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안의 죄수의 삶이란 지겹기 그지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 뿐이라 루이스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그래봤자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다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곱상한 얼굴만 보고 린치를 하려 들거나, 다른 용도의 노리개로 삼으려는 놈들도 있었지만 카모라까지 규합한 지하연합, 그것도 그 수장의 오른팔이자 콘실리에리를 건드릴 만한 정신나간 놈은 없었다.
애초에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사람도 아닌지라, 루이스가 입소하던 날 네 명이 의무실로 실려갔고, 루이스는 짐을 푼 지 반나절도 안 되어 독방 신세를 졌다.
폐쇄된 교도소 소식이 어찌나 빠른지 독방 신세를 지고 나오니 반가운 얼굴이 루이스를 반겼다. 지하연합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벌인 2차 전쟁에서 함께한 터커가 잠시 쉴 겸 휴가를 받아 왔다는데, 그 마음에 고맙고 미안해 루이스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루이스가 이곳에 있을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는 사람이었고, 또 동료를 아끼는 의리있는 사내였다. 첫날 소동 후로 말이 퍼지면서 그 후로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듬직한 동료가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됐다. 앤지가 많이 걱정하더라고 전한 그는 루이스가 다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며 경호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만 하고 돌아가래도 듣는 법이 없기에 루이스는 일찌감치 그의 마음을 돌리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제일 먼저 루이스를 걱정했다. 하지만 주먹을 쓰는 거라면 또 모를까, 높으신 분들의 결정엔 그가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괜찮겠냐?"
"나쁠 건 없지. 형량도 줄여준다는데."
터커가 억센 손으로 루이스의 등을 말없이 두드렸다. 터커의 형은 1년 6개월, 가만히 있으면 곧 출소할 터였고 루이스는 며칠 전 저를 찾아온 두 사람의 제안을 수락한 후였다. 터커보다 먼저 높은 회벽을 나가도 홀든이라는 다른 감옥에 갇히는 것 뿐이지만.
루이스는 기지개를 켜다 머리를 받치고 잔디밭에 누웠다. 하늘이 유독 푸르다. 좋은 날씨라 옷도 벗고 일관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만난 홀든은 그야말로 귀족 그 자체라 제가 그들에게 섞일 일은 없겠지만, 왠지 감이 좋지 않았다. 앤지가 변호사를 통해 보내온 자료를 받아보긴 했지만 사람은 어디까지나 겪어봐야 아는 일이다.
잠시 하늘을 보던 루이스는 손을 들어 강하게 내리쬐는 해를 가렸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 루이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괴로우니 눈을 감을 수 밖에. 어쨌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더 신경쓰지 말자.
루이스는 흔히들 망나니라 부르는 막내 홀든을 떠올렸다. 그를 둘러싼 무수한 소문과 일화, 겉으로 보이는 그는 말 그대로 망나니지만 루이스는 세간의 평가와 숨겨진 그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목표가 있다.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경향은 있지만 어디에 얽매여 있지 않기에 오히려 그의 형들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뿐더러 영리하다. 영리하다기 보단 영악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 호기심은 그렇게 굴러 굴러 몸집을 불리다 따뜻한 햇살에 먼 의식 너머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사복 차림의 죄수 한 사람만을 태운 이송버스가 갑자기 멈추고, 그 옆에 새빨간 페라리 한 대가 거칠게 멈춰섰다. 얌전히 창 밖을 보고 있던 죄수 루이스는 페라리에서 내린 긴 은발을 보고 바로 앉았다. 소문만 무성한 망나니 막내 홀든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이송버스의 앞문이 열리고 선글라스에 딱 달라붙는 가죽바지, 거기에 호피무늬 라이더재킷을 걸친 다소 해괴한 조합인데도 지나치다기보다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는 게 꼭 패션 잡지의 모델같았다.
"여어, 영웅 형씨. 안녕?"
"그쪽은 꽤 즐거워 보이는걸."
"흐응, 듣던 대로 보통내기가 아닌데? 난 또 재미없는 샌님인 줄 알았지 뭐야."
껄렁하게 말하는 게 생각하는 그대로를 내뱉는 티가 역력했다.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앞에 만난 형제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고 있자니 꼭 철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동물원에 보러 온 것 같았다. 누가 우리 안의 짐승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루이스가 웃자 이글도 씩 웃더니 재킷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고 운전석 칸막이를 탕탕 쳤다. 철컥. 철창 문이 열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이글이 열쇠고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왔다. 반응을 않자 손목을 턱 잡는데 악력이 상당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고개를 들자 드디어 그의 눈이 보였다. 짙은 색 유리에 가려져있지만, 어쩌면 이 사내는 망나니라는 허상으로 사냥꾼의 본능과 야성을 가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갑자기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는데, 입술에서 쪽 하고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놀라 눈이 커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이고 있으니 이글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흐하하하하하하하! 뭐야, 그 얼빠진 반응은. 픕, 푸훕. 아아, 진짜 웃겨 죽겠네."
이글 홀든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나 얼빠진 얼굴이었을 거란 생각에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뺨이 화끈거렸다. 소심한 반항일 뿐이지만 루이스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 잘 어울려서 잊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반말을 하는 것도 짜증났다.
"하하, 이 오빠가 이것보다 더 좋은 것도 줄 수 있는데, 너무 차갑게 굴지 마. 응?"
"내가 너네 둘째 형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아냐?"
"어, 그래? 싫음 말구. 어이! 아저씨! 다시 모셔다 드려! 영 같이 일하기 싫으신갑다."
이글은 순식간에 등을 돌리더니 철창을 탕탕쳤다. 껄렁한 그의 말이 더이상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바뀌는 분위기에 루이스가 그를 잡으려 입술을 떼자 이글의 검지가 입술 위에 올라왔다.
"쫄지 말어. 농담이니까. 너무 순진하게 넘어오지 말라고, 천재 설계자씨."
생글생글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어 가슴팍에 꽂은 이글은 쭈그려 앉아 루이스의 발목에 걸려있던 족쇄를 풀었다. 그리곤 품에서 작은 박스를 꺼내 장난스레 흔들어 보여주다가, 청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 얇은 은색 금속. 언뜻 보면 팔찌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리의 크기가 컸다.
"쨔잔. 이러니까 꼭 청혼하는 것 같네."
"그럼 차였을 걸."
"하하, 선물이니까 받아두라고. 이래봬도 형씨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거니까."
"그런 친절 별로 달갑지 않은데."
"난들 어쩌겠어. 시키니까 하는 거지."
말을 주고 받는 사이 발목에 차가운 금속이 감겼다. 찰칵, 맞물리는 소리가 자유의 몸이 아님을 일깨우며 발목에 걸렸다. 손목의 수갑까지 풀어낸 이글은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수갑이 풀린 손목을 매만지고 있으니 이글이 차 밖으로 나가 루이스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따스한 바깥 공기, 높은 담이 없는 풍경이 오랜만이었지만 왼쪽 발목에 감긴 얇은 금속의 감촉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자, 그럼 가볼까?"
이글 홀든은 오랜 친구를 대하듯 루이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구는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니 찡긋 윙크하는데,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루이스는 아무래도 이 일이 순탄치 않을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