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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져루이] 당신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L2
* 현대물, 암흑가에 다른 방식으로 깊이 자리잡은 두 사람
** [벨져루이] 위험한 관계 의 프리퀄
*** 조만간 책으로 나옵니다 웹 연재분은 언제나 그러듯이 검수 없는 쌩초고
※ 벨져루이<-다무 주의
벨져가 그 날에 대해 아주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루이스는 그의 오해와 그날의 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다이무스가 유학을 떠나기 전에 감사와.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 때는 어렸고, 한 사람 외에는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그 날부터 지금까지 쭉, 그 앞에 서면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지만 그 때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행복에 겨워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짓밟은 대가였을까.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자신과, 똑같이 아파하면서도 저에 대한 마음을 거두지 않는 그.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마음을 기대는 나.
그렇게라도 옆에 두고 싶다는 마음을 알기에 루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봐도 못 본 척하며 저도 참 못됐다는 생각을 지우질 못했다. 다이무스 앞에 서면, 그의 호의와 친절, 그리고 이따금씩 경계를 넘어오는 감정에 도망가기 바빴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이무스를 사랑했으면 달랐을까. 그럼 우리 모두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어 주머니를 뒤졌으나 손에 집히는 게 없었다. 루이스는 작게 욕을 하며 머리를 짚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그건 불가능했다. 루이스는 그 간절한 회색 눈동자를 떠올렸다. 힘들어하는 걸 알아도 도와줄 수가 없다. 그게 자신 때문이라 더,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왜 그 땐, 그걸 몰랐을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루이스는 다이무스에게 줄 자그마한 선물을 가지고 그의 방 문 앞에 섰다. 저를 구원해준 그가 집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는 날이었다. 방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자 책상 앞에 서서 제가 그에게 주었던 들꽃을 들고 아련한 눈을 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
“...루이스.”
루이스는 슬며시 웃으며 들어갔다. 한 손을 등 뒤에 숨기고, 다 말라 툭 손을 대면 바스라질 것 같은 작은 꽃다발을 든 그의 손을 바라봤다. 다이무스는 내내 그랬던 것처럼, 꽃잎 하나 떨어지지 하게 않겠다는 듯이 조심스레 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드세요?”
“...가져갈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던 중이었다.”
“다 부서질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는 다이무스는 그답지 않게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해야 했기에 아무리 믿음직하고 의젓한 맏형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은 두려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 루이스는 제게 눈길을 주는 대신 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다이무스에게 다가갔다.
“도련님. 그,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다이무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루이스를 바라봤다. 손에 들고 온 선물을 건네기 위해 그의 손을 잡자 다이무스가 흠칫 놀라 손을 빼려다 뻣뻣하게 굳은 손을 내어주었다. 늘 따스했던 그 손이 차가워진 게 안타까워, 루이스는 그의 손바닥을 엄지로 매만지며 작은 선물을 그 위에 올렸다. 순간, 몸이 확 당겨졌다. 허리를 잡아 끌어당기는 힘에 놀라 고개를 들자 다이무스의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눈을 꽉 감고 입술로 입술을 누른 그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놀라 얼어붙은 자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당황하기를 몇 초,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루이스는 다이무스가 입술을 뗄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루이스. 함께 가자.”
“도련님, 저는....”
루이스는 다이무스가 입술을 떼 떨어지자 한 박자 늦게 그를 밀어냈다.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행위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다. 루이스는 단 한 번도 그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열정과 결의에 타오르는 다부진 눈길이 낯설었다. 다이무스가 다가오자 루이스는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를 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벨져 때문인가?”
“.......”
“널 구한 건 나다.”
한참 뒤에 나온 목소리에는 꽉 억눌린 감정이 모두 배어있었다. 루이스는 다이무스의 눈을 보지 못하고, 그의 주먹이 부들거리며 떨리는 걸 바라봤다. 다이무스의 목소리는 엄하고, 진중한 평소와 너무나 달랐다. 감정이란 폭풍이 채찍처럼 몰아쳤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다이무스를 모욕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그의 감정을 모른 척 외면해서는 안 됐다.
“...큰 도련님은 제 은인이시죠.”
“그런데 왜!”
“그래서, 그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제게 아버지이고, 형이고, 은인이에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래.”
지옥같은 침묵 끝에 내뱉은 말에, 루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한 그대로 다이무스는 제게 벨져만큼이나, 혹은 어떤 의미론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이런 식으로 상처 주는 게 루이스라고 편할 리 없었다. 무거운 죄책감에 한숨짓고 방을 나온 루이스는 그대로 벨져에게 향했다.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마음을 가라앉힐 곳이 필요했다. 그냥 옆에 앉아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쉬고 싶었다.
그리고 벨져는, 다이무스에게 줄 선물을 같이 고르고 얼른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던 벨져는 한순간에 돌변했다. 벨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저를 한 번 보고는, 그 뒤로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말을 거는 것도, 손을 뻗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심장을 꺼내 줄 수 있을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순간에 남보다 못한 사람처럼 자신을 대하는 그 기분이란.
