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시 반, 루이스는 책상에 앉아 아직도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에 한숨을 내쉬었다. 연합은 조합체제로 돌아가다보니 수확철이 되면 각지에서 식료품과 장부가 도착하는데 그걸 형편에 맞게 분배하는 건 전부 본부의 일이었다. 덕분에 앤지는 물론이고 공성에 투입되는 사이퍼들까지 가을만 되면 정산에, 예산 분배, 그리고 각지에서 밀려드는 요청까지 받아주느라 정신이 없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바쁜데도 일처리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정보의 유출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정산과 사무처리에 투입되는 인원은 적었다. 새사람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하는 사람만 하는 일에 벌써 육년째 끌려다닌 루이스는 이제 이 서류지옥에서 빠져나가길 반쯤 포기한 후였다. 처음엔 의욕에 넘쳐서 연합을 재건하는 일이란 생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더랬다. 지금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반, 이렇게 된 걸 어쩌겠냐 하는 체념이 반이지만.
게다가 오늘은 리버포드에서 크게 불꽃놀이를 한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한 날이었다. 리버포드가 회사 영역이라곤 해도 축제는 축제인 법. 더구나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 이런 식으로 거리에 활기가 도는 건 오랜만이라 해가 지기도 전에 자리를 잡으러 간 연합원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계속되는 업무에 지친 사람들이 낮부터 하나 둘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나도 불꽃놀이....'같은 말을 중얼거리거나, 서류 끄트머리에 나가고싶다는 말을 끄적였다. 그리고 언제 작당을 한 건지 저녁 시간이 가까워오자 하나 둘 저녁 먹으러 간다는 말과 함께 슬금슬금 사무실을 빠져나가버리고, 결국 남은 건 루이스와 잉게 나이오비뿐이었다.
루이스는 제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후배의 괘씸함과 자길 쏙 빼놓고 가버린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에 더 우울해졌고, 잉게는 며칠 전부터 같이 불꽃놀이가 보고싶다고 한 엘리때문에 멀쩡한 펜을 두 개나 망가뜨리고 말았다. 와드득, 연필이 부서지는 소리에 루이스는 슬쩍 엘리한테 가보겠냐고 운을 띄웠다. 이대로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그냥 두면 기껏 며칠동안 고생해서 만든 지출계획과 회계장부가 잿더미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운을 띄우자마자 피곤과 근심이 드리웠던 잉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루이스는 얼른 코트를 집어들며 혼자 괜찮겠냐 묻는 잉게에게 말없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게 벌써 한 시간 전, 루이스는 장부를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아홉시에 시작이라고 했으니 아직 삼십분쯤 시간이 남은 셈이지만 이쯤이면 다들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어둠이 내린 창밖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피식 웃었다.
평소에도 이 시간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사무실에 있을 게 뻔했다. 잠시 고민하던 루이스는 전화기를 들고 머리보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대기중 연결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 홀든입니다. ]
"역시, 아직 사무실이군요."
[ 흠. 이제 막 퇴근하려던 참이다. ]
"당신이요? 불꽃놀이라도 보러 가는 건가요."
[ 그러는 너는? ]
"하아, 사무실이에요."
보통은 다이무스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루이스가 서점에서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뒤바뀐 처지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 루이스는 수화기를 든 채로 눈가를 쓸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은 언제나 말을 뱉은 후에나 드는 법이었다.
[ 사무실이라, 혼자인가보군. 나와라. ]
"네?"
[ 틀린가? ]
무뚝뚝한 억양과 고압적인 태도때문에 명령처럼 들리는 말에 루이스가 놀라 물었음에도 다이무스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을 읽힌 느낌이라 멋쩍어진 나머지 귓가를 긁적였다. 사실 나가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지금 데이트하자는 건가요."
[ 삼십분 뒤, 노던브릿지 중간에서 보지. ]
"다이무스?"
다이무스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바람에 루이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전자음을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시계를 봤지만 그런다고 시간이 늦게 흐르는 것도 아니라서,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곤 의자에 걸쳐뒀던 후드를 집어들었다. 삼십분 안에 리버포드까지 가려면 서둘러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