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역한 구토감에 입을 틀어막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이 감각엔 익숙해질 수 없었다. 감출 수도 없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꽃은 감정의 산물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감정이, 나오지 못하고 꽃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는 건 듣기엔 제법 로맨틱하지만 겪는 당사자에겐 고역일 뿐이었다. 토하는 게 아무리 꽃이라 해도 입 밖으로 나오기까진 이물질에 불과한 데다, 목구멍을 역류해 넘어오는 감각은 그냥 토악질을 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큽, 컥...! 으욱...."
더구나 뱉어내는 꽃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꽃이 되고, 그 안에 담긴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형태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설득력있는 설이라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커헉, 후.... 하...."
가슴이 울렁이고 목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감각에 헛구역질을 반복하다 마침내 남은 것마저 토해낸 다이무스는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며 벽에 기대어 주르륵 미끄러졌다. 현기증과 함께 입안에 비린한 철의 맛에 고인 침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미 입 안은 상처투성이가 된 지 오래고, 낫는 것보다 빠르게 상처가 생기고 있었다. 입 안이 제일 회복이 빠르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꽃을 토하다보면 멀쩡할 수가 없었다.
다이무스는 흘긋 제 입에서 나온 꽃을 바라봤다. 차라리 평범한 꽃이라면 나았을까, 다이무스는 심호흡하며 제가 뱉은 얼음꽃이 서서히 녹는 것을 지켜봤다. 보드랍고 향기로운 꽃잎 대신 투명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얼음꽃잎의 끄트머리엔 붉은 피가 맺혀있었다. 견고하고 아름답게 핀 결정꽃을 제 색으로 물들이지도 못하고, 이물질이 되어 붙어있을 뿐인 한 방울.
다이무스는 미간을 좁혔다. 혀를 움직여 입 안을 헤집은 상처들을 훑었다. 약을 발라 씁슬한 맛이 퍼졌지만 새로 생긴 상처를 찾는 게 먼저였다. 입맛을 다시자 비릿한 냄새와 함께 혀에 닿는 혈액에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 치솟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 토해내는 얼음꽃이 가리키는 건 너무 명백했다. 열음, 결정. 하지만 그는 연합의 영웅이고, 다이무스 홀든은 헬리오스 소속의 능력자였다. 감히 가까워져서도 안 되거니와 같은 남자인 그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죄였다. 그래서 제 감정의 꽃은 마냥 예쁘고 향기로운 대신 이리도 아프고 아름다운지.
약으로 어떻게 손 써볼 수도 없는 병은 담아 누르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 사랑이 이루어지면 낫는다고 하지만 다이무스는 차마 제 마음을 고백하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돌아올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거절뿐이었다. 난색을 표하며 거절하더라도, 제가 말을 꺼낸 순간 루이스의 얼굴에 떠오른 혐오와 불쾌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럴 바에야 아예 꺼내지 않는 게 낫다. 그렇게 애써 부정하고 외면했던 다이무스였지만 매일같이 토해내는 얼음꽃 앞에선 나약한 남자일 뿐이었다.
꽃을 피우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를 향한 애정과 감정이기에 하루하루 그를 그리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 수록 힘이 들었다. 얼음꽃을 토할 때면 어김없이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꽃을 토하는 횟수도, 한 번에 토하게 되는 꽃의 수도 점점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꽃을 토하는 건 이미 제 마음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요, 그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는 탓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가슴이 뛰고,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그 모든 순간이 단 한 사람의 존재로 물드는 게 좋았다. 너무 좋아서 다가올 아픔마저 기꺼이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 다이무스는 루이스가 제게 슬쩍 지어보이던 그 미소를 기억했다. 그의 눈인사를 받기 위해 일부러 광장 한 바퀴를 돌아 늦게 출근하는 척을 했고 사흘에 한 번 읽지도 않을 책을 샀다. 그 붉은 눈동자도, 얼음이 성겨 생채기가 가득한 손도,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도 전부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다이무스는 주저앉은 채로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혔다.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기억은 눈을 감자 더욱 또렷해졌다. 다이무스는 고통에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토하고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입 안이며 가슴이 찢기고 베여 만신창이가 되어도 원망조차 할 수 없는 먹먹하고 애틋한 감정의 이름은 분명,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