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무스 홀든은 철두철미한 남자다. 그것은 일에 있어서도, 자신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잘 다져진 몸 위에 매끄럽게 떨어지는 검은 수트와 적갈색 넥타이, 그보다 더 그를 완벽하게 만드는 건 한 자루의 검같은 얼굴이었다. 다이무스는 자신을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무겁고 음습한 공기가 감도는 회색 건물로 들어갔다. 간간히 철창 안의 죄수들이 그의 모습을 보러 기웃거렸지만 이내 그의 칼날같은 분위기에 숨을 죽였다. 복도를 두드리는 구두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고, 곧 철창이 열리며 건물 깊은 곳의 문이 열렸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기다렸다는 듯 태연하게 자신을 맞는 남자는 세월이 빗겨가기라도 한 듯 앳된 모습 그대로였다. 다이무스는 책상 앞 의자를 빼 앉아 카라를 정돈했고, 그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다이무스는 잠시 그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서류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건넸다. 루이스. 지하연합의 수장 앤지헌트의 오른팔이자 천재 설계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영리하게 행동하던 그가 제 발로 들어온 게 벌써 오 년 전 일이었다. 그는 잠시 다이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파일을 받았다.
사전에 협의가 된 내용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건 파일을 건네다니. 루이스는 천천히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방화와 실종, 생존자들은 증언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 고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루이스는 심란하게 파일을 덮었다.
"보기에 어떤가."
"추출할 생각일랑 관두는게 좋을 겁니다.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거랑 똑같으니까."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군."
"어린애들이니까요."
다이무스는 파일을 되받아 서류가방에 넣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단언한 루이스는 입가를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다이무스는 가만히 루이스를 바라봤다. 입술을 톡톡 두드리던 루이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 드러난 붉은 눈동자엔 어느새 날카로운 통찰이 깃들어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상할 정도로 없습니다. 원장이 돈을 빼돌리고 아이들을 학대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 아이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불을 질렀다기엔 너무 능숙하고 깔끔하죠."
"그럼 방화를 사주한 게 누구라고 보나?"
"시킨다고 이렇게 치밀할 수는 없죠. 단순한 원한은 아닙니다."
다이무스는 입을 다물었다. 과연 천재 설계자는 이렇게 증거가 부족한 파일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결론을 내릴 것인가. 이건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팀에 넣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던 둘째를 떠올린 다이무스는 다리를 꼬았다. 루이스는 아예 일어나 좁은 감방 안을 서성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고아원. 혹시 중년의 여선생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들의 또래일 법한."
"있다. 선량한 사람이라더군. 사건 시간엔 퇴근 후 집에 있었다."
"...그럼 그녀겠군요."
다이무스는 단호하게 말하는 루이스를 올려다봤다. 그 붉은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서늘한 냉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어째서?"
"첫째로는, 그녀가 선량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원장을 죽일 생각은 보통 하지 않죠."
"이해가 가지 않는군."
"고아원에서 일한지 삼년. 그동안 원장이 무슨 짓을 하는지 충분히 알았을텐데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아마 그녀는 원장에게 뭔가 약점이 잡혀있었던 거겠죠."
"예를 들면?"
"글쎄요, 전과? 아마 지금 쓰는 이름은 가명일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약을 하느라 급료도 제대로 원장 밑에서 일할 리가 없죠."
다이무스는 루이스를 응시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일전에 다른 사람이 했던 추리와 흡사했다. 다이무스가 가만 듣고 있자 루이스가 입가를 매만지며 다시 침대에 앉았다.
"원장이 약을 어디서 구했냐, 그게 궁금해지는군요. 헤시시?"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다이무스의 질문에 루이스는 다이무스의 서류 가방을 흘긋 바라봤다. 그 짧은 시간에,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거기까지 유추해내다니. 내색은 않았지만 훌륭했다.
"그렇군. 그래서, 동기는?"
"...더이상 약을 살 돈이 없었던 거겠죠. 처음엔 그냥도 주지만, 점점 가격을 올리는 게 전형적인 수법이니까. 돈이 필요해진 원장은 그녀를 협박하며 돈을 요구했을 겁니다. 이미 전에도 꽤 줬겠지만."
"또?"
"신변의 위협을 가했을 수도 있죠."
루이스는 담담하게 말했고, 다이무스는 꼰 다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생각보다 더 뛰어났고, 예상 외로 제가 아는 사람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말을 하면 아마 길길이 날뛰겠지만. 다이무스는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리러 오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특별히 원하는 거라도 있나?"
"그래봤자 24시간 감시 아닙니까?"
철문을 나서기 전 잠시 발을 멈춘 다이무스의 질문에 루이스는 질문으로 답했다. 사건에 협력할 때마다 형량이 줄어든다. 그러나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을 나오기 위해선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홀든 형제들의 감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게 대전제였다. 타협할 수 없는 요구에 다이무스는 문을 열며 방을 나서다 멈춰섰다.
"...고려해보겠다."
고개를 돌리기 전, 그가 피식 웃는 걸 본 것도 같았지만 다이무스는 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그가 어떤 가능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