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과감하게 혀를 움직였다. 어설프지만, 야동에서 흔히들 하는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빨다가 귀두 아래를 핥고 머금고 있던 것을 뺐다. 입으로 숨을 쉬다가, 그의 것을 잡고 기둥에 불거진 핏줄을 혀로 핥으며 옆에서 이 대신 입술로 물고 빨았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티엔의 숨소리와 신음이 야했다.
"하아, 티엔.... 기분 좋아요?"
"으음, 하, 후우.... 그래."
"다행이다...."
루이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고, 티엔의 고간에 얼굴을 묻은 채 큰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듯 입을 벌려 그의 성기를 입안에 담았다. 다 들어갈 것 같진 않지만, 조금 더 안쪽에 넣어보면 그의 귀두가 입천장을 지나 목 안쪽에 닿았다.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하지? 루이스는 이를 세우지 않게 조심하며 그의 것을 빨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움직였다. 위아래로 빨아당기며 얇은 피부의 막이 제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외설스러워 루이스의 성기에도 열이 쏠렸다.
"흐읏, 하, 루이스...!"
"웅, 하아...."
루이스는 스스로 하듯 티엔의 기둥을 감싸고 위아래로 당기며 귀두를 핥았다. 손이 빨라지면서 제 어깨를 잡은 티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아팠지만 그보다는 그의 성기를 애무해주는 게 더 우선이었다. 루이스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침대를 짚던 손으로 그의 고환을 주물렀다. 한번 더 빨아주기 위해 입을 벌리는데, 티엔이 어깨를 세게 움켜쥐더니 얼굴에 뜨끈한 액체가 뿌려졌다.
"크흣, 하아...."
한 박자 늦게,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는 이미 티엔의 정액이 끈적하게 루이스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성기가 두 차례 더 끊어 사정하고, 루이스는 속눈썹에 진하게 붙은 정액에 눈을 감았다. 다시 뜨려했으나 뜨끈하고 진한 정액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역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흥분되는 게, 아무래도 저도 많이 쌓여있었던 것 같았다.
"읏, 티엔...."
"하아.... 미안하다...."
루이스는 손등으로 뺨에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정액을 닦았다. 입술에 붙은 것을 슬쩍 혀로 핥자 미끈하고 끈적거리는 비릿함이 느껴져 슬쩍 인상을 쓰며 눈을 부비고 있으니 티엔의 크고 따스한 손이 다가와 눈을 쓸어주었다.
"한 달이나 못 했으니까..., 그래서 그렇다."
묻지도 않았건만 티엔이 조심스럽게 말하며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평소보다 사정이 빠른 걸 말하는지, 아니면 참지 못하고 사정해버린 것을 말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쌓여서 진한 정액을 말하는지 몰라도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게 퍽 귀여웠다. 루이스가 피식 웃자 티엔은 안절부절 못하며 침대 아래 떨어진 정장재킷의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루이스는 잠시 생각하다 그의 손목을 잡았다.
"티엔."
티엔은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는 그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빼 대충 얼굴을 문대 닦아 던지고, 그의 가슴 위에 양손을 올려 밀어 눕혔다. 무슨 남자 가슴 촉감이 이렇게 좋담. 루이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 하고 싶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루이스는 눈을 반짝이며 몸을 일으키려는 티엔의 위에서 체중을 이용해 그의 가슴을 눌렀다. 티엔이 무슨 짓이냐는 듯 루이스를 올려다봤다. 루이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손으로 바지와 팬티를 벗고 티엔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티엔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 굳은 얼굴을 하고 루이스의 손목을 잡았다. 루이스는 슬쩍 엉덩이를 움직여 한 발을 빼고도 우뚝 서있는 그의 것에 골을 비볐다. 단번에 티엔의 표정이 바뀌었다.
"...루이스."
"당신, 다쳤잖아요."
"이게 더 괴롭다. 차라리 내가 움직이는 게 낫겠군."
"누워있으라니까요."
루이스가 짜증을 내자 티엔이 입을 다물었다. 루이스는 제 것을 탄탄한 티엔의 배에 부비다가, 침대 옆 협탁에서 젤을 꺼내 제 손에 죽 짰다. 티엔은 그거라도 제가 해주겠다고 했지만 루이스는 티엔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입술로 그의 말을 막아버렸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게 저를 휘두르던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도, 귀엽게 구는 것도 좋았다. 루이스는 지금 우위를 점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느끼는 중이었다.
