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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루이] 여름, 좋아해?
커미션()으로 쓴 킹프리의 신루이
코알라님께 드립니다/ㅠ0ㅠ)/
다섯 시 삼십 분. 처음 만난 그 도로에는 항상 기다린 것처럼 돌아보는 그 애가 있다. 한편으로는 어딘가 이상하고 묘한 그 애가 돌아볼 때 짓는 미소는 달빛이 물에 비치는 것처럼 예뻐서, 그 전까지 하고 있던 생각 같은 건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루이 군! 나 기다렸어?”
“응. 난 언제나 신 군을 기다리고 있었는걸.”
“미안. 연습이 길어졌지 뭐야. 더운데 어디 그늘에서 기다리지 않고.”
미안해진 신이 뛰어오느라 차오른 숨을 고르며 걱정해도 루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희고 예쁜 피부가 여름의 햇살에 발갛게 익은 게 예쁘기도 하지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뭐가 없을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신은 아이스크림 노점을 발견하고 미안함에 굳혔던 얼굴을 폈다.
“루이 군. 아이스크림 좋아해?”
“아이스크림?”
루이가 처음 들어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걸이가 흔들렸다. 신은 루이를 그늘진 벤치에 앉히고 곧장 아이스크림 가게를 향해 뛰었다. 루이와 제 몫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내밀자 루이는 얇게 눈을 휘며 웃었고, 신은 그 옆에 앉아 머리를 긁적였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요리조리 보던 루이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정말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어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차가움과 달콤함이 퍼지며 커지는 눈이 꼭 예쁜 고양이 같아 웃음이 번졌다.
“루이 군은 꼭 고양이 같아.”
“내가?”
“아, 응. 그게, 음…. 그러니까….”
사람을 동물에 빗대는 건 역시 실례이려나.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데 루이가 몸을 기울여 성큼 다가왔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노란 눈에 신은 숨을 집어삼켰다.
“어떤 점이?”
“루이 군은…. 뭔가 잘 설명할 수 없는 사람 같아. 잘 모르겠지만, 예쁘고, 그리고….”
왠지 말을 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져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방금 사온 아이스콘이 있어서 더, 목이 탔다.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갈증, 루이와 멎지 않는 두근거림.
“그리고?”
“예쁜 걸 보면 만나고 싶어지고, 같이 있으면 무척 두근거려. 꼭 프리즘 쇼를 볼 때처럼 기분 좋은 떨림이 멈추지 않아. 으응, 그러니까 내 말은….”
“기뻐. 신 군.”
전해야 하는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횡설수설 하던 신은 루이의 나긋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사르르, 햇살이 부서져내리는 것 같은 눈웃음에 머릿속이 비어버려서, 멀뚱히 그 예쁜 얼굴을 발라보다 한층 화사하게 웃는 루이의 미소에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너를 다 알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손을 차갑게 적시며 흐르는 아이스크림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으아, 휴지가….”
급히 닦을 것을 찾으려 주머니를 더듬는데 아이스크림콘을 쥔 손이 잡혔다. 조금 차갑고, 예쁜 루이의 손은 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어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눈꼬리를 올린 채, 눈을 마주하며 손등까지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핥는 루이는 아까와는 딴판이라 당황스러웠다.
루이는 녹아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다 핥은 뒤에도 신의 손가락을 할짝거렸다.
“저, 저기, 루이 군?”
“응?”
“아, 아냐. 이제 괜찮으니까 루이 군도 녹기 전에 얼른 먹어.”
