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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토마] 어느 짝사랑.
오메가버스, 벨져루이<토마
토마스가 루이스를 향한 외로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토마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 제 자리로 향했다. 비록 잔뜩 쌓인 서류뿐이지만 그래도 긴 싸움이 끝난 후라 그마저도 반가웠지만, 그것도 채 이주를 넘기진 못했다. 서류지옥. 서류지옥, 그리고 또 서류지옥. 차라리 현장 수습이 백배는 낫다. 요 이주간 자신은 한 곳에 진득하게 앉아있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지독하게 느낀 토마스는 축 쳐진 채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토마스를 맞이한 건 전후 처리로 서류가 잔뜩 쌓인 책상이 아니라 불안하게 웃으며 반기는 연합의 동료들이었다. 도망가야 한다. 지금 당장! 토마스 안의 위험 센서가 붉은 색으로 빛나며 사이렌 경보를 울렸다.
“아, 잠깐 잊은 게 있어서....”
“토오마아스으.”
“억.”
“너네 선배에 대한 특종이다. 그래도 안 듣고 갈래?”
루이스의 이름이 나온 이상 도망갈 수 없다. 토마스는 삐걱거리는 트루퍼처럼 고개를 돌렸다. 제 목덜미를 잡아챈 이글이 위험하게 미소지었다. 여기서라도 도망을 갔어야 했는데. 어쩐지 오늘은 이상하게 운수가 좋더라니. 웃으며 다가오는 동료들이 무서웠다. 등골에 식은땀이 오싹하게 흘렀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토마스는 루이스를 잠시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건만, 이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순간 토마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충격이라고 하기도 뭐한 뉴스였다. 그러니까, 왜? 어째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아노미 상태에 빠진 토마스를 위로하는 대신, 연합의 동료들은 친절하게도 그들의 요구조건을 면전에 디밀었다. 자기들은 물어볼 엄두가 안 나니 대신 물어봐 달란다. 토마스는 저항했다. 그러나 막내라는 것은 슬픈 운명을 타고나기 마련이니, 토마스가 한 번 발동이 걸린 그들을 멈출 수 있을리 만무했다.
“아, 못해요! 어떻게 그런 걸 물어봐요!”
“아 그럼 어쩌냐! 나도 궁금해 죽겠는데, 작은형은 절대 말 안한다고!”
“마, 퍼뜩 갔다 온나!”
“그래, 토마스! 신세대 영웅님답게 가서 시원하게 물어봐달라구!”
“자, 자, 화이팅!”
결국 토마스는 떠밀리다 못해 루이스의 사무실에 던져졌다. 고작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있던 사람까지 이 서류지옥에 끌려올 정도로 일이 많기 때문에 우연히 사무실을 비웠다던가 하는 일은 아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서류를 보고 있던 루이스가 불청객의 방문에 고개를 들었다.
“토마스?”
“아, 하하하. 오늘도 좋은 오후에요. 선배.”
“점심 다 지났는데 여긴 왜. 나 오늘 점심 먹었어.”
“정말요? 뭐 드셨어요?”
“샌드위치.”
루이스는 책상 한 켠에 치워둔 종이봉투를 가리켰다. 퇴원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밥도 거르고 일을 하는 일이 잦다보니 서류 배달을 올 때마다 잔소리를 하고 점심 배달을 한 토마스였다. 루이스는 이것 보라는 듯이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순수하게 기뻐했을 테지만, 방금 듣고 온 소식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순수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 토마스는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으며 문 너머로 느껴지는 시선과 기대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목 안쪽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확인하지 않고는 내내 밤잠을 설칠 게 분명했다.
“저.... 하나 여쭤 봐도 돼요?”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면.”
루이스가 서류를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이 펜을 내려놓고 저를 올려다보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토마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선배. 진짜 벨져랑 사귀어요?”
“응. 그런데 왜, 신기해?”
