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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어떤 게이머의 수난시대
2015/04/10
* 어김없이 게이머au
* 모 게임 네타 주의
어느 선선한 밤, 홀든 A의 숙소에는 유례없이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공기는 대개 소음의 주범인 이글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글은 놀라울 정도로 묵묵히 방송을 위한 세팅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벨져와 루이스의 방에서. 팔짱을 끼고 다리는 꼰 채 침대에 앉아 자신의 공간에 침입한 막내동생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벨져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꼭 해야겠냐?”
“왜, 쫄려? 사나이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이글은 책상에 마이크와 캠을 능숙하게 설치하고는 양손을 착착 치대며 손을 털었다. 영 못마땅해하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시위하는 작은 형을 돌아보며 씩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벨져 홀든의 이런 모습을 어디 보기가 쉬운가. 이글은 오늘 방송이 잘 되면 이 영광을 함께 해준 트롤러에게 바치고 싶었다. 불과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습실에 앉아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쉬레가 프로즌을 끼고 질 리가 없다고 누누히 말하는 게 벨져였다. 하지만 그도 트롤링에는 견디질 못하고 져버린 것이 지금의 결과였다. 아무리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해도 진 건 진 거니까. 내기로 벌칙을 걸고 한 이상 안 한다고 뻗댈 수도 없었다.
이글은 자기 아이디를 치고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 접속해 방을 열었다. 오늘의 방송용 게임은 사이퍼즈가 아닌 무섭기로 소문난 공포게임으로, 어느 정도 머리를 써서 퍼즐을 풀어야 공략이 가능한 게임이었다. 방제를 프로즌과♥쉬레의 내기 벌칙★공포게임실황 으로 바꾼 이글은 뿌듯하게 자신의 작품을 바라봤다.
제 작은형이 불편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웃기고, 루이스가 과연 이번에도 그 얼음같은 침착함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아직 대기화면만 띄워놨을 뿐인데 본방은 물론 중계방까지 우후죽순으로 사람이 들어차는 걸 보며 이글은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주인공 중 한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하러 간 건지 도망간 건지 어쩐 건지 샤워하러 간지라 이글은 벨져의 옆에 앉았다. 남자 둘이 부둥켜안고 자는 침대의 쿠션이 뭐 이리 좋담. 이글은 침대를 툭툭 두드려보곤 벨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형, 좀 기대되지 않아? 그 루이스가 어떻게 나올지? 응?”
“천박하긴.... 이딴 B급 호러가 뭐가 무섭다고.”
“흐응, 그래? 그럼 형은 따로 해야겠다. 이번에 새로 나온 퍼피 파라다이....”
“치워.”
제깍 팔을 쳐내며 질색하는 제 작은형의 반응이 즐거워 이글은 크게 웃었다. 고개를 젖히며 웃다가 뒤로 넘어가 끅끅거리자 벨져가 나가라며 이글을 발로 차 떠미는 바람에 이글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벨져는 이글이 떨어진 후에도 팔짱을 낀 채 밟으며 짜증을 냈다. 호러게임이 무섭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졌다는 게 불쾌한 거라 이글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더 입을 놀렸다.
“아, 그러게 누가 탱커 하래?”
“그 이상한 새끼 때문에 졌지, 네가 잘해서 진 게 아니라고!”
“크크킄큭, 아~ 그러셔? 난 그 사람한테 짱 고마운데, 아이디가 뭐더라 교주 제... 어읔!”
“그만해, 벨져. 애 죽겠다.”
깝죽거리다 정강이를 맞은 이글에게 거실에서 동앗줄이 내려왔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와 피부에 물이 오른 루이스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뭐 하는데?”
“어느 고성에서 깨어났는데 기억이 하나도 없어. 그 성 안에서 기억을 찾아가면서 탈출하는 공포게임이지롱. 아, 혹시 크리쳐 무서워해?”
“피 튀기고 그런 건 좀 싫은데.”
루이스는 머리를 털다 옷장에서 티셔츠를 꺼내 입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질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겁을 먹는 것도 아닌 평온한 얼굴에 이글은 벨져가 한껏 돋워준 흥이 식는 걸 느끼며 길게 콧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오늘 벌칙은 두 사람을 놀리기는 커녕 침착하게 퍼즐을 풀어가는 공략 방송이 될 것 같다. 뭐, 그런 점이 루이스답긴 하지만 이래서야 기껏 준비한 보람이 없었다.
“다 깰 때까지 불 켜기 없음!”
“해 뜰 때까지 못 깨면 어떻게 해?”
“그럼 못 나오는 거지 뭐.”
“그때까지 못 깰리가 없지 않나.”
