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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ts루이] Put on your shoes. 02.
2014/12/23
* 아마 이것도 미공개분 포함.
연합의 오후, 나이오비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엘리를 돌보며 휴게실을 지키던 토마스는 그만 난로 앞에서 깜박 졸고 말았다. 그 사이 그림을 그리며 놀던 엘리가 토마스의 얼굴에 낙서를 해놓고 까르륵 웃으며 우다다 뛰어가고, 토마스는 엘리를 잡으러 복도로 뛰어나갔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냅다 뛰어가는 엘리 앞에 문이 열리며 문과 아이의 머리가 부딪치기 일보직전, 토마스가 황급히 소리쳤다.
“엘리!”
“히히, 엘리 몰라!”
“앗, 선배?”
“안녕, 토마스.”
“고생이 많군요, 스티븐슨군.”
열리던 문이 멈추고, 아무것도 모르는 엘리는 다시 까르륵 웃으며 빙글 돌았다. 겨우 따라잡은 토마스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엘리를 안아 올리자 다시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순간 움찔한 토마스는 루이스 옆에서 미소를 머금은 요기 라즈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점에서 일하는 옷차림의 루이스에겐 어설프게 웃었다.
“루이스 언니 예쁜 옷! 엘리 마니마니 보구시펐어!”
“고마워, 엘리.”
엘리가 토마스의 품에서 루이스에게 양팔을 뻗었다. 엘리를 안아든 루이스는 제게 뺨을 부벼오는 애교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보는 사람도 절로 미소가 번지는 훈훈한 광경에 요기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엘리가 루이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기 시작하자 요기는 루이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잠시 눈짓을 교환하고 빠르게 복도를 걸어가버렸다.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토마스는 셋이 되고 나서도 편하게 입을 열지 못했다. 루이스가 병실에 있는 동안 한참 바빴기에 얼마 찾아가지도 못했던지라 오랜만에 보는 선배가 반가운 건 그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그보다 무거운 감정들이 앞섰다.
“선배,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괜찮아.”
“아, 있지이. 엘리가 빨리 나으라구 맨날맨날 기도했어!”
루이스는 대답 대신 엘리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칭찬을 받은 엘리는 제가 생각해도 뿌듯했는지 루이스의 품에 안겨 부비거리며 웃었다. 엘리의 천진난만한 말에 혼자 가슴을 졸이던 토마스는 루이스의 씁쓸한 미소에 입을 다물었다. 제 동경의 대상이자, 언젠가 뛰어넘겠다고 생각한 목표가 무너졌다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 버티고 있는 루이스를 보는 게 더 마음 아팠다.
“선배…….”
“오늘 이 말만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괜찮아.”
토마스는 루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다. 그렇게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지만 지금 한 말은 믿기 힘들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거짓으로 태연을 가장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나 믿음직하게 보였던 팔과 등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아서, 언제나 동경의 눈길로 바라본 후드 차림이 아니라서. 나란히 걷는 걸음이, 전과 같지 않아서. 토마스는 느릿하게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고작 한 사람때문에 이렇게 되는 건 너무했다.
“루이스!”
“핫, 언니!”
“안녕, 잉게.”
복도 끝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토마스와 루이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성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온 나이오비는 루이스의 품에서 엘리를 빼앗아 내려놓고는 토마스를 다그쳤다.
“넌 생각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그만, 잉게. 토마스가 안 된다는 걸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거야.”
“너도 그래! 얘가 아직도 갓난앤 줄 알아? 퇴원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래?!”
나이오비의 불같은 성격은 토마스에게서 바로 루이스에게 넘어갔다. 너무 깊이 생각한 나머지 배려하지 못한 제 불찰에 토마스가 얼굴을 붉히고 엘리가 울상을 지었다. 나이오비가 이러는 것도 다 자기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 루이스는 얌전히 그녀의 잔소리를 들었다. 나이오비를 말린 건 함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레베카와 도일이었다.