토마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례라는 건 알지만 루이스는 토마스가 어설프게 감춘다고 모를 사람도 아니고, 그런 거에 하나하나 기분 상할 사람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면 대답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가르치는 사이 정이 들었는지 자길 동경하는 녀석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루이스는 토마스에게는 유달리 유했다.
“그... 둘 다 알파잖아요....?”
“응.”
“괜찮아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루이스가 피식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안경을 벗어 내려놓고, 눈을 비비는 그에 토마스는 무심코 감탄했다.
“뭐, 불편하긴 한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니야.”
“그런가요.”
“그런 거지. 으으, 뻐근하다. 커피 마실래?”
기지개를 켠 루이스는 후배를 두고 일어났다. 토마스가 움직이려했으나 루이스가 한 발 먼저 커피포트를 집었다. 잔을 들어 살짝 흔드는 루이스에게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좋아하는 친구를 뺏긴 기분처럼 서운섭섭했다. 알파와 베타, 그리고 오메가. 그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필연적인 선이 그어져있었다. 알파는 오메가와 베타는 베타와. 넘어갈 수도, 어찌 해볼 수도 없는 높은 벽. 루이스가 건넨 따뜻한 커피를 받아든 토마스는 고개를 꾸벅였다. 김이 오르는 커피에 제 얼굴이 반사됐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그런 것뿐이야.”
루이스는 덤덤하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철제 의자가 삐그덕거렸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게 된 토마스는 가만히 커피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요?”
“글쎄. 정신 차리고 보니까 그렇게 됐더라. 별 건 없었어.”
토마스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음이 향하는 건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는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오메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알파이기 때문에 접었던 마음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한 번 해볼걸. 토마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벨져가 우성이라서요?”
“아니.”
루이스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곧 스물여덟이 되는 그에겐 제 질문이 어린아이의 순진한 질문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토마스는 머그잔을 꽉 쥐었다. 토마스와 만날 때부터 날카롭게 날이 서있던 그였다. 트리비아와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토마스는 그와 그녀가 갈라서게 된 것이 결국 그들이 정해진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땐 그 역시 베타였다. 루이스는 늦게 발현한 편이었고, 본인조차 성질이 변했는지 모를 정도로 자신에겐 무심했다. 열성이기도 하지만 그라는 사람 자체가 그랬다. 다른 사람에겐 그렇게 세심한 주제에. 그럴 거면 그렇게 잘 해주지나 말지.
토마스는 억울했다. 억울할 일이 아닌데도 억울했다. 가끔 비추던 미소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던 손길이, 잘했다는 칭찬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됐는지 모른다. 루이스는 가식이나 겉치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언뜻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있다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람을 챙기고 배려하는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당연했다.
영웅은 영웅.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영웅 루이스는 세월 속에 더 굳건해졌고, 다시 시작된 전쟁은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와 벨져 홀든이 같은 적을 상대하며 서로를 옆에 두었기 때문에. 루이스는 아무에게나 등 뒤를 맡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벨져와 등을 맞대고, 일선에서 안타리우스의 클론을 상대하는 모습을 토마스는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과는 다른 의미의 영웅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순간 토마스는 깨달았다. 나는 저 사람과 등을 맞대고 싸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먼 훗날 언젠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의 등을 이 거리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더 강해지려했다. 평화를 지키고 싶었다. 한참 말이 없는 토마스의 머리 위로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마스.”
“네.”
“넌 잘해낼 거다. 걱정하지마. 그게 아직은 아닐 뿐이야.”
상냥한 위로에 토마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데.
“나도 알아. 이제 겨우 알게 됐거든. 혼자 짊어지려는 나쁜 버릇.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 녀석은 후려쳐서라도 끌고 나와주더라고. 그래서 나는 나로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가 아닐까. 매일 싸우지만, 이번엔 잘 해보려고.”
