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알싸한 냄새. 소독용 알콜과 세제 특유의 냄새가 나는 복도를 한 남자가 걸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긴 검은 병문안을 의심하게 했지만 어쨌거나 목적은 병문안이 맞았다. 검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다이무스는 연합 쪽에서 전해 받은 정보를 다시 한 번 곱씹고 흰 문 앞에 섰다. 정중하고 간결하게 노크한 뒤 문을 열자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리자 차분한 목소리가 다이무스를 반겼다.
“예상대로군요. 당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연합의 영웅은 창가에 서있었다. 겨울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그는 당연히도 얇은 환자복 차림이었다. 다이무스는 문을 닫았다. 갈 곳을 잃고 가라앉은 바람에 펄럭이던 커튼이 멈췄다.
“아이스.”
다이무스는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다이무스를 향해 쓰게 웃었다.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들이쳐, 역광이 졌다. 할 수만 있다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겨울 도나우 강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것 같은 미소였다. 그는 지쳐보였고, 그 기색을 감추려하지도 않았다.
트리비아 카리나가 떠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까지 함께 있었던 유일한 남자는 홀로 돌아왔다. 자연히 새 공간과 정보에 혈안이 되어있던 이들의 관심은 그에게 쏠렸다. 자백제라도 투여해서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지천에 널렸다.
연합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곤 하지만 그는 연합의 영웅이었다. 새 공간, 그로부터 파생될 막대한 힘. 그 유일한 목격자. 세계는 안타리우스의 재림과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능력자단체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고, 새로운 공간과 힘을 연합이 독점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언제 이 경쟁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은 결국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결정의 루이스는 24시간, 회사 측 인물과 동행할 것. 연합은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정보의 우위를 점한 건 그들이나 물자를 가진 건 회사다. 그것은 2차 능력자 전쟁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루이스가 안타리우스로 추정되는 괴인들에게 습격 받아 혼수상태에 빠진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연합에선 루이스가 정보를 털어놓을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회사에서도 그가 순순히 협조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보호라는 명목 아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을 뿐이었다.
연합에서는 그 괴한들 역시 회사의 소행이 아니냐고 따지고 들었지만 회사는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소식, 그러니까 기어이 안타리우스의 의식이 성공했다는 정보가 이글을 통해 들어오면서 일주일간 이어진 탁상공론이 끝을 맺었다.
동생들의 소식을 적대세력을 통해 전해 듣는 기분이란. 다이무스는 통탄했다. 기어이 녀석들은 제멋대로 뛰쳐나가 일을 벌였다. 안전이라곤 보장되지 않는 곳에 몸을 던지고 불나방이라도 되려는 것인지. 거기에 아메리카 대륙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합도 회사도 더는 무의미한 소모전을 계속할 수 없었다.
빠른 동맹을 맺고, 회사와 연합은 협력을 약속했다. 회사가 부랴부랴 내놓은 타협안에 연합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아무렴 연합에 경호인원 하나 없겠냐는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지금은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회의 끝에 그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건 다이무스였다.
안타리우스의 습격에 대응할 수 있고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며 배신하지 않는 믿을만한 사람. 거기에 그가 숨기고 있는 것들을 알아내고 감시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게 윗선의 결정이었다. 이런 일에 내보낼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있었고 타라는 빈말로도 그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녀가 이성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아무렴 동성이라도 화장실이나 욕실까지 들여다보는 건 아니지만 성별이 다르면 여러모로 제약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다이무스는 병실 한편에 놓여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루이스의 병실엔 꽃이며 간식거리며 과일 같은 선물이 가득했다. 베개 옆에는 사랑스러운 곰인형까지 있다. 연합에서 그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 이 병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결정의 루이스는 명실공히 연합의 영웅이다.
그래도 예전엔 한 마디씩 말을 붙였던 것 같은데. 루이스는 다이무스가 자리에 앉아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다이무스는 서류와 안경을 꺼냈다. 임무는 내일부터지만 은행일까지 쉴 수는 없었다. 그나마 그가 이글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루이스는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은 너무나 당연해서 신경 쓸 것도 없다는 듯, 처음 건넨 말이 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전부라는 듯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바깥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이무스는 루이스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불편해하면 나가면 그만이고 말을 걸면 그에 맞는 답을 하면 그뿐이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상태를 보러 온 것 뿐이니.
기어이 보던 서류를 정리하고 나서야 다이무스는 고개를 들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면 어느새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다이무스는 안경을 벗으며 말을 꺼냈다.
“내일이 퇴원이라 들었다만.”
“우연이군요. 저도 내일부터라고 들었는데. 바로 갈 겁니다. 챙길 짐도 별로 없고.”
좋게 봐줘도 우호적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말투에 눈에 힘을 줘도 루이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한 시간 반이 흐르도록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내일 뵙죠.”
완곡하지만 단호한 축객령이었다. 다이무스는 서류를 챙기고 배웅은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사내의 등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살펴 가십시오.”
다이무스는 재킷의 단추를 잠그며 돌아섰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한동안 같이 살게 될 텐데, 그동안 부딪히지 않으려면 이 무미건조하고 냉랭한,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가 서로에게 훨씬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