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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3 [릭루이/이글루이] Agent 1
- 2017.10.20 [이글루이] 엘리멘트리au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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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루이/이글루이] Agent
요즘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짬이 안나고 그러는 바람에 옛날에 쓰다 만 거라도 올려놓고 갑니다ㅠ
연재물 업데이트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ㅠㅠㅠ
그를 만난 건 처음으로 참석한 파티에서 였다. 연미복에 보타이를 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파티장은 별천지가 따로 없었고, 전에 없던 유망주를 맞는 상류층 사람은 너무나 낯설었다.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해선 안 되는 중요 인물이라 말을 걸어오면 걸어오는 대로 응대를 하다 보니 혀가 말을 하는지 손에 든 샴페인은 어떤 맛인지 하나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찌어찌 쏟아지는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한숨 돌리려, 기왕이면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길 바라며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간 테라스에 그가 있었다.
언뜻, 눈물이 어린 걸 본 것 같았으나 그는 빠르게 자신을 추슬렀다. 그 역시 이런 상류층 파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라 저도 모르게 그만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등을 돌려 나가는 대신 손수건을 건넸다. 목을 묶은 타이도 없이, 와이셔츠 단추를 푼
처연하고 가련한, 갓 대학에 들어간 것 같은 청년이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아. 릭. 릭 톰슨이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소?”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퍽 안쓰러워 다가가자 입술을 물었던 그가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우는 남자가 예뻐 보일 수도 있다니.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이런 청년을 울리다니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냥, 그런 거죠. 뻔한 이야기에요.”
눈물이 고인 눈을 얇게 휘며 웃는 순간 릭은 숨을 집어삼켰다. 동정과 연민으로 다가갔을 뿐인데
“참. 전 루이스에요. 그냥 루이스.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느 대단한 집안 아들이라서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성이라고 부를 게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 그렇군.”
선이 곱고 청초한 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첫 번째, 그가 손을 내밀었다는 걸 깨달은 게 그 다음. 릭은 루이스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처음엔 테라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어서 몰랐는데 예쁜 얼굴만큼이나 손도 작았다.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저를 올려다보는 건 좋았다. 주책없이 심장이 뛸 정도로.
“손수건은 어쩌죠.”
“아, 괜찮소.”
“그럴 줄 알았어요. 보통 이런 파티에 오는 분들은 손수건 따위엔 연연하지 않거든요.”
손수건이 제아무리 비싼들 이 남자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게 얼마든 아깝지 않았다. 대신 여기 오는 분들. 이라는 말에 가슴이 콕콕 찔렸다.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가여운 청년이다. 그런 사람의 아픈 과거를 캐묻는 게 신사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릭은 입을 뗐다.
“많이 만나봤소?”
“이런 곳에 있으면 싫어도 만나게 되죠.”
“그럼 여긴 왜....”
“...데려와준 사람이 있어요. 보통 이런 곳은.... 혼자 못 오거든요. 들여보내 주지도 않고.”
“미안하오.”
순진한 청년을 꼬셔서, 저 좋을 대로 가지고 놀다가 가차 없이 버리다니. 아픈 상처를 되새기듯 드문드문 말을 잇던 루이스는 자조하듯 웃었다.
“당신이 미안할 건 아니죠. 끝났다는 건 알지만.... 그냥.... 혹시나 해서 와본 거예요.”
“그런 나쁜...!”
그 쓴웃음이 더 애처롭고 가련해 속으로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헐뜯던 릭의 입에서 결국 한 마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움찔 몸을 굳히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릭을 바라봤다. 그 눈에 어린 눈물과, 상처 받은 눈빛에 화를 내려던 릭은 입을 다물었다.
나쁜 사람에게 놀아나다 버려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남은 모양이다. 어리석은 사랑에 빠져, 끝내 상처밖에 남지 않은 청년을 보고 있자니 만난 지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은 릭의 마음이 아려왔다. 한 박자 늦게 주제넘은 말이었다는 걸 깨달은 릭은 황급히 말을 고치려 했으나 루이스가 다 포기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너무 순진했나 봐요.”
“루이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소.”
“...감사합니다.”
눈물을 머금은 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이 아련하고, 심장이 크게 뛰었다.
“다시 만날 수 있겠소?”
“...글쎄요.”
“여기. 내 명함이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아, 그, 그런 뜻은 아니니까 오해 말고! 순수한 호의니 거절하지 마시오.”
“.......”
