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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루이] Scarface. 01.
01
다이무스는 집사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다. 미리 받은 주소로 짐을 부쳐놓은 뒤라 늘 들고다니는 가방 외에 딱히 챙길 게 없었다. 오늘부터 연합 쪽에서 제공한 집에서 그와 단 둘이 생활해야 한다. 보안상의 문제로 잡역부도 들일 수 없으니 말 그대로 단 둘이. 딱히 불편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 집처럼 편할 순 없다.
리버포드에 위치한 이층집 앞에 차를 세웠다. 생각한 것보다 외관이 준수했다. 이탈리아풍의 이층집. 누구의 소유인지 감이 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다이무스는 코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찰칵,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다이무스를 맞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 안에는 아니나 다를까 꽤 고급스러운 가구가 즐비했다. 연합은 마피아에 모태를 두고 있으니,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소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이무스는 거실 한 가운데 놓인 제 짐을 확인하고 집 안을 둘러봤다. 일층에 넓은 거실, 서재, 작은 부엌과 식당, 이층에 있는 침실까지. 다른 곳은 원래 비워둔 건지 급히 치운 건지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다이무스는 집을 둘러보고 텅 빈 벽난로에 장작을 던졌다. 바로 오겠다던 사람은 아직 소식이 없다. 먼저 불이나 피워둘 생각으로 난로 앞에 섰는데, 불씨를 던져 넣어도 불이 쉽게 오르지 않았다. 다이무스가 한참 마른 장작과 씨름하며 회사에 있는 그녀를 떠올릴 무렵, 문이 열렸다.
“...... 뭐……. 하십니까?”
“....... 불 피우는 중이었다만.”
“아.”
여전히 추워 보이는 차림의 그가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옆으로 매는 가방을 소파에 대충 던진 그가 난로 앞에 다가와 안을 기웃거렸다.
“불 있으십니까?”
다이무스는 라이터를 내밀었다. 수십 번을 시도해도 붙지 않던 불이, 그가 왔다고 붙을 리가 없었다. 다이무스에게 이런 추위는 그리 견디기 힘든 것도 아니었지만 루이스는 방금 막 퇴원한 환자였다. 이대로라면 하루를 보내기도 전에 동사할 지도 모른다. 난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을 꺼내려는데 루이스가 가방에서 신문을 꺼냈다. 루이스는 장작을 다시 쌓더니 대충 만 신문지에 불을 붙여 장작 속에 던졌다.
하얀 손과, 더 파리해진 것 같은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결정능력자라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고 해도 옷차림이 너무 얇다. 다이무스는 코트를 벗어 신문지를 던져 넣는 그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은 것 치고 안색이 좋지 않군.”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벽난로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은 루이스가 다이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달라는 뜻인 줄 알고 그의 손을 잡아당기자 무슨 짓이냐는 듯 올려다본다. 다이무스는 그제야 제 손에 부지깽이를 말하는 것을 깨닫고 잡은 손을 놓았다. 부지깽이를 내밀자 루이스는 장작을 몇 번 들쑤시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좀 쌀쌀하네요. 보일러부터 틀고 오겠습니다.”
“침실은 이층이다.”
루이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무스는 짐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 멈춰 섰다. 침실은 하나뿐이다. 방금 확인하지 않았던가. 다이무스는 이게 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원망하며 계단을 마저 올랐다. 심지어 한 방에 투베드도 아니고, 성인 남성 둘이 굴러다녀도 될 정도로 큰 침대가 떡하니 놓여있을 뿐이다. 다이무스는 짐가방의 옷부터 정리했다. 세탁이나 다림질이야 세탁소에 맡긴다 해도, 청소며 요리를 비롯한 가사는 직접 해야 한다. 다이무스는 새삼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고 한탄했다. 아직 방의 공기가 데워지지 않아 다른 코트를 걸치고 넓은 침대에 얄궂게 자리한 베개 두 개를 노려봤다.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뭐라도 있습니까?”
“아니다.”
