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하다. 그것도 매우. 다이무스는 검을 바투 쥐며 몰려오는 오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센티넬의 신체능력과 발달된 오감은 전투에 유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다이무스는 낮게 신음했다. 공성중에 능력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날뛰는 건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지척에서 들리듯 들리는 발소리와 귀에 속삭이는 것 같은 숨소리, 멀리서 느껴지는 열기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매캐한 탄약 냄새같은 것이 다이무스를 괴롭혔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예민해진 감각에 혈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지고,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이 구역질이 났지만 그 감각을 차단할 수도 없었다. 다이무스는 이를 악물고 검을 쥐었다. 붉은 위험신호를 울리는 걸 알면서도 손이 부들부들 떨려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이무스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푸른 얼음결정. 분명 이 각도라면 그의 얼음에 갇히게 되리라.
다이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등을 돌려 피하기엔 늦었다. 피한다 해도 지금은 가다가 등을 보이고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오기 전에 친다. 다이무스는 검을 뽑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쓰러질 수야 없는 노릇. 오히려 한 번 리스폰한다면 이 날카로운 오감도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다이무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전부, 얼어버려!]
순간 덮치는 냉기와 함께 몸을 지배하던 감각이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채 제게 직격하는 얼음 산탄총을 맞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후방에 코인을 양보하느라 장비를 많이 장착하지 않았는지, 모든 스킬을 쏟아 부었음에도 다이무스에게 걸린 빙결 효과가 가셔도 체력이 남았다. 다이무스는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검을 들었다. 낭패라는 걸 알면서도 손에 결정검을 만들어내는 사내에게서 풍기는 냉기에 당장이라도 터질것만 같던 머리도, 떨리던 손끝도 안정을 찾았다. 스물 아홉 해를 살면서 센티넬로 각성한 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이었다.
여유를 되찾은 다이무스는 검을 휘두르며 제 검을 맞받아치는 루이스의 붉은 눈을 마주했다. 벌떼처럼 제 몸을 싸고 돌던 감각이 가라앉았음에도 묘하게 들뜨는 가슴의 고동과, 차갑게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어우러져 마치 한 곡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다이무스의 검에 루이스의 결정검이 부서지고, 다이무스는 질풍처럼 파고들었다.
[크흑.]
쓰러진 루이스가 낮은 신음을 냈고,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은 다이무스는 헬리오스의 에이스답게 그의 목을 겨눴다. 몸을 감싸고 도는 열기와, 단숨에 몸을 움직이며 시작된 심장의 두근거림이 다이무스의 검을 멈췄다. 질끈 눈을 감았던 루이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뒤에서 미끄러지며 다가오는 마에스트로를 본 다이무스는 검을 꽂고 돌아섰다. 타라의 재촉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를 베고 싶지 않았다.
제가 생각해도 비이성적인 선택이었으나 다이무스는 루이스를 벨 수 없었다. 잘 설명하긴 힘들지만 된다, 안 된다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그 감각. 센티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본진 안으로 들어온 다이무스는 가장 유력하고 확실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제야 떠올린 게 오히려 이상하다. 다이무스 홀든에게는 가이드가 없다.
가문에서 붙여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센티넬에게 가이드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센티넬은 종종 능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퍼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센티넬에게 맞는 가이드만 있다면 오히려 사이퍼보다 더 가치가 높았다. 가이드는 자신이 가이드인 줄도 모르고, 불안정한 센티넬을 통제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센티넬을 손에 넣고 주무르기 위해선 가이드를 목줄로 잡는 편이 쉬우니까. 다이무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문에서 센티넬을 잃은 가이드를 붙여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어태껏 그 누구도 주지 못한 안정을 찾아낸 다이무스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다. 차라리 6년 전, 벨져가 그렇게 되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를 가질 수 없다. 그는 연합의 영웅이고, 자신은 홀든의 사람이자 헬리오스의 에이스다.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다이무스는 자조했다. 가이드는 센티넬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다.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그 자신은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자각이 없다.
기어이 찾기는 찾았으나 그말인즉슨 곧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고, 한 번 가이드가 주는 평화와 안식을 맛본 이상 그 무엇도 만족스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루이스. 다이무스는 저를 마주하던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를 가지려면, 가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협력관계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날, 막연히 꿈꿔온 운명을 만난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