벨져는 철저히 루이스를 무시하고 외면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해도, 싸늘한 눈으로 한 번 눈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네 죄를 네가 모르냐고 묻는 그 눈빛에 루이스는 항변할 수도 없었다. 그건 다이무스를, 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다. 벨져가 말하지 않는대도 그걸 아는 순간 벨져는 그의 승리에 도취될 터였고, 그게 사실이라 한들 루이스는 다이무스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굴어선 안 됐다.
루이스에게 다이무스는 구원자였다. 존경해 마지않는 형이었으며, 벨져는 이상과도 같았다. 꿈과 이상, 그 반짝임을 몸에 두른 그. 루이스는 그 모두를 손에 쥐려다 한 순간에 두 사람을 잃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게 어떤 것인지 루이스는 몸소 깨달았다.
그래도 처음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해일 뿐이라고, 천천히 시간이 흐른 뒤에 말하면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벨져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제 마음을 알아준 첫 사람이었다. 그런 그니까, 순간의 감정이 누그러지면 분명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돌아와 줄 거라고, 그의 오해였음을 깨닫고 멋쩍어 화를 낼지언정 결국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오년에 걸쳐 배신당했다. 순간의 망설임. 벨져가 준 기회에 잠시 망설인 그 몇 초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그게 더, 그와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건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이제와 후회한들 흐른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벨져가 떠난 첫 해, 그동안 루이스는 어떤 수단으로도 벨져와 닿지 못했다. 며칠을 걸쳐 심혈을 기울인 편지는 뜯지도 않은 채 반송됐고, 전화는 제가 수화기를 받아들면 끊겼다. 다가오는 부활절에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벨져는 여전히 루이스를 유령 취급했다. 말 한마디 붙여보려 하면 자리를 피했고, 방문을 두드리면 자는 척 하거나 문을 걸어 잠갔다.
문 밖에서 아무리 기다리고 말을 건넨들 소용이 없었다. 벨져는 루이스의 말을 단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았다. 들어도 모른 척 무시했다. 이 년째엔 방학이며 명절에 여행을 간다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 때문인지 굳이 생각할 것도 없다. 벨져는 그의 인생에서 자신을 그의 치부처럼 여기고, 지워버렸다. 가장 반짝이는 시절은 그렇게 외면당했다.
다이무스와 벨져가 떠난 저택엔 적막이 흘렀다. 이글마저 없었다면 혼자 고독에 잠기어 자신을 죽이고, 인간의 삶을 끝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은 건 산 채 죽어가는 자신에게 이글이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간간히 그보다 더 자신을 걱정하는 다이무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참으로 쓰잘데기 없는 책임감이라고 자조하면서도, 이글이 까불거리다가도 금세 표정을 바꿔 손을 꽉 잡아온다거나 지친 목소리의 다이무스가 제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비탄에 찬 삶을 견뎌냈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려니 진동 소리가 울렸다. 마음 같아선 그것도 몰라라 하고 싶었지만 두 번 빠르게 울렸다 잠잠해지는 소리에 루이스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이글이면 끊어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자 어찌 또 힘겨워하는 걸 알았는지, 다이무스의 이름이 액정에 떠있어 급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접니다.”
“음. 그래. 몸은 좀 어떻고.”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걱정과 상냥함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루이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괜찮다고 답했다. 잠겼던 목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요즘, 무리하는 것 같다더구나.”
“늘 그렇죠.”
“나는...... 네가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상냥한 진심에 루이스는 잠시 느꼈던 따스한 위로와 그 뒤에 찾아온 씁쓸한 감정을 삼켰다. 목울대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진 않겠지만, 잠시 핸드폰을 뗐다가 다시 얼굴 옆에 가져갔다.
“전 괜찮습니다.”
“혹시 그래도 힘이 들면....”
“네, 큰 도련님은 항상 제가 필요하시죠.”
다이무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라던가. 루이스는 작게 웃었다. 그가 얼굴을 보지 않고도 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듯, 루이스 역시 다이무스를 잘 알았다.
“정말입니다. 아직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루이스.”
“아시잖습니까. 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단 강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루이스는 다이무스가 다른 말을 붙이기 전에 냉큼 반대편의 시간을 계산하고 다이무스에게 그야말로 휴식이 필요하며, 제가 없다고 마구 야근을 하다가 기껏 올려놓은 다크서클이 다시 내려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다이무스는 여전히 제게 약했다. 먼저 사랑에 빠진 쪽이, 혹은 더 사랑하는 쪽이 지기 마련이라고 하는 세간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다이무스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웃었을 때, 루이스도 그를 따라 웃으며 그만 자라고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되어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오히려 더 갈 수가 없다는 걸 알까. 루이스는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한숨짓는 일이 많아졌다는 걸 안다.
이제는 정말 이 지독한 사랑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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