손가락을 타고 흐를 정도로 녹은 젤을 뒤로 가져가 한 달 동안 쓰지 않아 꽉 다물린 구멍에 치대듯 바르고,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밀어넣었다. 하나 정도는 괜찮은 것도 같아서, 안쪽에 젤을 꼼꼼히 바른 후 하나를 더 넣었다. 두 개는 빠듯한 것 같아 빼고 싶었지만 티엔이 그런 것처럼 루이스도 마음이 급했다.
"읏...."
"루이스, 억지 부리지 마라."
"흐으, 할 수 있다니까요."
루이스는 은근슬쩍 엉덩이를 잡아 당기는 티엔의 손에 발끈해 두 개도 버거운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더 넣었다.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상처 없이 저 큰 것도 삼키던 곳이었다. 루이스는 슬쩍 세번째 손가락을 빼고 두 개로 구멍에 젤을 바르고 입구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늘 그가 해주던 거라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안을 휘젓고 안과 밖을 드나들던 감각을 기억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루이스, 제발...."
티엔은 이제 애원하다시피 하며 루이스의 가슴과 목덜미에 연신 입을 맞췄다. 예쁘게 도드라진 유두가 눈에 어른거려 입에 물자 루이스는 가슴 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아래에 힘을 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열심히 풀던 구멍이 손가락을 조이며 다시 움츠러든 게 원망스러워 그를 흘겨봤으나 티엔은 눈까지 감고 루이스의 가슴에 집중하고 있었다. 약하고 예민한, 그가 끈질기게 괴롭혀 개발된 유두가 그의 혀에 빙글빙글 돌려지고, 빨리는 바람에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트머리를 살짝 깨무는 바람에 루이스는 깨문 입술 사이로 약한 신음을 냈다. 티엔은 양손으로 루이스의 엉덩이를 잡아 터트릴 것처럼 주물렀다. 그 바람에 손가락을 머금은 구멍이 양쪽으로 벌어지고, 빈 틈 사이로 공기가 들어왔다.
"응, 읏...! 티엔...!"
"후우, 그러게 내가 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루이스는 울상을 짓다가 벌름거리는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전보다 수월하게 손가락을 받아들인 구멍은 이제 젤에 질꺽거리는 야한 물소리를 내고, 그 안쪽은 손가락보다 더 길고 큰 것으로 꽉 채우는 것을 기대라도 하듯 뜨거워졌다. 티엔이 꼬집고 비트는 유두가 찌릿찌릿했다. 잔뜩 괴롭혀지면서 느끼는 쾌감이 오랜만이라 더 힘들었다.
"그리고, 후으. 오늘따라 네가 더 천박하게 구니까, 읏. 더 참기 힘들다...."
천박하게 군다는 말에 루이스는 허리를 움직여 그의 성기와 제 것을 비볐다. 두 기둥이 부딪혀 비벼지다 퉁 튕겨나갔다. 두 성기는 앞에서 투명한 액을 흘리며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확실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외설스러운 광경이었다. 거기에 흥분하는 자신은, 그의 말대로 야하기 짝이 없었다.
"으응, 하지만 이게 다.... 당신이.... 후우...."
"그래. 응, 후. 루이스, 넣고 싶다.... 넣게 해다오."
"응, 하아. 원해요, 티엔."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안쪽까지 깊게 찌르고 거칠게 박아줬으면 좋겠다. 이미 안쪽과 입구가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끔 하는 것처럼, 엎드린 채로 뒤로 짐승처럼 박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의 연인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또 티엔의 배에 감긴 붕대가 마음에 걸렸다. 오랜만이라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등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싫어했을 체위를 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당신은 움직이지 말아요."
루이스는 티엔의 가슴에 다시 양손을 올렸다. 티엔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루이스는 티엔의 손을 잡아다 제 엉덩이에 놓았다.