루이스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 풋풋한 표정이 정말 연애를 하는 사람의 표정이라 가슴이 꽉 막혔다. 세상의 반쪽이 뚝 떨어져나간 상실감이 이럴까. 토마스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런 제게 웃어주었다. 다 괜찮다는 듯이, 전부 이해한다는 듯이. 사실은 하나도 모르면서.
“질문은 그게 끝이야?”
“...네.”
“대답은 한 것 같네. 더 필요해?”
“아니요.”
“그럼 이제 할 일 해야지.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전해주고.”
루이스가 안경을 다시 쓰며 고개를 까딱였다. 토마스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문에 찰싹 붙어있던 이글과 레베카, 나이오비, 도일이 한 번에 우르르 쏟아져 저마다 억소리를 내더니 루이스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일 좀 하지 그래? 애 좀 적당히 괴롭혀.”
“아니 우리가 뭘 괴롭혔다고 그래~.”
“지금 네가 괴롭히고 있잖아, 이글 홀든.”
“우리 갈게. 일해, 일. 일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야! 너 진짜 우리 작은형이랑 사귀냐?”
“그렇게 물어볼 거면 뭐하러 애를 보내?”
직구를 던지는 이글에게 루이스가 빠르게 종이를 구겨 집어 던졌다. 이글은 잽싸게 옆으로 피하곤 레베카가 끌어당기는 것도 아랑곳 않고 속사포처럼 다음 질문을 던졌다.
“작은형 어디가 좋아서?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 키스는 했어? 아,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좀 알려줘라!”
“그렇게 궁금하면 니네 형한테 물어봐라!”
“옳소!”
“내도 실은 그짝이 더 궁금하데이.”
“...다 얼려버리기 전에 나가!”
한바탕 소란 끝에 사무실을 나온 이들은 왜 사귈까 어디가 좋았을까 하는 것도 잠시, 궁금증이 풀리자마자 제각각 그들의 자리로 향했다. 이글은 일 대신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지만 어쨌거나. 서류가 가득한 책상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연애를 막 시작한, 뿌듯하고 기쁘고 또 한편으론 쑥스러워하는 루이스의 얼굴이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듣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요 며칠은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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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좋은 날
홀든A팀의 팬인 클레어 설정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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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은퇴 후, 동거하는 벨루.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내친집!”
“안녕하신가! 정의롭고 힘찬 오후일세!”
“로라스씨, 오늘 찾아갈 집이 아주 특별한 곳이라면서요?”
“그렇다! 오늘은 특이한 직업군에 있는 유명인 집에 찾아갈 예정이지!”
“어우,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자, 그럼 주인공을 찾아 가봅시다!”
케이블 채널의 인기프로 ‘내 친구의 집’을 진행하는 두 엠씨, 클레어와 로라스는 오늘도 활기차게 오프닝을 열었다. 오늘 찾아갈 곳은 다름 아닌 전직 프로게이머이자 현 기획사 사장 벨져 홀든의 집. 이미 수차례 팬들로부터 요청이 들어왔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클레어는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둘러보다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보이며 방긋 웃었다.
이번 촬영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클레어였다. 매번 거절당하는 피디와 작가들 대신 그 어렵다는 촬영허가를 받아낸 게 바로 그녀다. 물론 그 적극적인 태도에 사심이 들어있지 않다고는 말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 ‘벨져 홀든’에게 촬영허가를 받아냈다는 게 중요하지.
클레어는 잠시 이 일을 성사시켜준 베프를 떠올렸다. 촬영만 잘 끝나면 꼭 하루 데이트 풀코스를 쏘리라. 클레어는 오랜만에 만난 로라스와 담소를 나누며 차로 이동했다. 호기심 유발용 힌트 멘트를 따는 사이 차가 한 고급 아파트 앞 카페에 멈췄다.
차에서 내리기 전 화장을 고친 클레어는 차에서 내리기 전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었다. 아자아자, 파이팅! 일이라고 하면 떨리지도 않을 텐데, 결코 팬심이 없다고 할 수 없기에 두근거렸다.
