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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루이] 벚꽃 샤워
2015/04/10
이것이 새로운 사약의 맛인가요....?
대기실에 들어온 릭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익숙한 뒤통수를 보고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후드를 쓰지 않아 동그란 머리가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루이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아직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다른 이명만큼이나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진 사람이었다. 그 나이에 조직의 중추에 선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힘든 상태라는 건 분명했다.
그에게 다가간 릭은 얼굴을 빤히 보다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그 색만큼이나 차가울 줄 알았는데, 그의 머리카락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가늘고, 그닥 매끄럽지는 않은 머리카락. 그 끝을 엄지와 검지로 매만지다 아예 손바닥으로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던 릭은 그 감촉에 빠져 그가 눈살을 찌푸리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으음..., 릭?”
“아, 미안하오. 나 때문에 깼소?”
“아뇨, 그건 아닙니다. 혹시 지금 시간이....”
“아직 공성 시간까진 이십분 정도 남았다오.”
다행히 루이스는 제가 머리를 만진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이도 아니고 성인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는 게 이상할 법도 한데 그걸 뭐라 하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릭은 최근 자신이 게이트를 열었던 횟수와 그를 만났던 횟수를 세고는 짧게 혀를 찼다. 연합에서 그를 공성에만 내보내는 게 아니니 요 며칠간 제대로 쉰 적이 없는게 분명했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오. 서른이 넘어가면 싫어도 하루하루 느껴진다오.”
“충고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루이스는 뻐근한 목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래도 늘 보는 사이인데 이렇게 거리를 벌리는게 조금 섭섭했다. 조금은 마음을 열어줘도 좋을 텐데. 토니 리켓이 제게 미안해하는 건 그렇다 쳐도 연합의 영웅이 자신을 멀리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또 모를까. 릭은 혹시 제가 밉보일 짓을 하기라도 했나 기억을 더듬었으나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릭은 소파에서 일어나 팔을 돌리며 어깨를 푸는 루이스의 등을 빤히 쳐다봤다. 전에는 그래도 인사는 잘 받아줬는데.
릭은 아직 머리카락의 감촉이 선명하게 남은 손을 그러쥐며 씁쓸하게 웃었다. 확실히, 연인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돌아온 영웅은 전보다 어두워져있었다. 그의 연인인 트리비아 카리나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고 루이스는 그녀에 대해 입을 다물었으므로 주위에서 지레짐작하는 게 고작이었다. 릭은 물을 마시는 루이스의 손목과 물이 넘어가며 목울대가 움직이는 걸 물끄러미 보다 입을 열었다.
“저기, 루이스.”
“푸하, 네?”
“아, 아니오. 아무리 목이 타도 그렇게 마시면 안 좋다오. 물 마시다 사레라도 들리면 약도 없으니까. 하하....”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하잘 것 없는 말이라 릭은 뒷머리를 매만지며 웃었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루이스의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괜히 찔려 입가가 씰룩거렸지만 릭은 그래도 웃었다. 그 동그랗고 빨간 눈이 깜박이다 곧 사르륵 접혔다. 루이스가 바로 입가을 다리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긴 했지만 순간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와 릭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대로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러 닦은 루이스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릭을 마주했다. 눈이 예쁜 초승달 모양을 그리고,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릭도 잔뜩 힘을 풀고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 짧은 한 마디에 오늘 업무로 쌓인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따스한 뿌듯함이 가득 들어찼다. 멋쩍어 뺨을 긁적이니 루이스가 입꼬리를 당겨 씩 웃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때마침 도착한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릭은 순식간에 제 앞에서 보인 피곤과 약한 모습을 지우고 늠름한 영웅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루이스를 보며 왠지 모를 씁슬함에 입을 다셨다.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에 그런가, 분명 대단한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릭은 자꾸만 루이스가 어리게만 보였다. 엘리나 피터, 혹은 샬럿이나 마를렌, 카를로스, 빅터 같은 어린 아이들이 이런 전쟁터에 나오는 걸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고 그래선 안 되는 거지만 릭은 루이스가 이렇게 위태로운 모습을 보일 때면 신경이 쓰였다. 그가 짊어진 무게는 너무 무거운 것이라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고, 가끔은 당장이라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이 불안했다. 마음이 쉴 곳 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점점 더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한 번 시선이 가면 그 다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손이 갔다. 그는 제가 내민 손을 늘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지만, 글쎄.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한계가 오기 마련이었고 릭은 그가 그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하고 호감을 갖지만 자신이 그에게 갖는 감정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연민도, 동정도, 동경도 아닌 어떤 애틋한 감정. 그 감정에 뭐라 이름 붙여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릭이 진심으로 그를 아낀다는 것은 확실했다. 준비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루이스를 보며 릭은 게이트를 열었다.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여실히 드러나는 공성이었다. 릭은 몇 번이고 그가 리스폰 되는 걸 지켜봤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날이 선 긴장에 가려지고 점점 쌓이기만 하는 피로와 부담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 상태로 뒤쪽의 마에스트로와 캘러미티를 지켜내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가까스로 역전승을 하긴 했으나 그것도 그저 버티고 있는 것 뿐, 이미 그의 몸과 정신은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제 삼자가 봐도 그 정도니 그의 동료들이 걱정하고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 변명도 반론도 없이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는 루이스는 폭풍의 눈 같았다. 모두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루이스는 하늘을 올려 보다 눈을 감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칼렛과 수다를 떠느라 늦은 회사의 꼬마 숙녀를 마지막으로 제 할 일을 마친 릭은 루이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루이스. 가끔은 적절한 휴식이 필요한 법이오.”