루이스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릭을 쳐다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귀엽다. 화려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이렇게 순수한 사람을 보니 오래 전 가슴을 설레게 한 첫사랑이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맑은 청초함이 보석보다 눈부시다. 루이스의 미소는 심장을 세게 뛰게 하는 한편 마음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경계하느라 굳어진 마음과 얼굴 근육이 슬슬 풀어진다.
“손수건. 돌려드리러 갈게요.”
“그러시오.”
“진부하지만 이만한 핑계도 없네요.”
“하하하. 기다리고 있겠소.”
릭은 손을 흔들어 테라스를 나서는 루이스를 배웅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때? 그 과장님, 넘어온 것 같아?”
“거의.”
“거의?”
소파에 길게 누워 다리를 까딱이던 이글은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의 서늘한 무표정을 보며 킬킬 웃었다. 루이스의 재킷이 머리 위로 날아와 얼굴을 덮쳤으나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거의는 무슨. 보니까 완전 홀딱 반했던데. 캬. 나도 깜빡 속을 뻔했지 뭐야. 안 그래, 영웅님?”
“테라스 훔쳐볼 시간도 남고 좋았겠네.”
“그럼.”
몸을 일으킨 이글은 재킷에 이어 셔츠도 벗기 위해 손목 단추를 푸는 루이스의 등 뒤에 섰다. 허리와 배를 감싸듯 안고 향수조차 뿌리지 않은 목덜미에 코를 묻자 어느 눈 나린 새벽의 냄새가 나리는 것 같았다. 아득하고, 아찔한 기억 속 풍경을 떠올리고 손을 미끄러트리며 입을 벌리자 루이스가 이글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아직 임무도 다 안 끝났어.”
“싸늘해.”
“누구랑 달리 충동적이지 않으니까.”
깔끔하고 단호한 말과 달리 루이스는 얇게 눈을 휘며 웃음을 흘렸다. 아까 그랬듯 순진한 미소도, 전부를 걸고서라도 안고 싶어지는 요염한 미소도 아니었지만 뻐근해진 이글의 아랫도리를 부추기기엔 충분했다.
“충동이라니. 너무하네. 뭐, 사실이긴 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편이라고 해줄래?”
“그러니까 그 본능 좀 어떻게 해봐. 비벼볼 게 따로 있지.”
우뚝 선 물건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던 이글은 셔츠 앞섶의 단추를 푸는 루이스의 바지 버클에 손을 올렸다. 셔츠 안에 받쳐 입은 타이트한 요원복과 하네스가 더 금욕적으로 보이고, 그게 더 꼴린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난 지지리 말 안 듣는 애라서, 말을 잘 듣게 하려면 상이 필요한데.”
“사탕이라도 물려주면 되겠어?”
“사탕 말고.”
“...너 하는 거 봐서.”
이글은 입꼬리를 올렸다. 고개를 돌린 루이스와 입술이 맞닿고, 그 다음은 전투와도 흡사한 섹스가 이어졌다.
언제 봐도 잘 빠진 등이다. 이글은 행위를 마치자마자 침대를 빠져나간 동료 겸 파트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작게 숨을 토했다. 달달한 말이나, 간지러운 애교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할 것만 마치고 가는 건 역시 조금 쓸쓸하다.
오랜만에 만난 엉덩이는 해후의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까만 슬랙스와 바지 안으로 사라지고, 루이스는 이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차갑기가 아주 얼음 저리 가라다. 남극도 이것보단 덜 추울 거다. 하물며 펭귄도 온기를 나누는데.
원망 반, 아쉬움 반으로 루이스를 바라보던 이글의 머릿속에 문득 루이스의 말이 떠올랐다. 멀리서 입술을 읽은 것뿐이지만,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기엔 신경이 쓰였다. 애초에 신경이 안 쓰였다면 그런 말 한 마디가 다시 떠오를 리도 없었다.
“아까 그 나쁜 사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 미세하나마 등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픈 구석을 찌른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고개를 돌린 루이스의 서늘한 눈빛에 이글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잘못 건드렸다. 이건 좀 위험할 지도.
“홀든.”
“알았어. 말하기 싫으면 관 둬. 홀든이 뭐야, 소름끼치게.”
“누가 먼저 소름 끼치는 얘길 꺼냈는데. 적당히 해. 다음엔 잡혀도 안 빼줄 거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이 남자는 결국 구하러 올 것이다. 연합의 영웅, 루이스는 그의 이명이 날리는 냉기와 달리 그리 모진 사람이 못 되니까. 루이스를 보며 누워있던 이글은 피식 웃으며 턱을 괬다.
“걱정 마. 영웅님은 바쁘니까 안 와도 이해할게.”
“안 간다니깐.”
“그럼 큰 형 불러야지 뭐.”