"만지는 건, 허락해 줄테니까...."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한 손으로 구멍을 벌리고 한 손으로 티엔의 성기를 잡아 뒤에 맞췄다. 제대로 입구를 찾아 뭉툭한 귀두를 반쯤 넣고, 루이스는 아랫입술을 앙물었다. 천천히 허리를 내리자 안으로 파고드는 부피와 질량감에 얼마 가지 못해 한숨을 토하며 멈춰섰다. 티엔의 손은 루이스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티엔의 것을 삼킨 구멍이 벌렸다 다물렸다.
"크흐.... 루이스...."
"....후우, 잠시만요....잠깐만...."
이도저도 못하고, 루이스는 땀을 흘리며 티엔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처음 부드럽게 들어오던 것과 달리 굵은 것이 입구를 벌리는 게 너무 아팠다. 제대로 풀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자세가 달라서 그런가. 하지만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할 게 뻔했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접합부를 더듬었다. 젤이 잔뜩 발려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콘돔을 씌우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후우, 티엔.... 으읏...!"
"하아, 루이스...!"
루이스는 마음을 크게 먹고 단숨에 허리를 내렸다. 안을 깊게 찌르며 뚫는 성기에 고개가 젖혀졌다. 눈물을 흘리며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루이스를 달래기 위해 티엔은 몸을 일으켜 가슴돌기를 핥고, 그의 가늘고 예쁜 목덜미에 짧은 버드키스를 하며 루이스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등을 쓰다듬었다.
"흐으, 하아...."
"크흐, 루이스.... 숨을 쉬어라."
"윽.... 흐윽.... 티엔......."
잔뜩 젖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루이스의 눈가에 입을 맞춘 티엔은 제 목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고개를 묻는 연인의 목덜미와 어깨, 귀에 입술을 맞췄다. 왜 그러게 시키지도 않은 짓을 사서 했는지. 물론 그게 다 저를 위해서지만, 더는 지켜보고 있기 힘들었다. 티엔은 정말 많이 참았고, 오랜만에 만난 연인의 애교도 이정도면 충분했다.
"루이스, 사랑한다."
티엔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잠시 기다리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진정이 되었는지, 루이스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고, 입술이 맞닿는 건 금방이었다. 키스가 오래 이어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티엔...."
루이스는 연인을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아픈 건 둘째치고서라도 그도 남자였다. 아무리 체격이나 힘이 딸린다고 해도, 물러설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었다. 루이스는 티엔의 어깨를 잡고 무릎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래로 죽 딸려나가는 감각이 낯설었지만 이미 안쪽까지 들어와있었던 거라 생각하면 못할 것 같지도 않아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다.
"크흣, 루이스...."
"하아, 하, 으읏...."
루이스가 허리를 들썩이면서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를 눕히려던 티엔은 예상치못한 적극적인 행위에 이를 악물었다. 제 어깨를 꽉 잡고 고통을 참으며 허덕이는 루이스의 얼굴이 야했다. 티엔은 루이스의 골반을 잡았다. 제 위에 올라탄 루이스는 허리를 돌리며 다시 위아래로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직접 움직이는 것만큼 만족스럽진 않지만 제 성기를 꽉꽉 물며 조이는 내벽은 익숙한 것이었다. 뜨겁고 제 것을 맛있게 오물거리는 구멍에 티엔도 허리를 움직여 안을 두드렸다. 지금도 깊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그가 느끼는 곳은 조금 더 안쪽, 거칠고 깊숙하게 박아야 닿는 곳이었다.
루이스는 스스로 움직이며 좋은곳을 찌르고 문질렀다. 티엔이 움직일 때처럼 머릿속이 날아가는 것같은 쾌감은 없어도, 야릇하고 간질거리는 기분좋은 감각에 루이스는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욱신거리며 간질거리는 곳은 닿지를 않았다. 그 때, 티엔이 루이스의 골반을 꽉 잡고 위로 쳐올렸다.
"하으응...!"
"후우, 하, 듣기 좋구나. 더, 들려다오."
티엔은 파들파들 떠는 루이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잇자국을 낸 뒤 씩 웃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곳을 노리고 반복해 허리를 움직여 쳐올리자 이내 배에 뜨끈한 정액이 뿌려졌다. 티엔의 추삽질에 사정한 루이스는 목에 팔을 감으며 발가락을 움츠렸다. 오물오물, 제 것을 맛있게 삼키고도 더 달라 조르는 야한 몸이 예뻐 티엔은 루이스를 침대에 눕혔다.
