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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루이] 반장과 모자걸이
호그와트AU
릭 7학년/루이스 3학년
기숙사에 남은 인원을 체크하고, 첫 호그스미드 방문에 들뜬 3학년을 배웅한 후플푸프 기숙사의 반장 릭 톰슨은 손을 내리고 양팔을 감쌌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서리고, 방한 마법을 건 망토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데도 춥다.
처음 호그스미드를 방문할 쯤이면 눈이 펑펑 내리긴 하지만 올해는 유독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았다.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서, 벽난로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지. 숨겨놓은 도넛과 코코아를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하는데 얼어붙은 분수대에서 까딱이는 발이 보였다.
“음? 루이스?”
“아, 릭. 안녕하세요.”
“왜 여기 혼자 있는..... 아.”
코며 뺨이 빨개졌는데도 시무룩한 얼굴로 발만 구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본 릭은 이런 날 혼자 눈을 맞고 있는 이유를 짐작하고 입을 다물었다. 고아 출신에, 성도 없는 아이는 호그스미드 방문 허가증에 보호자 사인을 받지 못한 게 분명했다.
“여기 계속 있으면 감기 걸릴 텐데.”
“저는 괜찮아요. 가보세요.”
“음....”
완고한 대답에 릭은 잠시 난처해하다가 분수대에 쌓인 눈을 치워 자리를 만들고 루이스 옆에 앉았다. 말을 걸 때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내내 발아래 쌓인 눈만 보고 있던 루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릭을 올려다봤다.
빨개진 뺨은 또래 아이들보다 홀쭉하지만 그래도 어린 티가 나고, 땡그랗게 뜬 빨간 눈은 꼭 유순한 토끼 같다. 마법사와 토끼는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릭은 3학년이 됐는데도 아직 제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루이스를 향해 씩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그럼 옆에 있는 건 괜찮지?”
“...감기 걸릴 텐데요.”
“하지만 너는 여기 계속 있고 싶고, 나는 널 혼자 둘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루이스는 릭의 말에 들었던 고개를 다시 숙이며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뺨과 마찬가지로 빨개진 손끝을 본 릭은 장갑을 벗어 루이스의 손을 잡았다. 예상은 했지만, 얼음장이 따로 없었다.
“저, 정말 괜찮아요...!”
“괜찮긴. 이렇게 차가운데. 이러다 동상이라도 걸리면 병동에서 꼬박 일주일은 누워있어야 할 걸?”
“.......”
꼼지락거리는 작은 손을 꼭 잡고 문지르다 호 입김을 불자 어떻게든 손을 빼려던 루이스가 얌전해졌다.
“요즘은 좀 어때?”
“괜찮아요. 작은 홀든이 좀 귀찮게 굴긴 하지만.”
“하하. 그 애한텐 꽤 충격이었을 테니까.”
조금 미지근해진 손을 잡고 웃음을 터트린 릭은 루이스의 망토에 달린 후드에 손을 뻗었다. 후드에 묻은 눈을 털고, 눈만 보일 정도로 뒤집어씌우자 루이스가 몸을 움츠린 채 시선만 올려 릭을 쳐다봤다. 눈치를 보면서도 밀어내려고 하지 않는 게 정말 작은 동물같아서 귀엽다. 맘 같아선 꽉 끌어안고 싶은 걸 꾹 참고, 릭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 그게.... 사실 도넛이랑 코코아를 준비해놨는데 그 생각이 나서.”
“그럼 얼른 가보세요.”
“혼자 먹기는 많고....”
어떻게 권해야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따라올까. 릭이 애매하게 말을 흐리자 릭을 빤히 올려다보던 루이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습니다.”
“아니, 뭐.... 그냥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런 거니까.”