“누군 좋겠네. 양 쪽에 발을 다 걸쳐둬서.”
“그래도 가운뎃다리는 너한테만.... 억...! 잠깐, 잠깐!”
“아예 못 쓰게 만들어줘?”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조준이다. 이래서 특수요원은 무섭다니까. 그만큼 스릴도 넘치는 건 좋지만. 이글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섹스도 질펀하게 했으니까 나쁘지 않은 최후네. 그래도 마지막에 보는 게 네 얼굴이고.”
질색하는 표정이 가관이다. 소리내어 한바탕 웃고 싶은 걸 꾹 참고 양 손을 들어 항복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루이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렸다.
“...탄창, 비었어.”
“그 정도는 당연히 알지. 네가 대상도 아닌 사람한테 총을 겨눌 리가 없잖아?”
깊은 한숨을 내쉰 루이스는 총을 내렸다. 반은 감이었지만, 정말 쏠 마음이 없었는지 빈 탄창을 빼낸 루이스가 총알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수류탄이니 자동소총이나 하는 것들엔 별로 좋은 기억이 없지만 총기를 손질하는 루이스를 보는 건 좋았다. 칼을 갈고 닦는 무인과도 같은 자세로 침착하게, 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아하면서 비통함을 곱씹는 그 처연한 얼굴이 좋았다. 보고 있으면 질릴 틈이 없다.
그 얼굴이 보고 싶단 생각은 했지만 정말 와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더더욱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글은 다시 고개를 드는 탐욕과 갈증에 입술을 핥으며 루이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매끈한 등과, 희고 가는 목덜미. 정말이지, 엎어놓고 박고 싶어지는 뒷태다. 저 목에 이를 박아 자국을 새기고, 울긋불긋한 멍을 남기고 싶어 몇날 며칠을 애태우며 공을 들였던가.
이글이 눈으로 다시 한 번 행위를 되새기는 동안 탄창을 채우고 무기의 상태를 확인한 루이스가 그 생각의 흐름을 끊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봐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어디까지 봐주나 간보지 말고 물러나. 다신 안 도와줄 거니까. 지금 하는 짓도 그만 두고.”
“하하. 기억해볼게.”
하여간, 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다니깐. 이글은 루이스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입을 비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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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이] 엘리멘트리au
쓰고 안올렸던거 올림
한창 엘리멘트리 볼 적에 썼던 이글루~
그리고 저는 기약없는 뒷편과 프롤로그만 쓰는 병에 걸린 사람이 맞습니다
참 연재하던 온실 시리즈와 루루는 계속 쓰는 중인데 제가 갑자기 취직을 해버려서.... 업로드 일정이 미뤄질 것.... (골골
메일로 받은 주소를 찾아 간 주택 문 앞에 선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 첫 날, 새로 면접을 보는 것만 같은 떨림에 마음을 다잡고 초인종을 눌렀으나 허무하게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도움을 거부하고 틀어박힌 이다. 그런 사람을 돌보는 일에 벌써부터 끈기를 잃어선 안 된다.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문을 두드렸으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커튼이 쳐져있지 않은 유리창을 넘겨 보며 사람의 형체를 발견한 나는 문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요! 이글 홀든 씨?!"
쾅쾅쾅.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선수금을 받아버렸고, 나에겐 이대로 돌아가서 무섭고 살벌한 고용주에게 이 일을 못하겠다고 할 용기가 없었다.
"이글 홀든 씨! 형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소파에 드러누운 사람의 형체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할 각오로 문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나체나 다를 바 없는 여성의 등장에 멍해진 나는 냉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어머, 귀여워라. 라고 작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진한 향수 냄새에 거북해하면서도 안으로 발을 들였다.
"금방 일어날 거예요. 어젯밤에 좀 격렬했거든요. 차라도 내줄까요? 아니면...."
"아뇨, 괜찮습니다. 볼 일 보세요. 하는 김에 옷도 좀...."
몸을 훑어내리는 끈적하고 노골적인 시선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숙맥처럼 굴고 있다는 자각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헐벗은 것이나 다름 없는 란제리 차림의 여성을 앞에 두고 태연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귀여운 애완동물을 보는 것처럼 나의 얼굴을 쓰다듬다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겨우 찾은 평화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앞으로 돌봐야 하는 대상을 찾아 거실로 향하자 문을 열어준 여자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상태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늘어진 긴 은발과 널찍한 등과 탄탄하게 잡힌 근육이 멋지다는 감상보다는 앞으로 저걸 돌봐야 한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이봐요."