“릭, 신경써주시는 건 고맙지만.”
릭은 제게 향하는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사람을 말려야 했다.
“기분전환이라던가.”
“...하아. 딱히 생각나는 건 없군요. 그럼 전 이만.”
루이스는 틈만 남면 제게 쉴 것을 종용하는 사람이 슬슬 귀찮아지고 있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와 자신은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왜 제게 신경을 써주는지는 몰라도 지나친 호의는 부담스러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를 뒤로 하고 성큼성큼 걷는데 갑자기 손목이 잡히며 강한 힘에 끌려 몸이 휘청였다.
“윽, 릭!”
“지금 자네가 해야할 일은 잔업이 아니라 휴식이오! 이번주만 몇 번이나 내가 당신을 옮겼는지 아시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정확히 일곱번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릭씨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고요. 그럼 이제 이거 놔주시겠습니까?”
릭은 단호한 루이스의 거절에 얼굴을 찌푸렸다. 연합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일주일에 일곱번이나 공성에 나가는 게 문제라는 건데, 그렇다고 남는 시간에 쉬는 것도 아니면서 루이스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일에 매달리는 게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그냥 둘 수 있을 리 없었다. 릭은 토니가 제게 진 빚을 떠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스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었고, 릭은 이걸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소. 그 전에 잠깐만.”
루이스는 싸늘한 무표정으로 릭의 뒷말을 기다렸지만 이어진 것은 말이 아니라 보라색 빛무리였다. 그제야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루이스가 팔을 뿌리치려고 헀을 땐 이미 풍경이 바뀐 뒤였다.
“하아....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말하지 않았소.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연합이나 회사에서 알면 당신이 곤란해질 텐데요.”
“자, 자. 그러지 말고, 뒤를 돌아보시오.”
사람 좋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는 릭에게 못 이긴 루이스는 한 발을 내딛으며 고개를 돌리다 그대로 멈춰섰다. 연분홍색 꽃잎이 가득 핀 길이 무척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며 꽃잎이 눈송이처럼 내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살랑이는 꽃잎이 손바닥에 내려앉고, 길 양 옆으로 죽 늘어선 꽃나무의 가지들이 흔들렸다.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광경에 루이스는 잠시 그대로 서있었다.
“아름답지 않소?”
“...네. 확실히.”
“거 보시오. 잠깐이면 되지 않소.”
루이스는 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저를 내려다보는 릭을 보다 피식 웃었다. 확실히 여유가 없긴 했지만 동료도 뭣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신경을 써줄 정도였다니. 제가 생각해도 한심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윽!”
“꽃구경을 하면서 그렇게 한숨 쉬는 거 아니오!”
“...아프잖습니까.”
등을 팡팡 치며 기운을 복돋아주려는 건 고마운데, 평범한 회사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팠기에 루이스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마저도 싱긋 웃어버리는 바람에 더 투덜거리지도 못하게 된 루이스는 할 수 없이 입술을 움직여 슬쩍 웃었다.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은 릭은 꽃잎의 비가 내리는 길로 걸음을 내딛었다. 루이스는 그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꽃을 감상했다.
“그런데 여긴 어딥니까?”
“비밀이라오.”
“.......”
루이스는 상쾌한 대답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물어본다 해서 다시 찾아올 것도 아니고, 공간 이동 능력자인 릭 톰슨에겐 못 가는 곳이 없으니 지구 어딘가에 있는 거겠지 싶었다. 루이스가 더 묻지 않자 릭은 조금 보폭을 줄였다. 아주 잠시,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막상 이렇게 데리고 나오니 훨씬 마음이 편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꽃나무 사이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잠시 나무에 매어놓은 그네를 발견하곤 멈춰섰다. 루이스는 고개를 들어 꽃을 바라보고, 릭은 그네에 앉아 발을 까딱이며 그를 바라봤다. 한결 풀어진 표정이라던가 힘이 빠진 어깨가 보기 좋았다.
“여긴 완전히 봄 날씨네요.”
“하하, 영국은 날씨로 계절을 느끼기 힘들지. 앉겠소?”
루이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배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루이스는 그런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네요.”
“다행이군. 종종 필요하면 말하시오.”
“아뇨, 괜찮습니다.”
흩날리는 꽃잎 비 속에서 고운 얼굴로 하는 말은 단호하기 그지없어 릭은 씁슬하게 웃었다. 그러자 루이스가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제가 컨디션 관리를 못 한다고 릭 씨를 귀찮게 할 수는 없죠.”
