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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ts루이] twenty questions about. 05
* 조만간 책으로 나옵니다 웹 연재분은 언제나 그러듯이 검수 없는 쌩초고
이상하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이글은 요 며칠 새 있었던 일을 떠올리다 최초의 생각으로 회귀했다. 역시 이상하다. 조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폭풍전야가 따로 없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폭풍을 앞둔 고요다.
최근 들어 가장 이상한 걸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예민하고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제 작은 형이라 하겠다.
멋대로 예고도 없이 방을 썼는데 일언반구 없고, 오히려 즐거워보이기까지 했다. 어딘가를 떠도는 건 전이랑 다를 게 없지만 안타리우스의 근거지에서 돌아온 뒤로 한참 바쁘더니, 파티에 참석하질 않나, 요즘은 큰형이 있는 광장에서도 언뜻언뜻 돌아다니기까지. 분명 무언가 감추는 게 있다. 이글의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이글은 제 심증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라지만 이글은 개의치 않았다. 호기심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고, 그런 욕구는 본디 바로바로 풀어줘야 하는 법. 여느 때처럼 연합의 휴게실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던 이글은 냉큼 일어나 검을 들었다.
워낙에도 딱딱하고 젠체하는 형들을 먹이는 건 특기지만 오늘은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러 가는 기분이랄까. 벨져의 비밀을 파헤칠 생각을 하니 어린애마냥 들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회사와 연합은 안타리우스와 물밀듯 들어오는 신흥 세력들에 치여 완전 카오스 상태고, 당연스럽게도 이글은 회의에서 배제됐다. 알려주는 건 이미 퍼져서 공공연한 사실이 된 정보 정도일까. 연합에 투신하기 전에도 이런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건 익숙했기에 별 감정은 없다. 그들이 히든 카드로 쓰겠답시고 감춰둔 정보는 이미 이글의 손에 들어와있는 경우도 많았다.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맞댄들 이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누구라도 같은 마음일 테지. 공공의 사라지면 그 후에 이권과 공적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또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연합과 회사는 여전히 능력자 세계의 큰 축이지만 그 비대해진 몸집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부의 파벌이 힘겨루기를 하고, 그러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언젠가 무너질 걸 알고 있음에도 그들이 독립을 선언할까 섣불리 손을 손쓰지 못하는 건 연합이나 회사나 똑같았다. 그 지경에 이른 걸 어찌 해보겠다고 토니와 루이스를 비롯한 측근 참모진이 고군분투하는 중이지만 전쟁의 행보란 조커 급의 능력자인 토니 조차도 예측할 수없는 문제였다.
“뭐,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인간이 아니겠지만.”
이글은 가벼운 걸음으로 공중에 혼잣말을 날려보냈다. 따라 붙는 시선이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살기도 적의도 서려있지 않은 미행. 대충 정체는 짐작이 간다. 그제인지 언제인지 벨져의 호텔에서 봉사만 하고 허탕을 친 그것때문이겠지. 이글은 나이스한 바디에 붉은 드레스 차림의 여자를 떠올렸다. MI7의 요원이라는 건 몰랐지만 홀든 가의 망나니에게 정보를 빼내려 접근하는 미녀는 수도 없이 많았고, 덕분에 이글은 그네들이 예쁘장한 얼굴, 관능적인 몸매, 진한 화장과 화려한 치장으로 가린 정체를 간파하는데 통달한 상태였다.
글쎄, 누구라도 벨져같은 형제와 함께 살다보면 그렇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게 벨져 홀든이고, 그를 낳은 어머니다. 주변엔 하나같이 에쁘고 잘생긴 사람들 뿐이고 이글 그 자신도 얼굴로는 어디 내놔도 뒤쳐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후광쯤 비치거나 웬만큼 신비롭지 않고서야 이글이 외모에 홀릴 일은 없다. 이글은 제 작은 형을 떠올리고 혀를 찼다. 다이무스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잘난 가문에서 하라면 군말 없이 결혼할 사람이다.