클레어는 마음을 다잡고 치마를 털었다. 분주한 카메라 감독님과 작가들 사이로 범접할 수 없는 클라스를 당당히 과시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꺄악! 클레어는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특별 공연 전후로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커피를 마시던 벨져 홀든이 일어나 클레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감격한 팬의 마음으로 악수하고, 화장실에 갔던 로라스와 벨져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클레어는 자리에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했다. 그래도 직업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다 보니,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진행자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다보니 한껏 긴장상태였던 제작진들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클레어 특유의 발랄하고 유쾌한 리액션도 있지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선을 딱 긋고 방송을 하는 벨져의 태도도 한 몫 했다.
방송을 하기엔 편하지만, 그것뿐이다 보니 클레어는 조금 아쉬웠다. 한 사람의 팬으로선 아무래도 인간 벨져 홀든이나 쉬레가 아닌 기획사 대표 벨져 홀든 같아 들뜬 마음이 가라앉았다. 카페 안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벨져와 함께 아파트로 향했다.
그토록 기대하고 기다리던 집 앞, 클레어는 도어락을 가리고 문을 여는 벨져 뒤에서 심호흡했다. 모두 숨죽인 복도에 전자음만 울렸다. 일 년 전에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방송 생활을 시작한 프로즌이 자취하던 걸 쉬레가 불러다 동거하기 시작한 게 딱 두 달 전이었다.
덕분에 팬덤은 또다시 뒤집어졌고, 클레어와 로라스가 진행하는 내친집에도 팬들의 요청이 수없이 들어왔다. 그들의 살림집이 궁금한 건 클레어도 마찬가지였고, 벨져 홀든편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나가자마자 화제가 된 지라 제작진도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오늘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집을 공개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리네요.”
벨져가 의례적인 미소와 함께 문을 열었다. 카메라가 먼저 들어가고, 클레어와 로라스도 벨져를 따라 발을 옮겼다. 전체적으로 화이트와 그레이의 심플한 인테리어가 깔끔하면서 모던했다. 오빠들 잘해놓고 사는구나. 클레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탄하며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넓고 깔끔한 집은 남자 두 사람이 사는 것치고는 엄청나게 관리가 잘된 편이었다. 과연 벨져 홀든. 감탄하며 둘러보던 로라스가 직접 청소한 거냐고 묻자 벨져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쉬레님께서 직접 청소를 할 리가.
클레어는 거실 소파 쿠션 사이에 자리한 아이스와 래피드의 인형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사진도, 트로피도 없이 넓기만 한 집이지만 생활감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클레어는 두 달 전 라디오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리첼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한 쉬레와, 깜짝 이벤트로 전화연결을 한 프로즌. 그것만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이 미소가 번졌다.
[오늘의 사연입니다. 제목부터가 강렬해요. 익명님께서 보내주신, 쉬레님의 치명적 단점. 이거, 벨져씨가 읽어주시겠어요?]
[아무래도 내부 고발자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데요. 잡히면 죽습니다.]
[아이, 오늘은 저희 호라이즌 빛나는 밤에의 청취자분이시니까요, 잘 읽어주세요!]
[큼, 큼.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쉬레님의 오랜 팬입니다. 저희 오빠는 잘생기고, 게임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돈도 많고,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어우, 칭찬 일색이네요.]
[그런 저희 오빠에게도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답니다.]
[벨져씨한테 단점이요?]
[큼, 크흠. 그건 바로……. 하아. 이거 제가 계속 읽어야 하나요?]
[아이, 읽어주세요.]
[친구가 없다는 겁니다. 여자 친구도 없고, 그냥 친구도 없는 것 같아요. 맨날 보면 프로즌이랑 다니고 밖에 따로 다니는 친구가 없는 것 같아서 늘 걱정입니다. 이러다 프로즌이 결혼하면 저희 오빠는 어쩌죠? 있습니다. 친구. 있어요. 있습니다.]
