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찬다. 이대로는 잡히고 말 것이다.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들을 피해서, 나를 쫓아오는 그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숨고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안 돼. 누군가, 누군가 나를 좀 도와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입에 단내가 나는데도 잡히면 죽을 거란 공포에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그만, 이제 그만. 소리조차 내지를 수 없는 어둠, 보고도 외면하고 마는 사람들.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울어도 도움은 오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
급박한 발소리, 나를 쫓아오는 사냥개, 울리는 소리. 온 힘을 다해 달리던 나의 몸이 크게 굴렀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끈적하고 소름끼치는 어둠이 발목을 휘감고 나를 쫓던 이들이 서서히 손을 뻗었다. 발버둥 칠수록 몸을 휘감은 어둠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몸을 뒤덮었다. 빛 한 줌 보이지 않는 어둠에 집어삼켜지며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싫어, 제발, 그만...!
마지막 발버둥으로 뻗은 손이 잡혔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일으키는 감각에 눈을 뜨자 짙은 어둠 속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보였다.
“괜찮아요? 무슨 꿈을 그렇게....”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쿵쿵 뛴다. 불안과 공포, 일방적으로 무력하게 쫓기는 감각이, 그 때의 심장소리가, 아직도 달라붙어있는 것 같다. 마른 침을 삼키자 젖은 손이 등을 쓰다듬다 떨어졌다.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루이스의 얼굴에 겨우 꿈속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를 꽉 끌어안았다.
축축하게 젖은 옷에 뺨을 부비며 숨을 토하자 그제야 밖에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저, 나 옷이 젖어서....”
루이스는 그의 그 순박한 목소리로 난처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남성의 머리를 쓰다듬는데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안심이 된다. 루이스의 손길은 자상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심장소리와 미지근한 체온은 잔뜩 긴장한 마음을 도닥였다.
“괜찮아.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모르면서, 루이스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나의 등을 토닥였다. 일순 든 충동에 고개를 든 나는 곧장 그에게 키스했다.
“읏...”
당황한 듯 움찔한 그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가 혀를 얽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진하고 질척한 키스가 주는 아찔한 쾌감에 나는 공포도, 불쾌한 악몽도 전부 단번에 잊어버리고 혀와 입술에 집중했다. 처음에 밀어내려던 루이스도 양순히 입을 벌리고 내 혀를 빨고 입술을 부딪치며 입술과 혀를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숨이 가빠지고 혀뿌리가 뻐근하도록 이어지는 키스에 나는 루이스의 뒷목을 잡고 고개를 돌려 각도를 바꿔가며 혀를 밀어 넣었다. 젖은 몸을 더듬다 그의 허리를 잡으려는데 루이스가 나를 떼어내고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이제 진정했어요?”
“...조금은요.”
“음. 아래는 아닌 것 같은데.”
어둠 속에서도 붉어진 뺨과 살짝 풀어진 눈시울이 예뻐 정신없이 쳐다보던 나는 그의 눈짓에 팽팽하게 솟은 바지춤을 발견했다. 아랫배에 묵직한 열이 쏠린 건 루이스와 있을 땐 으레 있는 일이었고, 키스를 하다 보면 또 그렇게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혼자 지내며 손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는 루이스를 붙잡으려 했으나 루이스는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다 안다는 듯 슬쩍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더 이상은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깝고 분해 눈살을 찌푸렸으나 옷장을 향해 돌아선 루이스에게 보일 리 만무했다.
루이스는 젖은 후드재킷을 의자에 걸어놓고 젖어버린 티셔츠를 벗었다. 꼼꼼하게 균형이 잘 잡힌 등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사이 새 옷을 입은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턱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해결하고 와요. 기다릴 테니까.”
“당신이 먼저 씻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음. 너무 지쳐서 힘들어요. 오늘만 봐줘요. 나도 그럴 테니까..”
나는 방금 전의 키스를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루이스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눕히고 하던 것을 마저 이어가고 싶지만 그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싫다.
망설이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 역시 옷을 벗으면 어떻게 될지 안다는 듯 젖은 바지는 벗지 않고 서성이고 있었다.
“...먼저 잠들지 마세요.”
“노력해보죠. 너무 기대는 말고.”
겨우 나온 말이라는 게 이런 거라니,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약간의 침묵과 약하고 애절한 말투로 루이스는 경계를 풀고 미소 지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바라보다 화장실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거센 빗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루이스의 체중을 받아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를 듣고 지퍼를 내려 단단히 일어선 물건을 손에 쥐었다.
“큿... 흐.... 루이, 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뜨겁게 맥동하는 욕정에 나는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의 단정하고 말간 얼굴이 흥분을 못 이겨 달뜬 신음을 뱉으며 쾌감에 물드는 걸 보고 싶다. 몸에 난 상처와 흉터 위에 입을 맞추고, 흰 목을 물고, 그리고, 그리고.
“후우.... 하.... 하, 하하....”
다리를 벌리고 그의 안으로 파고드는 상상 끝에 나는 사정했다. 정액을 토하며 꺼떡이는 분신도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으나 아직은 상상에 불과한 욕망일 뿐이었다.
그를 잃고 싶지 않다. 아무리 친절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해치려드는 사람을 계속 품어주진 않을 테고, 그랬다가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 뿐이다.
더해가는 열감 속에 흥분하면서도 철저한 계산을 하고 마는 자신을 알면 루이스는 더 경계할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 비치는 건 어딘가 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 자신이 아닌 보호하고 지켜줘야 하는 자신이다. 그럼 결코 나를 버리지 못할 테니까.
루이스의 미소와, 곤란해하면서도 끝내 받아주고 말 때의 표정을 떠올린 나는 바싹 마른 입술을 안으로 물었다. 그가 조금 더 마음을 놓고, 내게 익숙해지면 이렇게 혼자 달래지만은 않을 것이다.
도저히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어진 나는 더운 숨을 내쉬며 땀과 정액으로 젖은 손으로 다시 내 분신을 감싸고 짜릿한 상상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