그런데 벨져는, 그 아름답고 오만한 인간은 오죽하랴. 벨져는 그냥 아무 여자랑 원나잇을 하기엔 눈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게다가 그 몹쓸 자존심. 그러니까 귀족으로서 가지는 고결함과 품격엔 맞지 않는 행위라며 점잖을 떠느라 제대로 연애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물론 한 사람과 오래 만나지 않기는 이글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이글은 제 욕구와 흥미엔 충실한 편이었다.
어차피 다 죽을 텐데 기왕 사는 거 즐겁게 다 누려봐야지. 하여간 형들이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글은 문고리에 걸려있는 룸서비스 사양용 팻말을 슥 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문을 땄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못 할 것도 없다.
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문까지 꽁꽁 걸어잠그셨나 했더니, 그 답지 않게 방 안이 어수선했다. 별다른 위험은 느껴지지 않지만, 평소와는 확실히 다르다.
빈 방에는 머스크 향이 가득했다. 벨져가 애용하는 향수의 냄새다. 그런데 그 아래로 은은한 꽃냄새가 난다. 강한 머스크와 비누에서나 날 법한 냄새. 다소 이질적인 조합에 이글은 벨져의 화장대 위를 살피다 익숙한 향수병을 집어들었다.
화려한, 딱 벨져 홀든 같은 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쪽. 수수하고 은은한, 웬만해서는 눈치 채지 못할 향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하고 욕실에 들어가 문제의 답을 찾으려 했지만 욕실에도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글은 제 형의 취향이 참 일관됐다는 것만 새삼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벨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여기 왔었다. 타인의 흔적을 찾아 방 안을 훑던 이글의 눈이 침대에 멈추고,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어쩐지 요즘 엄청 바쁘더라니. 화장대 앞에 걸려있는 흰 목욕가운과 두 사람이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침대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벨져 홀든을 모르는 사라이라면 또 모를까, 이글의 눈엔 이 방을 본 것만으로 그간의 정황이 훤히 보였다. 이글은 확신을 위해 이불을 걷어 시트를 만져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게 둘 다 나간지 얼마 안 된 모양인데, 그것도 놀라웠다. 벨져 홀든이 다른 사람을 침대에 들인 것도 모자라 아침까지 함께 있었다니! 다른 호텔도 아니고 여기로 데려올 정도면 그건 정말 진심이란 뜻이고, 놀라운 만큼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비싸게 굴더니 제일 먼저, 그것도 비밀로 애인을 만들어?
이글은 괘씸한 작은 형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이 눈에 들어온 건 정말이지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결코 짧지 않은, 벨져의 것보다 더 탁한 색의 머리카락. 익숙한 색이다. 머리카락을 집어들어 빛에 비춰본 이글은 떠오른 인물에 말문을 잃었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요즘 통 안 보이긴 했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고, 상관을 안 하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 실상이 이거일 줄이야. 저도 모르는 사이 충격에 입을 벌렸던 이글은 다시 한 번 손에 쥔 머리카락을 보고 기가 찬 나머지 실소를 흘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둘이? 이글은 문제의 두 사람을 잘 알았다. 가장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것보다는 잘 알았다. 둘 다 연애하고는 연이 없는 사람인 건 둘째 치고 이 시국에 자기들 감정에 빠져 없는 시간을 허비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 뭔가 더 있다는 건데. 숨은 뜻을 참으로 머리를 굴려도 이렇다할 게 떠오르지 않아 끙끙거리던 이글은 머리를 헤집으며 벌떡 일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침대를 쓰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무렴. 그 둘이 한 침대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벨져는 과거의 패배 따윈 신경 쓰지 않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걸 즐겼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정말 초월하고 극복했을 리 없다. 그러기에 벨져는 너무 잘났고, 그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신경 안 쓴다고 하느라 더 신경을 쓰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그런데 그 상대와 잔다고? 루이스도 그렇다. 벨져가 그러는 걸 뻔히 알면서 도대체 왜?
이글은 그 둘 사이에 제가 모르는 모종의 거래를 상상하며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하긴, 첫 만남이 그렇게 강렬했으니 또 모르지. 소위 운명의 짝이라는 걸지도 모르고, 섣불리 판단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고민에 빠지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하이힐을 신은 여자마냥 도도한 발소리에 이글은 방 주인이라도 된 양 일어나지도 않고 괘씸한 작은 형을 맞았다. 예상한 대로 벨져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다가왔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벨져가 예쁜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이글을 쏘아봤다.