“나는 이 동행이 꽤 즐겁소만.”
“.......”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해야할까 머리를 쓰는 게 보여 릭은 피식 웃었다. 이런 면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리라. 릭은 그 마음 씀씀이를 알기에 루이스를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럼 내가 동행해달라고 부탁해도 되겠소? 가끔 찾아가리다.”
“그건....”
“아니면 내가 불편하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난처하는 게 보였지만 릭은 물러서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라 사람의 호의를 쳐내는 것에 무르다. 그걸 알기에 릭은 일부러 상심한 척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 심성을 이용하는 것에 조금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런 게 바로 어른의 치사함이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던져둔 함정에 걸려든 루이스를 향해 릭은 만면에 웃음을 띠운 채 고개를 들었다.
“그럼 매주 금요일 일곱시에 서점으로 찾아가겠소.”
“아니, 잠깐. 왜 얘기가 그렇게....”
“그 때 끝나지 않소?”
“아무래도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음. 저녁은 내가 사겠소.”
“저한테 선택권이 있긴 한 겁니까?”
루이스의 질문에 릭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거부하면 당장 여기서 포트레너드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기세라 루이스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도 없어 보였다.
“루이스.”
“...네.”
“포기하면 편하다오.”
싱긋, 상쾌하게 웃으며 하는 소리가 아주 굉장했다. 거의 반 협박이나 다름 없는 말에 루이스는 어쩔 수 없이 마른 세수를 하며 한 바퀴 돌았다. 마음 같아선 거절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앞으로 더 곤란해질 게 뻔했다. 오늘은 다들 돌아간 후에 갑자기 끌려왔지만 다음에도 그런 배려를 해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은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에 일찍 퇴근합니다.”
“그렇군. 광장에 안 가다 보니 몰랐소.”
“그리고 매주는 곤란합니다.”
“격주로 가지.”
“서점에서 사라지는 게 더 수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럼 집으로 데리러 가겠소.”
제 발로 무덤을 판 루이스는 어째 거하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 후였다. 릭은 그네에서 일어나 루이스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푸른 잿빛 머리카락에 붙은 꽃잎이, 퍽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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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어떤 게이머의 수난시대
2015/04/10
* 어김없이 게이머au
* 모 게임 네타 주의
어느 선선한 밤, 홀든 A의 숙소에는 유례없이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공기는 대개 소음의 주범인 이글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글은 놀라울 정도로 묵묵히 방송을 위한 세팅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벨져와 루이스의 방에서. 팔짱을 끼고 다리는 꼰 채 침대에 앉아 자신의 공간에 침입한 막내동생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벨져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꼭 해야겠냐?”
“왜, 쫄려? 사나이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이글은 책상에 마이크와 캠을 능숙하게 설치하고는 양손을 착착 치대며 손을 털었다. 영 못마땅해하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시위하는 작은 형을 돌아보며 씩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벨져 홀든의 이런 모습을 어디 보기가 쉬운가. 이글은 오늘 방송이 잘 되면 이 영광을 함께 해준 트롤러에게 바치고 싶었다. 불과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습실에 앉아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쉬레가 프로즌을 끼고 질 리가 없다고 누누히 말하는 게 벨져였다. 하지만 그도 트롤링에는 견디질 못하고 져버린 것이 지금의 결과였다. 아무리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해도 진 건 진 거니까. 내기로 벌칙을 걸고 한 이상 안 한다고 뻗댈 수도 없었다.
이글은 자기 아이디를 치고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 접속해 방을 열었다. 오늘의 방송용 게임은 사이퍼즈가 아닌 무섭기로 소문난 공포게임으로, 어느 정도 머리를 써서 퍼즐을 풀어야 공략이 가능한 게임이었다. 방제를 프로즌과♥쉬레의 내기 벌칙★공포게임실황 으로 바꾼 이글은 뿌듯하게 자신의 작품을 바라봤다.
제 작은형이 불편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웃기고, 루이스가 과연 이번에도 그 얼음같은 침착함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아직 대기화면만 띄워놨을 뿐인데 본방은 물론 중계방까지 우후죽순으로 사람이 들어차는 걸 보며 이글은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주인공 중 한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하러 간 건지 도망간 건지 어쩐 건지 샤워하러 간지라 이글은 벨져의 옆에 앉았다. 남자 둘이 부둥켜안고 자는 침대의 쿠션이 뭐 이리 좋담. 이글은 침대를 툭툭 두드려보곤 벨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형, 좀 기대되지 않아? 그 루이스가 어떻게 나올지? 응?”
“천박하긴.... 이딴 B급 호러가 뭐가 무섭다고.”
“흐응, 그래? 그럼 형은 따로 해야겠다. 이번에 새로 나온 퍼피 파라다이....”
“치워.”
제깍 팔을 쳐내며 질색하는 제 작은형의 반응이 즐거워 이글은 크게 웃었다. 고개를 젖히며 웃다가 뒤로 넘어가 끅끅거리자 벨져가 나가라며 이글을 발로 차 떠미는 바람에 이글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벨져는 이글이 떨어진 후에도 팔짱을 낀 채 밟으며 짜증을 냈다. 호러게임이 무섭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졌다는 게 불쾌한 거라 이글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더 입을 놀렸다.