약물 중독, 기행, 그 외 다양한 폭력 사태와 범죄들. 망나니 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삶을 사는 남자의 첫만남이 정상적이고 깔끔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예상한 일이었지만 막상 눈앞의 현실로 닥치니 한숨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막연했다. 나는 소파에 엎드려 미동도 않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이글 홀든 씨?"
"뭐야.... 서비스?"
고개를 돌려 나를 본 남자의 얼굴은 잠과 짜증에 찌들어 있음에도 멋졌다. 오히려 그런 면을 부각해서 위험하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몸을 일으킨 그의 손이 불쑥 덮쳐왔다.
"읏, 잠, 홀든 씨!"
"응. 알았어, 알았어. 처음이야? 이것도 신선한데."
"형님이 보낸 재활 도우미입니다! 다이무스 홀든 씨요!"
"아."
뒷목이 잡히고 고작 몇 초밖에 안 됐는데 소파에 눕혀진 건 둘째 치고, 버둥거리는 몸을 제압하고 당연하다는 듯 허리와 다리를 쓰다듬는 게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형의 이름이 통했다는 것일까. 무표정마저 잘생긴 남자가 잠시 동작을 멈춘 사이 나는 재빨리 그를 밀어내고 일어났다.
"아, 귀찮게...."
이글 홀든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다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아래를 가려주던 담요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야했다.
"난 그런 거 필요 없는데."
"그건 당신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형이 뭐랬는데?"
"상습적 약물 복용과...."
"아니, 그거 말고. 널 안 받아주면 어떻게 된다. 뭐 그런 조건 말이야. 아무렴 아무런 준비 없이 보냈겠어."
"옷을 입고 나면 말씀드리죠."
도저히 이 상태로 대화를 이어가기 민망해 내건 조건에 이글 홀든이 허, 하고 기가 찬 표정을 짓다가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모욕을 주려는 듯한 웃음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자 배를 잡고 웃던 그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바지를 주워 들었다.
"아, 진짜 귀엽네."
"오늘만 두 번째 듣는 소린데, 별로 유쾌하지 않군요. 특히 당신의 말은요."
"너무한데."
진짜 너무한 게 누구인지 묻고 싶지만 저 페이스에 말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뻔뻔하기가 아주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뱀과 같은 녀석이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조금 더 새겨들었어야 했다. 그런 후회가 들었으나 돌이키기엔 늦은 뒤다. 나는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한 데 모아 묶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마저도 등 뒤에서 가슴을 안아오는 손길에 놀라 무너지고 말았지만.
"자기. 외로워지면 연락해?"
"아뇨, 저는...!"
"후후. 귀여워라. 이글. 이렇게 귀여운 친구가 있으면 좀 일찍 부르지 그랬어."
"뭐야. 나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흐응. 자기는 신선한 맛이 없잖아."
"아침부터 너무한 말 투성이네."
옷을 다 차려입은 여자는 이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인사하고 그의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빼냈다. 이런 범법행위도 신고 해야 할까 생각하는데 그녀가 나를 지나치며 짓는 눈웃음에 다시 얼굴이 굳었다.
"동정도 아니면서 너무 그러지 마."
"네?"
"여자친구랑 깨진 지 얼마 안 됐고, 그러다 돈이 필요해져서 일을 구했겠지. 꽤 오래 사귄 것 같은데 반지 자국이 없다는 건 반지를 낄 수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런 직업을 가진 주제에 한창 나이에 남 돌보는 일이나 한다는 건 그 일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는 거지. 예를 들면 의료 사고 같은 거."
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 날카로운 말에 나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맑은 바다를 옮겨 놓은 것처럼 새파란 눈은 너무나 투명해서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인형의 눈 같았다.
"그게 당신과 관계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정확히는 내 형이 준 수임료가 그 문제를 상쇄해주는 거겠지."
"네. 거절하기엔 많은 액수였거든요."
"그래서, 널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날 어쩌겠대? 내쫓는대? 무일푼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에서 포기한 망나니를 거둬주는 그의 형제의 책임감과 염려는 감사해야 마땅한 것이나 이 망나니 도련님은 그저 거추장스럽다는 양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오늘부터?"
"오늘부터. 두 시간 이상 떨어져있을 땐 연락해야 하고 약물 중독 재활 프로그램에도 참석해야 합니다. 형님이 내건 조건에는 절 위협하거나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도 물론 포함되어 있고요."
"24시간 나를 감시하시겠다?"
"저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당신을 돕는 거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최악이네. 내가 도망치고 속이면 잡아낼 수는 있고?"
"그건...."