엉덩이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제 것을 보는 것도, 제 위에서 위아래로 흔들리며 요분질을 하는 루이스도 절경이었지만, 역시 이게 더 좋았다. 티엔은 루이스의 무릎 안쪽을 잡아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루이스는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뻗다가 눈을 가렸다. 그래봤자 귀엽기만 할 뿐이라 티엔은 피식 웃으며 루이스의 손을 잡아 떼내고 잔뜩 젖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그의 붉어진 눈가에 입을 맞췄다. 루이스는 입을 삐죽였지만 허리를 움직여 안을 치대자 바로 그 예쁜 입술에서 신음이 터졌다.
"으응, 아, 하읏, 티엔, 조금 천천ㅎ...!"
"후우, 루이스. 보고 싶었다."
"아흥, 아, 크흣, 거기...!"
티엔은 루이스의 다리를 잡은 채 마음껏 허리를 움직였다. 시트를 움켜쥔 루이스의 흰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하지만 티엔은 울먹임에 발음이 뭉게지는 연인의 울음소리에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 커녕, 제 허리에 다리를 감아 조이며 쾌감을 조르는 루이스의 안을 휘젓고 두드리는 속도를 붙였다. 아까 그의 펠라치오로 한 번 사정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티엔은 루이스의 안쪽을 마구 찌르다 루이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정했다. 안에 퍼지는 뜨거운 점액의 감각에 한 번 사정했던 루이스는 몸을 잘게 떨었다.
"흐으, 아...."
"하아, 루이스...."
루이스의 머리를 끌어안고 사정의 여운에 잠시 호흡을 고르던 티엔은 눈물로 범벅이 된 루이스의 눈가를 엄지로 쓸다 입을 맞추고 핥았다. 짠 맛이 났지만 눈물이 방울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 곧 붉은 눈동자가 저를 향하는 게 예뻐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췄다.
"하아, 후우.... 티엔.... 크흠."
신음을 내지르느라 갈라진 목소리가 동했지만 티엔은 지친 연인을 배려해 그의 옆에 누워 다리를 루이스의 다리 위에 얹었다. 아직 숨쉬기 바쁜 루이스를 품에 안자 땀에 범벅이 된 두 사람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티엔은 루이스의 등을 쓰다듬으며 베개를 그의 머리에 받쳐주었다. 루이스가 베개 반쪽을 내밀어 한 베개에 머리를 누인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륵 눈을 휘었다.
"상처는 좀 어때요."
"괜찮다."
"......알겠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호랑이 한 마리를 잡다가 스친 것 뿐이다. 상처는 깊지 않아."
루이스는 호랑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티엔이 바로 주름진 미간에 입을 맞추는 바람에 금세 풀긴 했지만,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루이스가 표정을 풀지 않자 티엔은 눈을 피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혼날까 변명을 찾는 게 귀엽기도 하고 일이 끝나자마자 날아온 노력이 가상하기도 해 루이스는 이번 한 번만 봐주기로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심해서 다녀요."
"알겠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 하는 말에 수긍하는 연인의 눈동자에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꿈벅이자 티엔이 등을 토닥이며 떨어진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기분 좋은 체온에 루이스는 티엔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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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킹스맨au
2015/04/04
* 킹스맨AU
** 메모란으로 옮겼던 거 이어봄.
총알이 빗발치는 비상구, 수트를 입은 검은 머리의 남자가 급하게 층계를 올랐다. 한창 쫓기는 중인 남자의 이름은 티엔 정, 안보국의 요원으로 도박장에 잠입했으나 그를 반기는 건 기관총이었다. 티엔은 탄창을 갈아끼우려 허벅지에 손을 뻗었으나 이미 다 써버렸다는 걸 깨닫고 바로 계단의 모퉁이를 돌아 벽 뒤에 몸을 숨겼다. 총알이 박힌 허벅지의 출혈을 막기 위해 급히 넥타이를 풀어 동여맨 티엔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난관을 어찌 빠져나갈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몸에 딱 맞는 쓰리피스 수트에 까만 뿔테 안경, 거기에 한 손에 든 우산까지. 상당히 젊어보이는 건 둘째치고 차림새로 보아하니 도박을 하러 온 손님인 것 같았다. 국적은 아마도 영국. 그러지 않고서야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들고 다닐 리 없다. 조금 전까지 비상구에서 총성이 들렸을 텐데, 스위트룸에서 나오느라 못 들었는지 남자는 여유롭기 그지 없는 태도로 티엔에게 다가왔다. 헬기를 타려면 어떻게든 옥상까진 가야 한다. 비상구에서 저를 쫓는 무장경비원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 밤입니다, 미스터."