[어머, 정말 벨져씨를 좋아하는 분이신가봐요. 이렇게 걱정도 해주시고.]
[후……. 쓸데없는 걱정 같은데요.]
[네에, 그럼 여기서 전화연결 해보겠습니다. 청취자분의 익명성을 위해 음성변조를 해드리겠습니다. 연결 됐나요? 익명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너, 누구냐.]
[오빠……. 제가요……. 오빠 장가는 언제 갈까 걱정이 많아요…….]
[어우, 벨져씨랑 친하신 분인가봐요.]
[저 친구 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이글이니?]
[오빠…….]
[야!!! 야익…….!]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왜 익명 보장을 안 해줘요. 첫마디 떼는데 바로 이렇게 음성변조 빼고. 밑장빼기 있습니까?]
[하하하, 아무래도 저희 음향감독님이 실수를 하신 것 같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너 죽는다?]
[네 안녕하세요, 호라이즌 빛나는 밤에 청취자 여러분. 프로즌 루이스입니다. 또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모자란 점이 많지만 저희 벨져씨 잘 부탁드리구요. 다음엔 또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딜 와.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와.]
[네, 좀 있으면 벨져씨 생일이에요. 다들 축하해주시구요]
[어디야? 집이야?]
[그럼 저는 이만 자도록 하겠습니다.]
[왜 벌써 자?]
[벨져씨 조심히 들어오시구요. 리첼씨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호라이즌 파이팅!]
[야!]
[벨져야 우리 팀의 이미지를 생각해.]
[팀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놈이 허구헌날 술 쳐먹고 다니고! 어?]
[어 어... 사회적인 교류는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거야.]
[교류를 인사불성으로 하냐?]
[사랑해.]
[어우, 두 분 사이가 정말 사랑이 넘치시네요. 지금 문자가 난리에요. 난리.]
[됐고, 어젠 어디서 잤어? 지금 어디야?]
[집에서 봐요 안녕 안녕 청취자여러분.]
[네, 저는 숙소입니다. 그리고 음... 우리 숙소에 아주 큰일이 생겼어요.]
[레나가 집나갔어?]
[아뇨,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잠자리를 제공해주던 침대가 무너졌어요.]
[아이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ㅋㅋㅋㅋㅋㅋ]
[야 장난치지마.]
[진짜야.... 내가 뭐하러 이런 장난을 치냐. 올때 침대사와요....]
[아니, 뭐, 어쩌다가?]
[우리 집에 기르는 개 있자나. 그 머리 길고 완전 날뛰는 비글. 어, 걔가 그랬어. 우리 숙소에 와보니까 그렇게 됐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우리 비글이 침대를 뿌셔먹었구나.]
[굉장히 사람같은 비글이 있으신가봐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나간 사이에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네요.]
[알았어요. 제가 집에 갈 때 꼭 침대 사갈 테니까요. 루이스씨는 그거 고친다고 한밤중에 망치 꺼내지 말고 기다려요. 알았죠?]
[와 이 가식적인 말투 봐. 누구세요? 저 제 팀메이트를 찾는데요.]
[잘해줘도 욕이냐?]
[엉 빨리 와. 내가 밥 차려놓고 기다릴게요.]
[네가 했어?]
[샀어, 샀어, 샀어.]
[알았어요. 프로즌씨, 프로즌씨 오늘도 술 먹으러 나가면 이번엔 진짜 도어락 바꿀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아, 안 나갑니다. 벨져씨가 자꾸 저한테 집착해서 걱정이 많아요. 그래도 뭐, 오늘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요.]
[알았어. 기다려.]
[응. 사랑해.]
[어, 나도.]
[와우, 정말 사랑이 넘치시네요.]
[프로즌, 루이스씨가 워낙 못난 영혼이라 제가 거둬 먹여 살려줘야죠.]
[그래도 두 분 정말 사이가 좋아보이세요. 저도 쌍둥이 언니가 있는데 이렇게 친하진 않거든요. 정말 스스럼없이 막대하고 그런 거 보니까 부럽네요.]