릭이 손사래를 치자 루이스가 언제 울적했냐는 듯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지으며 분수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루이스 같은 학생을 위해 학교에서 나눠준 망토는 졸업생에게 기증 받은 걸 해마다 쓰는 것이다 보니 낡고 해진데다 루이스한테 두 사이즈는 컸지만, 뱅글 돌 때마다 소매며 자락이 펄럭거리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저 나이 대에는 금방 자라기 마련이고, 덕분에 상급생들은 저학년 학생들이 몸보다 더 큰 망토를 입고 다니는 걸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게 일상이다. 릭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상급생이었고, 루이스는 그 학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였다. 그러니 시선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갈까.”
릭의 말에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에 언 몸을 일으키며 작게 신음한 릭은 엉덩이를 털고 앞서 걷는 루이스의 뒤를 따랐다. 보폭의 차이가 있으니 따라잡으려면 금방 따라잡겠지만 뒤에서 눈밭을 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느긋하게 발을 옮겼다. 꽁꽁 언 몸으로 급히 움직이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루이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왓, 루이스!?!”
냉큼 다가가자 씩씩하게 몸을 일으킨 루이스가 입을 앙 다문 채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마저도 소매가 너무 길어 손등이 아니라 소매가 다 문지르는 모양새였지만, 잠깐 마음을 놓은 사이 벌어진 일에 릭은 안절부절 못 하고 허공에 손만 내저었다.
“벼, 병동에...!”
“괜찮아요.”
“그래도....”
넘어진 게 아파서인지, 아니면 추위에 얼어서인지 빨갛게 언 뺨이며 눈가가 안쓰러워진 릭은 혼자 일어나 망토에 묻은 눈을 터는 루이스를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읏. 저 정말 괜찮아요, 혼자....”
“가끔은 그냥 받기도 해야지. 어차피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루이스를 안아든 릭은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양팔로 안아든 루이스의 몸은 눈으로 보고 가늠한 것보다 더 가볍고 작아서,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만했던 것 같은데. 2년 전, 어느 날인가 제 몸만한 책을 안고 넓은 복도를 헤매던 신입생을 떠올린 릭은 얌전히 안겨있는 루이스를 고쳐 안았다.
“전에.”
“응?”
“처음 만났을 때도 도와주셨죠. 이렇게는 아니었지만.”
무슨 얘긴가 했더니, 루이스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기억해준 게 기쁘면서도 쑥스러워진 릭은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루이스는 머뭇거리다 눈을 내리깔고는 양손으로 후드를 꼭 잡아 내려 얼굴을 가렸다.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에 릭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려 애쓰며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루이스를 안은 채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고, 이제 겨우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는 아이에게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응? 아니. 뭐, 별로 힘들지도 않고.”
“아뇨. 그.... 그날.... 도와주신 거요.”
“하하. 그건 더 인사 받을만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릭의 사람 좋은 미소에 루이스는 작게 숨을 토했다. 나름 용기를 낸 거였는데 상대가 너무 아무렇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망설이는 사이 눈이 쌓인 교정을 지나 복도에 다다르고, 실내로 들어가자 공기의 온도가 바뀌었다. 평소 같으면 왁자지껄할 홀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호그스미드에 간 학생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겠지. 혼자 있는 것도, 조용한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다들 즐겁게 노는 동안 소외되는 건 역시 외롭다. 울적해진 루이스는 릭의 품에 머리를 기대며 몸에 주고 있던 힘을 뺐다. 빠른 걸음도 걸음이지만 낯선 높이와 그보다 더 낯선 온기가 어색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루이스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후플푸프 기숙사 휴게실이 있는 부엌 근처 오른쪽 복도에 도착한 릭은 앓는 소리와 함께 루이스를 고쳐 안았다. 기숙사로 들어가는 통을 두드리려면 아무래도 손이 필요하기 마련이었고, 그러려면 루이스를 한 팔로 안아야 했다.
“저, 이젠 제 발로 서도 되는데요.”
“아, 그럼 잠시만....”