“아, 그러게 누가 탱커 하래?”
“그 이상한 새끼 때문에 졌지, 네가 잘해서 진 게 아니라고!”
“크크킄큭, 아~ 그러셔? 난 그 사람한테 짱 고마운데, 아이디가 뭐더라 교주 제... 어읔!”
“그만해, 벨져. 애 죽겠다.”
깝죽거리다 정강이를 맞은 이글에게 거실에서 동앗줄이 내려왔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와 피부에 물이 오른 루이스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뭐 하는데?”
“어느 고성에서 깨어났는데 기억이 하나도 없어. 그 성 안에서 기억을 찾아가면서 탈출하는 공포게임이지롱. 아, 혹시 크리쳐 무서워해?”
“피 튀기고 그런 건 좀 싫은데.”
루이스는 머리를 털다 옷장에서 티셔츠를 꺼내 입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질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겁을 먹는 것도 아닌 평온한 얼굴에 이글은 벨져가 한껏 돋워준 흥이 식는 걸 느끼며 길게 콧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오늘 벌칙은 두 사람을 놀리기는 커녕 침착하게 퍼즐을 풀어가는 공략 방송이 될 것 같다. 뭐, 그런 점이 루이스답긴 하지만 이래서야 기껏 준비한 보람이 없었다.
“다 깰 때까지 불 켜기 없음!”
“해 뜰 때까지 못 깨면 어떻게 해?”
“그럼 못 나오는 거지 뭐.”
“그때까지 못 깰리가 없지 않나.”
벨져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이글은 난이도를 헬 모드로 조정할까 고민하다 그것마저 잘해버리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라 그만 뒀다. 어쨌거나 이미 하기로 했으니 이제 와서 바꿔봤자 그게 그거였다. 이글은 뒤통수를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티셔츠를 적시는 데도 루이스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캠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있었다.
참 생기기도 잘 생겼다. 언젠가 루이스가 없는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을 때 팀원들끼리 한 말도 루이스가 제일 잘 생겨보일 때는 샤워하고 나온 직후라는 거였는데,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루이스에게선 묘한 청순함이 풍겼다. 이러니까 깐깐한 작은 형도 넘어간 거겠지. 이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이스에게 다가가 손수 머리를 말려주는 벨져를 바라봤다. 하여간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이 하나도 없다. 이러니까 맨날 큰형이 포털에 돈을 쓰지. 이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시작한다?”
“그래. 이거 근데 잘 나오나?”
“고럼고럼. 이 이글님이 쓰는 건데 당연하지~. 자, 누가 먼저 할래?”
“내가 먼저 하지 뭐. 나중에 가면 막 에스컬레이트하고 그럴 거 아냐.”
루이스가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연스레 그 옆에 앉은 벨져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이글을 쏘아봤지만 이렇게까지 한 이상 혼자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방송이라고 메이크업까지 한 벨져는 자기 쪽으로 카메라를 살짝 돌리곤 머리를 매만졌다. 이글은 두 사람 사이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꺼놨던 마이크를 켜고 대기화면을 치웠다. 유유히 흘러가던 채팅창이 채 읽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안녕~, 이글이글이의 벌칙방송~. 오늘은 쉬레님과 프로즌님이 함께해주실 겁니다. 아쉽지만 저는 오늘 시청자할 거구요. 자, 인사인사.”
“안녕하세요, 프로즌입니다.”
“쉬레입니다.”
루이스가 가볍게 박수를 치고, 이글은 잠시 오늘의 게임과 규칙을 소개했다. 첫째, 중간에 그만두기 없기. 둘째, 힌트랑 채팅창 보기 없기. 셋째. 불 켜지 않기. 이글이 윙크와 함께 인사를 마치자 때마침 심부름 보냈던 토마스가 뜨끈한 팝콘을 들고 돌아왔다. 이글은 그럼 채팅창에서 보자며 물러나 방의 불을 껐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둘만의 시간이었다.
“음, 이거 어쩌지. 이글이 하는 것처럼은 못하겠고…. 으음, 여러분 저희끼리 게임할게요...? 너무 뭐라 하지 마시고 예쁘게 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루이스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벨져도 고개를 까딱였다. 깜깜한 방안에 불빛이라곤 모니터와 스탠드 하나. 익숙한 방이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배경음악이 더해지니 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벨져는 조용히 제게 시작한다며 스타트를 누르는 루이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벨져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니터를 바라봤다. 1인칭 게임이라 화면이 움직이고, 루이스는 침착하게 건물 안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아직까지는 뭐가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조심은 하고 있지만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루이스를 오래 보긴 했지만 공포 게임을 하는 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반응을 할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루이스는 침착하게 탐색을 계속하며 아이템들을 줍는 중이었다. 괜히 가구를 건드려보며 돌아다니다 뭘 건드렸는지 이상한 소리와 함께 화면이 흔들리며 흐려졌다.