[그렇게 부러워하실 건 없습니다. 뭐, 그냥 데리고 사는 거죠.]
[루이스씨가 벨져씨를요?]
[아뇨, 그 반대죠.]
클레어는 다시 듣지 않아도 자동재생되는 라디오 내용을 떠올리며 웃다가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카메라의 사각에서 안면근육 운동을 했다. 두 사람의 스윗한 목소리와 생활감 넘치는 대화가 정말 좋아서 광대가 마구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 클레어는 로라스와 함께 맡은 바 임무에 성실하게 벨져와 루이스의 집을 훑었다. 거실에서 작업실, 그리고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할 정도의 드레스룸에 감탄하고 대망의 침실. 클레어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봤자 별거 없다며 낮게 웃은 벨져가 마침내 문을 열고, 낮임에도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깜깜한 어둠에 클레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무엇이 있는지 채 보기도 전에 앞에 서있던 벨져가 성큼 걸어갔다. 불을 켜나 했더니.
“응? 왜 커튼이.... 뭐야. 너 왜 여기있어.”
적잖이 당황한 눈치의 벨져에 클레어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복도에서 들어오는 빛에 어슴푸레 비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은 넓은 방 안에 떡하니 자리한 침대와, 그 위에 앉아 이불뭉치를 살펴보는 벨져였다. 이불뭉치가 꿈틀거리고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야, 좀 일어나봐. 야.”
당황해서 커졌던 벨져의 목소리가 조금씩 다정해졌다. 촬영중인것도 잊었는지 돌아누운 루이스의 어깨쪽으로 추정되는 이불뭉치를 흔들며 고개를 숙여 속삭이는데, 그 모습이 스윗하기 그지없었다. 이러다 뽀뽀하도 할 기세라 클레어는 눈을 크게 떴다. 스태프들도 모두 숨죽이고 점점 작아져 속삭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일 오는 거 아니었어?”
“아쫌....멍청아.... 시차....”
벨져의 끈질긴 질문 끝에 마침내 이불 속에서 고개를 내민 루이스는 한껏 얼굴을 찌푸리며 잔뜩 긁힌 목소리로 짜증을 내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벨져는 그제야 루이스에게서 떨어져 침대에서 일어났다. 완전 낭패라는 표정이었으나 차마 촬영중이니 나가라고 할 수 없었는지 클레어와 로라스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안방 문을 다시 닫았다.
“죄송합니다. 해외스케줄때문에 일정이 꼬였나봅니다.”
“아, 괜찮아요!”
“넘어가야죠 뭐.”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자 담당 피디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벨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이곤 주방을 보여주겠다며 방송용 미소를 띠웠다. 아마 이 쯤에 편집이 들어갈 것이다. 클레어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한 주방의 모습에 감탄하고, 로라스가 요리를 즐겨하냐고 묻자 벨져는 요리사가 휴가를 가면 가끔 한다고 능청스레 대답했다.
앞에 있었던 헤프닝과 방송분량을 위해서인지 앞치마까지 찾는 그를 보며 클레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팬들이 선물해줬다며 카페 원더 코스튬의 앞치마를 찾아낸 벨져가 허리끈을 질끈 묶었다. 그 팬이 누군지 몰라도, 이 방송이 나가면 꽤나 뿌듯하리라. 그리고 벨져 홀든의 가르송 앞치마 하나에 몇 명이 행복해질지. 클레어는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며 포즈를 잡아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로라스가 원래 토끼 귀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꺼내는데 어찌나 고마운지! 클레어는 로라스를 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침실을 공개하지 못하는 벨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달칵. 문이 열렸다.
“어?”
벨져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퀭한 얼굴의 루이스가 반쯤 풀린 눈으로 비척비척 주방으로 걸어오더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곤 얼이 빠져있는 벨져를 슥 쳐다봤다.