가방을 들고 온 루이스가 방 안을 휙 둘러보고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리라. 먼저 옷장을 쓴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루이스는 열려있는 옷장을 보고,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옷가지를 정리해 넣었다. 생각한 대로 루이스는 같이 살기에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다. 먼저 짐을 정리한 루이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다이무스는 묵묵히 짐을 정리했다. 먼저 와서 정리를 시작했음에도 짐의 양 자체가 차이나다 보니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방 안은 많이 따뜻해져서 숨을 내쉬어도 하얀 김이 서리지 않았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내상이 심했다고 들었다만.”
“밖으로 안 보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조심하도록.”
루이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지친 기색이 농후했다. 다이무스는 조금 더 자라고 하려다가 쓸데없는 참견이란 생각에 그만두었다. 컨디션 조절 정도는 알아서 할 것이다. 그보다 두 사람의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먼저였다.
“연합에서 일은.”
“알아서 할 겁니다. 같이 다녀야하는 만큼 둘을 쓰는 임무를 주겠죠. 저보단 다이무스씨의 일정을 조율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전 중으로 은행 업무를 볼 거다. 오후는 비워놓았고, 5시 이후엔 다시 은행 업무를 보고 7시 전으론 퇴근하도록 하지.”
“좋습니다. 그럼 그동안 서점에 있도록 하죠.”
셔츠를 개던 다이무스는 고개를 들어 루이스를 바라봤다. 그는 눈을 맞추긴 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스물 네 시간, 동행하라는 말은 못 들었나?”
“그럼 장식장이라도 할까요.”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긴 싫단 소리다. 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영웅에게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까. 그렇게 따지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업무도 제대로 못 하고 묶여있는 저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이무스는 한 번 참기로 했다. 첫단추부터 잘못 꿰고 싶지 않았다. 그 냉랭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열 손가락을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았고, 다이무스는 그보다 더 심한 동생을 둘이나 가지고 있었다. 둘째 녀석에 비하면 이 정도야 까칠한 축에도 못 든다.
“나쁘지 않군.”
“당신에게, 나쁘지 않은 거겠죠.”
“내가 네 상황을 이해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
“제게 당신의 상황을 이해해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스.”
“미리 말씀드리죠. 뭔가 알아내려 하는 거라면, 공연히 힘 빼지 마십시오.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백제를 투여해도 답은 같을 거예요. 믿지 않겠지만.”
루이스는 자조했다. 다이무스는 잠시 제 안에 가라앉아있던 연민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본 적이 있던가. 다이무스가 아는 연합의 영웅은 이렇게 약한 남자가 아니다. 얼음같이 차가운 남자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든 여자를 떠올렸다. 보는 사람마저 안쓰러워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루이스는 낯설고, 또 대하기 어렵다. 다이무스는 한 발 물러났다.
“임무일 뿐이다.”
“……. 그러겠죠. 당신도…….”
다이무스는 고개를 들었다. 잠시 제게 머물렀던 그의 붉은 눈이 달아나버렸다.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 다이무스 씨가 이렇게 묶여있는 것도 금방 끝날 겁니다.”
“무언가 알고 있나?”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곧 쓸모없다는 걸 깨닫게 되겠죠. 당신도, 그들도.”
루이스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상처와 비밀. 어느 쪽에서 기인한 태도인지는 모르나 다이무스는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파헤친다고 속내를 터놓을 사람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회사의 에이스가 아닌 다이무스 홀든은 루이스 개인을 존중했다. 그가 쌓아올린 공적과 짊어지고 있는 것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의 병실을 가득 채운 선물이 증명하듯 그는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곳에 있는 건 헬리오스의 에이스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별개다. 다이무스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의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침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시야 안에 있어라.”
“.......”
루이스의 시선이 다이무스를 향했다. 그걸 느끼면서도 다이무스는 루이스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잔뜩 겁먹은 토끼처럼 다시 도망갈 것 같아 마지막 남은 바지를 옷걸이에 걸어 넣으며 말을 덧붙였다.
“은행과 서점은 가까우니 사무실을 잠시 그리로 옮긴다고 생각하지.”
“.......”
“싫다면 계속 이 집 안에 있어야 한다만.”
“……. 좋습니다.”
“그래. 그럼 점심부터 먹도록 하지.”
빈 짐가방을 닫아 방 한 쪽에 세워놓고, 다이무스는 루이스와 눈을 맞췄다. 도망가지 않고 저를 마주하는 붉은 눈에 잠시 빛을 잃었던 총기가 돌아왔다.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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