릭은 루이스가 바닥에 발을 대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손을 거뒀다. 릭이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덩달아 긴장한 루이스는 후플푸프 기숙사로 통하는 통들 사이에서 쭈뼛거리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릭 톰슨이 후플푸프 중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라지만 같은 기숙사 학생도 아닌 루이스를 이렇게 챙기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고, 다른 기숙사 학생이 휴게실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괜찮아. 너라면 다들 반겨줄 테고, 나도 있으니까.”
“하지만....”
루이스가 망설이는 사이 리듬에 맞춰 통을 두드린 릭은 다시 루이스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소중하게 안아드는 게 아니라 어깨 위에 감자포대처럼 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는 건 여전했다.
“으왓! 릭!”
“하하! 래번클로의 영웅을 납치해왔다!”
“릭?!”
호탕하게 웃으며 휴게실에 들이닥친 릭 덕에 조용한 후플푸프 휴게실이 소란해지고, 당황한 루이스가 뒤를 돌아보며 릭을 찾았으나 야속한 뒤통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울상을 지으며 릭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몸을 웅크리자 릭이 웃으며 루이스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였다.
“오, 뭐야 뭐야.”
“반장이 영웅님을 납치해왔대!”
“뭐? 어디어디?”
릭은 곤란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루이스를 어깨에서 내려주는 척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저, 저기요?”
“하하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루이스를 망토로 꽁꽁 감싼 릭은 불이 지펴진 벽난로 앞으로 가 두사람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쉬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어느새 간식 파티가 벌어졌다. 매일 나오는 식사도 훌륭한 정찬이지만 본 적도 없는 신기한 과자며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버터 맥주가 나오고, 루이스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후드를 꼭 뒤집어 쓴 채 릭이 건넨 버터 맥주를 홀짝거렸다.
기숙사마다 성향이 다른 것도 있겠지만, 후플푸프 기숙사는 건물의 장식부터 어딘가 조금 더 따스한 느낌이다. 온화하고 평화로운데다 다들 친절하다. 마음이 편해진 루이스는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올려 릭을 찾았다.
“이 정도면 호그스미드 방문 못지않은 후플푸프 방문이었지?”
“네. 감사해요. 그런데....”
“응?”
릭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물쭈물 망설이는 루이스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였다. 몸을 낮추며 자연스럽게 손을 루이스의 허리에 두르자 꿈지럭거리던 루이스가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들어 릭을 올려다봤다.
“제가 여기 온 것 때문에 릭 씨가 곤란해지진 않을까요?”
웬만한 미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얼굴로 올려다보며 귀여운 말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린 릭은 꿀꺽 침을 삼켰다. 약간의 불안과 걱정이 섞인 표정이 가련해서 당장이라고 꼭 끌어안고 싶은데, 그랬다간 당장 끌려가도 할 말이 없었다. 루이스를 끌어안는 대신 릭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모른 척 하며 대답했다.
“아, 하하. 그거라면 걱정 마. 네가 나쁜 장난을 치러 온 것도 아니고 내 초대를 받아서 온 거니까. 다들 그런 걸 문제 삼지는 않을걸. 래번클로가 널 너무 소홀히 한다는 걸 문제 삼는다면 모를까.”
“그건 그냥 제가 혼자....”
“알아. 우리는 후플푸프니까, 고작 그런 걸로 널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럼 슬슬 갈까. 이제 다들 돌아올 시간이기도 하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스의 망토를 단단히 여민 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은 몸을 번쩍 안아들었다. 완전히 어린 애 취급이지만 나름 익숙해진 루이스는 다시 훌쩍 높아진 높이에 릭의 목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과보호 받는 것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고, 소중히 대해주는 것도 좋지만 역시 조금 부끄럽다. 쑥스럽고,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는 기분에 주먹을 꼭 쥐자 릭이 피식 웃으며 후드 위로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뭐가요?”
“뭐든.”