“어~. 작은 형,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바쁘게 쏘다녀?”
“뭐하는 짓이냐, 이글.”
“어, 열려있더라구. 왜? 내가 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혹시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실실 웃자 벨져가 대놓고 그 수려한 외모에 짜증과 불만을 담아 미간을 찌푸렸다. 핵심을 찔려 더 불쾌하겠지. 이글은 계속해서 아픈 구석을 찔러댔다.
“어? 진짠가 본데. 누구야? 예뻐?”
“이글.”
“에이, 그러지 말고~. 응? 누군데. 응? 아, 속 시원히 말 좀 해봐!”
“그런 거 없다.”
“정말? 그럼 이 머리카락은 뭐야?”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눈을 찡그리던 벨져의 얼굴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당황한 벨져의 눈빛에 이글은 상큼하게 웃었다. 나는 다아 알고 있어요. 비록 제 대사는 아니지만 지금은 재단의 동갑내기 독심술사의 말이 딱이었다.
“어디 보자, 형 거라기엔 좀 길고, 색도 탁하고…. 흐으음…. 누구더라?”
“이글!!!”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르고 그래?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봐?”
벨져가 이죽거리는 이글을 쏘아봤다. 떨리는 입가가 억지로 미소를 머금었지만 그래봤자 이미 평정을 가장하기엔 한참 늦었다. 이글은 실실 웃으며 손을 펼쳤다. 공중에 뜬 머리카락이 둥실 떠다니다 떨어졌다.
“뭐, 형 반응 보니까 대강 알겠네. 근데 설마 억지로 한 건 아니지?”
“그게 무슨 망발이냐!”
“아무렴 시정잡배들고 아니고 명예를 목숨같이 아는 벨져 홀든 경께서 그러셨겠어. 근데, 좋았어?”
“이글!!”
“아, 소리 치지 말고 말 좀 해봐.”
어라, 이상하다. 벨져의 반응이 어째 시원치 않다. 아니,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게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 게 어째 더 수상하다. 이러니까 마치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가. 시뻘개진 얼굴이며 자기가 모욕당한 것보다 더 날카롭게 반응하는 게 딱 그랬다.
그 총잡이도 이런 분위기였지. 이글은 제 가정이 점점 더 확실해지는 걸 깨닫고 무미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벨져가 사랑에 빠진 건 두고두고 놀려먹을 일이지만, 웃음이 안 나왔다. 이건 하나도 재밌지가 않다.
“형, 미쳤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적당히 해라.”
“걔가 누군지 몰라? 진짜로?”
“그런 거 아니다. 제길, 설명해줄 테니 나와.”
“형!”
“나오라고 했다.”
싸늘한 눈빛에 이글은 입을 다물었다. 더 볼 것도 없다. 벨져가 하려는 말은 기껏해야 그의 감정을 어떻게든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티가 나다 못해 이 정도면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감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벨져가 루이스를 좋아한다. 그것도 이성적인 감정으로.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길은 너무 험하고 힘든 길이었다. 몰랐으면 또 모를까, 다칠 게 훤히 보이는데 가만히 지켜있을 수는 없다. 이글은 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였다는 걸 시인했다. 열면 안 되는 상자를 열어버렸다.
“루이스가 좋아?”
“…….”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벨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마주한 형제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그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소모전. 이글이 먼저 시선을 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걘? 걔도 형을 좋아해?”
“……”
“진심이야?”
사랑이란 한 쪽의 감정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옆에서 안타까운 짝사랑을 하는 사람을 봐왔기에 잘 알았다. 그 애처로운 사랑 얘기의 주인공이 벨져가 될 줄은 몰랐지만 그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싸늘하게 얼어붙은 얼음 심장을 가진 그녀다.
벨져는 원하는 걸 가지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아니다. 이글은 가까이서 지켜본 루이스와, 그녀의 등을 떠올렸다. 얼핏 가녀려 보이는 어깨지만 그 어깨에 짊어진 건 수 십 수만명의 목숨이다. 루이스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또 모를까, 제 아무리 벨져라 한들 그녀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녀의 이상은 너무나 멀고, 이 혼란한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이기에 더더욱.
