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가 늦는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들어오던 사람이 사나흘에 한 번 꼴로 들어오는데, 그를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한 나머지 밖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는 매번 신문과 이런저런 잡지를 가지고 돌아와, 식사도 건너뛰고 죽은 듯이 잔다. 그마저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소파에서 뒤척거리며 잠을 설치기 일쑤라 침대로 옮겨준 게 벌써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도 문이 열리자 지친 얼굴의 그가 종이 뭉치를 한 다발 내밀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나는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마른세수를 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루이스를 불렀다.
“루이스.”
“괜찮아요. 오늘은 좀 잤으니까....”
혼을 내듯 짐짓 엄한 목소리에 루이스는 얼굴을 덮었던 손을 내리고, 느리게 눈을 꿈뻑였다.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 초췌했다.
피곤한 것뿐이지만 무감각한 시선이 묘한 긴장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홀린 듯 다가가자 루이스의 손이 내 셔츠의 소매를 만지고, 그의 조금 차가운 손끝이 손목을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그러쥐었으나 루이스는 개의치 않고 옷을 만지다 보풀이 일어난 부분을 잡았다.
“잠시만 잡고 있어요.”
서랍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온 루이스가 나를 옆에 앉혔다. 바늘구멍에 실을 꿰고, 손목을 잡아 튿어진 소매의 단추를 풀어 해진 천에 바늘을 넣어 빼는 행위를 반복하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심장이 뛰는 소리가 부쩍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눈앞을 가리는 노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루이스와 그의 손. 저 손을, 곧게 뻗은 손목을 잡아 쥐고 싶다.
숨을 죽이던 나는 팽팽한 긴장과 솟구치는 욕망을 감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능숙하군요.”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는 거죠.”
별 거 아니란 듯 대답한 루이스는 고개를 소매에 처박다시피 하고 손을 놀렸다. 새하얀 손등에 새로 난 분홍색 흉터. 마지막으로 본지 얼마나 됐다고 루이스의 손등이며 손가락에 상처가 또 늘었다. 루이스의 몸에선 여전히 오래된 종이와 먼지 냄새가 났지만 종이만 만지는 사람이 이렇게 다칠 리 없다.
단정한 얼굴과 달리 그의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과 단순한 사무직이 아니라는 것쯤은 쉬이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냥 이대로, 고요한 호수처럼 있어줬으면 좋겠다.
옷을 벗기지도 않고, 한 번 찌르는 일도 없이 소매를 꿰매던 그가 실을 팽팽하게 당기다 마침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기, 최근 한 달 실종자 명단을 봤는데... 당신이랑 맞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뇨. 아마.... 신고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루이스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다 이로 실을 끊었다. 왜냐는 말도, 뭔가 생각났냐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툭. 실을 끊으며 나의 말도 끊어낸 그는 실과 바늘을 갈무리해 일어났다. 나는 목 아래 고여있던 숨을 뱉고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그의 등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루이스가 고개를 돌렸다.
“뭐 필요한 건?”
“글쎄요, 새 옷이랑.... 등유, 밀가루, 토마토, 당근이랑....”
왠지 모를 오기와 불만에 퉁명스럽게 말하자 루이스가 도로 소파에 앉더니 작은 통을 건넸다.
“웬 겁니까? 사탕이라니.”
“전에 잔뜩 받은 게 있었는데, 다른 건 아이들 나눠주고 남은 거예요.”
“의도를 모르겠군요. 먹고 입 다물란 겁니까?”
루이스는 싱긋 웃으면서 사탕 내밀었고, 나는 그 미소에 못 이긴 척 사탕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 사람의 얼굴에, 그 중에서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웃음에 약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민트의 향에 모르게 반가운 기분이 들어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단 맛에 입을 열었다.
“뭐.... 나쁘디 않군요.”
“다행이네요.”
“당시는?”
“장 봐올게요.”
사탕 때문에 새는 발음이 우스꽝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루이스가 피식 웃으며 짓는 미소에 생각이 멈췄다. 루이스는 바로 일어나버렸지만, 손끝이며 뺨에 번지는 열은 쉬이 가시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야 했다.
금방 올 줄 알았더니 저녁 늦게 양손 가득 식료품을 들고 온 루이스는 소파에 앉았다가,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대로 누워 반대편 팔걸이에 다리를 올렸다.
“밥 안 먹어도 되니까 깨우지 말아줘요.”
“또 거기서 잘 겁니까?”
담요를 끌어다 덮다가, 루이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그의 무미건조한 시선에 열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종이 식료품을 정리하다 말고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다가가 빈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그의 소파에 손을 올렸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
말없이 눈을 깜빡이던 루이스가 시선을 내렸다. 내리깐 눈과 떨리는 속눈썹, 그 아래 드리우는 그림자. 그 뺨에 손을 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크지 않지만 명확한 동의의 표현 앞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루이스는 소파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고, 이불을 덮어쓰곤 돌아누웠다. 나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를 바라보다 소파 위의 담요를 접어놓고 하던 정리를 마저 하기 위해 일어났다.
딱히 배가 고프다거나 식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리를 마치고 바로 그가 잠든 침대로 향했다. 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잠들어 무방비한 상태의 루이스가 어른거려 옆에 있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고 들어가 좁은 침대에 몸을 누이자 루이스가 몸을 웅크렸다. 작은 동물 같은 반응이 귀여워 건드리고 싶으면서도, 이대로 곤히 잠든 모습을 보고 싶어 머리를 받치고 그를 내려다 봤다.
이렇게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특별한 기분이 든다. 이 사람에게 구해져, 이 집의 가구처럼, 혹은 말을 잘 듣는 개처럼 이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삶.
묶여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예속될 수 있다니. 묘한 기시감과 불쾌한 기분이 들어 주먹을 쥐었다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흠칫, 떨리며 움츠러드는 게 꼭 괴롭히지 말라는 것 같았다. 괜한 심술에 꽉 끌어안자 미간을 찌푸리며 뒤척이던 그가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무거운 눈을 밀어 올려 제게 향하는 멍한 시선.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던 루이스가 눈을 깜빡이다 몸에 힘을 빼곤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을 잡고, 검지로 손바닥을 간질이자 루이스가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귀엽다. 누군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온전치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제게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루이스.”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 불러보는 이름이 달았다. 마치 전에 그가 준 쿨캔디처럼, 혀끝에서 달콤하게 녹아들어 서늘한 향이 퍼지는 것 같았다. 루이스가 쥔 주먹에 잡힌 손가락을 그대로 밀어 넣어 손깍지를 꼈다. 잠든 그는 밀어내지 않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맞춰 숨을 쉬는데 루이스가 작게 웅얼거리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추위를 원망했다면 모를까 반겨본 적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늘만큼은 추위와 어둠이 고마웠다. 감사해야 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