신은 황급히 손을 빼냈다. 손을 뺀 뒤에도 몽글몽글하고 간지러운 감촉이 가시지 않아 몸을 살짝 옆으로 틀고, 루이에게 보이지 않게 슬며시 손을 문질렀다. 말랑하고 촉촉한, 그 감촉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때때로 루이 군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을 놀라게 만든다. 놀리거나 골탕을 먹이려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호의로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몇 걸음이나 앞서가 있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거리를 좁혀 다가와 마음을 흔들고 또 훌쩍 가버린다.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리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그런 초조한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그 초조함이 마냥 싫지는 않아서 더 이상하고, 그래서 끝내 이도 저도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은 채로 이런 만남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양이처럼 그렇게 왔다가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면 그냥 다, 괜찮다고 하고 싶어진다.
신은 작게 숨을 토하며 다시 흘러내리기 전에 제 몫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위에서부터 먹어치우는 저와 달리, 루이는 녹아 흘러내리려는 아이스크림의 밑을 할짝거렸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루이를 흘긋거리는데 루이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입을 벌렸다.
늘 예쁘게 웃어주는 루이의 무표정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해가 쨍쨍한 대낮인데도 왠지 야릇한 기분이라 멋쩍어진 신은 괜한 아이스크림콘만 와작와작 씹었다. 뺨이 화끈거리고 더운 게 아직은 그래도 여름이구나 싶었다. 미친 듯 뛰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다.
왜 이럴까. 자꾸만 머릿속에 방금 본 루이의 옆얼굴과 도톰하고 달콤할 것만 같은 입술이 떠올라 신은 손부채를 부치며 흐르는 물을 바라봤다.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다.
“저, 루이 군은 여름 좋아해?”
“신 군은? 여름, 좋아해?”
“응! 좋아해! 올해는 특히 더! 루이 군을 만나서 처음으로 프리즘 쇼를 보고, 오버 더 레인보우 선배님들을 만나고, 에델로즈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었는걸! 그래서 루이 군에게 고마워. 그 날 루이 군을 만나지 않았으면 세계가 이렇게 반짝이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야.”
프리즘 쇼를 보고 오던 길, 늘 오가던 거리가 찬란한 빛에 물드는 그 광경. 동경과 치기 어린 충동으로 뛰어오른 그 순간 피부와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과 반짝임.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를 웃게 만드는 프리즘 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 신은 주먹을 꽉 쥐고 루이를 바라봤다.
“기뻐.”
“응?”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있었어.”
고개를 숙이고, 엷은 미소와 함께 숨을 들이마시며 시를 읊조리듯 작지만 또렷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 날의 너를 잊지 않아.”
벤치에서 일어나 양손을 허리 뒤에 모은 채 천천히 걸으며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꼭, 반딧불을 따라간 그 날을 떠오르게 했다. 무언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어딘가 아련하고, 애틋한, 짙은 그리움이 배인 것만 같아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시간을 뛰어넘는 마음이 있어.”
루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 뱅글 몸을 돌려 신을 마주한 루이가 작게 웃었다.
“이 다음은 신 군이 말해줬으면 좋겠네.”
“으응? 아, 혹시 노래… 가사… 야?”
“알고 있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라서. 나, 책은 교과서밖에 안 읽고.”
부끄럽지만 사실이라 머리를 긁적이며 웃자 루이가 생긋 미소 지었다. 눈을 반짝이며 허리를 숙여 다가오는 루이와 얼굴이 가까워져, 신은 작게 숨을 들이키며 눈을 깜빡거렸다.
“기대할게.”
닿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루이는 신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고는 홱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후련해진 것만 같은 미소와 함께 돌아선 루이는 싱그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팔을 나풀거리며 뛰어갔다. 예쁘게 땋은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신은 피식 웃으며 도로 벤치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역시 루이 군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즐겁다. 즐겁고, 두근거리고, 설레서, 이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응. 좋아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일어나 가방을 고쳐 맸다.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루이가 한 말을 곱씹다 우연히 바라본, 물에 닿아 반짝이는 저녁노을에 멜로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멈춰 섰다.
“나는 지금, 너를 만나고 싶어.”
루이가 하려다 만, 다음 가사. 신은 내일 만나면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노을이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와 노을에,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그 애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