그리곤 다가와 가만 서있는 손을 뻗어 벨져의 뺨을 감싸며 고개를 틀어 입을 맞췄다. 쪽. 물기어린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적나라한 소리에, 눈앞에서 뭐가 벌어졌는지 순간 공황상태가 된 스태프들의 눈이 흔들렸다.
대체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정작 입을 맞춘 장본인은 경악에 빠진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기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덜 풀린 눈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당황하기는 벨져도 마찬가지였는지, 화장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이 새끼야!”
“하하! 오늘도 사이가 좋군! 보기 좋은 우정일세!”
아니 대체 어느 정도로 사이가 좋으면 촬영팀도 인식 못할 정도로 비몽사몽인 사람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뽀뽀를 할 수가 있는 거죠? 클레어는 묻고 싶었으나 벨져가 머리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는 게 더 빨랐다.
“오래 같이 살다보니....”
포기했는지 벨져는 영혼이 탈곡된 표정으로 씨도 안 먹힐 변명을 힘없이 내놓았다. 워낙 순식간에 잡아채서 입술을 훔친 분이 오 년째 동거한 남자가 아니었다면 이번 주 방송은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할 판이었다. 콩깍지가 껴서 그렇지, 원래 이 오빠들은 뽀뽀가 생활이고 습관이라는 걸 떠올린 클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벨져에게 동조해주었다.
“하긴 벨져씨는 루이스씨랑 동거한지 오래되셨죠?”
“선수 생활할 때는 숙소에서 같이 살았으니. 거기다 유명한 징크스도 있으니 그렇겠지. 하하. 드렉슬러도 술을 마시면 자주 주변 사람들한테 뽀뽀를 한다네.”
“원래 자주 저럽니다. 주로 자기 내킬 때.”
“아, 그럼 오늘은...”
“자기 기분이 괜찮은 거죠.”
“하하하. 선수 생활 할 때야 같이 생활하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활동을 따로 하니까. 부딪히는 일도 많기 마련이지. 선수 생활 후에도 이렇게 잘 지내는 경우는 드물고.”
이해한다는 로라스의 말에 벨져가 싱긋 웃었다. 그리곤 화장실 문을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차는데, 그때 또 기가 막히게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오는 수증기와, 젖은 루이스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주방에 있는 촬영팀을 못보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데, 들어갈 때와 달리 아래만 챙겨 입어서 새하얀 등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떨리는 마음에 클레어는 포옥 숨을 내쉬었다. 좀처럼 노출하는 법이 없는 프로즌이다. 그런데 졸지에 서비스 대방출!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클레어는 피디님을 꼬셔서 편집 전 필름을 꼭 복사해서 개인소장하리라 다짐했다. 이건 꼭 소장해야해! 방송인의 마음보다 팬의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럼 다시 갈까요?”
잠깐 깜짝 출연했던 루이스에게 쏠렸던 제작진의 시선이 다시 벨져에게 행했다. 프로즌 루이스도 루이스지만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벨져 홀든이니까. 클레어는 웃으며 아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려 했다. 그러니까, 분명.
달칵.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만 고개가 돌아갔다. 청바지에 후드티, 가벼운 집업재킷을 걸친 루이스가 촬영팀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도 적잖이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침착한 얼굴로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게요.”
“어디 가는데!”
“밖에.”
“아, 저...!”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차키를 가지고 무심하게 손을 흔든 루이스는 그대로 현관을 향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 하고 작게 낸 목소리에 가슴이 기대감으로 콩닥거렸다.
“오랜만이네요, 클레어씨. 로라스씨도, 수고하세요.”
어쩜 우리 프로즌 선수는 피곤한 얼굴도 멋지신지...! 클레어는 잠시 카메라를 꺼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결승전 축하무대를 하러 갔다가 무대 뒤편에서 복잡한 케이블에 걸려 넘어질 뻔한 걸 잡아줬을 때도 꼭 저런 얼굴이었는데. 클레어는 잠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도리 저었다. 아무리 사랑에 빠지기 쉬운 십대 소녀라지만 그래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에는 저스티스리그의 메인 간판 클레어 스미스여야 했다.