튜토리얼이나 다름없는 초반이라 화면에 뜨는 스크립트를 소리 내어 읽고 설명하는 루이스의 목소리가 꽤 듣기 좋았다. 발음이 꽤 씹히긴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조근조근 말하니 알아듣기 훨씬 편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하면 좋을 텐데. 벨져는 루이스가 인터뷰를 할 때나 부스 안에 들어갔을 때 하는 말과 제게 머리를 기대며 웃는 걸 떠올리고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역시 지금 이대로가 좋다.
벨져는 키보드에 손을 얹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루이스를 흘긋 바라봤다. 시끄러운 노이즈가 거슬리긴 했지만 벨져는 그것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있었다. 어둠 속 방금 샤워를 마친 루이스의 고운 얼굴이 모니터에 반사되어 비치고, 루이스의 몸에선 약한 샴푸 냄새가 풍겼다. 벨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 코를 매만졌다.
“어우, 깜짝이야.”
순간적으로 난 큰소리에 루이스를 보던 벨져도 움찔했다. 루이스는 벨져를 보며 허허 웃고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벨져.”
“왜.”
“나 이거 못하면 네가 깨줘야 해?”
“왜, 무섭냐?”
“조금.”
벨져는 랜턴을 얻더니 조금 더 과감하게 여기저기 건드려보는 루이스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무서워하긴 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인데, 옆방에서 팝콘을 끼고 구경중일 이글이 엿먹을 생각을 하던 벨져는 슬쩍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자기가 필요하다는데 도와줘야지. 벨져는 묘한 뿌듯함과 함께 모니터를 바라봤다. 팔짱을 풀고, 루이스의 다리에 손을 얹어도 루이스는 별 말 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복도를 걸어갔다. 별로 밝지도 않은 램프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찔러 보고 다니는 상황인데, 확실히 분위기라던가 음악이 음산했다.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루이스만 보고 있었던 벨져는 이제야 그걸 느끼며 화면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건데?”
“어 얘 이름은 다니엘인데, 그림자한테 쫓기는 중이고 알랙산더라는 사람을 죽여야 돼. 자기가 약을 먹고 기억을 지운 다음에 성에서 깨어났어.”
“흐음.”
“그리고 공포를 느끼면 화면이 흔들리고 그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라 벨져는 같이 화면을 보다 다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굳이 도와줄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엄살은. 벨져는 다시 화면을 보는 척 루이스 보기에 열중했다. 늘 같이 게임을 하다 보니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방송을 복기할 때나 루이스의 갤러리, 팬카페에 보정된 짤을 수집할 때 뿐이었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둑한 방 안에 불빛이라곤 모니터의 약한 빛 뿐. 그마저도 공포게임이라 화면이 어두컴컴해 화면보다는 루이스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디가 뜻대로 되지 않는지 아니면 정말 무섭기라도 한 건지 루이스가 잠시 멈춰서 입가를 매만지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AOS 게임 특성상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판단과 오더를 내리는 사령탑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선수로 뛰어난 것만이 아니라 코치로도 우수한 편이었다. 상대의 사소한 습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는 냉철함과 집중력,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이 프로즌의 가장 큰 무기다. 벨져는 그렇기에 프로즌의 오더를 따랐다. 어느 쪽에도 치중되지 않는 최적의 판단. 물론 그 판단이 언제나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벨져는 루이스를 믿었다.
홀든 A는 사실상 프로즌이 있기에 구성되는 팀이다. 언론과 팬들, 심지어는 다른 팀들까지 홀든 A의 중심을 쉬레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틀린 얘기였다. 프로즌이 있기에 쉬레가 있고, 쉬레가 있기에 프로즌이 있으며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루이스가 없었다면 서로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 다른 형제들이 한 팀에 모이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프로즌은 절대로 팀을 버리지 않는다.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승리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다르다. 그걸 알기에 이글 놈도 진즉 옆에 끼고 돌았던 거겠지. 벨져가 잠시 꽁기해진 나머지 팔짱을 끼는데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루이스가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스읍, 하아….”
음침한 공간, 저 멀리에서 괴수가 얼쩡거리는 게 보여 벨져는 슬쩍 루이스의 안색을 살폈다. 잔뜩 긴장한 채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게 퍽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리자 루이스가 눈을 흘기며 주먹으로 가볍게 벨져의 어깨를 쳤다.
“저런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아, 그럼 보지만 말고 네가 하던가. 저거 해치우지도 못해.”
꿍얼거리며 하는 투정에 벨져는 피식 웃었다. 귀엽기는. 이제 겨우 시작한지 이십분 쯤 된 것 같은데 벌써 투덜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워 좀 더 놀려주고 싶었기에 슬쩍 말을 흘렸다.
“점점 강도가 올라갈 텐데 그럼 나야 고맙지.”
“아냐, 그냥 내가 할게.”
