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자마자 씻으러 들어갔던 루이스가 나의 등 뒤에서 발돋움을 해 어깨 너머를 기웃거리면서 킁킁거리는데,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신선한 채소라곤 여기 올라온 게 전부니 내일은 장을 봐와야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누도 새로 사야겠더군요. 어서 앉으시죠.”
다 된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놓자 루이스가 웃으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내가 처음 주방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는 티가 나는 식탁과 의자였으나 지금은 그와 나의 흔적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오늘 저녁 메뉴는 남은 자투리 채소로 만든 포토푀에, 끄트머리만 남은 빵, 치즈를 얹은 감자와 소시지 구이가 전부인데 루이스는 이렇게 단출한 식탁이 크리스마스 정찬이라도 되는 양 나의 노고를 치사했다. 그가 내가 한 음식을 맛있다고 하는 것도,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을 알아주는 것도 꽤 흡족하고 뿌듯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빈말로도 그만 하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한때는 이런 걸 꿈꾼 적도 있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흠. 저랑 말입니까.”
내가 접시에 음식을 더는 동안 루이스는 식탁에 턱을 괘고 평소에 하던 칭찬과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듣기 좋은 소리였기에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루이스는 순박한 청년처럼 작게 웃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딱히 정해진 상대는 없었어요. 남자일 줄은 몰랐지만.”
“저랑 있는 게 좋다는 소리로 들리는 군요.”
루이스는 웃으며 긍정했다. 나는 그의 웃는 얼굴과 가볍게 울리는 웃음 소리를 퍽 좋아했고, 내게 눈웃음을 짓는 루이스는 더 좋아했다. 이렇게 웃어주기만 하면 무슨 요구를 해도 다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자주 들어오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 당신은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나는 음식을 접시에 던 두 개의 접시를 내려놓고 내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식전 기도 같은 걸 하지 않았기에 루이스와 눈짓을 주고받은 뒤 바로 포크와 스푼을 들었다.
당신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묘한 열을 일으켜 음식을 먹는 대신 숟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루이스가 나를 흘긋 보고 씹던 음식을 넘겼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섬세한 그답게, 조금 전보다 더 긴 말이 이어졌다.
“전에는 그냥 일하다 휴게실에서 잤지만 이제는 다르잖아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그러다 잘 자라고 인사하고 아침에 다시 만나는 그런 거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귀를 통해 가슴까지 퍼지는 감각에 나는 그를 바라보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기억이 없으니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것을 바랐던 것 같다.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의지가 되는 온기와 감정 같은 것. 타인과의 관계가 굳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지만 루이스는 특별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전부 알고 싶고 내가 당신을 원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원했으면 좋겠다는 열망. 어쩌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이 남자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나는 살짝 테이블 두드려서 루이스의 시선을 끌었다.
“당신. 그거 압니까?”
막 덜어낸 음식을 입에 넣으려던 루이스가 눈 동그랗게 뜨고, 그의 포크에 달랑 들린 감자와 소시지 덩어리에서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당신, 웃으면 정말 어려 보인다는 거.”
루이스는 겨우 그런 말을 하려고 한 거였냐는 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눈을 휘며 보내는 눈빛이 더없이 따스했다.
“남자한테 외모로 칭찬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은데요. 진짜로 잘생긴 사람이 그러면 더 기분 이상하다구요.”
“칭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럼 그런 걸로 해요.”
루이스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그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대신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루이스를 관찰했다. 잘 먹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그를 기다리는 내내 지루해한 걸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나서는 루이스에게 주방을 맡긴 나는 포트에 커피를 내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음식을 하는 데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설거지는 맡겨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루이스는 자신을 너무 못 믿는다며 노골적으로 서운하다는 티를 냈지만 아무리 귀여운 얼굴을 해도 안 되는 건 있는 법이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루이스가 가져온 신문을 대충 훑는 사이 집안 가득 진한 커피 냄새가 퍼지고 이내 물소리가 멎었다. 양손에 컵을 하나씩 들고 온 루이스는 내 전용이 된 머그컵을 내밀고 소파에 앉아 컵을 만지작거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래서인지도 몰라요.”
“뜬금없이 무슨 소립니까?”
“자주 들어오는 이유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나도 좀.... 힘들었거든요.”
“그렇습니까.”
“좀 지쳐있었어요. 다른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는지도 모르죠.”
루이스는 쓴웃음과 함께 시선을 피했다. 아련하고 지친 표정에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손을 루이스의 다리 위에 얹었다. 따로 준비하지 않았음에도 언제나 맞춘 듯 두 벌씩 마련되어 있던 식기와 읽지 않는 책. 불현 듯 스쳐지나가는 불쾌한 의혹에 얼굴이 굳었다.
“여자 문제입니까?”
“...내가 빠지면 곤란한 일이 많아서요.”
“그녀가 떠났군요.”
정곡을 찔렀는지 루이스가 눈을 감으며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괴로워하는 그를 보면서도 안쓰러움 대신 알 수 없는 분노와 질투가 끓어올라 나는 추궁을 계속했다.
“그래서 떠난 겁니까? 당신이 일에 매진하는 바람에?”
“그녀와 나는 바라는 게 달랐어요. 항상 여길 떠나고 싶어 했죠. 좀 더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당신은 남고 싶었고요.”
루이스는 비참하지만 다 괜찮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어리석고 한심해서,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지 못하고 떠나보낸 남자.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나는 루이스를 끌어안았다. 있는 힘껏 안고 그의 고통까지 들이마실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자 익숙한 손길이 나의 등을 두드렸다. 아픈 구석을 찌른 건 난데, 어째서 당신이 나를 위로하는가.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나는 당신의 세계에서 숨을 쉬지 못할 테고, 당신 역시 나의 세계에서 숨을 쉴 수 없다. 누구 하나는 망가지고 말겠지. 더 다가가면 안 된다는 이성의 경고음이 굉굉하게 울리는데도 나는 품에 안은 남자를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