그래도 악수 정도는 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지만 이미 닫힌 현관문을 보고 있어봤자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씁쓸하게 고개를 돌리자 뚱한 표정의 벨져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무겁다. 클레어는 일부러 발랄하게 박수를 치며 묘한 기류를 환기해보았다.
“자자, 그럼 다시 힘내서 가자구요!”
“벨져군의 요리 얘기 중이었지?”
“뭐, 늘 있는 일이니까요. 신경 쓰지 마시죠. 뭐, 저 박정하고 메마른 놈의 실체를 까발리셔도 좋습니다. 하하.”
아무리 봐도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지만 그의 미소만큼은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클레어는 그를 따라 웃으며 후에 두 사람이 크게 싸우지 않기를 바랐다. 안 싸우길 바라는 건 오빠들이 늘 화목하고 화기애애하길 바라는 팬의 입장으로 생각해도 무리다. 안 그래도 허구한 날 치고 박고 싸우는데. 클레어는 아까부터 식탁 위에 있던 상자로 그의 관심을 돌려보았다. 그래도 일단은 방송중이니까.
“어머, 그런데 이건 뭐예요? 저희 주시는 선물?”
“아, 잠시만요. 우리 잠꾸러기걸수도 있는데…….”
박스와 쇼핑백을 열어본 벨져의 표정이 묘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표정에 클레어는 빼꼼 내용물을 들여다봤다. 흘긋 뭔가 보이긴 했는데, 금방 상자가 닫히는 바람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하긴 하지만 애초에 남의 물건인데다 벨져도 루이스가 사온 거라며 금방 치워버렸다. 잠시 있었던 해프닝은 그저 해프닝이라는 듯이 촬영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진행됐고 클레어는 만족스럽게 컷을 외치는 피디의 목소리에 어깨에 주고 있던 힘을 뺐다. 일이 끝나니 완전히 팬의 마음이 되어버려서, 꼭 관광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클레어! 다음 스케줄 가야지!”
“네, 가요!”
클레어는 매니저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스태프와 로라스, 작가님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담당 피디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보이질 않았다.
“피디님 먼저 가셨어요?”
“아뇨. 아까 얘기하고 계시던데.”
“감사합니다!”
과연 주방 쪽으로 가니 벨져와 얘기를 나누는 피디가 보였다. 뭔가 자기들끼리 작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아 클레어는 멀찍이 떨어져서 손을 흔들었다.
“감독님!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 응. 조심히 들어가고.”
“네! 벨져씨도 고생하셨어요.”
“고생은요.”
어서 들어가 보라며 손짓하는 피디님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클레어는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그 부분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희가 방송생활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피디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평소처럼 못 들은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 클레어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순수한 호기심에 벽에 바싹 붙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바로 의자가 끌리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서두르라는 매니저를 따라 나왔다.
딱히 오늘 촬영에 문제될 건 없었고, 굳이 있다면 루이스의 난입인데 그것도 그렇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물론 중간에 기습뽀뽀가 좀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로라스의 말처럼 오래되고 스스럼없는 친구사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애정표현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클레어는 엘리베이터를 내려와 대기 중인 차에 올라타려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손바닥을 짝 쳤다. 그리고 감격해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매니저의 구박에 다시 냉큼 차에 올랐다.
설마 저 오빠들 사귀나? 그래서 그런가? 클레어는 양손으로 뺨을 감쌌다. 아무리 두 사람이 잘 생겼고, 쉬레의 프로즌 앓이가 대단하고, 프로즌도 못지않게 쉬레를 챙기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클레어가 내적갈등을 하는 사이 차는 매끄럽게 움직여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 위를 달렸다. 클레어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기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단 말인가. 우리 오빠들이 같이 살겠다는데. 클레어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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