따스한 봄 햇살을 머금은 듯한 릭의 미소에 루이스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꼭 햇살 같은 사람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이 사람 주변은 언제나 봄처럼 따뜻할 것 같고, 그래서 자꾸 기대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루이스가 멍하니 눈만 깜박이자 릭이 어색한 듯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다 엷은 미소를 지었다.
“릭 씨는....”
“응?”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심코 입을 열었던 루이스는 고개를 저으며 릭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아빠까지는 아니더라도, 형이 있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릭이 더 마음을 쓸 게 분명했으므로 루이스는 얼버무리며 릭의 목을 더 꼭 끌어안으며 뺨을 부볐다.
그 자그마한 행동이 릭의 가슴을 더 뿌듯하게 했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 한적한 복도를 걸어 래번클로 탑으로 향했다.
* * *
“루이스? 요즘 자주 보는 것 같네.”
“...안녕하세요. 릭.”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릭은 추운 복도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작긴 해도 안 자라는 건 아닌지, 짧은 바지 밑단 아래로 하얀 발목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목도리에 귀마개까지 꽁꽁 싸매고 다니는 계절에 짧은 바지가 좋을 리 없지만. 릭은 차가운 맨살을 덥혀주고 싶은 걸 참고 루이스의 옆에 앉았다.
생각이 많은 아이라 이번엔 또 무슨 고민일까 짐작이 가질 않았다. 래번클로의 고민이라고 하면 이상하고 해괴한 소리거나, 보통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게 보통이지만 시무룩하니 풀이 죽은 얼굴을 보면 그런 학구적인 고민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지레짐작이라 릭은 무슨 일이냐 묻는 대신 루이스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때로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니까.
조금이라도 온기를 보탤 요량으로 루이스 옆에 조금 더 붙어 앉은 릭은 내리는 눈을 가만히 지켜봤다. 함박눈이 내리는 호그와트의 교정은 조용하고, 스노우볼 안에 있는 자그마한 세상처럼 아름답다.
내리는 눈송이를 잡으려 손을 내밀자 영영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쯤은 웅얼거리는, 자그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이라도 놓쳤다간 이 신중한 영웅님이 내보인 마음을 다시 꽁꽁 감춰버릴 것 같았다.
“저는 래번클로랑 안 맞나 봐요. 차라리 후플푸프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하. 정말 그랬으면 지금쯤 래번클로 학생들은 죄다 문 밖에 나앉은 신세겠군.”
“저는 진지하다구요.”
릭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생각에 잠긴 루이스를 보다 작은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루이스는 움찔 몸을 떨었지만 얌전히 머리를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당황해서 그런 거지, 싫은 건 아닌 것 같다. 그 모습이 정말 작은 동물을 보는 것 같아서, 릭은 속으로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을 꾹 누르고 조심스럽게 루이스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여느 때처럼 부드럽지만 오늘은 철없는 어린애를 어르는 것 같다. 괜히 심통이 난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쌜쭉하게 내밀었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것과 별개로 머리를 만져주는 건 좋다. 크고 따뜻한 손이 머리를 어루만지면 꼭 사랑받는 것 같았다.
잔뜩 풀이 죽어서 얌전해진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릭은 둥근 뒷머리까지 어루만지며 토닥이다 무심코 루이스의 머리카락 위에 입을 맞추려다 멈칫했다. 아무리 귀여워도 친동생이 아닌 이상 이건 과한 스킨십이다. 릭이 손을 멈추자 루이스가 왜 멈추느냐는 듯 고개를 들어 릭을 바라봤다. 크고 동그란 눈은 토끼를 연상시키고, 살짝 붉어진 뺨과 눈가가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바람에 릭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도 꽤 유명한 모자걸이였지.”
“몇 분이었나, 족히 오 분은 걸렸던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모자가 꽤 정성을 들여 고른 거야. 물론 네가 원했으면 후플푸프에 배정해줬겠지만... 모자가 그렇게 고민 끝에 한 결정이라면 래번클로로 가는 게 너한테 더 좋은 거겠지.”