때문에 이글은 벨져가 말로라도 아니라고 답하길 바랐다. 차라리 모르면, 그렇게 부인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멀어지면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벨져는 답이 없었다. 침묵은 긍정이라 했던가. 더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이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뜻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미친 거야? 걔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 그래. 예쁘긴 하지. 근데 예쁘기로 치면 형이 더 예쁘거든?!”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형이 좋아한다고 해. 뭐 그럴 수도 있지! 가끔 하는 거 보면 귀엽기도 하고! 근데…!”
“잠깐.”
말을 막은 벨져의 눈빛이 험악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위협적인 눈빛에 이글은 움찔 뒤로 물러났다. 말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법이고, 이글은 제 형의 주먹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뭐?”
지금 어이가 없는 사람이 누군데, 벨져는 기가 차다는 듯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뭐라는 건가. 아니, 기껏 사람이 걱정을 해줬더니 병신 취급을 해? 그것도 친동생을 상대로? 질투를? 벨져 홀든이?
이글은 차례로 떠오르는 의문에 헛웃음을 흘리다 웃어제꼈다. 이 정도면 정말 답이 없다. 지랄도 적당히 해야 불쌍히 여기지,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다. 한바탕 폭소한 이글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자신을 가라앉히고 벨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이글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자초지종을 추궁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벨져 홀든이라니 소름이 끼쳤지만 그래도 그는 제 형이었다. 몹쓸 형이지만 어쨌거나. 그러니 어느 정도까지는 도와주는 게 맞다. 이글은 잠시 머릿속으로 연합과 벨져를 저울질하다 한 번 더 튕겨 보았다.
“나 연합 소속이걸랑?”
“내가 그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거냐?”
“아, 예…. 참 잘나셨네요. 하아. 진짜 내가 미쳤지….”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라. 이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옆에서 본 게 몇 년인데 귀여운 거 좀 볼수도 있지! 분명히 말하는데, 걔가 웃어주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거든?! 형보단 내가 걔를 잘 알어! 알아?!”
누구 염장지르는 것도 아니고, 꼴에 좋아한답시고 되먹지도 않은 질투를 하는데 억울한 나머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팔짱을 끼고 못마땅해하던 벨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가왔다.
“그럼 아는 김에 말해봐라.”
“…뭐?”
“그녀에 대해 아는 거 전부. 그럼 멋대로 군 것 정도는 용서해주지.”
벨져는 이글을 내려다봤다. 그 딴엔 선심 써서 아량을 베푼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이건 권유가 아니라 협박이다. 말 안하면 용돈을 끊던가, 아니면 주먹이나 발이 날아오겠지. 이미 그의 승리에 도취해있는 형을 올려다보며 이글은 눈을 깜빡였다.
정말이지, 걱정을 해봤자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 형제다. 이 거지같은 형을 걱정하느니 루이스를 걱정하는 게 심신의 평화에 이로울 성 싶었다. 일단은 제 신세부터 걱정해야겠지만. 이글이 속으로 갈등하는 사이 벨져는 의자를 끌어다 앉고 와인까지 들고 와 홀짝였다.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 판도랑의 상자를 연 순간 빠져나갔다는 온갖 부정한 것들. 그 모두가 한데 섞여 벨져 홀든의 형상을 띠었다. 이글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글이 연 상자의 밑바닥에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글쎄, 희망이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일까.
벨져는 이글이 다 토해내기 전까지 보내줄 사람이 아니었고, 다이무스처럼 은근슬쩍 속아주는 사람도 못됐다. 이글은 지금쯤 연합의 사무실에서 용을 쓰고 있을 루이스를 떠올리고 쓴웃음을 삼켰다. 그녀의 샤드가 제 머리를 강타하는 감각이 아직도 선했지만, 지금 그녀는 아주 멀었고 벨져는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까운 주먹이 무서운 법이었다.
영웅님. 미안. 나도 좀 살자. 이글은 긴 한숨을 내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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