그의 눈빛에 담긴 위압감에 나는 말을 멈췄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함께 있었다간 언제 목을 물릴지 모른다. 그런 위기감이 도망갈 것을 종용했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지만 나 역시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해봐야 알겠죠."
나를 시험하듯 바라보던 그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뱀처럼 나를 옭아매고 짓누르던 공기가 누그러지고, 그의 껄렁한 태도와 걸음걸이에서 여유마저 느껴졌다. 한 발짜국 앞에 선 이글은 허리를 짚고 서서 나를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해?"
"루이스입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그냥 악수를 하는 것 치고 세게 잡힌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손을 빼려 했으나 충분한 악수 뒤에도 이글은 손을 놓지 않았다. 대신 한 쪽 눈을 찡그리며 내게 되물었다.
"루이스?"
"제 이름에 무슨 문제라도?"
"설마 그 '루이스'는 아니겠지."
"꽤 흔한 이름인데요."
이글은 손을 놓고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가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든 침대로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은 미소에 나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하긴. 형이 아무나 붙일 리가 없지. 유일하게 '홀든'을 무릎 꿇린 남자잖아? 좀 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척 하긴, 내 작은형 말이야. 그러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을 붙이지!"
"홀든 씨?"
혼자 신나서 떠들며 방 안을 돌아다니던 이글은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내 어깨를 잡았다.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지. 잘 지내보자고, '영웅' 씨."
여기까지 안다면 더 부정하기도 힘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며 항복했다.
"...그렇게 불리는 것도 엄청 오랜만이네요."
"그나저나 진짜 동안이네. 나이 먹은 거 맞아? 참, 그냥 이름으로 불러. '홀든 씨'라니, 다른 사람 얼굴이 떠올라서 소름끼치잖아."
이글은 말을 마치고 익살스럽게 윙크했다. 루이스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삐닥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지었다.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긴 했지만 상상 이상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글. 일단 약물 검사를 좀 해야겠으니 거기 좀 앉아보시죠."
"말 놓지? 어차피 오래 가지도 않을 텐데."
"입 닥치고 앉아."
휘익. 이글이 휘파람을 불며 양손을 들었다. 그래봤자 신나고 즐거워 죽겠다는 듯한 얄미운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순순히 루이스의 말을 따라 소파에 앉았고,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잘 지내 보자고. 원한다면 침대 옆자리도 비워놓을 테니까, 언제든지 들어 와?"
이글이 던지는 은근한 추파에 루이스는 눈을 치켜 뜨며 주사바늘을 빼낸 곳을 꾹 눌렀다. 이글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놓지 않고 힘주어 누르다 떼고 소독용 알콜을 방울진 핏방울 위에 떨어트린 뒤 솜을 건넸다.
"하루에 두 번, 네 상태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것만 잊지 마."
"보기보다 되게 과격한게 매력있네. 알았어, 알았다고."
루이스는 솜으로 피부를 문지르는 이글의 손을 잡아 뗐다. 혈관도 건강하고 주사바늘도 정확히 들어갔기에 그래봤자 따끔한 수준이고, 피도 금방 멎었는데 엄살이 심하다. 한 번 더 소독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루이스는 이글의 팔 위에 훅 숨을 불었다. 알콜은 그새 다 날아갔지만 엄살이 심한 아이에겐 관심이 약인 법이었다.
"서비스 좋은데."
"네가 말썽만 안 부린다면, 괜찮은 사이가 될 수도 있겠지."
"설마 침대 얘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뭐, 나는 그래도 상관 없지만."
"그건 사양하겠어. 나는 네 불장난 상대가 아니니까. 함께 지내면서 널 감시하고 돌보긴 하겠지만, 개인 사생활 정도는 구분할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대신...."
"그 사생활에 섹스도 포함이야?"
점점 골치가 아프다. 루이스는 허리에 손을 얹고 이글을 응시했다.
"좋아. 그럼 집에서 하는 건 상관 없지?"
"그 정도 사생활은 존중할게. 날 끌어들이지는 마."
"한 번 차이고 나니까 신실한 독신주의자라도 된 거야? 왜 그래, 섹스는 좋은 거라고. 가끔 기분 전환을 해줘야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위층 침실 쓸 테니까 그렇게 알아."
"외로워지면 말 해! 나는 환영이야!"
루이스는 소리치는 이글을 뒤로 하고 계단을 올랐다. 얼마나 말을 나눴다고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처음 수임료에 대해 들었을 때는 사람 하나 돌보는데 너무 과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합당한 금액이었다. 확실히, 이글 홀든을 감당하려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
계단을 올라온 루이스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평화롭고 순탄한 일상에 이별을 고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글 홀든과의 생활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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