“...그건 해석하기 나름이죠.”
말을 하는 사이 진정한 릭이 웃으며 루이스를 바라봤다. 작은 동물이 의심을 거두고 마주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이 뾰로통하게 대답한 루이스가 무릎을 꼭 끌어안았다.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래. 네가 후플푸프였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지진 않았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정직하고 올바른 길을 추구하지만, 다른 기숙사처럼 특출나게 눈에 띄지 않잖아?”
“릭 씨는 순간이동으로 엄청 유명하잖아요.”
루이스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말에 쑥스러워진 릭은 귓가를 긁었다. 이래서야 위로를 해주려다 되레 칭찬만 받는 것 같고, 상급생이자 반장 체면이 말이 아닌 것도 같다. 애초에 반장 체면 같은 걸 생각하냐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멋진 선배이고 싶은 마음에 릭은 손을 내리고 미소를 머금었다.
“음. 그건 나도 몰랐던 재능이고.... 다른 기숙사에서 지냈다면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했을걸. 난 그리핀도르처럼 대담하거나 용감무쌍하지도 않고, 슬리데린처럼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희처럼 똑똑하지도 않아. 언제나 뒤에 한 발 물러서있는 편이지. 그래서 사실은 네가 부러워. 어린 나이에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긴 쉽지 않지.”
“...아무리 그래도 다른 기숙사 애들이 릭 씨처럼 말해주진 않을 거예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하지만 다들 널 격려해주고 싶을 거야. 오히려 나는 좀 멋이 없는 편이지.”
“그래도 전 릭 씨가 해주는 게 좋아요.”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이스를 바라봤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 루이스는 릭을 마주보는 대신 그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따뜻하고.... 멋있진 않아도, 진심이 느껴지니까요.”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쳐다보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게 귀엽다. 릭은 루이스가 제 입과 광대가 꿈틀거리는 걸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얘는 왜 이렇게 귀엽지? 끌어안아도 되나? 역시 안 되겠지? 루이스가 후플푸프 학생이었으면 모른 척 한 번은 끌어안아 봤을 텐데. 릭은 뿌듯하게 차오르는 쑥스러움과 기쁨,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꾹 누르다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이런 건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었다.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나도 쑥스러운걸.”
“...진심이에요.”
“고마워.”
“저도요.”
“그래. 그럼 이제 갈까? 이러다 감기 걸리겠어. 곧 크리스마스인데 컨디션을 망쳐서 병동에만 누워있으면 안 되잖아?”
릭은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래번클로의 작은 영웅님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지만 눈발도 거세지고, 이렇게 추운 복도에 더 있었다간 정말 병동 신세를 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야 방한 마법이 걸린 목도리며 장갑, 스웨터로 중무장을 했다지만 루이스의 차림새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런 날에 적합하지 않았다.
곧 시험도 있고, 안 그래도 작은 아이가 아파서 누워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릭은 제 몸보다 큰 책을 안고 강의실을 찾아 복도를 헤매던 신입생 시절의 루이스를 떠올리고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루이스는 부드럽고 자상한 미소로 손을 내민 릭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릭의 예상대로 루이스의 손은 맨손으로 눈싸움을 한 것처럼 차가워서, 릭은 루이스의 손을 지긋이 문지르며 작은 손을 데웠다.
“릭 씨한테는 아직도 제가 1학년으로 보이나 봐요.”
“하하. 나는 이제 졸업반인걸.”
“제가 시간을 뺏은 건....”
“그럴 리가.”
신중하고 침착한 건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이겠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눈치를 보는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안쓰럽다. 릭은 루이스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발을 옮겼다. 졸업도, 학교를 떠나는 것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제 이렇게 손을 잡고 걸을 기회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이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호그와트에서 보낸 지난 6년은 분명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릭은 그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입 밖에 꺼내는 대신 루이스의 손을 꼭 잡고 최대한 천천히 걸음을 늦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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