벨져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이글은 난이도를 헬 모드로 조정할까 고민하다 그것마저 잘해버리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라 그만 뒀다. 어쨌거나 이미 하기로 했으니 이제 와서 바꿔봤자 그게 그거였다. 이글은 뒤통수를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티셔츠를 적시는 데도 루이스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캠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있었다.
참 생기기도 잘 생겼다. 언젠가 루이스가 없는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을 때 팀원들끼리 한 말도 루이스가 제일 잘 생겨보일 때는 샤워하고 나온 직후라는 거였는데,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루이스에게선 묘한 청순함이 풍겼다. 이러니까 깐깐한 작은 형도 넘어간 거겠지. 이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이스에게 다가가 손수 머리를 말려주는 벨져를 바라봤다. 하여간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이 하나도 없다. 이러니까 맨날 큰형이 포털에 돈을 쓰지. 이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시작한다?”
“그래. 이거 근데 잘 나오나?”
“고럼고럼. 이 이글님이 쓰는 건데 당연하지~. 자, 누가 먼저 할래?”
“내가 먼저 하지 뭐. 나중에 가면 막 에스컬레이트하고 그럴 거 아냐.”
루이스가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연스레 그 옆에 앉은 벨져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이글을 쏘아봤지만 이렇게까지 한 이상 혼자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방송이라고 메이크업까지 한 벨져는 자기 쪽으로 카메라를 살짝 돌리곤 머리를 매만졌다. 이글은 두 사람 사이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꺼놨던 마이크를 켜고 대기화면을 치웠다. 유유히 흘러가던 채팅창이 채 읽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안녕~, 이글이글이의 벌칙방송~. 오늘은 쉬레님과 프로즌님이 함께해주실 겁니다. 아쉽지만 저는 오늘 시청자할 거구요. 자, 인사인사.”
“안녕하세요, 프로즌입니다.”
“쉬레입니다.”
루이스가 가볍게 박수를 치고, 이글은 잠시 오늘의 게임과 규칙을 소개했다. 첫째, 중간에 그만두기 없기. 둘째, 힌트랑 채팅창 보기 없기. 셋째. 불 켜지 않기. 이글이 윙크와 함께 인사를 마치자 때마침 심부름 보냈던 토마스가 뜨끈한 팝콘을 들고 돌아왔다. 이글은 그럼 채팅창에서 보자며 물러나 방의 불을 껐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둘만의 시간이었다.
“음, 이거 어쩌지. 이글이 하는 것처럼은 못하겠고…. 으음, 여러분 저희끼리 게임할게요...? 너무 뭐라 하지 마시고 예쁘게 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루이스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벨져도 고개를 까딱였다. 깜깜한 방안에 불빛이라곤 모니터와 스탠드 하나. 익숙한 방이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배경음악이 더해지니 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벨져는 조용히 제게 시작한다며 스타트를 누르는 루이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벨져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니터를 바라봤다. 1인칭 게임이라 화면이 움직이고, 루이스는 침착하게 건물 안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아직까지는 뭐가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조심은 하고 있지만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루이스를 오래 보긴 했지만 공포 게임을 하는 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반응을 할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루이스는 침착하게 탐색을 계속하며 아이템들을 줍는 중이었다. 괜히 가구를 건드려보며 돌아다니다 뭘 건드렸는지 이상한 소리와 함께 화면이 흔들리며 흐려졌다.
튜토리얼이나 다름없는 초반이라 화면에 뜨는 스크립트를 소리 내어 읽고 설명하는 루이스의 목소리가 꽤 듣기 좋았다. 발음이 꽤 씹히긴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조근조근 말하니 알아듣기 훨씬 편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하면 좋을 텐데. 벨져는 루이스가 인터뷰를 할 때나 부스 안에 들어갔을 때 하는 말과 제게 머리를 기대며 웃는 걸 떠올리고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역시 지금 이대로가 좋다.
벨져는 키보드에 손을 얹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루이스를 흘긋 바라봤다. 시끄러운 노이즈가 거슬리긴 했지만 벨져는 그것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있었다. 어둠 속 방금 샤워를 마친 루이스의 고운 얼굴이 모니터에 반사되어 비치고, 루이스의 몸에선 약한 샴푸 냄새가 풍겼다. 벨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 코를 매만졌다.
“어우, 깜짝이야.”
순간적으로 난 큰소리에 루이스를 보던 벨져도 움찔했다. 루이스는 벨져를 보며 허허 웃고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벨져.”
“왜.”
“나 이거 못하면 네가 깨줘야 해?”
“왜, 무섭냐?”
“조금.”