벨져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순식간에 진지해진 목소리와 눈빛이 결연했다. 아직도 어슬렁거리는 크리쳐를 본 벨져는 마른세수를 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는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모처럼 이글 녀석이 기특한 짓을 했으니 노래를 부르던 운동화 한 켤레 쯤은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벨져는 제 품에 안겨드는 루이스를 안고 토닥였다.
“마저 해야지.”
“이런 거 진짜 싫어…. 하아….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왜긴 왜야, 빨리 진행이나 해. 이대로 밤 샐 거냐?”
“이글이 보고 있겠지?”
벨져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냐며 루이스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고, 루이스가 다시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 후로 다시 심기일전하고 크리처를 피해 다니며 이리저리 숨기를 반복했다. 옷장 속에 틀어박혀 랜턴도 못 키고 벌벌 떠는 주인공의 심리에 이입한 나머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루이스를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쫓기면서 괴상 쩍은 비명도 지르고 안 무서운 척 허허 웃다가도 퍼즐은 또 척척 잘 푸는 게, 아무래도 비제이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오히려 이글보다 인기가 많을 지도 모른다.
벨져가 중간중간 자기가 대신 하겠다고 선수 교대를 자처했지만 루이스는 무서워하면서도 끝끝내 마우스와 키보드를 놓지 않았다. 중간에 이글이 알려주러 올 테니 거기까진 꼭 자기가 다 하겠다는 건데, 이미 진즉에 반절을 넘어온 것 같다고 말을 해줘도 듣지를 않았다. 이럴 때 보면 또 묘한 데 고집이 세다. 어쨌거나 벨져는 이런 거에 하나하나 놀라는 것도 흉측한 크리처를 상대하며 도망치는 게임도 별로였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루이스 옆에서 훈수를 두며 루이스가 놀라고 무서워하는 걸 실컷 구경했다.
처음엔 그래도 체면치레를 하더니, 루이스는 가면 갈수록 방송이라는 걸 잊고 벨져에게 우는 소리를 하며 엎어졌다. 뭐가 나타날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면서 급히 랜턴을 끄네 어디에 숨네 하며 혼잣말을 하고, 벨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손을 잡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벨져는 그런 루이스를 타박하면서도 손을 잡아주고, 대신 화면을 보며 옷장 문을 열어주고, 그러다 한 번 걸려서 세이브 지점까지 다시 돌아가길 반복했다.
그렇게 중간까지 자기가 하겠다던 루이스는 마지막 보스의 방을 앞에 두고 정신을 차렸다. 쎄한 느낌에 벨져를 바라보니 벨져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루이스를 마주봤다. 그제야 이런데 흥미가 없는 벨져가 왜 자꾸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는지 깨달은 루이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벨져의 무릎으로 엎어졌다. 허탈한 나머지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그래? 미쳤어?”
“흐흐흐, 흐흐하하하.”
“게임 주인공이 미쳐간다고 너까지 미치면 어떻게 해?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빨리 끝내지?”
“아…, 진짜…. 하아…. 내가 진짜….”
“미련하긴. 그래서 내가 한다고 할 때 듣지 이제 와서 찌질대긴.”
루이스는 틀린 말 하나 없는 벨져의 얄미운 말에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좀 더 진심으로 얘기하지, 그걸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니. 갑자기 밀려드는 억울함에 루이스는 의자도 뒤로 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 보니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본 적이 없었다. 루이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허허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제가 바보짓을 한 거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루이스가 그러고 가만있으니 벨져가 루이스가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밀어 옆으로 밀고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잡았다. 루이스는 제가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벨져와 이제 최종장을 앞에 둔 게임 화면을 보며 멍때렸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게임이 끝나고 엔딩 영상이 재생되는데,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하아….”
“끝났네. 다 잡아먹히고 끝.”
“난……. 대체 뭘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벌칙게임 수행.”
얄밉기 그지없는 말에 루이스는 억울함을 담아 벨져의 팔을 쳤다. 벨져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이스를 보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게임을 껐다. 그제야 나타난 채팅창과 방송화면이 보여 루이스는 다시 한 번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이거 벌칙 게임이었지. 언제부턴가 그걸 까맣게 잊어버린 루이스는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곤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네, 다 했습니다. 다니엘은 네…. 이렇게 됐네요. 이상 프로즌이었습니다.”
“쉬레였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하게 해준 그 새끼를 보신 분은 제게 연락 주십시오. 그럼 이만.”
벨져는 늘어진 루이스를 대신해 방송을 종료했다. 잠깐 본 채팅창에 이글이 자러 갔다는 말을 본 벨져는 따로 방송용 캠과 마이크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컴퓨터의 전원도 끄고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열시쯤 시작해서 쉼 없이 달렸는데도 벌써 해가 떠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루이스.”
“몰라, 내버려둬.”
“자야지.”
루이스는 대답 대신 힘없이 벨져의 손을 쳐냈다. 저를 쏘아보는 붉은 눈동자에 벨져는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으쓱했다. 도와준다고 할 때 됐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라는 명백한 표현에 루이스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축 늘어져 천장을 바라봤다.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깜깜했는데. 방에 전기불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방 안이 푸르스름하게 밝았다.
“해 떴네.”
