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아홉시 반. 잔뜩 쌓인 업무로부터 퇴근한 다이무스 홀든은 자택 현관문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고급주택답게 육중한 쇠문은 부드럽게 열렸고 다이무스는 불이 켜진 거실에 노닥거리는 형제들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제 와인 셀러에 손을 댔는지, 우아하게 와인잔을 돌리며 향을 음미하던 벨져와 눈이 마주친 다이무스는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소파에 앉았다.
“왔구나.”
“불러놓고, 늦었네. 형아.”
“그러는 작은형도 좀 전에 왔으면서~.”
이글은 장난스레 벨져의 다리를 발끝으로 툭툭쳤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한 치 흐트러짐도 없는 다이무스, 당장 어느 파티에 참석해도 될 법한 차림의 벨져와 달리 이글은 청바지에 점퍼차림이었다. 각각 경감, 검사직을 하나씩 꿰찬 형들과 달리 책상머리 업무는 싫다며 멋대로 군 자유로운 영혼다웠다. 다이무스는 이글과 벨져를 한 번씩 쳐다보곤 가방에서 서류철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던졌다.
“이건 또 뭐야.”
“귀찮은 일이면 안 해.”
벨져는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고 이글은 소파에 길게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뿐 서류철에 손도 대지 않았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기에 다이무스는 한숨을 내쉬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안타리우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핵심만 짚어서, 간단하고 짧게. 다이무스의 말에 이글과 벨져가 눈을 치켜떴다. 안타리우스라고 하는 조직은 어느 쪽으로든 손을 뻗고 있었기에 이쪽에 몸 담은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접근하려고. 꼬리는?”
“걔네가 잡혀는 준대?”
“우리만으로는 부족하지.”
다이무스는 깔끔하게 시인했다. 경찰조직을 전부 동원해도 그들의 꼬리만 쫓을 뿐 정작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각종 범죄부터 정치, 경제, 종교에까지 숨어든 그들은 일반인에 섞여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울 뿐더러, 잡아도 꼬리를 자르고 도마뱀처럼 빠져나가는 게 안타리우스였다.
“더 깊이, 들어가야한다.”
“어떻게?”
방금 전까지 심드렁하던 이글은 어느새 소파에 앉아있었고, 벨져는 와인잔을 흔들던 손을 멈췄다. 이글의 질문과 벨져의 눈빛에 다이무스는 대답 대신 정장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빤 그는 막 불을 붙인 장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좋지 않은 신호에 벨져와 이글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이무스가 아무 말 없이 입가를 매만지며 소파에 몸을 기대자 벨져는 이글에게 눈짓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들었다. 펼친 뒤 바로 인상을 구기고 파일을 내던지긴 했지만.
“뭔데 그래?”
흔치않은 벨져의 반응에 흥미가 동했는지 이글도 파일을 집어들었다. 바로 첫 장에 나오는 신상명세에 이글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곤 바로 큰 소리로 웃어제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 하하. 작은형이 질색할 만 하네.”
“닥쳐라, 이글.”
“지금 상황에 그보다 적임자는 없다.”
“그래서 그 더러운 범죄자새끼를 끌어다 쓰겠다고? 그렇게 사람이 없나?”
벨져는 여과없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타고난 능력과 배경으로 주구장창 탄탄대로를 달리던 검사 벨져 홀든의 이력에 단 한 번 굴욕을 남긴 그를 벨져가 좋아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다이무스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엔 서류를 거들떠도 안 보던 이글은 흥미로운 듯 눈을 빛내며 서류를 읽어내렸다.
“재밌네. 난 찬성.”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형아?”
“더 큰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일이다.”
벨져가 어깃장을 놓는 건 충분히 예상 범위 내였기에 다이무스는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 와인병을 들었다. 그리 달가운 선택지는 아니지만 최악보단 차악이 낫다. 이이제이, 오랑캐는 오랑캐로 막는다. 다이무스는 창가에 서서 야경을 보며 와인을 병째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위에서 허가는 내려왔지만 이번 일은 다이무스 홀든에게도 쉽지 않았기에 적어도 함께 할 두 동생에게 미리 알릴 필요는 있었다.
이글은 싱글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고, 벨져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이 하는지 입술을 매만지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이무스는 두사람을 번갈아 보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