벨져는 랜턴을 얻더니 조금 더 과감하게 여기저기 건드려보는 루이스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무서워하긴 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인데, 옆방에서 팝콘을 끼고 구경중일 이글이 엿먹을 생각을 하던 벨져는 슬쩍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자기가 필요하다는데 도와줘야지. 벨져는 묘한 뿌듯함과 함께 모니터를 바라봤다. 팔짱을 풀고, 루이스의 다리에 손을 얹어도 루이스는 별 말 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복도를 걸어갔다. 별로 밝지도 않은 램프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찔러 보고 다니는 상황인데, 확실히 분위기라던가 음악이 음산했다.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루이스만 보고 있었던 벨져는 이제야 그걸 느끼며 화면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건데?”
“어 얘 이름은 다니엘인데, 그림자한테 쫓기는 중이고 알랙산더라는 사람을 죽여야 돼. 자기가 약을 먹고 기억을 지운 다음에 성에서 깨어났어.”
“흐음.”
“그리고 공포를 느끼면 화면이 흔들리고 그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라 벨져는 같이 화면을 보다 다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굳이 도와줄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엄살은. 벨져는 다시 화면을 보는 척 루이스 보기에 열중했다. 늘 같이 게임을 하다 보니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방송을 복기할 때나 루이스의 갤러리, 팬카페에 보정된 짤을 수집할 때 뿐이었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둑한 방 안에 불빛이라곤 모니터의 약한 빛 뿐. 그마저도 공포게임이라 화면이 어두컴컴해 화면보다는 루이스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디가 뜻대로 되지 않는지 아니면 정말 무섭기라도 한 건지 루이스가 잠시 멈춰서 입가를 매만지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AOS 게임 특성상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판단과 오더를 내리는 사령탑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선수로 뛰어난 것만이 아니라 코치로도 우수한 편이었다. 상대의 사소한 습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는 냉철함과 집중력,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이 프로즌의 가장 큰 무기다. 벨져는 그렇기에 프로즌의 오더를 따랐다. 어느 쪽에도 치중되지 않는 최적의 판단. 물론 그 판단이 언제나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벨져는 루이스를 믿었다.
홀든 A는 사실상 프로즌이 있기에 구성되는 팀이다. 언론과 팬들, 심지어는 다른 팀들까지 홀든 A의 중심을 쉬레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틀린 얘기였다. 프로즌이 있기에 쉬레가 있고, 쉬레가 있기에 프로즌이 있으며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루이스가 없었다면 서로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 다른 형제들이 한 팀에 모이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프로즌은 절대로 팀을 버리지 않는다.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승리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다르다. 그걸 알기에 이글 놈도 진즉 옆에 끼고 돌았던 거겠지. 벨져가 잠시 꽁기해진 나머지 팔짱을 끼는데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루이스가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스읍, 하아….”
음침한 공간, 저 멀리에서 괴수가 얼쩡거리는 게 보여 벨져는 슬쩍 루이스의 안색을 살폈다. 잔뜩 긴장한 채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게 퍽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리자 루이스가 눈을 흘기며 주먹으로 가볍게 벨져의 어깨를 쳤다.
“저런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아, 그럼 보지만 말고 네가 하던가. 저거 해치우지도 못해.”
꿍얼거리며 하는 투정에 벨져는 피식 웃었다. 귀엽기는. 이제 겨우 시작한지 이십분 쯤 된 것 같은데 벌써 투덜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워 좀 더 놀려주고 싶었기에 슬쩍 말을 흘렸다.
“점점 강도가 올라갈 텐데 그럼 나야 고맙지.”
“아냐, 그냥 내가 할게.”
벨져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순식간에 진지해진 목소리와 눈빛이 결연했다. 아직도 어슬렁거리는 크리쳐를 본 벨져는 마른세수를 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는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모처럼 이글 녀석이 기특한 짓을 했으니 노래를 부르던 운동화 한 켤레 쯤은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벨져는 제 품에 안겨드는 루이스를 안고 토닥였다.
“마저 해야지.”
“이런 거 진짜 싫어…. 하아….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왜긴 왜야, 빨리 진행이나 해. 이대로 밤 샐 거냐?”
“이글이 보고 있겠지?”
벨져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냐며 루이스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고, 루이스가 다시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 후로 다시 심기일전하고 크리처를 피해 다니며 이리저리 숨기를 반복했다. 옷장 속에 틀어박혀 랜턴도 못 키고 벌벌 떠는 주인공의 심리에 이입한 나머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루이스를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쫓기면서 괴상 쩍은 비명도 지르고 안 무서운 척 허허 웃다가도 퍼즐은 또 척척 잘 푸는 게, 아무래도 비제이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오히려 이글보다 인기가 많을 지도 모른다.
