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구한 룸메이트는, 급하게 소개를 받아 구한 것 치고는 꽤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 같아서, 절대 건드리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헐벗은 청년을 본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주근깨가 매력적인, 금발의 청년.
숙취와 함께 바른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끊었던 담배가 고파왔다.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은 간다. 오랜만에 들이킨 위스키가 반가운 나머지 얼음도 없이 쭉쭉 들이킨 게 화근었다. 거기다 정전까지 되는 바람에 촛불을 켜놓고, 캠프 분위기가 난다며 어린애처럼 담요로 텐트를 치고 마시다 보니 그만 들떠서 취해버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룸메이트랑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알몸으로 깨어나진 않았겠지.
머리를 긁다가 일단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보일러가 안 되는 나머지 공기가 찼다. 물도 마찬가지라 대충 세수만 하고 나온 루이스는 널브러진 옷가지며 술병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지러진 거실이 정리가 되어도 일어날 줄 모르는 동거인을 내버려두고, 루이스는 후드재킷을 집어들고 집을 나섰다.
“돌겠네, 진짜....”
차가운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나온 말은 생각을 거치지 않은 100%의 진심이다. 착잡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틴은 좋은 사람이다. 스트레이트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성실한,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이 좋은 사람.
게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걸 계기로 곤란해지는 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당장 사이가 어색해지는 건 물론이고 방을 빼야할지도 모른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감정이 얽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겉잡을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숨을 쉬다가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한 블럭 떨어진 샌드위치 가게는 이 근방에서 그나마 제일 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늘 앉는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인사와 함께 커피를 따라주고, 루이스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특선을 시켰다.
심란하다. 심란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겠지.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커피를 마시려다 흘리고, 그걸 수습하려다 소금통을 치는 바람에 소금통이 바닥을 구르며 큰 소리가 났다. 굴러 떨어진 소금통을 줍고, 엉망이 된 테이블을 티슈로 닦은 루이스는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룻밤의 실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술때문이다. 누가 먼저 키스했는지, 옷을 벗었는지 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저를 내려다보던 그의 얼굴이 꽤 섹시했다는 것 정도가 떠오르는 기억의 전부지만 그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취해서 미쳤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태연하려 해도 이런저런 걱정이 떠올라 목이 바싹바싹 탔다.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마틴이 꿈을 꾼 것으로 넘어가는 게 베스트다. 기억을 아예 못하면 더 좋고.
마침 나온 식사의 계란 노른자를 괜히 나이프로 건드리다 반숙으로 익힌 노른자가 깨져 흘러내려다. 오늘은 하나같이 되느 일이 없다. 이걸 자초한 건 자신이지만, 억울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결백하게, 건드릴 생각이 없었는데. 루이스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목록을 뒤져 전화를 걸자 잠시 수신음이 들리더니 평소의 촐싹거리는 목소리 대신 지쳐 늘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에, 기자 클리브 스테플입니다.”
“저예요, 클리브 씨. 마틴 말이에요.”
“어. 왜, 싸웠어?”
“아뇨. 혹시 그 친구.... 술버릇 어때요?”
마틴을 소개해준 그라면 알지도 모른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묻자 건너편에서 클리브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입을 다셨다. 밤샘이 잦은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일 분 일초에 애가 탔다.
“술 진탕 마시면 서운하고 섭섭한 일 말하면서 울지 않아? 그러다 쓰러져 자던데. 아, 일어나선 기억 못 하더라. 그걸로 자주 놀려먹었지, 아마?”
“고마워요.”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일도 없어요.”
“에이, 아무일이 없긴. 아무 일이 없으면 어디 우리 영웅님이 이렇게 아침댓바람부터 전화를 하셨겠어?”
“다음에 술 살게요.”
루이스는 안도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감이 좋은 사람이니 대충 눈치를 챌지도 모르지만 그래봤자 추측일뿐이다. 마틴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없었던 일로 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불안이 가시질 않는 걸까.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던 루이스는 커피잔을 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를 들어 노른자가 흘러내린 계란을 잘라 입에 넣었다. 밍밍한 계란을 씹다가 바닥에 성대하게 소금을 치고 정작 계란 위엔 소금을 치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치겠네 진짜.”
일단 도망치듯 나오긴 했는데 마틴의 얼굴은 어떻게 볼 것인가. 루이스는 접시를 밀어놓고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