“이리 와라.”
벨져는 루이스의 침대에 앉아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루이스는 못 이긴 척 다가가 쓰러지듯 누웠고, 벨져는 제 무릎을 베고 누운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함께 누워 눈을 감았다. 꼬박 밤을 새서 그런가 머리를 누이니 졸음이 쏟아졌다. 루이스도 마찬가지인지 별 말 없이 고른 숨을 내쉬고, 벨져는 루이스를 조금 더 바싹 끌어당겨 안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어쨌거나 이제는 잠에 들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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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루이] 킹스맨au
2015/04/04
* 킹스맨AU
** 메모란으로 옮겼던 거 이어봄.
총알이 빗발치는 비상구, 수트를 입은 검은 머리의 남자가 급하게 층계를 올랐다. 한창 쫓기는 중인 남자의 이름은 티엔 정, 안보국의 요원으로 도박장에 잠입했으나 그를 반기는 건 기관총이었다. 티엔은 탄창을 갈아끼우려 허벅지에 손을 뻗었으나 이미 다 써버렸다는 걸 깨닫고 바로 계단의 모퉁이를 돌아 벽 뒤에 몸을 숨겼다. 총알이 박힌 허벅지의 출혈을 막기 위해 급히 넥타이를 풀어 동여맨 티엔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난관을 어찌 빠져나갈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몸에 딱 맞는 쓰리피스 수트에 까만 뿔테 안경, 거기에 한 손에 든 우산까지. 상당히 젊어보이는 건 둘째치고 차림새로 보아하니 도박을 하러 온 손님인 것 같았다. 국적은 아마도 영국. 그러지 않고서야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들고 다닐 리 없다. 조금 전까지 비상구에서 총성이 들렸을 텐데, 스위트룸에서 나오느라 못 들었는지 남자는 여유롭기 그지 없는 태도로 티엔에게 다가왔다. 헬기를 타려면 어떻게든 옥상까진 가야 한다. 비상구에서 저를 쫓는 무장경비원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 밤입니다, 미스터."
티엔은 바로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제압하고 머리에 총구를 댄 채 비상구 문을 마주했다. 거세게 문이 열리고, 제가 잡은 인질이 양손을 들었다. 경비들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들어올 수 없는 층에, 고급스러운 수트를 갖춰입은 남자를 보자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았다. 티엔이 서서히 다가가자 뒤로 물러나는 게 아무래도 제대로 인질 겸 총알받이를 찾은 모양이었다.
"이런 거친 방법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요."
남자를 끌고 헬기장으로 올라가던 티엔은 문득 코끝에 느껴지는 머스크향에 위화감을 깨달았다. 경비병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남자는 인질 치고 허둥대거나 협상을 하려 하지도 않고 너무 침착했다.
"너, 정체가 뭐지?"
잠자코 티엔이 이끄는 대로 따라주던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티엔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티엔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건 절대 일반인이 아니다. 저를 잡으러 온 다른 세력의 사람인가. 티엔은 급히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남자가 티엔의 다친 다리를 을 붙잡는 게 빨랐다.
"자기 소개가 늦어졌군요. 갤러헤드입니다. 미스터 정."
순간 손목이 잡히고, 따끔하는 통증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제 신분이 노출되었단 뜻이다.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를 끝으로, 티엔의 의식은 검게 물들었다.
지끈지끈한 둔통에 깊이 잠들었던 의식이 돌아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린 티엔은 몸을 일으키려다 허벅다리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작게 신음했다. 하늘색 파자마에 다리엔 붕대가 감겨있고 주변은 마호가니 가구가 있는 걸로 보아 고급 호텔이나 그에 준하는 어딘가 같았다.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린 티엔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머리를 굴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갤러헤드라고 했다. 영국 신사인 척 하면서 잘도 비겁한 짓을 하다니. 물론 이렇게 치료까지 해주고 좋은 방을 내주긴 했지만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티엔은 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옷장 앞에 검은색 정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슴 주머니에 꽂혀있는 종이를 빼자 멋드러진 필체로 To. Mr. Jung 이란 메모가 적혀있어 티엔은 주변을 휘 둘러봤다. 방 안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그래도 어디에 어떻게 도청장치나 카메라가 붙어있는지 몰랐다. 괴상한 놀이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 티엔은 파자마를 벗어던졌다.
빳빳하게 다린 드레스셔츠를 맨 몸 위에 걸치고 소매는 단추 대신 옆에 놓인 커프스로 잠근다. 발목까지 완벽한 핏으로 떨어지는 바지를 입은 뒤 벨트의 버클을 정중앙에 오도록 맞추고, 발목을 덮는 검은 양말을 신고 나면 브로그가 없는 옥스포드의 순서였다. 짙은 붉은색에 광택이 나는 넥타이와 금장 핀. 티엔은 셔츠 단추를 잠그며 저를 위해 준비된 것들을 차례로 훑었다.