티엔은 바로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제압하고 머리에 총구를 댄 채 비상구 문을 마주했다. 거세게 문이 열리고, 제가 잡은 인질이 양손을 들었다. 경비들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들어올 수 없는 층에, 고급스러운 수트를 갖춰입은 남자를 보자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았다. 티엔이 서서히 다가가자 뒤로 물러나는 게 아무래도 제대로 인질 겸 총알받이를 찾은 모양이었다.
"이런 거친 방법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요."
남자를 끌고 헬기장으로 올라가던 티엔은 문득 코끝에 느껴지는 머스크향에 위화감을 깨달았다. 경비병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남자는 인질 치고 허둥대거나 협상을 하려 하지도 않고 너무 침착했다.
"너, 정체가 뭐지?"
잠자코 티엔이 이끄는 대로 따라주던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티엔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티엔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건 절대 일반인이 아니다. 저를 잡으러 온 다른 세력의 사람인가. 티엔은 급히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남자가 티엔의 다친 다리를 을 붙잡는 게 빨랐다.
"자기 소개가 늦어졌군요. 갤러헤드입니다. 미스터 정."
순간 손목이 잡히고, 따끔하는 통증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제 신분이 노출되었단 뜻이다.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를 끝으로, 티엔의 의식은 검게 물들었다.
지끈지끈한 둔통에 깊이 잠들었던 의식이 돌아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린 티엔은 몸을 일으키려다 허벅다리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작게 신음했다. 하늘색 파자마에 다리엔 붕대가 감겨있고 주변은 마호가니 가구가 있는 걸로 보아 고급 호텔이나 그에 준하는 어딘가 같았다.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린 티엔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머리를 굴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갤러헤드라고 했다. 영국 신사인 척 하면서 잘도 비겁한 짓을 하다니. 물론 이렇게 치료까지 해주고 좋은 방을 내주긴 했지만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티엔은 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옷장 앞에 검은색 정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슴 주머니에 꽂혀있는 종이를 빼자 멋드러진 필체로 To. Mr. Jung 이란 메모가 적혀있어 티엔은 주변을 휘 둘러봤다. 방 안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그래도 어디에 어떻게 도청장치나 카메라가 붙어있는지 몰랐다. 괴상한 놀이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 티엔은 파자마를 벗어던졌다.
빳빳하게 다린 드레스셔츠를 맨 몸 위에 걸치고 소매는 단추 대신 옆에 놓인 커프스로 잠근다. 발목까지 완벽한 핏으로 떨어지는 바지를 입은 뒤 벨트의 버클을 정중앙에 오도록 맞추고, 발목을 덮는 검은 양말을 신고 나면 브로그가 없는 옥스포드의 순서였다. 짙은 붉은색에 광택이 나는 넥타이와 금장 핀. 티엔은 셔츠 단추를 잠그며 저를 위해 준비된 것들을 차례로 훑었다.
이 모두가 철저하다 못해 완벽한 신사의 옷차림을 위한 것이었다. 대체 이런 옷차림을 시켜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티엔은 거울을 보며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고 카라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옷걸이에 걸린 재킷을 집어들어 팔을 넣었다. 너무 부드럽지도 빳빳하지도 않은 재킷은 맞춤옷이라도 되는 듯 딱 맞을 뿐더러 티엔에게 퍽 잘 어울렸다. 왜 이러는지는 몰라도 수트만큼은 십점 만점에 십점을 줘도 될 만큼 탁월했다. 앞단추를 잠그고, 양손으로 재킷의 카라를 안쪽으로 잡아 매무새를 다듬는데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고, 티엔은 거울을 통해 정중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신사를 바라봤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터."
"썩 유쾌한 아침 인사는 아니군."
"거친 방법은 선호하지 않아서요. 실례가 됐다면 사과드리죠."