그마저도 잠시 들른 것뿐이지만, 복도에서 이러지 말자며 휴게실로 돌아온 그들은 이내 소란스럽게 루이스의 주변을 둘러싸고 안부를 물었다.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질문에 다 대답할 수 없어 곤란해 하던 루이스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이 반갑기도 하고 드디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잇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루이스 앞에 떳떳하지 못한 토마스는 휴게실을 오가던 사람들이 루이스를 알아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위로와 안타까움이 섞인 인사를 건네는 걸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앤지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선배는 전설이 되고, 저는 영웅이 될 거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때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깨질 것 같지 않던 얼음성같은 그녀에게서, 연합에게서 영웅을 빼앗아간 그가 미웠다. 능력이 사라진다니, 그런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제 막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그 기회를 허무하게 망쳐버린 자신이 미웠다. 토마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 날, 제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죄책감과 한 사람의 몫을 해내기도 전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는 후회,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미안함에 눈물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루이스는 이미 다 끝난 일이라며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게 될 거라는 걸 아는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미숙함과 함께 그에 대한 원망이 끓어올랐다. 비겁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루이스가 그를 대신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겠지만 루이스는 아니었다.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죄책감에 토마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진 않아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제게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다. 영웅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를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기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토마스는 제가 책임을 지고 연합에 도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가봐야 할 시간이라.”
“피터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또 올게.”
나이오비의 아쉬움 섞인 말에 토마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루이스는 코트도 없이 일어났고, 밖에는 버린 물이 얼 정도로 추웠다. 토마스는 다른 사람이 나서기 전에 앞으로 나섰다.
“가, 같이 가요. 선배!”
“응?”
“그…, 저도 그쪽에 볼 일이 좀 있어서…….”
원래대로라면 아직 더 늑장부려도 될 시간이지만 성치 않은 발목으로 빙판이 진 길을 가려면 전보다 서둘러야 했다. 매년 겨울, 눈이 내리고 빙판이 지면 마음 놓고 결정 슬라이드를 타도 되니 편하겠다고 하던 우스갯소리도 이제는 전부 과거의 추억일 뿐이었다.
루이스는 에스코트를 자청하는 토마스에게 살짝 웃어주었다. 워낙에도 세심한 성격이긴 하지만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시종일관 주눅이 들어있는 그가 가여운 동시에 미안했다. 아무리 잊으라 해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것도, 그 짐은 그리 쉬이 벗어던질 수 없다는 것도 루이스 역시 잘 알았다. 루이스는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토마스에게 다가갔다.
“그럼 오랜만에 둘이 나갈까? 잘 부탁해, 후배님.”
루이스는 일부러 밝게 말하며 토마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생긋 웃었다. 토마스는 팔짱이 어색한지 쭈뼛거리다 루이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고, 루이스는 자꾸만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토마스가 안절부절 못하고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는 걸 슬쩍 바라보곤 넘어지는 척 그의 팔을 꼭 잡았다.
“미안.”
“아, 괜찮아요!”
토마스는 냉큼 루이스가 팔짱을 낄 수 있게 팔을 내주었다. 팔짱을 끼며 자연스레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조금씩 차이가 나던 걸음이 같아졌다. 어색하던 기류 대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별 거 아닌 농담에 마침내 토마스가 웃었다. 루이스는 토마스를 따라 미소지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발에 힘을 주며 걸었다.
별 거 아니지만, 루이스는 이렇게라도 토마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완전히 잊거나 없었던 걸로 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거운 짐에 짓눌리는 건 자신 하나로 족했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감내하겠다고 다짐했던 건 자신이었다. 애써 밝은 척, 제 앞에서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토마스를 보고 있으니 자신의 오만이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루이스는 토마스가 카페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으며 속으로 쓴 속내를 삼켰다.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어.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말은 루이스가 마지막까지 능력자로서 가졌던 마음이자 다짐이었다. 때때로 사람들이 모두를 구할 순 없다고 말해도 루이스는 그 첫 마음만은 지키고 싶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잃는 고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비극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게 싫었다.
그러니 능력을 대가로 두 사람을 살렸으면 그리 밑지는 짓을 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 루이스는 제게 소리치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곤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그 날, 병실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길게 숨을 토하곤 제 팔을 지지해주는 토마스의 온기에 조금 더 몸을 기대어 걸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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