이 모두가 철저하다 못해 완벽한 신사의 옷차림을 위한 것이었다. 대체 이런 옷차림을 시켜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티엔은 거울을 보며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고 카라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옷걸이에 걸린 재킷을 집어들어 팔을 넣었다. 너무 부드럽지도 빳빳하지도 않은 재킷은 맞춤옷이라도 되는 듯 딱 맞을 뿐더러 티엔에게 퍽 잘 어울렸다. 왜 이러는지는 몰라도 수트만큼은 십점 만점에 십점을 줘도 될 만큼 탁월했다. 앞단추를 잠그고, 양손으로 재킷의 카라를 안쪽으로 잡아 매무새를 다듬는데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고, 티엔은 거울을 통해 정중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신사를 바라봤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터."
"썩 유쾌한 아침 인사는 아니군."
"거친 방법은 선호하지 않아서요. 실례가 됐다면 사과드리죠."
자신을 갤러해드라 칭했던 남자는 퀸즈잉글리쉬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려보이는 얼굴 탓인지 전통적인 영국 귀족이라기보단 젠트리같은 인상이 강했다.
"이렇게 나를 끌고온 목적이 뭐지?"
"끌고 오다뇨. 피곤해보이시길래,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드렸을 뿐인데 제 작은 친절이 과했던 모양이군요. 준비는 다 되신 모양이니 얘기를 조금 나눌 수 있을런지요."
"흠. 내게 선택권이 있나?"
남자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며 문을 열었다. 숙녀를 대하듯 정중하게 문을 열고 기다리는 게 언짢았지만 어쨌거나 지금 티엔은 볼모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높은 확률로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본부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부상을 입었으며 남자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은 굳이 따로 시험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혼자서 자신을 상대하러 나올 일도 없거니와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다. 그도 그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고 일단은 그 보스와 대화를 할 모양이니, 티엔은 일단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어떻게 탈출할지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무턱대고 탈출이나 저항을 하다간 감시와 감독이 더 심해진다는 건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었다.
진홍색 카페트가 깔린 복도와 벽을 보아선 역사가 느껴지는 게 꽤나 고풍스러운 저택같았다. 다른 곳과 달리 문이 두짝인 곳 앞에 다다른 갤러헤드는 잠시 멈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을 들어 똑똑, 무겁지도 경박하지도 않게 문을 두드렸다. 정중하기 그지없고,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예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했다.
"랜슬롯."
"갤러해드."
티엔이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갤러해드가 안으로 들어섰다. 회색에 가까운 은빛 머리카락의 사내.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서류를 보다 고개를 들어 인사를 받았다. 티엔은 그가 서류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부진 몸이며 뺨에 난 십자상처는 절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원탁의 기사의 이름으로 부르는 집단. 티엔은 머릿속에서 여러 기관들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이쪽은 말씀드린 미스터 정입니다."
"수고했군. 앉게."
랜슬롯이란 코드명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갤러해드는 티엔에게 커피와 차 중 어느쪽이 좋으냐 물었고 티엔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커피라 대답했다. 재킷을 정리하며 앉는데 고급스러운 소파의 쿠션이 지나치게 좋았다. 원래 불편한 자리는 맞지만 차라리 허름한 창고에서 묶이면 묶였지, 이런 분위기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피차 할 말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하지."
"바라던 바다."
"리원판. 그자에 대해 도움을 주었음 한다."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원한다면 상부에 요청하는 게 빠를 거다. 무턱대고 정보를 넘길 만큼 허술하진 않으니."
"중국과는 얘기가 된 내용이다. 원한다면 확인해보도록."
예상대로, 간단한 말 몇마디 뿐이었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고, 랜슬롯은 티엔 앞에 서류봉투를 가볍게 던지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미심쩍긴 하지만 단단히 봉해진 서류봉투를 열어본 티엔은 제 상부의 인장이 찍힌 서류에 더 심각해졌다. 인증코드와 암호화된 시리얼넘버까지, 내부인이 아니면 알아볼 수 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그랑플람의 기술이 들어간 서류는 위조품일 수가 없었다.
마침 다가온 갤러해드가 랜슬롯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티엔의 앞에도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갤러해드와 랜슬롯이 주고받은 눈빛. 티엔은 그 잠시의 시선교환에 묘한 기류를 느꼈다. 저건 동료들간에 지을 만한 눈빛이 결코 아니다. 동료요원이라기보단 비서 같은 행동에 티엔은 이 미남자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단번에 저와 같은 부류라는 걸 꿰뚫어본 랜슬롯과 달리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협력하겠다면 그 다음은 갤러헤드가 함께할 거다."
"그 전에 통화를 한 통."
랜슬롯은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티엔에게 주었다. 티엔은 상부와 연결되는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 제 상사가 전화를 받았다. 잘 모르겠지만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들에게 협력하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난처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꽤 영향력이 큰 조직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명령까지 내려왔으니 티엔은 따라야 했다. 말이 협력이지, 뒤로 뺄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강요나 다름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갤러헤드입니다."
"티엔, 티엔 정이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고, 티엔은 갤러헤드의 손을 맞잡았다. 해사한 웃음이, 드디어 그의 앳된 얼굴에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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