자신을 갤러해드라 칭했던 남자는 퀸즈잉글리쉬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려보이는 얼굴 탓인지 전통적인 영국 귀족이라기보단 젠트리같은 인상이 강했다.
"이렇게 나를 끌고온 목적이 뭐지?"
"끌고 오다뇨. 피곤해보이시길래,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드렸을 뿐인데 제 작은 친절이 과했던 모양이군요. 준비는 다 되신 모양이니 얘기를 조금 나눌 수 있을런지요."
"흠. 내게 선택권이 있나?"
남자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며 문을 열었다. 숙녀를 대하듯 정중하게 문을 열고 기다리는 게 언짢았지만 어쨌거나 지금 티엔은 볼모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높은 확률로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본부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부상을 입었으며 남자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은 굳이 따로 시험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혼자서 자신을 상대하러 나올 일도 없거니와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다. 그도 그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고 일단은 그 보스와 대화를 할 모양이니, 티엔은 일단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어떻게 탈출할지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무턱대고 탈출이나 저항을 하다간 감시와 감독이 더 심해진다는 건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었다.
진홍색 카페트가 깔린 복도와 벽을 보아선 역사가 느껴지는 게 꽤나 고풍스러운 저택같았다. 다른 곳과 달리 문이 두짝인 곳 앞에 다다른 갤러헤드는 잠시 멈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을 들어 똑똑, 무겁지도 경박하지도 않게 문을 두드렸다. 정중하기 그지없고,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예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했다.
"랜슬롯."
"갤러해드."
티엔이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갤러해드가 안으로 들어섰다. 회색에 가까운 은빛 머리카락의 사내.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서류를 보다 고개를 들어 인사를 받았다. 티엔은 그가 서류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부진 몸이며 뺨에 난 십자상처는 절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원탁의 기사의 이름으로 부르는 집단. 티엔은 머릿속에서 여러 기관들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이쪽은 말씀드린 미스터 정입니다."
"수고했군. 앉게."
랜슬롯이란 코드명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갤러해드는 티엔에게 커피와 차 중 어느쪽이 좋으냐 물었고 티엔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커피라 대답했다. 재킷을 정리하며 앉는데 고급스러운 소파의 쿠션이 지나치게 좋았다. 원래 불편한 자리는 맞지만 차라리 허름한 창고에서 묶이면 묶였지, 이런 분위기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피차 할 말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하지."
"바라던 바다."
"리원판. 그자에 대해 도움을 주었음 한다."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원한다면 상부에 요청하는 게 빠를 거다. 무턱대고 정보를 넘길 만큼 허술하진 않으니."
"중국과는 얘기가 된 내용이다. 원한다면 확인해보도록."
예상대로, 간단한 말 몇마디 뿐이었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고, 랜슬롯은 티엔 앞에 서류봉투를 가볍게 던지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미심쩍긴 하지만 단단히 봉해진 서류봉투를 열어본 티엔은 제 상부의 인장이 찍힌 서류에 더 심각해졌다. 인증코드와 암호화된 시리얼넘버까지, 내부인이 아니면 알아볼 수 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그랑플람의 기술이 들어간 서류는 위조품일 수가 없었다.
마침 다가온 갤러해드가 랜슬롯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티엔의 앞에도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갤러해드와 랜슬롯이 주고받은 눈빛. 티엔은 그 잠시의 시선교환에 묘한 기류를 느꼈다. 저건 동료들간에 지을 만한 눈빛이 결코 아니다. 동료요원이라기보단 비서 같은 행동에 티엔은 이 미남자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단번에 저와 같은 부류라는 걸 꿰뚫어본 랜슬롯과 달리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협력하겠다면 그 다음은 갤러헤드가 함께할 거다."
"그 전에 통화를 한 통."
랜슬롯은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티엔에게 주었다. 티엔은 상부와 연결되는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 제 상사가 전화를 받았다. 잘 모르겠지만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들에게 협력하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난처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꽤 영향력이 큰 조직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명령까지 내려왔으니 티엔은 따라야 했다. 말이 협력이지, 뒤로 뺄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강요나 다름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갤러헤드입니다."
"티엔, 티엔 정이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고, 티엔은 갤러헤드의 손을 맞잡았다. 해사한 웃음이, 드디어 그의 앳된 얼굴에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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