벨져가 중간중간 자기가 대신 하겠다고 선수 교대를 자처했지만 루이스는 무서워하면서도 끝끝내 마우스와 키보드를 놓지 않았다. 중간에 이글이 알려주러 올 테니 거기까진 꼭 자기가 다 하겠다는 건데, 이미 진즉에 반절을 넘어온 것 같다고 말을 해줘도 듣지를 않았다. 이럴 때 보면 또 묘한 데 고집이 세다. 어쨌거나 벨져는 이런 거에 하나하나 놀라는 것도 흉측한 크리처를 상대하며 도망치는 게임도 별로였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루이스 옆에서 훈수를 두며 루이스가 놀라고 무서워하는 걸 실컷 구경했다.
처음엔 그래도 체면치레를 하더니, 루이스는 가면 갈수록 방송이라는 걸 잊고 벨져에게 우는 소리를 하며 엎어졌다. 뭐가 나타날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면서 급히 랜턴을 끄네 어디에 숨네 하며 혼잣말을 하고, 벨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손을 잡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벨져는 그런 루이스를 타박하면서도 손을 잡아주고, 대신 화면을 보며 옷장 문을 열어주고, 그러다 한 번 걸려서 세이브 지점까지 다시 돌아가길 반복했다.
그렇게 중간까지 자기가 하겠다던 루이스는 마지막 보스의 방을 앞에 두고 정신을 차렸다. 쎄한 느낌에 벨져를 바라보니 벨져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루이스를 마주봤다. 그제야 이런데 흥미가 없는 벨져가 왜 자꾸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는지 깨달은 루이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벨져의 무릎으로 엎어졌다. 허탈한 나머지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그래? 미쳤어?”
“흐흐흐, 흐흐하하하.”
“게임 주인공이 미쳐간다고 너까지 미치면 어떻게 해?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빨리 끝내지?”
“아…, 진짜…. 하아…. 내가 진짜….”
“미련하긴. 그래서 내가 한다고 할 때 듣지 이제 와서 찌질대긴.”
루이스는 틀린 말 하나 없는 벨져의 얄미운 말에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좀 더 진심으로 얘기하지, 그걸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니. 갑자기 밀려드는 억울함에 루이스는 의자도 뒤로 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 보니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본 적이 없었다. 루이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허허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제가 바보짓을 한 거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루이스가 그러고 가만있으니 벨져가 루이스가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밀어 옆으로 밀고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잡았다. 루이스는 제가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벨져와 이제 최종장을 앞에 둔 게임 화면을 보며 멍때렸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게임이 끝나고 엔딩 영상이 재생되는데,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하아….”
“끝났네. 다 잡아먹히고 끝.”
“난……. 대체 뭘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벌칙게임 수행.”
얄밉기 그지없는 말에 루이스는 억울함을 담아 벨져의 팔을 쳤다. 벨져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이스를 보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게임을 껐다. 그제야 나타난 채팅창과 방송화면이 보여 루이스는 다시 한 번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이거 벌칙 게임이었지. 언제부턴가 그걸 까맣게 잊어버린 루이스는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곤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네, 다 했습니다. 다니엘은 네…. 이렇게 됐네요. 이상 프로즌이었습니다.”
“쉬레였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하게 해준 그 새끼를 보신 분은 제게 연락 주십시오. 그럼 이만.”
벨져는 늘어진 루이스를 대신해 방송을 종료했다. 잠깐 본 채팅창에 이글이 자러 갔다는 말을 본 벨져는 따로 방송용 캠과 마이크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컴퓨터의 전원도 끄고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열시쯤 시작해서 쉼 없이 달렸는데도 벌써 해가 떠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루이스.”
“몰라, 내버려둬.”
“자야지.”
루이스는 대답 대신 힘없이 벨져의 손을 쳐냈다. 저를 쏘아보는 붉은 눈동자에 벨져는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으쓱했다. 도와준다고 할 때 됐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라는 명백한 표현에 루이스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축 늘어져 천장을 바라봤다.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깜깜했는데. 방에 전기불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방 안이 푸르스름하게 밝았다.
“해 떴네.”
“이리 와라.”
벨져는 루이스의 침대에 앉아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루이스는 못 이긴 척 다가가 쓰러지듯 누웠고, 벨져는 제 무릎을 베고 누운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함께 누워 눈을 감았다. 꼬박 밤을 새서 그런가 머리를 누이니 졸음이 쏟아졌다. 루이스도 마찬가지인지 별 말 없이 고른 숨을 내쉬고, 벨져는 루이스를 조금 더 바싹 끌어당겨 안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어쨌거나 이제는 잠에 들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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